世紀의 美人 리즈 테일러 Liz Taylor
1932. 2.27 - 2011. 3.23
'세기의 미인'이라는 찬사를 꼬리표처럼 붙이고 다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지금까지도 할리우드가 낳은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힌다. 1932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는 화랑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배우였던 어머니를 부모로 둔 덕에 어려서부터 남다른 예술적 감성을 키우며 자랐다.
2차대전 당시 미국 LA로 건너간 그녀는 어려서부터 미모가 빛을 발하여 열살 때 영화계에 진출하게 된다. 유니버설과 전속 계약을 맺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몇 편의 영화에서 예쁘장한 아역을 맡아 인기를 누리고 이후 MGM에 픽업되어 인기 아역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1944년 ‘녹원의 천사’(12세).
용감한 레시 1946
이후 그녀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등에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미 이때부터 '세계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그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1960년에는 다니엘 만 감독의 <버터필드 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까지 인정받기에 이른다. 1963년 <클레오파트라>에 1백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고 캐스팅되어 그녀는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가 되었으며, 1966년에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 출연하여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손에 넣게 된다.
녹원의 천사 1944
작은 아씨들 (푸른 화원) 1949
신부의 아버지 1950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출연하며 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젊은이의 양지 1951
쿼바디스 1951년
쟈이언트 1956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1956
1957년 ‘애정이 꽃피는 나무’(25세
버터필드 8 1960
클레오파트라 1963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 1966
말광량이 길들이기 1967
사랑을 사랑한 여인, 잠들다
. 1932.2.27~2011.3.23…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망그는 아름다움이었다. 때론 하얀 순수(純粹)였고 때론 붉은 정염(情炎)이었다. 그는 사랑이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시대를 초월한 세기의 여신(女神). 그가 23일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하늘로.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한 햇수는 79년. .
2004년부터 앓아온 울혈성 심부전증이 결국 그를 우리로부터 떼놓고 말았다. 2009년 수술 뒤 "새로운 심장이 몸속에서 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라며 삶을 기뻐하더니 결국 하늘의 부름을 뿌리치지 못했다. 1932년 영국 런던 햄스테드 출생. 1939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944년 영화 '녹원의 천사'로 아역 스타가 됐다. 이후 1960년과 1966년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7명의 남자와 8번 결혼한 사생활이 화젯거리였다. 노년에는 에이즈 퇴치 등 사회활동에 힘을 쏟았다. 이제 은막의 여제에게 할 말은 이것뿐. "굿바이 리즈!"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엘리자베스 테일러 (1932. 2.27 - 2011. 3.23)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