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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30일 목요일

2014년 아틀란타 끔찍한 눈 경험

아틀란타로 이사와서 세번째 맞는 올 겨울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매우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다행히도 추운 날씨는 맑다는 관행대로 눈이 오는 것을 몇번이나 면했는데 지난 화요일인 1월 28일은 멕시코 만의 난류가 올라오면서 눈이 예상되어 이미 알고 있었다.
집사람과 나는 동네 근처에 몇 가지 살 것이 있어서 눈이 훗날리기 시작하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눈발은 적었지만 매우 많이 내려서 시야를 꽤 막기에 충분하였다. 1시간 남짓 볼일을 보고 오후 1시경 집으로 돌아오는 5마일 길은 내린 눈이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는데 3년 전에 눈이 와서 대란을 겪은 시민들은 일찍이 퇴근하여 길은 이미 차들로 심한 정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움직이겠지 했던 우리는 1마일 정도를 2시간 넘게 오면서 사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되었다.

벌써 눈은 제법 길을 덮기 시작하였고 차들은 특히 네거리에서 서로 엉키며 신호등과는 엇박자를 내면서 완전 스톱 상태로 변하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로스웰 길은 언덕길이 네 댓번 반복되는 길이어서 내리막 길에서 멀리 신호등 넘어 보이는 언덕길의 차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이미 갇혀 버렸음을 알고는 체념 상태로 기다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약 3시간 정도인데 제법 길에 녹기는 하지만 눈이 덮고 있었다.


집사람이 급한 용무로 인근 마켙으로 차를 빼어 게다가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구글 맵으로 큰길이 아닌 로칼 적은 길을 찾아 내어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길은 온통 차로 막혀 있었기에 좌회전으로 원하는 길로 진입하는 것은 쉬웠다. 앞에 차 몇대가 내리막 커브 길로 가고 있었는데 이미 길이 미끄러워져서 차가 가지 못하고 계속 좌우로 흔들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고 잘못하면 이 적은 길에서 완전 오도가도 못하겠다고 판단하여 빨리 그곳을 빠져 나와 큰길에 다시 진입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2마일 정도 길을 오면서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기만 하여 이미 대란이 일어 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척 큰 교차로에서는 엉켜 있는 차들 사이를 빠져 나오고 집 근처의 적은 길들은 거의 눈으로 덮여 있는데 추워지면서 대부분 얼음이 생기기 시작하여 차들은 쉽게 미끄러져 그야말로 엉금엉금 가고 있었다. 5시간 걸려 저녁 6시경에 천신만고 끝에 집에 온 우리는 저절로 한숨이 나오며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문제는 12마일 정도 떨어져 일하고 있는 정원이가 오는 것이 걱정이 되어 계속 통화를 하였는데 눈이 내린지 3시간이 넘은 3시경에 회사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400번 하이웨이 길은 이미 가지 못하게 통제하여 로칼 길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길이 얼마나 언덕과 커브가 많은 지를 알기에 우리는 제발 무사히 오기만을 바라며 계속 멧세지로 확인하고 있었다.

TV는 정규 방송을 그만 두고 아틀란타 곳곳에 정체된 상황을 보도하며 대란의 실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 6시에 일몰로 하루 종일 영하의 날씨는 점점 수은주가 내려가 이미 영하 6,7도의 추위에 바람마저 세차게 부는 매서운 날씨로 대란의 모든 조건은 갖추고 실제로 악몽으로 변하고 있는 아틀란타의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나의 마음도 절망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전혀 대비가 없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눈에 대비한 모래도 아무 곳에도 없었고 눈을 치우는 차나 그 외에 해당 기관에서 하는 것은 전혀 보이질 않아 속수무책으로 눈에 당하고 있었다.

우리가 온 길이 벌서 눈이 많이 쌓이고 얼어가고 있는 가를 알기에 정원이도 그 길로 오고 있어서 제발 무사히 오기만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는데 밤 9시경에 애 차가 빙판 길에서 360도를 돌고 있는데 뒤 차가 와서 받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나마 차에 별 이상은 없어서 계속 오고 있다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는 남자 세명이 뒤에서 밀어 주어 미끄러져 올라 가지 못하는 자기를 도와 주어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에 벌써 운전한지 7시간 가량 되는데 아직도 3,4시간이 걸릴찌 아니면 오늘 올 수 있을찌 별 생각이 머리 속에서 복잡하게 걱정을 더해가고 있었다.

뒤에서 충돌한 차
10시경에 걸려 온 우는 듯한 애의 음성을 듣는 순간 사고를 직감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큰 길 네거리를 넘어서 내리막길에서 이미 왼편 길가에 접촉 사고로 꼼짝 못하고 있는 두차에 자기 차도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났는데 왼쪽으로 경사가 된 두 차선 길이 그것도 내리막이 시작하는 곳이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움직이면 아래 길가에 세워둔 차를 또 들이 박을 것이라 도움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을 들으면서 잠시 멍해졌다.

집사람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여보 빨리 애한테 가서 데리고 옵시다였다. 불에도 뛰어 든다는 엄마의 모정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것 밖에는 우리가 할 것이 없어서 우리는 이미 영하 12도 정도의 추위에 대비해서 가장 두꺼운 파카에 등산화에 스틱까지 들고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밖으로 나왔다. 정원이는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빙판길에 먼길을 온지 말라고 펄펄 뛰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다.

나중에 보니 집에서 약 4마일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사고가 났다. 어둠이 깔린 길은 눈으로 하얀 세상이 되었지만 길은 차로 뒤덮혀져 있었다. 집에서 나오자 400번 후리웨이 위의 다리를 넘으면서 보이는 상황은 6차선의 상하 12차선은 완전 대형주차장으로 갇혀버린 상태라 너무 충격적이었다. 앞으로 몇 시간 더 갖쳐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너무 안됬다라는 생각 밖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길이란 길은 빙판으로 되어 차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처해 있었다. 대형 트럭이 Jack Knife로 길을 막으면 그 길은 그걸로 모든 차량이 스톱 상태가 되었다.

집 근처 적은 길은 거의 차들로 메꾸어져 있었다. 걸어가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Black Ice가 뒤덮힌 평지도 걷기 어려운데 크고 작은 오르막 내리막 길은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싶상이라 정말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안가니 여기 저기 길가에 버려진 차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내리막길에서 사고가 나서 소방차가 와서 통제를 하면서 그 뒤로는 차들이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지나가는 우리에게 앞에 무슨 일 일어났냐고 물으면서 이미10시간 차에 있다고 하면서 피곤하고 짜증난 모습에 근심 어린 눈 빛으로 우리와 잠시 말하였다. 대란의 여파는 거의 대부분 주민들에게 깊숙히 파고 들고 매서운 추위는 걸어가고 있는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2시가 되어 가는데 우린 계속 비틀 비틀 걸으면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는 차들을 보며 가슴까지 졸이며 걸어 갔다. 드디어 1시간 반 남짓 걸어 아이에게 도착하여 반갑게 만나니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게 없었다. 9시간을 차에 있던 아이는 파김치가 되었지만 우리를 보며 환한 안도의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서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하였다.

현장에서서 보고 있는 나를 찍었다.

네 대의 차로 길은 완벽하게 봉쇄

알고 보니 2차선 도로여서 남는 여백을 통과하려던 어떤 차도 꼼짝 못하게 되어 차 네대가 완벽하게 그 큰길을 봉쇄한 격이 되었다. 밤 12시 경에 차를 그냥 놓아 두고 다른 운전자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되돌아 오기 시작하였다. 새벽이지만 가끔 마추치는 사람들과 하이를 하면서 우리 셋은 이런 귀한 잊지 못할 경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흥겹게 그러나 조심하며 4마일 길을 걸었다. 언제 집으로 갈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그 많던 차들이 그 사이에 다 없어지고 길은 텅비어 있으나 간간히 차들이 기다시피하며 지나갔다. 집에 무사히 다달으니 새벽 두시가 다 되고 있었다. TV를 보니 아직도 여기저기 고속도로에는 정체된 차들이 너무 많아 그 속에서 갇혀 있는 사람들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어린 학생들로 무수하게 shelter나 학교 소방서에서 새우잠을 자는 아이들이 많아 부모들이 대노하는 광경도 목격하였다.




다음날인 어제 버스 운전사로부터 그 내리막길도 눈이 녹았으니 차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전화를 오후 3시경에 받고 가보니 대부분 눈이 녹았지만 바퀴 밑에는 눈이 그대로
있어 근처에서 모래를 구해 뿌려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주지사, 시장, 경찰 등 기자회견을
하면서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고 호되게 질책을 받는 모습도 보았지만 엄청남 대가를
모두 치르면서 아직도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정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찌 모르는 우리네 삶의 한 장면을 지나 보내면서 다시금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함을 느끼고 어려운 일이 지나간다는 자조 섞인 말이
생각났다.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할 것 뿐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면서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 없다.


아래 사진은 메스콤에 나온 모습들이다

.

Abandoned cars are piled up along I-75 outside downtown Atlanta on Jan. 29, after a winter snow storm slammed the city with over 2 inches of snow that turned highways into parking lots creating massive traffic jams. While such amounts of accumulation barely quality as a storm in the north, it was enough to paralyze the Deep South.
 
Residents in the Historic Oakwood neighborhood cross Lane Street on Wednesday morning, Jan. 29, in Raleigh, N.C. after a winter storm dropped several inches of snow, canceling school.


A driver uses a mobile phone in a car after running off the roadway due to a snow storm in Atlanta, Georgia, on Jan. 29


Kienan Dietrich sleeps at the aisle of a Publix grocery store after being stranded due to a snow storm in Atlanta, Georgia, on Jan. 29.


Passengers check-in at the Louis Armstrong International Airport in Kenner, Louisiana on Jan. 29, 2014. Flights resumed on Wednesday after all flights were cancelled Tuesday due to icy conditions.


The interstate system known as "Spaghetti Junction" is covered in ice on Jan. 29 after a storm slammed Atlanta with over 2 inches of snow.


Brookhaven police monitor a car fire in a vehicle left overnight by a motorist who was stranded by impassable roads, on Jan. 29 in Brookhaven, Ga.


People rest in the aisle of a Publix grocery store on Jan. 29 after being stranded due to a snow storm in Atlanta, Georgia.


Sunny Walker, a stranded motorist on Interstate 285 in Dunwoody, Ga. on Jan. 29, holds her two dogs while in her truck.


A snowmen are seen on the back of a car as cold weather descends on Mobile, Alabama on Jan. 29.


Sophie Butehorn, 10, right, and Sarah Cribb, 11, try to build a snowman with the light snow in the front yard of the Cribb home in Spartanburg, S.C., Wednesday morning, on Jan. 29.


Virginia Welch, left, Caroline Callahan, center, and Caroline Hurry enjoy sledding on the ice-covered street on Wednesday, Jan. 29, in Indian Springs, Ala.


A man stands on the frozen roadway as he waits for traffic to clear along Interstate 75 on Jan. 29, 2014, in Macon, Ga.



Visit NBCNews.com for breaking news, world news, and news about the economy


Vehicles that were abandoned the night before sit on the exit off of Interstate 285, early on Jan. 29 in Dunwoody, Ga. Around Atlanta, nearly all public entities and most businesses were shut down early, and officials encouraged would-be motorists not to drive.


Traffic sits at a standstill on Interstate 75-85 as dawn breaks in the aftermath a winter storm in Atlanta, Georgia, on Jan. 29.


Snow covers Hay Street in Fayetteville, N.C., in the early morning hours of Jan. 29.


A firetruck drives up an icy road late on Jan. 28 in Dunwoody, Ga.


Drivers slowly make their way down a normally busy road during rush hour in Charlotte, N.C., on Jan. 28.


A truck slides as he tries to avoid another wrecked truck as snow begins to accumulate on I-65 in Clanton, Ala., on Jan. 28.


High school students walk home past gridlocked traffic on Highway 92 in Atlanta on Jan. 28. School buses were not able to operate in many areas.


Vehicles are backed up on a snow covered US Highway 280 during a snow storm Jan. 28 in Chelsea, Ala. A fast-moving, unexpectedly severe winter storm blanketed much of Alabama with a treacherous layer of frozen precipitation, causing multiple wrecks, stranding hundreds of children in schools and coating palm trees with ice at the beach.


A police officer helps push a car on Highway 39 North on Jan. 28 in Meridian, Miss.


Students walk University Blvd. after class was dismissed at the University of Alabama on Jan. 28 in Tuscaloosa.


2014 Snow Day in Atlanta / Kennesaw Georgia


Atlanta snow 2014 BEST ACCIDENT COMPILATION January 29


VIDEO FOOTAGE Car Pile-ups & Catastrophe in Winter Storm














2014년 1월 28일 화요일

북한의 기독교인들


북한의 기독교인들 ...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근 50년을 북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선고까지 받고사형집행 날 극적으로
사형을 취소한다는 통지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을 때 수용소 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6,000 여명이 수용된 그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생산지휘와 모든 재정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들을
이곳저곳 마음대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를 담당하고 있던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는 단단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곳에 가야 된다.
그리고 그 미친 자들하고는 절대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 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았을 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가 다 줄어들어서120센티 30센티 요렇게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들이 잡혀 왔는데
거기 와서 하루 열 여섯 시간, 열 여덟 시간씩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노동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 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있었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게
육체가 망가져 기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프레스로 찍어도한 판에 그렇게 똑 같은 모습으로
찍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에는 교도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교도관들은 말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가죽 채찍을 윙윙 휘두르고 다니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멀리서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두 다 꺼먼 옷을 입고 있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어
딱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또 떨어지고, 타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고
마치 짐승의 가죽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공장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장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 백 명의 그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도관 두 명이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날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문 옆 한쪽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이라고,
소리 소리지르며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 세상으로 내보내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그렇게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수 백 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 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 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이 누군지, 하나님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그 사람들이 구둣발로 짓밟혀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져 나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만 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미쳐 날 뛰던 교도관 두 명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 면서
달려 가더니 용광로의 펄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쇳물을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눈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이 어른거려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으며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잡아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까지도
저렇게 거부하지 않고, 저렇게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려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깨나 꿈속에서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주님께서 그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구를 또 공개처형시키려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다.

공개처형 때는 언제나 하늘을 믿는 사람들을 맨 앞 줄에 앉힙니다.
그런데 하늘을 믿는 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라는 김일성의 특별지시와 규정이 있어서
하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앉힐 때에는
무릎 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꺾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파묻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신자들은 하늘을 조금도 못 보도록
목을 무릎사이에 끼우고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를 또 공개처형하려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여 대답도 할 수가 없었고 일어 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들이 나를 끌어내다 앞에 세웠습니다.
내가 군중들 앞에 섰을 때, 수용소 소장이 나에게
"고마운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너는 이 시각에 석방이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이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지금도 제 가슴에는 그분들의 그 간절한 눈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빌고 또 빌은 그 하늘이,
한 번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그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를 살려 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자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있는 그 신자들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의 증언으로 인해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가 150 여개 나라에
나갔고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 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탈북자 이순옥씨의 증언 중 일부

2014년 1월 27일 월요일

갑상선암을 극복한 피부과 전문의 김연진의 건강 식탁

대한민국 암 발생률 1위인 갑상선암. 착하고 느린 거북이 암으로 예후가 좋다지만 예방과 치료는 쉽지 않다. 갑상선암 수술 후 올바른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회복한 피부과 전문의 김연진이 제안하는 맛 좋은 암 치료 식단과 전문가들의 비밀 레시피로 풀어본 갑상선암 완전 정복기. 

 갑상선암을 극복한 피부과 전문의 김연진

한국 여성 암 1위
갑상선암

갑상선은 심폐 기능 및 체온 조절 등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하는 중요 기관이다. 갑상선암은 목 앞 나비 모양으로 생긴 갑상선 내부 세포 변이로 발생하며 한국 여성 암 발병률 1위의 암이다.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 역형성암으로 분류되며 예후가 좋은 유두암과 여포암이 95% 이상을 차지한다. 생존율이 높아 ‘착하고 느린 거북이 암’으로 불리지만 환자의 나이와 병세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적절한 식이요법을 통해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술 후에도 재발 위험이 있어 꾸준한 추적 관찰과 식이요법이 병행되어야 한다. 

갑상선암 전문가 3인이 제안하는 베스트 식재료 8

 갑상선암 전문가 3인이 제안하는 베스트 식재료 8
갑상선 호르몬에 필수적인 성분 요오드는 체내에서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물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갑상선 건강에 좋은 요오드는 수산물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며 대표 식재료로 고등어, 굴, 꽁치, 다시마, 멸치, 미역, 조개, 파래 등이 있다. 수산물 외에 채소나 우유, 달걀과 같은 식재료 역시 바다와 밀접한 지역의 것일수록 요오드 함량이 높다. 

갑상선암을 극복한 피부과 전문의 김연진의 
힐링 라이프
 피부과 전문의로 TV와 잡지를 종횡무진하던 김연진 전문의가 어느 날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몇 달간 지속된 만성 피로와 목의 부기로 건강의 이상 징후를 느낀 그녀는 병원을 내원했다. 그리고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40대에도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웰에이징’ 대표 셀러브리티로 각광받던 그녀였기에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암 통보가 당황스러웠지만 숨 가쁘게 달려온 삶에 쉼표를 주는 계기라 생각하고 담담히 암을 인정하고 수술을 받았다.
바쁜 스케줄로 빵과 과자로 끼니를 대신했던 적이 많았던 그녀는 수술 후 제때 식사를 하는 식이요법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근무하는 병원과 집이 가까워 끼니때가 되면 집으로 와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끊기 어려웠던 과자나 인스턴트식품 섭취를 줄였다. 평소 한식을 좋아해 자주 먹지만 조리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품요리를 즐기는데 주로 고기보다는 생선을, 반찬보다는 국을 선호한다.
“단백질을 먹어야지 생각하면서도 고기는 좋아하지 않아 잘 먹지 않아요. 붉은색 고기인 소고기, 돼지고기뿐 아니라 닭과 같은 흰 살 고기도 마찬가지죠. 스테이크처럼 불에 직접 굽는 건 거의 먹지 않고 주로 삶거나 데쳐 먹어요.”

 갑상선암을 극복한 피부과 전문의 김연진


 갑상선암을 극복한 피부과 전문의 김연진
부족한 단백질 섭취는 생선으로 보충한다. 하루에 한 끼는 꼭 생선 반찬을 해 먹는다는 그녀는 조기나 고등어 같은 짭조름한 생선보다는 병어, 민어, 갈치같이 슴슴한 맛의 생선을 좋아한다. 생선은 주로 구워 먹지만 간장 양념을 살짝 더해 조림으로 만든 것도 즐긴다.
집밥을 먹게 된 뒤로부터 그녀는 영양밥의 매력에 푹 빠졌다. 특히 싱싱한 굴과 시원한 무를 함께 넣어 만든 무굴밥과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인 콩나물영양밥을 가장 좋아한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면 사골국을 고아 아침마다 한 대접씩 마시고 출근하는데 고소하고 깊은 맛이 엄동설한 추위쯤 거뜬히 이겨내게 한다. 제철 과일은 늘 가지고 다니며 주전부리로 먹는데 요즘처럼 귤이 맛 좋은 겨울에는 앉은 자리에 귤껍질이 수북이 쌓일 만큼 많이 먹는다.         
아침저녁 집 주위 공원을 돌며 한 시간씩 빠르게 걷고, 일주일에 한 번은 헬스장을 찾아 근력 강화 운동을 한다. 장시간 앉아 근무하는 직업인 탓에 종종 허리 통증이 있어 골프 연습도 한다. 가까운 거리는 되도록 걷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생활 속 작은 움직임을 더해가면서 몸무게뿐 아니라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인 거 같아요. 만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하잖아요. 갑상선암 판정을 받을 때쯤 스트레스가 절정이었어요. 좋지 않은 식습관과 운동 부족, 스트레스가 더해져 갑상선암이 발병한 것 같아요. 이제는 제 눈에 있던 볼록 렌즈를 빼고 오목 렌즈로 바꿔 끼워보려고요. 큰 문제는 작게 작은 문제는 더 작게 보면서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보세요. 갑상선암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거예요.”

갑상선암 명의, 이은직 교수의 조언
“전체적으로 고르게 음식을 섭취하는 좋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과당이 많은 과일을 필요 이상 섭취하면 혈중 중성지방이 올라갈 위험이 있으므로 주의하고, 사골 국물 역시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아 자주 먹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유산소 운동인 걷기와 계단 오르기, 골프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약해지는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꾸준한 근력 운동은 체력 보완뿐 아니라 면역력 증강에도 도움이 되는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격려해드리고 싶습니다.” 

암 식단 전문 영양사, 최정희 교수의 조언
“소박하고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생리 활성에 도움을 주는 항산화 성분과 식물 화학 물질이 풍부한 채소 중심의 식사로 체중 조절 및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식단입니다. 하지만 붉은 살 육류 섭취가 적은 탓에 두 가지 중요한 영양분 섭취가 부족합니다. 하나는 양질의 단백질 섭취입니다. 붉은 살 육류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면역성을 높이는 핵심 성분입니다. 지금보다 붉은 살 육류 섭취를 늘리고 두부, 콩, 달걀흰자와 같이 다양한 단백질원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선 역시 고등어, 연어, 청어와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은 등푸른생선 섭취를 권장합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근육이나 혈액을 구성하는 철분 함량이 부족합니다. 채소에도 식물성 철분은 많지만 생체 이용 효율이 높지 않으므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갈아 채소와 함께 부침으로 만들어 먹는 방식으로라도 섭취하기를 권합니다. 철분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토마토주스
기본재료 토마토 1개
만드는 법
1 토마토의 꼭지를 도려내고 열십자로 칼집을 낸다.
2 팔팔 끓는 물에 ①을 넣고 껍질이 일어날 때쯤 꺼내 찬물에 담가 식힌다.
3 ②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크게 썰어 믹서에 간다. 

 토마토주스, 병어무조림

병어무조림
기본재료 병어 1마리, 무 1토막, 대파 ½대, 마른 고추 2개, 양파 ½개, 다시마 1장 
양념장 생강 1톨, 쪽파 4뿌리, 간장 4큰술, 고춧가루 ½큰술, 마늘 2알, 들기름·청주 1큰술씩
만드는 법
1 다시마는 찬물에 담가 하룻밤 재워 육수를 만든다.
2 병어는 손질해 등에 칼집을 낸 뒤 준비한 양념장 1술을 골고루 발라둔다.
3 ①에 납작하게 썬 무, 고추, 양파, 양념장 3큰술을 넣고 끓여 조림소스를 만든다.
4 ③이 끓어 무에 간이 배면 준비한 병어와 대파를 넣고 끓인다.

 무굴밥
무굴밥
기본재료 굴 300g, 무 1토막, 쌀 200g, 참기름 약간 
양념장 쪽파 5뿌리, 작은 생강 1톨, 간장 2큰술, 고춧가루·생수 1큰술씩, 조청·물엿·참기름 1작은술씩
만드는 법
1 쌀은 물에 씻어 불리고 무는 채 썬다. 굴은 소금물에 한 번 헹궈내 준비한다.
2 두꺼운 솥에 ①의 굴과 참기름을 넣고 약한 불에 살살 볶는다.
3 익은 굴은 꺼내고 볶을 때 나온 육수는 따로 받아둔다.
4 두꺼운 솥에 ①의 무채와 쌀을 안치고 ③의 육수를 물과 함께 섞어 밥을 짓는다.
5 밥이 익는 동안 양념장을 만든다.
6 완성된 무굴밥에 ⑤의 양념장을 곁들인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진행 고윤지 | 사진 이종수 | 도움말 최정희(백석예술대학교 외식산업학부 교수), 이은직(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분비내과 교수) | 참고도서 <갑상선 질환 완치설명서>(헬스조선) | 요리 문인영(recipe 101)

태양도 바람도 저장: 에너지, 필요할 때 꺼내쓰는 新기술의 세계

▲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전기 공급에 문제가 없는 풍력 발전소, 해가 져도 발전(發電)이 가능한 태양열 발전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바람이 세고 햇빛이 강할 때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쓰는 신기술 덕분이다.

대표적인 것이 '흐름 전지(flow battery)'. 남는 전기를 액체가 든 탱크에 화학물질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하면 밸브를 열어 수돗물처럼 쓴다는 개념이다. 탱크만 키우면 언제든 에너지 저장용량을 키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흐름 전지는 대부분 바나듐 금속이 녹아있는 전해질을 쓴다. 2003년 호주 킹 섬은 풍력 발전소에 7만L짜리 탱크를 갖춘 바나듐 흐름 전지를 설치해 바람이 약할 때 쓰던 디젤발전기 사용을 절반으로 줄였다.

지난해 일본 홋카이도 전력회사는 태양광 발전소에 쓸 세계 최대의 바나듐 흐름 전지를 주문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바나듐 흐름 전지를 얇게 만드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흐름 전지는 전기자동차에도 쓸 수 있다. GE-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일리노이공대-아르곤 국립연구소 컨소시엄은 각각 미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아 전기자동차용 흐름 전지를 개발하고 있다.

흐름 전지는 전기자동차의 전지 가격을 4분의 1로 낮출 수 있으며, 한 번 충전으로 가는 거리도 지금의 160~320㎞에서 최대 800㎞까지 늘일 수 있다.

바나듐 흐름 전지는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다. 미 하버드대 연구진은 지난 9일 '네이처'지에 바나듐 가격의 3분의 1에 불과한 유기물질 '퀴논'으로 만든 흐름 전지를 발표했다. 퀴논은 원유나 식물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다. 퀴논은 산화-환원 반응도 바나듐보다 1000배나 빨라 충전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해가 져도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도 있다. 지난해 9월 스페인 아벤고아사(社)는 미국 애리조나주의 솔라나 태양열 발전소에서 처음으로 액체 상태의 소금을 이용한 상용 야간 발전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듯, 태양열 발전소는 햇빛을 한 곳으로 반사시켜 기름을 끓인다. 열교환기는 기름의 열로 증기를 만들어 발전기를 돌린다.

솔라나 발전소는 낮에 증기를 만들고 남은 기름의 열을 액체 소금 12만t에 저장했다 해가 지면 섭씨 550도 이상의 뜨거운 소금으로 다시 증기를 만들어 발전기를 돌린다. 아벤고아사는 이 방법으로 해가 진 후 6시간 동안 3만 가구가 쓸 수 있는 12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솔라리저브는 내년 네바다사막에 같은 방법으로 해가 진 후 10시간까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110메가와트급 태양열 발전소를 세울 예정이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지구촌의 傳統市場들(전통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