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철책 높으면 땅굴 뚫고서라도…"
2010.12.22. 조선일보 기사.
북한의 내부 통제가 심해지고 경제난이 가속화됨에 따라 탈북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단파라디오 '열린북한방송'은 21일 함경북도 회령시 소식통을 인용, "최근 국경지역에 무단 출·입경 방지용 철책을 건설하고 있지만 한국행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숫자는 늘고 있다"고 전했다.
9·28 당대표자회와 11·23 연평도 공격 이후 준전시 상태가 계속돼 내부 통제가 더 심해졌고 쌀이 1kg에 1500원까지 올라가는 등 식량 사정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방송은 보도했다.
북한은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2000년대 들어 대대적으로 철조망을 설치했지만, 이번에는 군사 분계선과 같은 형태의 철조망을 설치해 국경출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의 도강(渡江)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써왔지만 탈북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탈북자가 증가하는 원인에 대해 이 소식통은 "북한의 현재 경제상황을 보면서 내년에는 더 살기 힘들어 질 것으로 주민들은 생각한다"며 "밑천도 없는 주민들은 가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중국이나 한국에 가야만이 살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kg당 1300원에서 1500원인 현재 쌀값은 올해 보릿고개였던 초여름과 비교해 2배 이상 뛰었다. 현재 상태로 갔을 때 내년 식량사정은 훨씬 더 안 좋아질 것으로 주민들은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중국이나 한국에 온 탈북자들도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몰라 하루 빨리 가족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가족들을 찾아 탈북을 권유하고 있는 비율도 높아졌다.
이 소식통이 알고 있는 탈북 브로커만 해도 올해 11월과 12월 사이 도강시킨 탈북자 수가 작년과 비교해 2배를 넘는다고 전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월 평균 10명이 자신을 통해 강을 넘었는데 올 12월에는 20명이 넘었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들의 부탁을 받고 탈북 권유를 위해 접근했을 때 이전에는 거절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탈북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에 오고 싶어도 연고자나 돈이 없어 오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도 예상외로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려면 한화로 6~7백만 원이라는 돈이 있어야 되는데 연고자나 친척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인신매매로 팔려서라도 탈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탈북을 막기 위해 아무리 높은 철책을 쳐도 그것은 하나의 위협일 뿐 철책이 높으면 땅굴을 뚫고서라도 탈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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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탄광배치 제대군인 이탈 속출"
2010.12.22. 연합뉴스
심각한 에너지난에 처한 북한이 석탄 증산을 위해 10년간 군복무를 마친 제대군인들까지 탄광에 배치했지만, 상당수가 불만을 품은 채 근무지를 이탈하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2일 전했다.
이 방송은 북한의 ‘국경지역 소식통’을 인용, “지난 8월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탄광에 400여명의 제대군인이 배치된 뒤 휴가를 갔는데 석달 넘도록 150명이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이 탄광 간부들이 이탈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제대군인의 탄광 배치는 김정은 청년대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면서 “평양시에 난방용 석탄을 공급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젊은 인력이 부족해 채탄에 지장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인민무력부에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이들 제대군인의 탄광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후보당원 자격 부여, 주택 지급, 결혼알선 같은 유인책이 나왔지만 효과가 없다”면서 “그러자 미복귀시 출당시키겠다는 경고가 나오고 탄광에 ‘김정은 배려 쌀’이 지급된다는 소문도 나돌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겨울철이 됐는데도 평양시조차 잦은 정전으로 난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김정은이 석탄, 전력 분야 생산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면서 “황해도에서 직송된 ’김정은 배려 쌀’이 탄광과 발전소 여러 곳에 공급되고 있다는 말도 나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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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식을 들을수록 북한의 총체적 파국이 점차 극에 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돌출행동이 나올텐데 지혜있는 대처와 만약의 사태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리라 생각된다. 평화적인 통일은 가능할까? 기적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미구 CNN 기자가 북한에 가서 12월 22일 경에 찍은 비데오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최근에 북한에 대한 사진을 라이프 지가 게재한 것을 모았다. 북한을 여행한 여러 사진작가들이 확보한 귀중한 자료로 북한의 실상을 설명과 함께 발표하였다.
북한 주민에겐 외국인 방문객은 이례적이면서 교육받은대로 무관심을 나타내고 설령 말을 걸어도 판에 박은 말만 되풀이 한다. 심지어는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도 오직 두 지하철 정거장만 사진을 찍으라고 허용했다.그리스의 Yannis Kontos 사진작가는 "목격한 모든 것은 연출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나라 전체는 어떤 선전 시나리오에 의하여 연출되고 있어 보였고 신중하게 선택된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서 어떤 사람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 먹던가, 버스를 타던가. 지하철을 타도 사람들은 연기를 하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현실적이지를 않았다."
Kontos는 자기의 사진의 80%는 몰래 찍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북한을 여행하는 모든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어디를 가던지 감시원이 동행하여 같이 여행하면서 식사도 함께하고 계속 감시하면서 무엇을 찍어도 되는지와 찍으면 안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때로는 암시적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나는 내 감시원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여러 방법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때로는 렌즈를 통해 보지도 않고 사진을 찍어 자신이 스파이같다고 느꼈다. 거의 모든 시간 내 카메라 두 개는 내 가방 속에 숨기고 평양에 즐비하게 많은 거대한 기념물들을 보러 들러서는 나는 공개적으로 내 주변을 찍었다. 북한인들은 당신이 그들의 나라와 혁명에 경의를 표하는 구조물의 사진을 찍기를 기대하고 있다". 평양과 나라 전체를 통해 대부분의 기념물들은 "공화국의 영원한 대통령"이고 현재의 통치자인 김정일의 아버지인 김일성에게만 경의를 표하고 있다.
Kontos는 "이 장총은 플라스틱 모조품이고 이 여자들은 어떤 행사 혹은 큰 정치적 집회에 출연 하였던가 아니면 하기 위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이 사진은 북한은 너무 예측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내가 감시원과 함께 지하철에서 밖으로 막 나왔을 때 내 앞에 총을 든 이 여자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좋은 사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카메라를 목에 건채 사진을 찍었다. 나라 전체가 이와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는 놀라운 나라였다.
"나라 전체가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약 50년 전에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Kontos는 "그 이후로는 변화가 전혀 없다. 정말로 다른 시대에 있다는 느낌이다. 독재 하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현재의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설명한 방법이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김일성이 꿈꿔서 만든 분명하게 조작된 거품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의사 소통의 방법은 없다." 위의 사진은 평양-북경 간의 고속철도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북한인.
Kontos는 그가 본 북한인의 일상의 삶에 불편함과 매력이 잘 정돈되지 않는 복합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는 또한 북한인들이 자기들 나라가 지상에서 파라다이스라고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그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언론으로부터 보고 듣는 것 외에는 그들의 삶을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것이 없다. 그들이 달리 더 원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자기가 보지 못한것을 상상하는 방법은 없다.
김일성이 북한주민들의 세대마다 자기의 의지를 심으면서 만들어낸 거짓된 놀라운 자만심 중에 국가적 정신에 완벽하게 맞춘 가짜 신화를 창조한 사실은 그의 걸작품이다. "권력을 공고하게 하기 위하여 김일성은 '주체'라고 부르는 일종의 광신적 종교같은 자기 의존적 이념을 만들었다. 주체란 전통적인 한국인의 외국인 혐오증과 민족주의, 권위에 대한 유교적 존경심과 막스 레닌의 유토피아 사상이 혼합되어 나온 소산물이다. 특이하게 텅 빈 평양의 거리- 자동차의 소유권은 이 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주체란 말은 Kontos가 북한에서 마주친 괴상한 형태의 자만심과 극도의 궁핍함을 논할 때에 역시 등장한다. "어디에서나 손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본다. 트럭과 트랙터가 몇 대 있었지만 오래 된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풀을 가위로 자르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진짜 자부심이 있음을 본다. 마치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봐라 얼마나 우린 앞서가고 있나? 우리는 세계의 모델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 더 사진을 보려면 YannisKontos.com 에서 볼 수 있다.
2007년 8월 평양에서 열린 집회에서 김일성이 아버지 김형직으로부터 물려 받은 총들과 무적의 혁명의 상징인 김일성의 권총들의 모자익 형상을 약 2만 명의 사람이 카드를 높이 들어 만들고 있다. "나는 정말로 이 스타디움의 정 중앙에 운 좋게도 있었다."라고 사진작가인 Tomas van Houtryve가 LIFE지에 말했다. "나는 줄의 맨 끝인 통로에 있었는데 나중에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정면에서 그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권총들의 모양은 어디서나 보게 된다. 그 총은 붉은 천의 맨 꼭대기에 항상 똑같은 위치에 있는데 그 점이 김일성을 둘러싼 제련된 신화에 더해진 한 부분이다.
흉칙한 미국놈: the Bayeux Prize for War Correspondents 와 the Visa pour l'Image Young Photographer 상을 수상한 van Hourtryve는 북한을 2007년 여름과 2008년 2월에 두 번 여행하였다.(두 번째 여행에서는 그는 벨기에의 초코렛계의 유명인사로 평양 교회에서 초코렛 회사의 개장을 협의하였다.) 위의 그림은 미국인 목사와 의사가 북한 어린이를 고문하고 있는데 그는 "이 그림은 어디에서나 보는 것인데 미국인들은 북한인들을 고문하고 죽인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들의 조국이 전세계로부터 계속적으로 위협 하에 있다는 사상은 그들의 자기 의식의 중심에 있다." 고 말한다. 김일성은 북한 군인을 나라의 생명 활력이라고 표현한다: 북한 인구 24백만 중 군인은 약 1백 2십만이고 국방비는 GNP의 4분의 1에 가까우며 북한은 틀림없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van Houtryve는 "만약 내가 북한에 입국 신청시 언론인이라고 밝히면 비자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라고 LIFE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는 대신에 가짜 회사 카타로그와 가짜 회사 웹싸이트와 초코렛 샘플을 가지고 초코렛 제조 업자로 행세하였다. 물론 그의 계획이 밝혀졌다면 그는 아마 심각한 징벌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그의 여행 일 년 뒤에 미국의 현직 테레비젼 언론인인 Euna Lee와 Laura Ling은 비자없이 북한의 국경을 넘었다고 체포되어 불법입국죄로 기소되어 12년 중노동 형, 사실상 사형을 선고 받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 석방을 시켰다. 사진은 비 중에 걷고 있는 스튜어데스, 2007년 8월
북한에 방문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van Houtryve도 계속적인 감시하에 있었다. "한 번은 내 감시원들이 갑짜기 나에게 와서는 세 네시간 동안 근본적으로 심문하였다. 그들은 반역에 대해 말하고 나의 가족을 들먹이며 만약 내가 그들을 기만하면 복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버스 창문에서 비밀 군사 시설을 찍었다고 주장하면서 내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나는 내 호텔 방으로 뛰어가서 내 메모리 카드를 바꾸고 모든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내가 찍은 모든 사진을 카피하여 방에 숨겨 둔 다른 메모리 카드로 사진들을 이전하여 거의 모든 사진을 간직하였다. 그들은 내가 말한 대로 내 신분과 행동을 믿고 만족하는 체 했는지 모르나 만족하였다." 평양의 지하철의 터널은 지하 350피트(약 105미터)이상으로 내려가 세계의 공공철도 중 가장 깊이 만들었다.
자주 세계 공공 조각물 중 가장 추한 것 중 하나로 알려진 평양의 150피드 높이의 건축물인 북한 노동당 창건을 기념하는 햄머, 낫과 글 쓰는 붓으로 된 이 조각은 북한의 노동자, 농민과 지성인을 상징하며 평양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며 투박하며 거대하다.
평양에 있는 자랑스런 조국의 해방 전쟁 박물관에서 미국 침입자들을 살해하는 것을 그린 그림 앞에 군인 복장의 한 안내원이 서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메세지는 어디를 가던지 '거대한 적이 밖에 있고, 북한은 포위되어 있고 대규모 공격은 언제나 임박해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여러가지 전투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360도의 완벽한 입체 모형의 작은 한 부분을 보고 있다. 놀라운 것은 북한이 박물관의 모델과 입체 모형 등에 아주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믿을 수 없이 정성들인 백화점의 쇼 윈도의 전시물과 비슷하다 " 라고 van Houtryve가 언급한다.
van Houtryve는 "이 사진은 나의 두 번째 여행인 2월 내가 사업 대표와 같이 갔을 때 찍은 것인데 겨울에 매우 추웠다. 우리는 우리 감시원들에게 계속해서 보통 북한 주민이 물건을 사러가는 상점을 볼 수 있나를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를 몇 번이나 계속해서 이 외국인 전용 상점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곳은 우리가 가지 전까지는 문이 닫혀 불도 완전히 꺼져 있었다. 우리 버스가 도착하면 불이 들어왔다. 그것이 이 여자가 점포 안에서도 파카 잠바를 입은 이유이다. 우리가 들어서기 전에는 불도 히타도 꺼져 있었다. 그들도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문을 열고 불을 켜서 안에 있는 여자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가 서로 잡담하고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추워서 손을 비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엄청난 대조: 이 사진에서는 평양의 교외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거대한 선전 모자익 앞을 북한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버스로 약 50마일 거리를 한 시간 정도 다니다가 이 사진을 찍었을 때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선전물과 거리의 사람들 간의 불일치한 점이었다. 모자익의 모든 사람들은 웃는 얼굴에 살이 통통하고 그을르고 행복하게 보이고 모든 것이 믿을 수 없게 밝고 정서적으로 보였다. 반면에 그 앞에 있는 주민들은 매우 무기력하게 보이고 추위에 목을 싸고 감자 주머니와 삼베 자루를 실은 카트를 밀고 있다. 동력으로 움직이는 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해서 많은 거리를 가는 동안 보이는 사람들은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걸어가거나, 적은 카트에 짐을 싣고 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라고 van Houtryve는 말했다.
야간에 불이 없다: 평양에서 2008년 2월 Kafka의 글 모음의 표제로 나올 위 사진은 눈 속에서 어떤 차의 헤드라이트가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있다. "북한 여행에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지구 상의 어떤 나라의 경우와 너무 다르다" 라고 van Houtryve는 그가 쓴 북한 여행기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을 정도로 완전히 기이하다. 평양은 김씨 일가의 어색한 취향에 맞춰 과거 50년간 만든 기념물과 거리들이 워싱턴과 파리의 기념물 보다 더 많고 거리는 훨씬 넓다. 그러나 통행하는 차와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비어 있는 영화 세트 장과 같다."
위의 사진을 찍은 Christopher Morris 는 전세계에서 문제가 있고 충돌 현장들을 취재하고 타임즈 사를 위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업무를 기록하였고 카트리나 재해 직후에 2005년에 뉴 올리안즈에서 일했다. 당시 그의 편집장이 전화를 하였다. "그가 나에게 북한에 가는 귀한 비자를 얻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뉴 올리안즈를 떠나서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타임즈 사가 내가 매우 통제된 환경인 백악관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나를 택하였다고 생각한다. 통제된 환경에서는 어디를 가라고, 어디는 갈 수 있다고, 무엇을 사진 찍을 수 있다고 또는 사진 찍을 수 없는 것은 무어라고 일일이 말을 들는대로만 행동하는 곳이다. 미국도 때로는 회상하면 맹목적인 국수주의의 일종으로 흘러가던 때도 있었다.그러나 타임즈는 내가 그렇게도 제한된 환경에서도 일을 할 수 있고 좋은 사진도 찍었던 사실을 좋게 평가하였다. 그 연유로 나를 북한으로 보냈다. 나는 제약 하에서 일을 잘 다룬다. 사진은 북한 군인의 아리랑 매스 게임.
새 명령: "북한에서 모든 것은 사진사에게는 매우 흥미롭다."라고 모리스는 말한다. "나는 120 내지 130 개국을 여행하였다. 북한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매력적인 나라 중의 하나다. 그 곳은 광고로 전혀 더렵혀지질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모든 것은 아주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다. 근본적으로 내가 백악관에서 친숙하게 느꼈던 것과 매우 흡사한 세계다. 어떤 의미로 모든 것이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자기 자리가 있다." 사진 평양의 창왕 거리의 일상.
정숙: " 한 번은 내가 함께한 구릅이 김일성 꽃의 축제가 열리는 꽃 시장으로 안내 되었다. 그 곳은 꽃을 감상하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즉시 나의 감시원이 군인들은 사진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나 내가 말 할 필요도 없이 한 일은 사진 찍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가 사진 찍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Canon DS 큰 사진기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내가 믿기로는 그렇게 전재적인 사회에서는 허락을 받지 않은 한 아무도 사진을 찍을 염두도 못 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군인을 찍는다면 모두가 나는 이미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사람이라고 간주한다. 사진에 나오는 자기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 사람. 그가 다른 군인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매우 시끄러웠기 때문에. 그들에게 김일성의 꽃 앞에 있다는 사실은 신성한 교회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외국인이 시골에서 찍은 사진은 거의 다 차나 버스의 창에서 찍은 것이다." 라고 모리스는 말한다. "언젠가 우리는 한국과 인접한 국경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추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감시원에게 계속해서 그들의 작업하는 것을 찍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시에는 시골에 사는 사람 대부분이 굶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시골은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보고 등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찍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렌즈로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차를 멈추라고 재촉했다. 감시원이 나에게 길에서 찍을 수 있다고 하였다. 아주 먼 거리에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언덕을 걸어 내려가 그들이 실제로 일하고 있는 곳까지 갔는데 감시원은 나를 뒤쫓다 싶이 닥아왔다. 내가 찍는 것을 본 감시원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없다는데에 화가 나 있었다."
"요사이는 어떤 상황하에서는 북한 보다 미국에서 사진 찍는 것이 더 제약을 받을 때가 있다. 카메라를 들고 JFK(John F. Kennedy)공항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를 하던가 미국의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해보라. 정부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싫어한다"고 모리스는 주장한다. 위 사진은 평양의 지하철 안이다.
"물론 북한에서는 이주의 자유가 없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다. 시골에서 나오는 것과 시골로 이주하는 것은 어렵다. 한번 거기에 있으면 그리고 만약 북한 주민들이 당신이 그들을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던가 혹은 핵시설을 찍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원하는 것은 찍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모리스는 말한다. 사진은 2001년도에 국가 통일을 위한 세 가지 선언을 기념하는 조각인데 판문점에서 평양까지의 통일 고속도로에 세운 것이다. 한복을 입은 두 여자가 우리나라 지도를 들고 있다. 세 가지 선언은 자주, 평화통일, 그리고 민족화합을 뜻하는데 오랜 세월 김정일이 한반도에서 외세(미국)를 몰아내는 것을 주창하는 핵심 부분이다.
다른 세상: "북한 주민들과의 대화는 참으로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미국 사회를 들어다 보고 있다. 그들은 남한 사회는 퇴폐와 부도덕으로 황폐화된 자본주의자들이며 기업의 탐욕에 사람이 이용 당하고 있다고 본다. 나의 여자 감시원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서구 노래를 내 iPod로 듣게 하였는데 그녀에게는 그것은 단지 오염된 것에 불과하였다. 나는 그것이 그녀에게 포르노적으로 비쳤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으나 그녀에게는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녀는 그것을 듣고 싶은 욕구가 전혀 없었다. 사진은 개성의 어떤 식당의 여종업원.
핀란드의 사진가인 Ilkka Uimonen이 2009년 미국의 지인의 도움으로 중국을 거쳐 열차로 북한을 여행하였다. 평양에서 그는 이렇게 넓고 텅 빈 거리를 보게 되었다. 차로 이동하는 도중 대낮에 으시시하고 지구의 마지막 날 같은 황량함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었다. "북한에는 이야기 꺼리가 있다. 그것은 서구인의 눈으로는 알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라이프 지에 그는 말했다.
축의 다른 면: Uimonen은 아프카니스탄, 이락, 이스라엘, 중국 그리고 미국과 같은 다양한 나라에서 그의 작품이 인정받고 있는 사진기자인데 북경 평양을 운행하는 기차에서 폐허 같은 공장들이 드믄 드믄 있으며 계속하여 농촌 지역을 지나고 있을 때 마지막 칸에서 사진의 어린 소녀를 찍었다. 북한의 감시원들이 항상 농촌의 빈민지역의 사진들을 없애라고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은 용케도 그들의 감시로부터 빠져 나왔다.
이 사진은 서구 사회에 자주 보여진 아리랑 게임에 대한 것인데 김일성의 4월 15일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매년 평양에서 열린다. 게네스 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와 문화 행사로서 인정받고 있는데 항상 만 명 이상의 여러가지 색갈의 옷을 입은 열렬한 참가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영원한 대통령'에게 빈틈없이 통일된 노래와 춤을 춘다. Uimonen은 한편 그의 앞에서 비교적 비공식적이고 훨씬 덜 엄격한 장면이 전개되는 것을 찍은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그 게임에 매우 열성적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사진은 polarisimages.com.에 있다.
북한군의 최고 사령관, 노동당의 제일 서기이고 지난 20년간 북한의 알려진 유명한 얼굴, 김정일은 그의 경외하는 아버지와 같이 이북 전역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주적인 인격을 대표한다. 영국의 저명한 사진가이며 VII Photo Agency Gary Knight의 공동 설립자인 Gary Knight는 2003년 북한을 여행하였는데 김정일의 권위의 범위는 이상하게도 다정한 부수 효과를 지녔다. "나는 주민들이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순진함을 지녔다. 그 표현은 경멸적인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들은 아주 대단히 친절하고 국가가 정한 제한 범위 안에서 매우 우호적이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흔히 하기 쉬운 조바심과 압박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는 주민들이 쉽게 많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통제를 가지고 있다.
변화의 범위: "나는 북한 주민을 사랑하였다."고 Knight는 말한다. "그들은 매우 친절하였고 매우 사려 깊었다. 나는 결코 북한 정권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분명히 악 이상이고 거의 어떤 대체안도 현재 거기서 진행되고 있는 것보다는 더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권의 교체는 그들이 도와 줘야만 하는 그 주민들에게 정말로 해악을 끼치리라 본다. 마치 50년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어떤 사람과 같이 매우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있을 것이다. 그 정권은 변화해야만 한다. 더 개방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것이 잃어 버려질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기차로 북한으로 여행하였다. 그 여행은 다른 모든 기차 여행과 같이 다음에 무엇이 나타나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없으므로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무언가를 보자마자 그것은 지나간다. 마치 장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영화 단면을 보는 것과 같다. 매우 이상한 것들을 보았는데 물론 그것은 농촌의 많은 사람들 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열심히 일하라고 권장하는 글을 담은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런 일에 대해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적어도 그 노동자들 중 몇 몇은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라고 Knight는 회상한다.
농촌의 심장:"기차에서 문을 열 수 있어서 계단에 앉아 농촌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거의 다 찍었다. 사실 거기서 내가 나머지 여행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열차에서 보았다. 우리는 피폐한 기차 정거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몇 사람이 김일성 초상화 밑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이나마 짧은 시간에 한 번 본 것으로 북한의 심장을 보고 있는 것 같이 느꼈다."
옛날 세상: Knigh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과거 20년 이상 아시아의 많은 곳을 여행하였다. 진실로 내 두 번째 고향이다. 그래서 나는 아시아가 어떤지를 알고 우리에게 가난하게 보일찌도 모르는 것이 반드시 가난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북한은 가난하다. 농업은 거의 기계화되지 않았다. 실제로 길들도 없다. 그 나라는 주민을 먹일 능력이 없다 그러나 어떤 기차 길 옆에도 줄지어 있는 꽃들을 관리할 수는 있다. 당신은 우선 순위가 무언인지를 분명하게 보게 된다."
비 오는 날의 여자: Knight가 말한다: " 이것은 아마도 북한에서 보낸 시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운전수와 두 명의 감시원과 함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벤츠로 여행을 하였기에 기본적으로 어떤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과 같이 하는 여행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밤에 그들은 내 방 밖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이었다. 한번은 내가 호텔의 목욕실의 불투명한 창을 열었다. 그래서 밖에 있는 도로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장 정도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 누군가가 나에 대하여 분명히 보고를 하였다 왜냐하면 외출하였다가 돌아와 보니 그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채. 그들은 너무 공손하여 그 일로 나를 비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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