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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6일 월요일

충남 서천, 군산의 가창오리떼의 군무

2010년 12월 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를 소개하고 싶다. 3-4년 전인가 서천에 가서 직접 목격을 한 경이로운 새들의 비상, 그 장관은 필설로 그 신비로움을 표현하기 어렵다.

충청과 전라를 가르며 서해로 흐르는 금강(錦江) 하구는 그 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이맘때면 금강 하구는 새소리로 출렁인다. 금강 하구의 하늘과 뻘은 대륙과 원양을 넘어온 철새들의 필사적인 날갯짓으로 물든다. 깊숙이 젖고 넓게 드러나는 갯벌에선 도요새와 기러기·갈매기가 쉬어간다. 갈대밭을 품은 금강 하구의 상부에선 해질 무렵 가창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해독할 수 없는 군무를 펼친다.

좀 더 서쪽으로 뻗어나가면 새만금 방조제다. 방조제의 풍경은 금강 하구보다 위태롭다. 방조제가 지은 경계는 명확한데, 경계 안쪽에 들어설 풍경이 아직 미완성인 탓이다. 그 미완성의 풍경 속에서 방조제는 양편으로 바다를 끼고 직선으로 치닫는다. 한편의 바다는 10년 뒤면 사라질 바다다. 시한부(時限附)다. 그 풍경은 시린 겨울바람 부는 섬 신시도에서 더욱 또렷하다.






애간장을 태우는 새들의 군무(群舞)

처음엔 섬인 줄 알았다. 충남 서천 조류생태전시관 전홍태 생태안내해설사가 강 한가운데를 가리킬 때만 해도, 보이는 건 멀리 아른거리는 까만 섬이었다. 망원경에 눈을 대 보고서야 알았다. 그 섬이 가창오리 떼라는 걸. 수만 마리라 했다.

한순간 섬 한 면이 일제히 무너졌다. 무너져, 낮게 하늘로 떠올랐다. 면체(面體)를 풀어 선(線)으로, 선을 흩뜨려 점(點)의 군집으로 허공을 까맣게 물들이더니, 이내 섬의 다른 면으로 선회하며 정확히 그 과정을 역으로 되밟아 섬의 일부가 됐다. 가창오리 떼는 저무는 해를 배경으로 이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전 해설사가 말했다. "…아주 애간장을 태우는구나." 섬이 무너져 높게 치솟아 춤추는 모습, 새들의 군무(群舞)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마침내 가창오리 떼가 섬의 형상을 버리고 떠오른 건 오후 5시 40분쯤, 해가 온전히 지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 무렵이었다. 수만 마리 오리의 날갯짓 소리가 환영처럼 쏟아졌다. 사막을 훑는 바람에 모래폭풍 일 듯, 포물선으로 일어난 까만 점들은 비선형의 궤도로 선회했다. 선회의 변곡점은 아직 돌지 못한 새와 이제 막 도달한 새가 모여 짙었고, 선회의 경계에 가 닿지 못한 새가 비행하는 안쪽은 넓어 옅었다. 환청 같은 날갯짓 소리와 갈대가 서걱대는 소리 속에서, 보랏빛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창오리 떼의 군무는 적요롭고도 찬란했다.

군무는 짧았다. 지난달 25일 군무는 5분여 지속했고 26일 군무는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났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 짧은 군무는 적요와 찬란을 동시에 품어 기다림의 시간을 찰나에 보상했다.

사실 군무는 수사(修辭)다. 가창오리 떼는 춤을 추지 않는다. 전 해설사는 "바깥쪽 새는 더 안전한 안쪽으로 자꾸만 파고들려 한다"고 했다. 생존을 위한 필연의 움직임을 사람들은 그저 군무라고 부른다.

떼로 움직이는 가창오리의 습성은 군무의 전제 조건이다. 전 세계 가창오리의 90%가 가을이면 시베리아에서 천수만으로 남하한다. 천수만에서 가창오리 떼의 진로는 크게 두 갈래로 갈린다. 대다수는 금강 하구를 거쳐 해남 고천암호로, 일부는 창원 주남저수지로 간다. 대개 고여 있거나 유속이 느린 곳이다. 물이 빠르면 편히 쉴 수 없는 탓이다.

낮에 물 위에서 쉰 가창오리는 저녁이면 모이를 찾아 일제히 날아오른다. 이때가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군무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다. 군무 끝에 전열을 다듬은 금강 하굿둑 상부의 가창오리 떼는 추수 끝난 김제와 나주평야, 혹은 부여 쪽 평야로 향했다. 그리고 새벽 일찍 다시 강이나 저수지로 귀환할 것이다. 겨울을 나는 철새 가창오리의 하루가 이와 같다.

인적 드문 금강 하굿둑 상부가 가창오리 떼의 쉼터라면, 하부는 다른 오리 떼와 기러기, 갈매기의 쉼터다. 둑으로 막혀 민물이 돼 버린 상부와 달리, 금강 하구는 서해로 이어진다. 간조 때면 갯벌을 넓게 드러내고 만조 때엔 해수로 깊숙이 젖는다. 그 갯벌에 기대 철새와 나그네 새가 하루를 난다. 해서 이맘때 금강 하구는 기러기와 갈매기, 도요새가 내는 소리로 온종일 출렁이고, 금강 하구의 하늘은 기러기의 V자 편대 비행으로 온종일 눈에 뵈지 않는 길을 열어낸다.

전 해설사는 "오리 중에서도 작은 축에 속하는 가창오리와 달리, 기러기는 어느 정도 덩치가 있어 안전에 덜 민감한 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기러기는 늘 사람과의 거리를 250m 정도 유지한다.

걸어서 다가가면 조용히 유영해 멀어지고, 뛰어 다가가면 날개를 퍼덕이며 강을 뜬다. 오리보다 덩치 큰 기러기의 날갯짓은 보다 여유로워 기러기의 비행은 유영(游泳)을 닮았다.

덩치나 군집 규모와 상관없이 오리와 기러기의 날개는 원양과 대륙을 건너온 힘이다. 필사적인 날갯짓은 똑같이 존경스럽다. 날갯짓을 몰아가는 방향 감각은 똑같이 경이롭다. 그 경이를 서천 조류생태전시관은 시각적인 표지에 의한 이동, 태양과 별자리의 위치에 의한 이동, 자기장에 의한 이동이라 풀어쓰고 있다. 하나 과학적 설명은 쉬이 와 닿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소설가 김훈이 대신 답한다. "새들이 태양의 기울기를 감지해서 그 가없는 허공 속에 한 가닥 진로를 설정할 수 있다는 말은 새들이 저절로 그 아득한 허공을 건너간다는 말처럼 나에게는 들렸다."
신시도 대각산에서 내려다 본 고군산 군도
◆시한부의 풍경, 새만금 방조제금강 하구에서 서해로 향한 길을 따르면 자연히 군산 비응항에 닿는다. 비응항은 새만금 방조제의 출발지다.

누군가 말했다. 바다와 섬이 그린 서정(敍情)을 새만금 방조제는 서사(敍事)의 힘으로 가로지른다고. 새만금 방조제는 사람의 힘으로 바다에 담을 쌓은 가장 긴 방조제다. 군산 앞바다를 오가던 원양(遠洋)의 물결은 총연장 33㎞ 길이의 방조제 앞에 멈춰 섰다. 바다가 출렁이며 끊임없이 경계를 지우는 동안 새만금 방조제는 직선으로 경계를 지으며 소실점을 향해 질주한다.

직선의 방조제는 그 자체로 관광자원이다. 양편으로 바다를 끼고 이토록 길게 달릴 수 있는 길은 드물다. 이를 북돋듯 길 곳곳에 기념탑과 조형물이 서 있고, 조망 좋은 곳엔 이미 휴게소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 풍경은 시한부다. 10년 뒤면 내륙을 향한 바다는 사라진다. 군산 앞바다는 경계가 불분명한 갯벌을 잃고 명확한 측정이 가능한 땅을 얻는다.
그 풍경의 시한 속에서 신시도(新侍島)는 섬과 육지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직선으로 치닫는 새만금 방조제가 꺾여 부안으로 향할 때 그 꼭짓점이 신시도다. 섬은 도로에 붙어 있되 차량으로 섬의 마을에 닿을 수는 없다. 도로에 면한 섬의 서쪽은 성벽을 두른 듯 가파르다. 차로 지날 수 없는 고개를 걸어 오르고 내려야 비로소 마을에 닿을 수 있다.

신시도에 발을 들였다면 199봉과 월영봉(月影峰), 대각산 세 봉우리를 연이어 돌아볼 일이다. 모두 해발 고도 200m를 넘지 않아 고되지 않다. 길이 7㎞, 4시간쯤 소요되는 산행이다.

섬의 왼쪽을 에둘러 199봉을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짧고 가파르다. 새만금 방조제의 신시도 배수갑문이 눈앞에 환하다. 간조 때 갑문이 열리면 흰 거품을 문 해수가 분절되지 않는 우당탕 소리로 흘러내린다.

199봉에서 월영재를 거쳐 월영봉을 잇는 길이 이 산의 주능선이다. 산길은 능선을 에두르지 않고 직선으로 치고 오른다. 자갈과 바위가 흥건한 길은 그 자체로는 매력이 떨어지되 서쪽을 향한 전망으로 흥을 돋운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의 일부이자 내륙에서 군도로 넘어가는 입구에 서서 다른 군도를 내려본다. 월영산 능선에서 선유도(仙遊島)와 무녀도(巫女島) 등 바다 위 구릉 같은 섬들의 향연이 또렷하다. 직선으로 뻗은 방조제와 곡선으로 굽은 군도가 정확히 신시도를 경계로 동서 양편에서 펼쳐진다.

대각산을 넘어 월영재로 가는 길은 신시도 트레킹이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거기서 바다는 환영(幻影)처럼 멀어지고 그 자리에 부드러운 산세가 감싼 마을이 들어선다. 방목된 소가 논을 차지했고 저수지 주변으론 갈대가 바람 따라 서걱댄다. 



여행수첩

◎가는 길(서울 기준)서천 조류생태전시관·군산 금강철새조망대: 서해안고속도로나 서천공주고속도 동서천IC→금강하굿둑 방향 직진→하굿둑 직전에 왼편으로 서천 조류생태전시관. 하굿둑을 건너자마자 좌회전해 직진하면 군산 금강철새조망대.

신시도: 군산 금강철새조망대에서 채만식문학관 지나 5㎞ 직진→연안사거리에서 새만금방조제 방면 우회전→비응항부터 본격적인 새만금 방조제 도로. 15㎞쯤 가면 오른편에 신시도 주차장. 신시도 트레킹 코스는 199봉→월영재→월영산→미니해수욕장→대각산→마을길→월영재→주차장 순. 7㎞, 4시간.

◎철새 보기철새를 볼 수 있는 곳은 크게 금강하굿둑을 기준으로 상부와 하부로 나뉜다. 상부 쪽에선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하부에선 갈매기와 기러기·오리 등 다양한 철새를 만날 수 있다. 낮에 도착했다면 하부에서 다양한 철새를 관찰 후 일몰 무렵 상부에서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보는 게 방법.

군산 금강철새조망대에선 토·일·공휴일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탐조투어를 진행한다. 1인 500원. 입장료 별도(성인 2000원·청소년 1000원·어린이 500원). (063)453-7213~4,www.gmbo.kr

서천에서는 10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조류생태전시관을 중심으로 '2010 서천 철새여행' 축제를 연다. 축제 기간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탐조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성인 6000원, 학생 4000원. (041)956-4002, bird.seocheon.go.kr

서천은 물메기가 제철이다. 인상 험악한 이 물고기는 물잠뱅이라 불리기도 한다. 동해 쪽에선 곰치라 불린다. 동해에서 곰치에 묵은 김치 등을 함께 넣어 '국'으로 내놓는다면, 서천은 '국'보다 '탕'에 가깝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맑은 탕이나 매운탕으로 끓여준다. 서천군청은 화양면사무소 앞에 있는 '양떼가든'을 추천했다. 2~3인분 2만원. (041)951-6885

서천 조류생태전시관에서 금강하굿둑으로 향하는 도로 왼편에 모텔이 모여 있다. 서천군이 추천한 곳은 달고개 모시마을. 일반 가정집에서 잘 수 있다. 1인 숙박 1만원, 식비 6000원. 10인 이상이 신청할 경우 모시 떡 만들기·모시 공예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dalmosi.go2vil.org, 양생규 사무장 (010)3310-3175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226, tour.seocheon.go.kr

군산시청 관광진흥과 (063)450-6598, tour.gun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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