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후 시간의 틀에서 살게 된다. 우리에겐 매일 똑같은 24시간이 주어진다. 태생적으로 대부분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 80년이라면 대략 30,000일. 한시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한 생애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지나온 길은 너무 짧다. 그러나 살아야 하는 일 년은 그리 짧지 않다.
시간의 마력이랄까 하루 해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장단의 차이를 느낀다.
순간은 어떨까? 의식을 못하는 것이 복일 수도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일 수도 있다. 순간을 감사하는 삶을 계속할 수 있다면 참으로 축복된 생이다. 감사의 계절은 일년 중 마지막 달을 남겨 놓은 한 달의 여유가 있기에 지난 일 년을 반추하고 남은 한달을 다시금 새로운 각오로 재도전하도록 적지만 한달의 여유를 주므로 매우 의미 있으면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느끼게 한다.
살아오면서 문득 문득 깨닫고 경험하는 것인데 감사란 전적으로 나의 마음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환경에 지배를 받아서 형통한 동안에는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지만 어려움이 닥치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감사는 커녕 원망과 불평이 한마음 가득하다. 따라서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어려울 때도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깨달었다고 말하겠다.
숨 쉬는 것이 감사하면 생은 아름다워지고 건강이 감사하면 더 열심히 살게 하고, 가족이 감사하면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한없이 고마운 것이고, 주위의 친구가 감사하면 나도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도 섭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 목적에 부합된 삶을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감사는 오묘한 지구 상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느끼게 된다. 세상이 감사한 것은 많은 사람이 바른 길을 가며 질서를 지키는 양심적인 시민이 귀하게 생각되어 그들과 생을 함께 하며 사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순간의 귀함을 감사한다면 똑같이 식상할 것 같은 하루가 너무 소중하다고 여기게 된다.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라는 피상적인 권고의 말도 이제는 하루를 사는데 신선한 청량제의 역할을 한다.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가족이 떨어져 있는 상태는 어찌 보면 감사의 전제적 환경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다. 무언가 부족하고 옆에 없어야 귀한 것을 깨닫게 되고 없음으로 불안전한 나를 자각하게 되어 겸손과 낮아짐을 실천하게 되어 그들에 대한 감사가 무럭 무럭 속에서 자라나게 된다.
특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집사람과의 떨어짐은 나의 미련한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삼십오년을 함께 살아 왔는데 깊고 흔들리지 않는 고상한 사랑은 어림도 없다. 사랑한다면 말씀대로 모든 것을 견디며 참으며 나의 기쁨이 아니라 내자의 웃음이 행동의 목적이여야 하는데 순간 순간 허물어지기 잘 하는 나는 남편으로서 너무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짝지어 주신 한 영혼이 세상보다 귀한데 육신에 매여 있어서인지 집사람이 원하고 기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화를 내며 고집만을 세우고 교만한 마음이 모든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
결혼을 통하여 둘이 만나 한 몸을 이룬다는 명제는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아무나 아무렇게나 해서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과 양보 존경과 인내 그리고 합심하여 목표를 향해 한 팀으로서 겸손과 꾸준함과 사랑의 격려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자의 헌신과 넓은 사랑은 필수지만 그것도 쉽게 할 수 있지 않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기도와 자기 부정이 한 몸으로 될 수 있는 가능한 길을 보여 주지만 단 한번만 삐끗해도 그 길은 즉각 닫히고 만다. 자기 부정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 전제 조건이지만 성령의 도움과 부단한 기도 이외에는 한순간에 없어지고마는 가장 잘 깨지는 덕목이다. 바울과 같이 '매일 죽노라'라는 자기 부정은 성실한 각오와 자기 성찰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순간마다 의지하고 바라면서 사랑의 실천을 하여야 이루어 질 수 있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이제 몇 시간 후면 집사람이 한 달간의 어머니 간호를 하고 공항에 도착한다. 돌아가신다고 하여 마지막으로 간호를 하겠다고 갔다가 자식들의 정성으로 기적적으로 좋아지셨다. 살면서 가끔 한 달 정도의 격리 기간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집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마워하여 잘하겠다고 수차 다짐을 하곤 하였다. 이전보다 더 사랑하며 더 아끼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기도를 하면서 기다린다. 가끔 깊은 사랑, 진정으로 자기를 내어 주고 상대의 모든 것을 무조건으로 사랑하는 순전한 사랑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그런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많은 자문을 해보았다. 이왕 자기 자신보다 더 귀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최선의 사랑을 하고 싶은데.... 공상으로만 그치면서 실망감으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방해 요인이랄까 없어져야 하는 내 속에 있는 모든 허물과 죄악의 씨 즉 교만, 혈기, 자아, 고집, 욕심 말한마디에 무너지고 마는 결심..근본적인 기초가 없는게 탈이다.
주의 도우심으로만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 우리 부부의 사랑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칭찬을 기대하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과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믿음으로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고 주의 역사에 쓰임받으며 깨진 질그릇으로서의 작은 소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플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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