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펜(pen)이 칼에 비교되지만, 펜은 칼을 닮았다. 몸 전체가 직선으로 유지하다 곡선으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생김새가 일단 그렇다. 상대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혹은 홀로 정신을 집중해서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 문장에 '촌철살인'이라는 문구가 있듯이, 자르거나 벨 때 날카롭고 단순하게 끊어주는 차가운 성질 또한 서로 비슷하다.
상대를 찌르고 베며 위협하는 무기가 칼이지만, 누군가를 살리려 수술이 필요할때 가장 먼저 할 일도 몸에 칼을 대는 것이다. 칼은 이렇게 누군가를 다치게도 하지만, 다친 사람을 치료할때도 필요하다. 칼이 쓰임새에 따라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듯 펜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필기구가 지어낸 글이나 그림 또한 그 쓰임새에 따라 사람들을 울리거나 웃게 한다.
펜은 칼에서 나왔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그려졌다는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를 보면 그땐 칼과 펜이 다른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단단하고 뾰족한 도구로 바위에 그릴수 있던 그 도구는 동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거나 과일을 자를때 쓰던 것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울주 반구대 암각화
당시엔 칼의 용도가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을 것이다. 산업혁명의 시대에 기계를 가진 자가 부와 권력을 움켜줬듯이, 가장 강한 칼을 가진 자가 그 칼로 거둔 음식을 나누고 그림으로 된 문자도 새길 뿐 아니라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으리라.
그후 칼은 원래 대로 무기의 성격만 고스란히 남고, 바위에 새기는 일은 더 가볍게 만든 칼로 했을 것인데 문자가 발전하면서 위협적이거나 위험하지 않은 훨씬 가벼운 펜의 기능만 남게 되었을 것이다.
2. 카메라는 총을 닮았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 사진을 위한 도구가 카메라라면, 이 수식에 어울리는 무기는 총이다. 수일 밤낮을 사냥감을 기다리는 포수처럼 사진가는 결정적 순간을 기다린다.
가진 사람이 어깨나 허리에 차고 다니는 폼도 비슷하다. 또 촬영은 사격의 격발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사수나 사진가나 한 눈은 감고 뜬 눈을 파인더를 응시한체로 자세를 잡는다. 굳건히 고정시켜 한손으로는 흔들리지 않게 장비를 지지하는 것과 나머지 다른 손은 두번째 손가락만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길때 처럼, 카메라로 마지막에 할 일은 검지로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쏠때 호흡을 멈추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를 대비해서 항상 장비를 점검하고 탄환(SD카드 혹은 필름)을 채워놓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 내몸을 들키지 않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사격과 촬영은 비슷하다.
1997. 12. 국회
'천마디 글 보다 사진 한장'이라는 카메라가 기록하는 사진의 힘은 시각적 우월성에 근거한다. 총알이 상대를 관통해서 치명적인 상처를 주듯, 결정적인 사진의 기록은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총상을 맞은 사람은 살아 남아도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듯이, 사진도 수정이 불가능한 정지된 순간의 증거로 남는 특성 때문이다.
2007. 서울지검 3. 레닌은 말했다. '영화는 대포'라고. 그는 일찍이 러시아 민중들을 개조하기 위한 혁명의 가장 효과적인 선전 도구가 영화임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영화는 오늘날 화면구성을 비롯한 동영상의 문법을 만들기 위한 초기의 형태였다. 극영화를 비롯한 다큐멘터리, TV 시리즈 등 모든 동영상은 애초에 사진을 여러장 찍어 빠르게 넘기는 기술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기술의 진보와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늘날 동영상은 모든 매체를 압도하고 있고 대중들의 의식 속에 가장 강력한 매체로 떠올랐다.
동영상(카메라)은 대포를 닮았다. 오로지 혼자 총을 쏘고 사진을 찍는 것과 다른 형태로, 대포와 동영상 카메라는 적어도 둘 이상 집단이 움직이며 발사와 촬영 전에 여러 준비단계를 거친다. 움직이지 않게 삼각대로 땅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정확한 거리를 잰후 포를 쏘는 것 처럼 동영상 카메라는 마이크 연결상태나 화이트 발란스를 수시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촬영한다. 움직이거나 뛰면서 쏘거나 찍는 것도 마지막은 움직이지 않아야 먼 거리를 정확히 조준할수 있다. 흔들린 상태로 격발시 포탄이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것처럼 흔들린 영상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비디오 카메라는 그림 만큼이나 사운드가 중요하다. 사진이 시각적 우월감으로 문자를 압도한다고 하지만 동영상은 움직이는 사진에 소리를 더하면서 사실감을 더한다. 사진을 보면 추억의 한장면을 느끼며 옛기억을 떠올리지만 과거의 동영상을 보면 영상이 기록된 시간과 공간으로 관람자는 완전히 빠져든다.
총과 카메라가 상대를 하나씩 상대해야 하는 것과 다르게, 대포와 동영상은 집단이 만들고 집단을 상대로 한다. 그런 이유로 전장에서 포사격을 마친 뒤 적군의 사상자를 가리듯, 동영상은 결과에 목숨을 건다. 스크린의 극장 관객수, TV의 시청률 등 그 결과는 동영상을 만든 사람들에게 까지 책임이 돌아갈 정도로 결정적이다.
4. 무기와 표현 도구들의 명확한 구분이 최근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펜으로 메모하는 대신 폰카로 찍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 위해 더이상 카메라를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연필을 잡기 전에 손가락 터치로 패드 누르는 것을 배운다. 문자로 편지도 하고 광고도 한다. 혼자서 만들어도 집단으로 소통하고 영향을 준다.
펜과 카메라들의 기능을 삼켜버린 휴대용 전화기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만큼 우리도 가볍게 살고 있다. 휴대폰이 지갑이 되고, 우체통이 되고, 노트이자 텔레비젼이며 PC도 되고 신분증이 되었다. 가볍기 위해서 나눠졌던 물건들이 다시 합쳐지면서도 가벼워지고 있다.
2006. 성균관 석전대제에서 폰카로 찍는 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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