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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설악산 1박 2일, 이영아 기자의 캠핑&트레킹

설악산은 바위가 많고 특유의 빼어난 절경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가장 찾고 싶은 1위의 산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아는 사람의 손을 안내자 삼아서 가고, 어렵고 힘든 길이었지지만 다시 찾아가듯이 우리에게는 친숙한 산이기도 하다. 

기자 또한 처음 설악산에 간 기억은 '캠프' 라 불리는 교양 수업 때문이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기억나지는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피소에서의 하루를 지낸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하산을 하다가 잠시 쉬던 절벽 아래에서 맛보았던 옥수수 막걸리 한 사발이다. 사발 속에는 20대 초반이었던 기자가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산수화 한 폭이 담겨져 있었고, 달달했던 한모금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아마도 설악산을 표현하라면  '지독하게 힘들면서도 그것을 이겨낼 만큼 지독하게 아름다운 풍경'이라 할 수 있겠다.

 마등령에서 본 설악산 풍경
설악산에는 그 크기만큼이나 많은 등산로가 있다. 어떤 테마로 산행하느냐에 따라서 등산 코스는 다양하다. 기자가 이번에 잡은 코스는 설악동 소공원 - 천불동계곡 - 희운각 대피소(1박) - 공룡능선 - 설악동 소공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이 코스는 천불동계곡 하얀 절벽 사이로 자란 나무들의 붉은 단풍과 계곡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운 계곡 길에서 단풍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산 중에서 경치가 가장 으뜸이라는 공룡능선의 장엄한 풍광도 보면서 산행 할 수 있다.
첫째 날은 소공원 출발-40분(3.0km)-비선대-2시간(3.5km)-양폭대피소-1시간(2km)-무너미고개-10분(0.2km)-희운각대피소에 이르는 4시간 산행(총 8.6km) 코스로 잡았고, 둘째 날에는 희운각대피소-10분(0.2km)-공룡능선-4시간 30분(4.5km)-마등령-2시간(3.5km) - 비선대-40분(3.0km)-소공원(출발지)으로 9시간(총 11 km)이 걸리는 코스다.
대피소 예약은 15일 전에설악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는 데피소 예약은 대피소 숙박 예정일 15일 전, 오전 10시부터 예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단풍 절정기애는 대피소 예약을 한다는 것이 하늘에서 별따기다. 보름 전 오전 10시가 조금 넘자마자 예약은 금새 마감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비박용 짐을 꾸렸다. 비박은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침낭만을 가지고 숙영하는 것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국립공원 내에서 비박은 불법이다. 하지만 대피소 옆에서 하는 비박은 관례적으로 묵인을 하지만 점차 단속을 강화한다는 소식이다.

산의 가을 날씨는 초겨울임을 감안해서 내한온도가 영하권을 버틸 만한 침낭과 침낭커버, 바닥의 한기를 막아주는 매트리스를 챙겼다. 첫째 날 저녁과 둘째 날 아침, 점심음식과 식수를 챙겼다. 음식을 데울 버너와 코펠, 헤드랜턴, 여분의 양말과 옷도 챙겼다. 그리고 산행 공룡능선의 강한 바람을 막아줄 바람막이 재킷도 준비했다.

자연색들의 경쟁, 천불동계곡
설악산 국립공원 설악동 소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오후 4시가 넘었다.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도 워낙 먼 거리라 9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소공원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차량들로 가득한 것을 보면서 설악산의 인기를 실감한다.

신흥사를 지나 비선대까지는 2.6km로 40여분을 걸으면 도착한다. 여기까지는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코스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설악산의 절경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비선대로 이르는 길도 천불동 계곡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학소대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유난히 맑아 보이는 에메랄드빛 계곡물 양 옆으로 우뚝 솟은 절벽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다. 자연의 색중 가장 아름다운 색만을 뽑아서 넣은 것만 같다. 비선대를 지나 양폭대피소에 이르는 천불동계곡은 파란 하늘, 붉고 노란 단풍, 하얀 절벽, 초록빛 계곡물이 등산객의 눈과 마음을 빼앗으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천불동 계곡 단풍 산행
해는 점점 저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은 서서히 검게 변해 갔다. 헤드랜턴을 꺼내서 머리에 두르고 크게 숨을 머금고 산행을 계속했다. 처음 와 보는 이 길에서 혼자 산속에서 어둠을 만났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간간히 나오는 이정표를 믿고 계속 걸었다. 그나마 다행이면서 반가운 것은 하산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워낙 많은 등산객들이 설악산을 찾았고, 아름다움에 빠져 머물다가 뒤늦게 내려오는 길을 걷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멀리서 보이는 헤드랜턴 불빛이 반갑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맞는 길을 가고 있구나.' 힘을 냈다. 두려움이란 내 스스로 만드는 허영이라고 달래면서. 양폭대피소를 지나 천당폭포에 도착했다. 물소리만 들리는 천당폭포를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한 것을 랜턴 불빛에 기대어 상상했다. 야간 산행의 진미를 느꼈다. 사람들에 치이지 않으며 혼자 랜턴 불빛과 호흡에만 집중해서 걸으며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폭포소리만 들으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희운각대피소에서 만난 별천지
오후 8시 30분이 되서야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8.6km, 4시간의 오늘 산행을 드디어 마무리 했다.

배낭을 던져 놓기 전에 한 몸 누울 수 있는 장소를 먼저 찾았다. 이 날 희운각 대피소는 마치 '비박 전쟁터'와 같았다. 침낭에 들어가 있는 등산객들이 발을 디딜 틈이 없게 가득했다. 다행이 구석에 누울 자리가 있었다. 얼른 자리를 잡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대피소의 분위기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산을 찾은 사람들이 자연에 기대어 아무런 시름없이 행복한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오후 9시가 되면 대피소는 소등을 한다. 잠자리에 누워 하늘을 향해 눈을 뜬다. 별. 정말로 많은 별들이 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다. 맨바닥에 누워 비박을 하지만 별천지를 올려보는 이 순간만큼은 누구 하나 부러울 것 없는 환상 속에 빠진다. 지붕이 없는 곳에서 누운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내 자신의 모순을 느낀 공룡능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빵과 스프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7시 30분경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공룡능선은 뽀족한 봉우리들이 능선을 타고 솟아오른 모습이 마치 공룡의 등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드디어 바라던 공룡능선을 타고 있었다. 4.9km, 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공룡능선의 길은 세 개의 주 봉우리를 넘나드는 어려운 길이다. 이 힘든 길을 걷는 이유는 설악산의 가장 장엄한 풍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룡능선의 길은 좁고, 경사도 심하고 바위가 많아서 힘들다. 때로는 설치된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듯 가고, 때로는 강풍과 싸우며 걸어야 한다.

 절세가경 공룡능선
갑자기 좁아드는 길이 나오면 양방향으로 통하지 못해 서로 양보하며 오르고 내려가야 한다. 이 먼 곳, 설악산 깊숙한 곳에서 긴 줄 속에 있는 기자는 모순을 느꼈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걷기, 그것도 천천히 오르고 내려가며 아름다움에 빠져보자며 찾은 산길에서 이 순간 에는 '빨리 빨리' 하며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공룡능선에서 기자의 이기심과 인내심은 불어오는 세찬 바람처럼 격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힘든 고비를 넘기면 그동안의 모든 수고를 잊을만한 대자연의 풍광에 압도당한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감동을 얻는다. 그저 느낌표 하나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신선대에서 보는 용하장성
나도 모르게 또 거기를 오르고 있겠지
어렵사리 마등령에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수월하게 하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는 길 또한 만만치가 않다.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 3.5km에 달하는 내리막길은 그 길 자체가 힘든 것보다는 1박 2일 간 산행의 고단함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룡능선길 보다 경사도가 심한 내리막길을 몇 시간째 내려오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게 느껴졌다. 드디어 다시 비선대에 도착했고 출발점인 소공원 입구까지 터벅터벅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400km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고 20km에 달하는 험준한 등산로를 15시간 동안 걸었다. 두 다리가 돌덩이 같았고 온 몸은 요란했다. '설악산. 또 오라고 하면 찾을까?' 답은 바로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또 거기를 오르고 있겠지.'
글·사진 제공 : 캠핑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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