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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5일 수요일

눈병에 좋은 약재엔 밝을 명(明)자가

추사는 오래도록 적막한 귀양살이를 하면서 갖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야말로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당시로서는 상노인에 해당하는 환갑에 가까운 몸으로 제주도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요즘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지만 조선 후기만 해도 정말 멀고 먼 이역이었겠는데, 게다가 추사는 한양에서도 최상위층의 생활을 하다가 그런 곳에서 지내야 했으니 병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추사가 앓았던 병은?

추사는 기침, 혈담에 다리의 병으로 고생을 했고 눈병, 소화불량증 등을 호소했는데 “눈병 다리병이 한결같은데다 또 소화불량증까지 더하니 백천 가지가 매웁고 쓰곤 하여 갈수록 더욱 견뎌낼 수 없다오”라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래가 많아져 막혀서 목과 가슴이 답답한 담체로도 고생했는데, 기침·가래는 노인들에 흔히 나타나는 병증이죠.

추사는 운동을 하거나 농사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늘 앉아서 책을 보거나 붓글씨를 썼을 것이니 감기에 자주 걸렸을 것이고 가래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면역기능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구창(口瘡)이 생겨 고생했는데, 구창은 과로를 했을 때 입안이 해어지고 혓바늘이 돋기도 하고 입술 주위에 물집이 잡히기도 하는 병증이죠. 그리고 피부질환으로도 고생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저술 '안질조치대법'의 토대가 된 동의보감. / 조선일보 DB
추사 김정희의 저술 '안질조치대법'의 토대가 된 동의보감. / 조선일보 DB


추사를 괴롭혔던 피부질환은?

피풍(皮風)이 심했다고 합니다. 피풍이란 피부에 벌겋거나 흰 반점이 생기거나 버짐이 생기는 것이라고 동의보감에 나옵니다. 자전풍(紫癜風), 백전풍(白癜風)이라는 병증이죠. 자전풍은 피부에 자주색 반점이 생겨나서 긁으면 피부가 부어오르기는 하지만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지요. 풍과 습의 나쁜 기운이 피부에 들어와서 생기는 병증입니다. 백전풍은 피부의 색소가 빠져 하얗게 되는 병증인데 흔히 ‘어루레기’라고 하지요. 풍과 습이 피부에 얽혀 기혈이 고르지 못하게 되어 혈액이 피부에 영양을 공급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데, 한 곳이 아니고 여러 곳에 생깁니다.

그런데 피풍이 한편으로 피부의 심한 가려움증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피부에 바람이 든 것처럼 피부소양증을 뜻할 수도 있는데, 추사의 상황으로 보면 그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가려움이 심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병증이죠. 몸이 쇠약해져 가는데 귀양지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데다 음식 섭취도 부진하므로 혈이 부족해진 상태에서 밖으로부터 풍기를 받게 되어 가려움증이 생긴 것으로 여겨집니다.

추사가 앓았던 많은 질병 중에서 가장 고생했던 병은?

특히 눈이 자주 아파서 가장 힘들었습니다. “근래에는 안질이 더욱 심해짐으로 인하여 도저히 붓대를 잡고 글씨를 쓸 수가 없다”고 하였죠. 추사는 세종대왕과 마찬가지로 눈병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책을 보고 글씨를 쓰기 때문이죠. 그래서 추사는 직접 ‘안질조치대법(眼疾調治大法)’을 썼습니다.

눈병을 치료하는 대법인데, 얼마나 눈이 불편했으면 이런 치료법을 직접 썼는지 짐작이 갈 겁니다. 다산 정약용이 3남 6녀 중에서 무려 6명의 자식을 천연두로 잃고서 천연두와 홍역을 치료하는 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책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되겠습니다.

추사가 쓴 안질조치대법의 내용은?

안질의 증상과 원인, 치료법 등을 항목별로 자세히 설명한 것인데, 안병소인(眼病所因), 안병무한(眼病無寒), 안무화불병(眼無火不病), 안병금기(眼病禁忌) 등의 항목이 들어 있습니다. 유학에다 고증학, 금석학을 공부하고 서예를 하고 사군자를 그리는 분이 어떻게 의학을 알아서 그런 글을 썼을까 의문이 들겠지만 선비들이 기본적인 의학 공부는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리고 안질조치대법의 항목들이 실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즉, 동의보감의 안편(眼編)에서 주요한 것들을 추려서 쓴 것이죠.

안병소인은 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죠. 마늘, 파, 부추 같은 매운 음식을 생으로 먹거나, 밤에 책을 많이 읽거나, 술을 많이 마시거나, 성생활이 과도하거나, 밤낮으로 과로하는 것 등입니다. 정리해 보면 풍, 열, 혈소(血少), 정신과로, 신장 허약 등으로 요약됩니다.

안병무한은 눈병이 찬 기운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찬 기운은 위로 올라와 공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병은 주로 열이 원인이거나 신장의 정기가 허약해져 발생합니다. 그래서 안무화불병, 즉 ‘눈은 불기운이 아니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는 것이죠. 눈의 흰 동자·검은 동자를 비롯한 각 부위는 각각 오장과 연계되어 있는데, 각 장의 열이 올라와서 연계된 부위에 병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흰 동자가 붉게 변하는 것은 폐의 열이 올라온 것이고, 검은 동자에 광채가 없는 것은 신과 간의 열이 올라온 것입니다.

안병금기는 눈병에 피해야 할 사항입니다. 제일 나쁜 것이 술, 과도한 성생활 그리고 신경과도 등입니다. 주의해야 할 음식은 닭고기, 생선, 밀가루 음식, 찹쌀 등입니다.

눈병에 좋은 약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석결명산(石決明散)이 나오는데, 석결명이란 전복의 껍질로서 예로부터 한약재로 쓰여 왔습니다. 전복은 제주도에 많이 나는 것이죠. “전복은 맛이 짜고 성질은 서늘한데 음기를 보충하고 눈을 썩 잘 밝게 하며 껍질로는 예막을 삭인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막(瞖膜)이란 눈에 끼는 백태를 말하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전복 껍질을 밀가루 반죽에 싸서 잿불에 묻어 구워 익혀 쓰거나 소금물에 삶아서 보드랍게 가루 내어 쓴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전복껍질은 열을 내리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는 효능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분했을 때 가라앉히는 약이 되는 것이죠. 전복의 살도 비슷한 효능입니다. 석결명산은 전복 껍질, 진주, 호박, 오징어뼈, 용뇌 등을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씁니다.


눈에 좋은 약재로 쓰이는 전복, 감국, 결명자(왼쪽부터) / 조선일보 DB
눈에 좋은 약재로 쓰이는 전복, 감국, 결명자(왼쪽부터) / 조선일보 DB
그밖에도 감국(甘菊·국화꽃), 이즙(梨汁·배즙), 이어담(鯉魚膽·잉어쓸개), 전라즙(田螺汁·우렁이즙), 웅담(熊膽·곰쓸개), 돼지간, 토끼간 등이 있습니다. 모두 차가운 성질입니다. 그리고 눈에 좋은 약의 이름에는 밝을 명(明)자가 들어가는 것이 몇 있습니다. 석결명을 비롯하여 야명사(夜明砂·박쥐의 똥), 결명자(決明子) 등입니다. 결명자도 차가운 성질이므로 몸이 냉한 분은 주의해야 합니다. 추사가 즐겨 마셨던 녹차도 눈에 좋습니다.

유배지에서 온갖 질병을 극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

온갖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많은 책을 읽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추사체를 완성하고, 긴 귀양살이에서 무사히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추사에게 고통을 준 질병들은 치명적인 중병이 아니고 사소한 잔병들이죠. 어쩌면 잔병치레를 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병이 없으면 조심을 하지 않잖아요. 직업에 따른 평균수명 조사에서 체육인이 꼴찌였죠. 일반인보다 몸집이 훨씬 좋고 운동을 많이 한 체육인이 왜 장수하지 못할까요? 몸이 좋고 병이 없으니 조심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무리하게 생활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힘든 운동을 하다가 너무 하지 않는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있겠고, 운동하느라 식사량도 많다가 운동을 적게 하거나 아예 운동하지 않으면서도 식사량은 줄이지 않은 탓도 있겠죠.

어쨌건 작은 질병이 있어야 주의하고 조심하며 건강관리에 힘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보왕삼매경론(寶王三昧經論)이란 불경(佛經)에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고 하였죠.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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