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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北 배우자감 1위는 ‘열대메기男’ ‘손오공女’

은어, 신조어로 엿본 2014년 세밑 북한

은어(隱語)와 신조어(新造語)는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한다. 주변에서 종종 듣는 ‘초식남’(온순하고 착한 남자), ‘건어물녀’(연애에 관심이 없어 ‘연애세포’가 건어물처럼 말라버린 여자) 같은 말이 그렇다. 북한에도 이렇듯 시대 상황의 산물인 은어와 신조어가 넘쳐난다.

‘신동아’ 7월호에 압록강 국경경비대 출신 탈북자 박철용 씨의 수기가 실렸다. “압록강 인민군대는 軍이 아니다, 밀수·인신매매 장사꾼일 뿐”이란 제목이 붙었다. 이 수기가 SNS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밀수하는 집서 오입질…명절 때마다 선물 받아’ ‘국경 넘어가 쌀 낚아채거나 여자 강간하기도’ ‘돈 벌어 매달 200달러씩 고향집에 송금’ 등 군대 같지 않은 군대 모습을 담아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사진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인 ‘포토피디아(fotopedia)’가 최근 북한편을 선보였다. 프랑스 사진작가 에리크 라포르그 씨가 2008년부터 4차례 북한을 방문해 촬영한 1000여 점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남녀 한쌍이 평양 시내 영광거리에 자동차 바퀴등을 이용해 만든 삼륜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개성시에 있는 고려박물관 경내에서 24일 결혼식을 올린 북한의 신혼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간 국회 사진기자단이 촬영했다.



개성인근 개성 성균관을 찾은 신혼부부가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결혼식을 마친 북한의 신혼부부가 개성시내의 역사유적인 선죽교를 찾아 관람을 하고 있다.



남녀 한쌍이 평양 시내 영광거리에 자동차 바퀴등을 이용해 만든 삼륜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일요일 오후 중국 단동과의 경계지인 북한 신의주에 속하는 압록강변에서 휴일을 맞아 북한 주민들과 아이들이 낚시와 수영 등으로 여름을 나고있다



한에서 유행하는 은어, 신조어에는북한군의 이 같은 현실이 드러난다. ‘강도군단’은 평남 덕천의 630부대를 가리킨다. 군인의 민가 도둑질을 비꼰 말이다. 강도, 강간, 폭행이 잦다고 한다. 황해도 사리원의 108훈련소는 ‘배고파 훈련소’로 불린다. 영양실조로 감정제대(질병 등으로 군 복무가 곤란할 때 하는 제대)하는 병사가 많아서다. 108→백공팔→배고파의 언어 유희다. 평남 안주의 425훈련소는 ‘사기꾼 훈련소’라고 한다. 425→사기꾼의 말장난. 식당에서 외상 밥 먹고 나몰라라 하거나 혼인을 빙자해 간음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우리는 몽골 해군”이라는 자조(自嘲)도 있다. 기름 부족 탓에 해군이 바다 아닌 육지에서 훈련하는 것을 비꼰 것. 북한 해군은 1년에 1주일가량만 해상에서 훈련한다. 전투훈련을 상가대(上架臺·육지에 배를 올려놓고자 만든 대) 선상에서 진행한다. 2012년 9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두 가족이 바다로 탈북할 때 경비정 두 척이 32㎞쯤 추적하다 연료 고갈로 기동하지 못하게 돼 민간 어선에 끌려 귀항한 적도 있다.

나그네=써먹을 데 없는 남편

북한 정권의 안정성을 놓고 통일부와 외교부가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아 뒷말을 낳았다. 외교부가 백서를 통해 “무분별한 공포정치로 권력 내부 취약성이 심각하다. 중장기적으로 체제 불안정성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자마자 통일부는 “현재 김정은 정권의 통치는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서 외교백서를 반박하듯 브리핑을 했다(11월 3일). 

정치·안보·외교 차원에서 북한을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는 전문가 집단의 북한 정권 안정성 분석 결과는 이렇듯 엇갈린다. “김정은의 좌충우돌 행보로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과 “서울에 앉아 북한 붕괴만 바라면…김정은이 늙을 때까지 힘들 것”(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동아일보 10월 27일자 인터뷰)이란 견해가 부딪친다.

미시적 분석으로 북한을 엮어보면 거시적 접근과는 결이 다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은어, 신조어 같은 창(窓)으로도 북한의 오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 북한에서 새로 생겨난 말과 탈북자 밀착 인터뷰를 통해 2014년 세밑 북한의 사회상, 경제상을 톺아보자. 

북한은 “돈주가 힘쓰는 나라”이자 “간부들의 천국”이다. ‘돈주’는 자본가와 비슷한 말. 재산이 1만 달러 넘어야 돈주 소리를 듣는다. 수십만 달러를 가진 이도 적지 않다. 무역업이나 ‘되넘기장사’(물건을 사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장사)로 부(富)를 쌓은 돈주는 중간상인을 고용하고, ‘가공주’(물품을 제작하는 사람)를 거느린다. 중간상인은 ‘삯바리’ ‘뻘뻘이’(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해 물건을 소매상에 넘긴다. 

돈주들은 위안화나 달러화로 부를 축적한다. 관료와의 유착, 애국헌금, 국채매입을 통해 ‘보험’도 들어놓는다. 국가에서 받은 표창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방패 구실을 한다. 2002년 이후 ‘원화 경제’가 ‘위안화 경제’ ‘달러화 경제’로 개편됐다.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과 관련해 ‘강냉이 당원’ ‘돈 당원’ ‘돼지 당원’이란 은어가 나돈다. 애국미(愛國米)를 남보다 많이 내 입당한 이가 강냉이 당원이다. 돈 당원은 군수물자 지원금을 내고 입당한 경우, 돼지 당원은 군대에 먹을거리를 공급해 당원이 된 사람을 가리킨다.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전에는 군에서 복무하거나 출신성분이 좋고 혁명과업을 잘 수행한 이가 입당했으나, 2000년대 이후로는 돈이 주요 입당 기준의 하나로 작용한다고 한다. 

매관매직도 다반사다. 인민보안부 보안원(한국의 경찰) 직위를 3000달러가량에 살 수 있다. 

장사로 돈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내들은 남편을 ‘불편’이라고 칭한다. 시장에 안 나가고 기업소에 출근하면 ‘49호 환자’(49호 병원은 정신계통 환자가 입원하는 곳)다. 기업소에서 받는 노임만으로는 호구(糊口)가 어려워서다. ‘나그네’는 ‘불편’과 비슷한 말로 ‘배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직장에 다니면서 집안일도 안 하고 양식만 축내는 귀찮은 존재’를 뜻한다. ‘써먹을 데 없는 머저리 남편’을 일컫는 말로는 ‘서면 돈 달라, 앉으면 술 달라, 누우면 아랫말(성기) 달라는 놈’ ‘서면 동상, 앉으면 반신상, 누우면 시체’ ‘멍멍이 병풍’ ‘낮 전등’ ‘백만 불짜리 자물쇠’ 등이 있다. 

배급이 제대로 안 나오는 직장에 출근하는 남자들은 “0.5불짜리 인생”이라면서 처지를 푸념한다. 북한의 일부 기업소 배급은 2500~5000원(1달러=8000원)으로 쌀 1㎏을 사기에도 버겁다. 평양시민의 4인 가족 기준 생계비는 월 100달러가량이다(※북한의 쌀 가격은 11월 기준으로 1㎏당 북한 돈 5000원 수준).



“결혼은 돈을 따라 흐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에 시달리고 외부 사조 유입으로 성도덕이 해이해지면서 “어미 뱃속에 있는 년이나 숫처녀”란 말이 회자된다고 한다. 제대한 남자가 숫처녀를 찾으면 머저리 소리를 듣는다. 딸 가진 부모들은 “살기 바빠 자식 교양 못 시킨다”고 한탄한다. “말세다. 자본주의 사회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중학교 6학년(16세)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군 입대 신체검사 때 성행위를 경험한 학생이 60%가 넘는다.

김일성 집권 시기엔 혼전 성관계를 비사회주의 행태라면서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겼으나 1997년부터 역전(驛前)에 ‘밤꽃’(성매매 여성)이 등장했다. 성매매 여성이 보안원과 유착하는 예도 많다. 화대는 성매매를 직업으로 삼은 여성의 경우 북한 돈 5000~1만 원, 과부는 1만5000~3만 원, 미혼여성이나 미녀는 7만~8만 원이라고 한다. 주부가 성을 파는 것은 ‘군서방질’(남편 아닌 다른 서방을 본다는 뜻)이라고 한다. 

성(性) 세태를 풍자한 은어로 ‘근심노동’이란 말이 있다. 유부남이 처녀와 성관계를 맺으면 임신, 결혼 요구 같은 근심거리가 생긴다는 뜻. ‘애국노동’은 남편 없이 외롭게 사는 과부와의 성관계가 사회 안정에 기여한다는 우스갯소리다. ‘금요노동’은 유부녀와의 은밀한 성관계를 의미한다. ‘강제노동’은 부부간 성관계를 뜻하는 은어. 불륜을 저지르면서 “강제노동보다는 애국노동, 금요노동이 제 맛”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원하는 이상적 배우자는 과거의 ‘군당지도원’에서 최근엔 물고기 이름 비슷한 ‘열대메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군당지도원은 ‘군’복무자, ‘당’원, ‘지’식인, ‘도’덕인, ‘돈(원)’이 있는 자를 가리킨다. 열대메기는 ‘여’자를 열렬히 사랑할 줄 알고, ‘대’학을 졸업하고, 당증을 ‘메’고 있으며, ‘기’술이 있는 남성을 뜻한다. 남성들은 ‘현대가재미’를 최고의 배우자로 꼽았으나 최근엔 ‘손오공’이 떠올랐다고 한다. 현대가재미는 ‘현’화(달러)가 많고, ‘대’학을 졸업하고, ‘가’풍이 좋고, ‘재’간이 많으며, 아름다운(‘美’) 여성을 가리킨다. 손오공은 ‘손’전화기(휴대전화)와 ‘오’토바이, 제대 후 대학 ‘공’부를 지원해줄 여성을 말한다. 

결혼과 관련해 미모지상주의, 배금주의가 확산한다. “시집만 잘 가면 대학 세 곳 나온 것보다 낫다”는 말이 나돈다. 그래서 여대생, 주부가 ‘야매’로 성형수술 받는 게 유행처럼 번진다는 것. “결혼은 돈을 따라 흐른다”며 바뀐 세태를 풍자하기도 한다. 과거엔 배우자감의 집안, 토대(출신성분), 학력을 중시했으나 요즘은 돈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장사를 하거나 외화벌이꾼 등 돈 잘 버는 직업, 당 간부, 보위부 보안원 등 뇌물 받는 직업을 선호한다고 한다. 



‘왕도적 들어오는 날’

북한 남성의 군 복무 기간은 보병의 경우 10년이다. 특수병과는 13년. 젊은 여성들이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대 군인과의 결혼을 기피하면서 전역한 이들이 연상녀(이혼녀, 과부)와 결혼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결혼해 구박받느니 차라리 연상녀와 결혼해 사랑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처럼 이혼한 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물론 혼전 순결에 대한 편견도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인민보안부 8총국 51여단에서 여군 입대자를 선발할 때의 일이다. 엑스레이 촬영 때 지원자 7명 중 5명이 여성용 피임기구를 착용한 것이 드러났다. 군의관이 왜 착용했느냐고 물으니 여성들이 “그것도 안 하고 입대하는 경우가 있느냐”고 되레 반문했다고 한다. 일부 여군은 군관과 성을 매개로 유착해 돈 버는 보직을 얻는다고 한다. 

아들이 장가가는 날은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의 북한식 표현) 일어나는 날’, 딸이 시집가는 날은 ‘왕도적 들어오는 날’, 손자·손녀가 태어난 날은 ‘노농적위대 입대하는 날’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시집 온 며느리 탓에 가족 간 불화가 일어나고, 시집간 딸이 없는 살림을 가져가며, 돈벌이 하는 며느리 대신 조부모가 손자 손녀 육아를 떠맡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북한에선 2005년부터 이혼율 폭등, 출산율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함경북도 경원의 경우 5000가구 중 1000가구가 법정이혼(소송이혼) 혹은 합의이혼했다. 경원군의 이혼 가구 수는 2006년 분기별 10건에서 최근엔 70~80건으로 증가했다. 2005년 이전만 해도 북한 당국은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며 이혼은 핵무기보다 더 위력적인 일심단결에 저해를 주는 위법행위”라고 여겼으나 2002년 이후 여성의 장마당 돈벌이를 공식으로 허용하고 여성 우위의 중국 문화가 유입되면서 여권 신장, 성도덕 해이가 함께 진행됐다. 

북한은 출산율 저하를 막고자 2000년부터 △낙태수술 금지 △4자녀 이상 출산 여성 포상(매년 평양에서 개최하는 ‘모성 영웅 대회’ 참석) △3자녀 출산 여성에게 매월 현금 5000원 지급 등의 출산장려책을 실시하고 있으나 “먹고살기도 힘든 데 애는 낳아 뭐하나”라는 풍조가 확산하고 있다. 오히려 다자녀 가정을 가리켜 “미개하다, 고생해도 싸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살아남은 건 승냥이와 여우”


북한은 자력갱생을 선서한 사람이 버글대는 곳, 국가가 돈을 주며 일 시키지 않고, 관료가 독립적으로 벌어서 살고, 정해진 돈을 상부에 입금하는 곳이다. 돈주, 당 간부의 엉겨 붙기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중국과 합법으로 무역하려면 당국으로부터 ‘와크’(대외무역거래허가증과 수출입 쿼터를 합친 개념으로 보인다)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당,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무역성 등에 뇌물을 줘야 한다.

지방 보위부원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꼴꼴이(김정은)는 전 인민을 수탈하지만 우리는 일부만 수탈한다”면서 자위한다. ‘뉴턴의 제4법칙=고이면 움직인다’라는 새로운 등식도 등장했다. ‘뇌물을 고이면 움직인다는 것’이 자연법칙 반열에 오른 꼴. “간부는 직권으로 살고, 부유층은 비법 장사로 살고, 인민은 뼈를 깎아먹고 산다”는 것이다. 

또 “군대는 ‘군’숙하게(앞뒤 가리지 않는다는 뜻) 떼먹고” “당은 ‘당’당하게 떼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떼먹고 “보안서는 ‘안’전하게 떼먹고” “행정기관은 ‘행’여나 남은 것을 떼먹고”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떼먹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백’주에 굶어 죽는다”는 한탄이 쏟아진다. “소대장은 ‘소’소하게, 중대장은 ‘중’간만, 대대장은 ‘대’량으로, 연대장은 ‘연’속해서, 사단장은 ‘사’정없이, 군단장은 ‘군’데군데에서 떼먹는다”는 식의 풍자가 허다하다. 부정을 저지를수록 승자가 돼 이익과 행복을 얻고 도덕을 지키면 패자가 돼 손해와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는 셈이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 직후 “생눈길을 헤쳐나가는 심정으로 일하자”고 호소했다. 지방 주민들은 “2000만 지방 동포가 200만 평양시민을 먹여 살린다” “평양 시민만 김정은의 공민”이라고 꼬집는다고 한다. “올해 죽지 않으면 내년에 후회한다” “가도가도 심산(深山)”이라면서 “오직 부데기만이 살길”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부데기’는 산림을 개간해 밭을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가을도둑이 봄날의 애국자”란 은어는 추수철 도둑질을 해서라도 겨울에 굶지 않아야 이듬해 봄 협동농장에 출근한다는 뜻이다. 야간작업 때 허리춤에 벼, 옥수수 감춰 나오기, 비(非)농장원에게 식량 빼돌려놓기, 탈곡장으로 벼 운반할 때 절취하기, 다른 사람 부데기에서 농작물 훔치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군인이나 도시민이 농촌지역 식량과 가축을 절도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내 배짱은 장군님 배짱”은 군인이 도둑질하면서 쓰는 은어다. 

농촌·산촌지역에선 고난의 행군 때 순한 이는 다 죽고 악질만 남았다는 뜻으로 “지금 살아남은 건 승냥이와 여우뿐”이라는 말로 세태를 풍자한다고 한다. 교화소를 ‘승냥이 양성소’라고도 한다. 교화소에서 더 악질이 돼 나온다는 뜻이다. 



고위층은 3부(간부·어부·과부)?


평양시민은 농장원을 ‘농포’라고 폄훼한다. 농포는 ‘썩은 거름’이란 뜻. 농장원 자녀는 아버지 신분을 세습한다. 진학이 가능한 대학도 교원대학(2년) 농업전문학교(2년) 농업대학(6년)으로 한정돼 있다. 농장원이 웅덩이에 빠져 “농장원 살리시오”라고 외치자 지나가던 사람이 “당신은 사람이 아니오?”라고 물었더니 “사람이 아니라 농장원이요”라고 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농포는 무시의 대상이다. 

멧돼지 탓에 농가가 피해 보는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김정은 모심(보위) 사업’ 탓에 멧돼지 퇴치 목적으로도 총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북한 법은 자연보호를 이유로 산짐승 포획을 금지한다. 농장원들은 밤마다 교대로 호루라기, 삽, 가마솥뚜껑을 두들기며 멧돼지 접근을 차단한다. 농장원들 표현대로라면 “‘국가공훈합창단’이 밤마다 음악을 연주해 멧돼지를 내쫓는” 것이다. 

어부는 농장원과 달리 부유층으로 여겨진다. “3부(간부, 어부, 과부)가 고위층”이라는 말은 2002년경부터 유행했다. “뇌물을 당당하게 먹는” 당 간부만큼은 아니지만 어부의 소득이 높다고 한다. 수산물 수출이 활발한 데다 부데기 경작을 겸업해서다. 과부를 첩으로 둔 어부 또한 많다고 한다. 돈 있는 남자들과 재혼하거나 당 간부의 첩이 돼 자유롭고 넉넉하게 생활하는 과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간부의 첩이 된 과부는 대학 진학 특혜, 부대 배치 알선 등으로도 돈을 번다고 한다. 

평양과 지방 주요 도시의 삶은 당국이 창업 및 영리 활동을 묵인하면서 개선 추세라고 한다. 자생적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공장을 세운 후 노동자를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이도 나타났다. 소규모 유통업체를 세운 이, 운수업에 나선 이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임노동자가 느는 것은 노동시장이 싹트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서비스업도 발달한다. 목욕탕, 식당 같은 업종에서는 중국의 친척한테 밑천을 제공받은 화교가 맹활약한다고 한다. 

조선중앙은행이 상업은행 기능을 못 하다보니 기업소나 개인이 돈주에게 이자를 주고 자금을 공급받는다. 외화를 축적한 돈주가 자본시장을 형성한 꼴이다. 농업, 수산업 등 1차산업으로도 돈주의 자금이 흘러들어간다. 도시마다 ‘돈장’ ‘돈마당’이 형성됐다. 고리대금업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리대율은 대체로 월 10%(연 120%)라고 한다. 장마당 상인이 급전을 빌릴 때는 월 20~30%라고 한다. ‘노력 영웅’이라는 말이 ‘돈 잘 빌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된다. 고리대를 통해 큰돈 번 사람은 ‘공화국 영웅’이다. 농촌에선 식량 고리대도 나타났다. 돈주에게 연 100~200%의 이자 지급 조건으로 식량을 차입하는 것이다.

“학교에 머슴질하러 간다”
북한에서 공평한 분배는 헛소리다. 한국의 통일교와 북한 당국이 합작해 세운 평화자동차가 생산하는 ‘휘파람’은 값이 1만5000달러에 달하는데도 꾸준히 팔린다. 평양의 백화점에선 외국에서 수입한 고급 TV가 팔려나간다. 이집트 오라스콤과 북한 체신성이 합작해 2008년 12월 개통한 이동통신은 가입비 140달러, 단말기 값 200~500달러인데도 가입자 수가 평양시민을 중심으로 11월 현재 240만 명을 넘어섰다. 2만 달러가 넘는 120㎡ 넓이 아파트가 부유층에게 인기다. 단둥에선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 사람들이 별장을 구입해 압록강을 내려다보면서 목욕을 즐긴다.

북한에서도 ‘유전유교육, 무전무교육’이라는 말이 나돈다. 부유층은 사교육에 혈안인 반면 무상교육 붕괴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늘어난다는 것. 과외는 영어, 컴퓨터, 음악 중심으로 이뤄진다. 도시 지역 소학교, 중학교 학생의 30%가량이 매일 3~5시간씩 사교육을 받는다. 주로 교원들이 과외교사로 나서는데, 학생당 중국 돈 100~200위안을 교습료로 받는다. 당 간부나 부유층은 명문대 출신 박사급 인재를 가정교사로 채용해 월 300달러를 지급하기도 한다. 

반면 농촌의 교육 사정은 날로 열악해진다. 전문대 출신, 대학 중퇴자가 뇌물을 내고 교원으로 채용돼 여러 과목을 가르치기도 한다. 교원이 학생을 자신이 경작하는 소토지에 동원하는 일이 잦아 “학교에 머슴질하러 가는 것 같다”는 불평도 나온다. 농촌학교 교원은 급여 대신 소토지 100평을 지급받는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경제난 이전까지 무상교육은 북한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월사금 없는 대신 일사금을 낸다”는 한탄이 나온다. 1996년부터 학교 운영비 조달을 위해 수시로 돈이나 물건을 내라고 요구해서다. 김일성종합대 교수도 월급이 적어 학생들에게 상납을 받는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대학에 다닐 때 잘사는 집 애들과 못사는 집 애들이 따로 놀았다. 부모가 부쳐준 돈으로 외식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대학교나 전문학교에 들어갔다가 돈이 없어 학교를 중퇴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경제 회복 과정에서 권력과 시장원리를 활용해 부를 쌓은 신흥 부유층 그룹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력과 시장이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부패는 북한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국경경비대는 마적대”

병역 비리도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입대 후 2~3년 복무하다 ‘깔대’(병력서)를 위조해 감정제대하거나 군사동원부에 뇌물을 주고 원하는 부대에 배치되거나 좋은 보직을 받는다. 군에 적(籍)을 두고 집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세태를 두고 “돈과 나라를 바꾼다”는 말이 나돈다. 

“요즘 군사복무는 부모가 한다”는 한탄도 있다. 부모가 군부대 인근 가게에 돈을 맡겨놓고 자식이 그 액수만큼 먹을거리를 사 먹는 게 일반화했다고 한다. 북한 중산층의 월 소득이 북한 돈 30만 원 수준인데, 군에 입대한 자식에게 매달 10만 원 안팎을 보내는 부모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 출신 병사가 농장원 딸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면서 여자친구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기도 한다. 

보직을 잘 받은 군인은 복무하면서 돈을 번다. 북-중 접경지역 주민은 국경경비대원을 “군인이 아닌 마적대”라고 비난한다. 2~3명씩 떼를 지어 ‘빠루’(못 빼는 연장, 표준말은 노루발못뽑이)를 들고 도둑질에 나선다는 것이다. 훔친 물건은 장마당에 내다 팔거나 ‘주인집’(국경경비대원이 수시로 드나들며 취침하는 민가)에 넘겨준 후 수익금을 나눠 갖는다. 국경경비대원들은 주인집에서 성매매도 한다. 

국경경비대원 출신으로 지난해 탈북해 올해 한국에 들어온 박철용 씨는 신동아 7월호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사단장, 여단장부터 사관, 전사까지 모두가 밀수 관련 일로 돈을 번다. 밀무역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뒷돈을 받기도 하고, 직접 뛰어들어 큰돈을 벌기도 한다. 계급이 높은 사람만 직접 하고 졸병은 뒷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반대의 경우도 꽤 있다. 국경경비대가 밀수 현장을 적발하면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 주도한 것이다. 소속 부대 여단장이 주도한 밀수를 부하가 적발해 멋쩍어하는 일도 벌어진다. 중국 내 밀수 거점까지 확보해놓고 활동하는 군인도 있다. 제대로 하는 놈들은 t에 얼마 하는 식으로 사업을 크게 벌인다. 한 번에 500달러, 1000달러를 번다. 한국에서도 1시간에 50만 원, 100만 원을 버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군부는 한국에서 살포한 삐라를 민감하게 여긴다. 전단을 발견하면 나무 꼬챙이로 집은 후 읽지 않은 채 보위지도원에게 신고하는 게 원칙이다. 전단 내용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구호물품에 방사성 물질을 넣어뒀기 때문에 취식하면 말라 죽는다고 교육한다고 전해졌다. 병사가 병에 걸려 죽으면 남측에서 보낸 적성물자를 먹고 죽었다고 선전한다. 대다수 병사가, 삐라에 담긴 내용은 모두 거짓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접경지역 병영에서는 남한으로 건너가면 비밀을 뽑아내고자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나중에 감옥에 넣고 배를 갈라 죽인다는 내용의 사상교양 영화도 상영했다. 탈북자가 늘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을 금기시한다고 한다. 뜻이 ‘강’ 건너 ‘남’에 간다는 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강성대국은 망상대국”

통제가 극심해도 민초는 집권자를 욕하게 마련이다. 김정은을 깎아내리는 은어로는 ‘뚱보’ ‘꼴꼴이’가 있다. 꼴꼴이는 새끼돼지를 가리키는 말. 상대적으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지방 거주 주민이 평양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무심코 김정은 관련한 막말을 해 주인이 당혹해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수대 김일성 부자 동상과 관련해 ‘김일성이 손을 들어 저 높은 곳을 가리키는 것은 헐벗고 굶주린 이들은 산으로 바다로 들로 가라고 손짓하는 것이며, 김정일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버지 말이 옳으니 살길 찾아 남조선으로 가라고 재촉하는 것’이라는 조소가 나돈다.” 

김정일은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정했다. 사상적,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강국’을 이뤘으니 ‘먹는 문제’를 해결해 강성대국을 완성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강성대국 대문이 열렸는데도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강성대국은 망상대국”이란 말이 나돈다. “대문 열쇠가 진벌에 빠져 찾지 못한다” “문이 열리니 그 안에 간부와 돈장사만 있더라”는 조롱도 나돈다고 한다. 

김정은 집권 직후엔 “김일성 원수님을 닮은 청년대장이 이끄니 나라가 잘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으나 지난해부터 “할아버지 흉내 집어치우라”는 비아냥거림이 늘었다고 한다. 노년층은 김정은과 아내 이설주의 ‘서구적인 듯한’ 행보에 “재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젊은 층은 “김정은 원수님이 자본주의 물을 장려하는 게 아니냐”면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북-중 접경지역 주민들은 당국이 전파탐지기를 이용해 중국 휴대전화 사용을 과거보다 엄격하게 통제하자 “아비보다 더 악독하다”고 입바른 말을 한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독일제 전파탐지기를 접경지역에 설치해 이전보다 외부와 통화하기가 어렵다. 접경지역에서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이들은 북한의 가족과 통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가족에게 돈도 송금해왔다. 

뒤처지는 ‘비물질 문화’ 

북한은 ‘조직’과 ‘선전선동’의 나라다. 통제와 교육의 수단이던 조직생활총화도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농촌 주민들은 기동예술선전대의 김일성 부자 우상화 선전활동을 지켜본 후 혀를 찬다고 한다. “사상이 어떻든 돈만 들어오면 된다”는 말도 있으나 “권력층이 돈에 미쳐 중국이 달라는 것을 다 갖다준다”는 한탄도 나온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지난해 숙청된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의 특별군사재판 판결문이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했다’고 지적한 것은 민심의 화살을 장성택에게 돌린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북조선 자원으로 중국 1개 성(省)이 먹고 산다” “이곳이 중국이냐” “혜산시는 중국 장백현 혜산구다” “우리나라 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주요 도시에서 식당을 이용할 때 대부분 위안화로 계산해야 한다. 혜산의 중국 화폐 유통률은 거의 100%라고 한다. 

주민들은 2008년 12월 휴대전화 판매를 시작하면서 단말기 값, 가입비를 달러로만 납부하도록 하면서 북한 돈 가치가 더 떨어졌다고 비판한다.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해 달러보다 위안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이가 많다고 한다. 위아나이제이션(Yuanization, 통화가 위안화로 대체되는 현상.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에서 유래한 말)은 북한 경제의 대(對)중국 종속을 심화시킨다. 북한 권력층은 외화 암시장에서 엄청난 환차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사회상, 경제상은 이렇듯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이들은 “시장화 수준이 동유럽의 ‘자본주의로의 이행’ 초기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라고 평가한다. 사회상, 경제상의 변화는 대부분 되돌릴 수 없다. 북한은 시장화가 상징하는 ‘물질문화’의 변화와 발달의 속도를, 독재 정권이 상징하는 ‘비물질 문화’가 따르지 못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권력과 돈이 결합해 자행되는 부정부패 또한 체제를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4년 12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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