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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8일 수요일

집에서 담그는 약술

Liquor

모름지기 ‘술잔을 기울이면 시름은 오지 않는다’ 했다. 어디 마음뿐이겠는가. 피로에 지친 몸을 살뜰히 달래는 데에도 술만 한 게 없다. 내 손으로 직접 빚은 특별한 약술 한 잔으로 몸도 마음도 치유해보자. 누구나 쉽게 담글 수 있는 침출주를 소개한다.

예부터 조상들은 술의 약 기능을 맛과 향만큼 중시했다. 술에 약재를 넣어 그 약용 성분을 우려낸 약주가 성행한 것. 맛과 향도 즐기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술이라면 누가 마다할까. 영양소는 전혀 없고 열량만 높은 화학주에 지쳤다면, 두말 않고 팔을 걷어붙일 만하다. 더욱이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술은 나만의 기호에 맞는 특별한 술로, 애주가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gettyimages/multibits
우리의 전통주는 대체로 주원료인 쌀이나 찹쌀을 물, 누룩과 발효시켜 만드는 양조곡주(釀造穀酒)다. 그러나 이는 적잖이 손이 가는 작업으로, 선뜻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침출주(浸出酒)라면 다르다. 침출주는 소주, 위스키, 브랜디, 럼, 보드카 등의 증류주에 열매나 잎, 뿌리 등의 각종 재료를 넣어 담그는 술을 말한다. 알코올의 추출작용에 의해 재료에서 여러 가지 유효한 성분이 우러나와 양질의 술을 얻을 수 있다.

한번쯤 침출주를 담근 경험이 있다면 잘 알겠지만, 담그는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재료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다음 적당한 양을 증류주에 넣어 밀봉하기만 하면 된다. 저장기간도 보통 1~3개월로 그리 길지 않다.

맛과 향, 효능을 겸비한 재료는 무엇이든 침출주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재료는 아무래도 열매나 과일류다. 포도주, 복분자주, 매실주, 대추주, 다래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침출주 재료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인 포도의 경우 단맛이 강할뿐더러 비타민C와 강력한 항산화력을 지닌 레스베라트롤 성분이 들어 있다. 복분자는 강장효과가 높고, 매실은 미네랄이 풍부한 알칼리성 과일로서 피로 회복, 식욕 증진, 노화 방지 등에 탁월하다. 오장을 보한다고 알려진 대추와 피로 회복에 좋은 다래는 신경을 이완시켜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인삼주, 더덕주, 칡주 같은 식물의 뿌리를 재료로 한 침출주도 중장년 애주가들이 선호하는 술이다. 더덕은 폐 질환에, 칡은 위장 질환에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뿌리로 만든 침출주는 향과 맛이 텁텁한 게 흠인데, 이 경우 향료 식물을 가미하면 도움이 된다.


술 맛있게 담그는 법
- 산소와 빛을 차단하라 재료와 증류주를 병에 가득 채워 공기와 접촉하는 빈 공간을 최소화하고, 완벽한 밀봉으로 공기를 차단할 것. 그리고 그늘에 보관할 것. 산소나 햇빛은 술빛을 퇴색시키고 향과 맛을 떨어뜨린다.

- 숙성기간을 지켜라 꽃, 잎, 그리고 무른 과일은 성분이 잘 우러나와 1~3개월 정도만 숙성시켜도 충분하지만, 단단한 과일이나 약재는 6~12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향과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 덜 익은 과일을 선택하라 완숙 과일보다 조금 덜 익은 과일이 오히려 좋다. 완숙되지 않은 과일에는 신맛을 내는 유기산이 풍부해 술맛을 더 조화롭게 하고, 숙성 도중 향긋한 향기를 돋운다. 많이 익어 물러진 과일로 담그면 술의 향과 맛이 변질되기 쉽고 술빛이 탁해진다.

- 핵과류는 3개월만 담가라 매실, 살구, 자두 등의 핵과류 과실은 오래 담가두면 씨에서 나쁜 성분이 우러나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3개월 후 열매를 제거하고 술만 걸러 다시 밀봉한 뒤 숙성시키는 게 좋다.

- 수분이 많은 재료에는 독한 술을 써라 증류주로는 알코올 도수 25~35%의 술을 주로 쓰는데, 도수가 높을수록 침출 또는 숙성 효과가 뛰어나다. 그러나 도수가 높은 술만 고집했다간 완성한 술의 도수가 너무 높아져 물이나 얼음으로 희석시켜 마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므로 재료의 수분 함량이 높으면 도수 높은 술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도수 낮은 술을 쓰면 된다. 과즙이나 수분이 많은 재료는 술을 희석시켜 알코올 도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 설탕 사용량을 줄여라 대부분의 담금술 재료에는 당분이 적당히 가미되어 있기 마련. 술을 담글 때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설탕을 많이 넣으면 술이 지나치게 달달해진다.

- 맑게 여과하라 많은 사람은 술을 담고 숙성이 끝나면 여과하지 않고 그대로 마신다. 그러나 이럴 경우 찌꺼기와 이물질이 남아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촉과 목넘김이 좋지 않다. 여과지나 한지, 커피필터 등으로 이물질을 간단히 걸러내면 훨씬 훌륭한 술로 재탄생한다.
-조호철 <100> 中
참고 도서 <100>(그리고책), <명주보감>(서해문집), <술 만들기>(미진사), <이종기 교수의 술 이야기>(다할미디어), <집에서 담가 먹는 과실주 과실초>(랜덤하우스) 


시니어조선 seni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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