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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2일 수요일

나의 본관 당악 김가에 관해서

어렸을 적에 아버님으로부터 들었던 가문에 대해서는 장수의 집안으로 알았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국문학사에서 예종의 도이장가가 김 락,신숭겸,배중손 세 장수의 충절을 기린 글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던 사실에 마음 뿌듯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명의 당악 김씨를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자손이 귀한 가문이다라고 생각했었다(1985년 현재 3,752명 생존). 그러나 이제는 인터넷의 덕택으로 당악 김씨들의 카페도 있음을 알게 되어 뿌리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졌다. 이씨 조선시절에는 평남,평북 지방에 밀려 살았다고 들었는데 해방 후 이남으로 이주하여 흩어져 살고 있는 사실을 알게되어 기뻤다. 언젠가 한국 가면 내 뿌리를 찾아가서 만나 보려고 한다.

[당악 김가 시조 및 본관유래]

당악 당악은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가화압(加火押)으로 불렀고, 신라(新羅) 헌덕왕(憲德王 : 41대 왕, 재위기간 : 809 826) 때는 당악현(唐岳縣)으로 개칭되었다. 당악 김씨(唐岳金氏)의 시조(始祖) 김 낙(金 樂)은 신라 문성왕(文聖王 : 46대 왕, 재위기간 : 839 857) 5세손이며, 신라에서 대아찬(신라 17관등중 다섯째 벼슬)을 지낸 김무력(金武力)의 맏아들이다. 그는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개국(高麗開國)에 공()을 세워 개국통합 삼한일등공신(開國統合三韓一等功臣)으로 당악군(唐岳君)에 봉해졌으며, 원보(元甫) 겸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서기 927 (고려 태조 10) 7월 대량성(大良城 : 지금의 합천)을 치고, 그해 10월 공산(公山 : 대구의 팔공산)의 동수(桐藪) 전투에서 견훤(甄萱 : 후백제의 시조)과 싸우다가 태조(太祖)가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자 대장(大將) 신숭겸(申崇謙 : 평산 신씨의 시조)과 함께 태조를 덤불 속에 숨기고 왕()의 수레를 대신 타고 격전하다가 전사했다. 그 후 태조는 그의 충절을 기려 익대교절광위갈충위사전공신(翊戴交節匡偉竭忠衛社戰功臣)에 추봉하고 지묘사(智妙寺)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으며, 후손들에게 당악군(唐岳郡)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했으므로 후손들이 사적(賜籍)된 당악(唐岳)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낙()의 아들 승()이 아버지의 절사(節死)로 원윤(元尹)에 특배(特拜)되고 은청광록대부·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으며, 그의 손자 자경(自敬)은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냈다. 조선조에서는 부령(副令) 손휘(孫暉)의 손자(孫子) 오복(五福)이 세종(世宗) 때 연안부 교수관(延安府敎授官)을 지내고 사재부정(司宰副正)에 올랐으며, 아우 오기(五寄)는 장령(掌令)을 역임했다. 그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중시(仲時)와 부호군(副護軍) 경엽(敬燁), 부사직(副司直) 사민(泗敏) 등이 이름났으며, 상권(尙權)과 태흥(泰興)도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향가계 고려가요 도이장가의 어구해석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님을 온전하게 하온 /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니 / 넋이 가셨으되 / 몸 세우시고 하신 말씀 / 직분 맡으려 활 잡는 이 마음 새로워지기를 / 좋다. 두 공신이여 / 오래 오래 곧은 자최는 나타내신져." 

예종이 서경의 팔관회(八關會)에 참관했을 때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에 앉아 뜰을 뛰어다녔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좌우에서 다음과 같이 그 경위를 설명하였다. 그 둘은 신승겸과 김락으로,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왕건을 대신해서 죽은 공신이다. 그래서 그 공을 높이고자 태조 때부터 팔관회에서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다. 태조는 그 자리에 두 공신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풀로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복식을 갖추고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랬더니 두 공신은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생시와 같이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듣고 예종이 감격해서 한시와 함께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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