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칠드 가문은 19세기 유럽 전역에서 투자은행과 벤처캐피털을 거느리며 금융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가문이 와인 사업을 시작한 것은 1853년 암셀 로칠드의 손자 바롱 나다니엘(1812~1870)이 영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보르도 메독지방에 위치한 뽀이약 주변 포도밭을 매입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바롱필립 드 로칠드 와이너리 전경
1933년 설립된 바롱 필립 드 로칠드 와이너리는 최초로 보르도 와인을 수출했으며 보르도 와인 수출 1위, 프랑스 국내 와인 회사 수출 7위를 기록하며 생산량의 80%를 150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와이너리이다.
이름만으로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와인 '샤또 무똥 로칠드'는 세계 유명 예술가들의 그림이 망라된 예술을 담은 와인으로 와인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세계에서 명실공히 ‘프랑스 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와인을 찾으라면 그건 바로 ‘무똥 까데’일 것이다. 이 와인은 로칠드 가문 소유의 샤또 무똥 로칠드에서 태어난 ‘무똥의 막내’라는 뜻이다.
프랑스 그랑크뤼 1등급 와이너리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브랜드 와인으로 출발하여 전 세계에서 연간 약 1,700만 병이 판매되는 명실공히 보르도 와인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여러 포도 품종을 혼합하는 기술을 개발한 최초의 보르도 AOC 와인으로 유명하다.
지금부터 이 위대한 가문의 와인이야기가 시작된다.
- 로칠드 가문 가계도
로칠드 (Rothschild : 영어로는 로스차일드, 불어로는 로칠드)는 세계적인 금융 재벌, 불굴의 유대인 가문이다. 현대 경제사, 정치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로칠드 가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인류역사에서 놀라운 존재로 알려졌다.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마이어 암셸(1744-1812)로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빈민 거주지 Ghetto에서 태어나 11살의 나이에 부모를 잃은 누이와 아우 넷을 거느린 소년 가장이었다. 그는 뛰어난 환전상, 골동품상으로 독일 제후의 궁정 상인이 되었다. 유럽의 격동기에 5명의 아들을 프랑크푸르트, 비엔나, 런던, 나폴리, 파리에 파견하여 뛰어난 정보력과 가족 간의 결속력으로 로칠드의 금융제국을 이룬다. 당시 유럽의 왕들은 로칠드의 돈이 없이는 전쟁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로칠드 가의 부(富)가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실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 로칠드 문패와 방패
위대한 로칠드 가문, 그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유대인이 성(姓)을 갖도록 허용된 것은 1807년이었다. 로칠드(Rothschild)란 독일어로 ‘붉은 방패’란 뜻으로 대문에 문패로 붙여 놓은 붉은 방패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마이어 암셸은 형제간의 사랑과 우애를 강조하였고 결속이 깨어지지 않도록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족 경영 회사’의 유언을 남겼다. 1822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아 귀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가문의 문장에 아버지의 유언을 각인하였다. 유언의 내용은 화합, 단결, 근면(Concordia, Integritas, Industria)이었고 5형제의 결속을 다짐하는 5개의 화살은 로칠드를 상징한다.
chosunilbo 아영 FBC 콘텐츠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