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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9일 일요일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

[지식 콘서트] 김대식 교수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



김대식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
위클리비즈는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인문학 아고라: 아름다운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 석학들의 강의를 연재한다. 이번 주엔 김대식〈사진〉 KAIST 전기 및 전자과 교수가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이란 제목으로 한 강연을 요약 소개한다.

1. 기억이란 있었던 사실을 꺼내는 게 아니라 매번 새로 만드는 것제가 뇌과학에서 유명한 케이스를 소개해 드릴게요. 헨리 몰레이슨이라는 환자입니다. 아주 심한 간질병을 앓았던 사람인데, 해마라는 영역을 포함한 뇌의 한 부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 의사들이 해마를 도려냈어요. 이분이 수술 후 50~60년을 사셨는데, 수술하기 전까지의 기억은 다 갖고 있는데, 수술하고 난 다음에 새로운 기억을 못 만들었습니다. 5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병원에서 눈을 뜨고 일어난 다음에 물어보는 거예요. "왜 내가 병원에 있나?" 그에게 자아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분은 5분마다 리셋이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아, 나라는 존재, 자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억이 상당히 중요하구나'란 거죠.

문제는 인간의 기억은 컴퓨터 기억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뇌가 정보를 100% 입력했다가는 몇 달, 몇 년 지나면 정보량이 꽉 차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뇌는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고, 중요한 정보라 해도 정보의 대부분을 지워버리는 식으로 압축을 합니다. 모든 디테일은 사실 없어집니다. 우리가 뇌에 기억하는 건 중요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압축해서 거의 키워드 정도만 입력을 하는 것이고, 나중에 우리가 기억을 할 때는 키워드를 제목만 가지고 와서 제목과 제목 사이의 디테일은 새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있었던 사실을 서랍에다 집어넣었다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고, 매번 새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100% 확신을 갖고 있어도 100% 틀릴 수 있다뇌는 두개골이라는 어두컴컴한 감옥 속에 갇혀 있는 1.5kg짜리 고깃덩어립니다. 그런데 뇌가 머리 안에 있다 보니까 뇌가 직접 현실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눈·코·귀 같은 오감(五感)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정보가 뇌로 들어옵니다. 문제는 다양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오감이 공학적으로 잘못 설계된 기계들이란 점입니다.

시간상 눈에 대해서만 설명을 해드릴게요. 공학자로서 볼 때 눈은 정말 잘못 디자인된 기계입니다. 공학자가 눈을 설계했다면 당연히 빛에 반응을 보이는 세포를 빛과 가장 가까운 곳에 둬야 하겠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진화 과정에서 인간 등 대부분 동물 망막은 뒤집힌 상태로 진화했습니다. 빛을 감지하는 광(光) 수용 세포들은 빛이 들어오는 방향이 아닌 망막 후반부에 위치해 있어요. 그 사이엔 수많은 세포층과 망막 내부 혈관이 있어서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영상에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그림자가 생깁니다. 엄청나게 많은 혈관의 그림자가 마치 거미줄같이 보이게 되겠죠.

그런데 왜 우리 눈에는 그게 안 보일까? 뇌가 그 그림자들은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안에 있는 혈관이라는 걸 알고 지워버리는 겁니다. 근데 어떻게 알고 지워버릴까? 알고 보니까 알고리즘을 씁니다. 영상과 영상 간의 차이 값을 계산하는 겁니다. 수학적으로는 미분을 계산하는 거예요.

바깥세상에 있는 물체들은 변하잖아요. 막 뛰어다니는 호랑이를 생각해 보세요. 호랑이가 위치를 바꾸기 때문에 현재 우리 눈에 나타난 영상에서 1초 전 영상을 빼주면 차이 값이 생기겠죠. 그러나 혈관의 위치는 변하지 않아요. 혈관 빼기 혈관 하면 그냥 0이 돼버려요. 뇌의 중요한 알고리즘 중 하나는 변화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눈·코·귀가 완벽하다면 그냥 뇌가 세상을 믿으면 되지만, 우리의 센서들이 너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뇌는 항상 해석을 한다는 겁니다. 즉, 본다는 것, 지각하는 것, 인식하는 것은 항상 해석입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본다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림] 가·나
그런데 뇌가 너무 많은 해석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림 가〉를 보면 A가 B보다 더 어둡게 보이죠. 시각에 문제가 없다면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그림 나〉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A와 B의 밝기는 같습니다. 시각적 착시 현상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우선 망막은 A와 B의 밝기가 똑같다고 얘기를 할 거예요. 근데 뇌는 망막을 안 믿고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B는 그림자 안에 있다. 그림자 안에 있는 물체는 진짜보다 항상 더 어둡게 보인다. B는 이미 원래보다 더 어둡게 보이는 상황에서 A랑 똑같다. 그럼 B가 사실 A보다 훨씬 더 밝은 거다.' 재밌는 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저는 다 이해를 하는데도 매번 볼 때마다 여전히 더 밝게 보인다는 겁니다. 내가 100% 확신을 가지고 있어도 100% 틀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게 아마 뇌과학의 메시지 중 하나가 될 겁니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저희가 느끼고, 지각하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의 대부분을 착시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착시가 사실 나쁜 게 아니에요. 착시 현상이라는 건 우리의 눈·코·귀가 알려주는 세상에 알파가 더해진다는 의미예요. 그 알파가 해석입니다. 그 해석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봐요.


3. 진정 오래 사는 방법또 다른 착시 중 하나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얼마 전에 밝혀졌어요. 알고 보니까 어렸을 때 뇌의 신경세포 정보 전달 속도가 나이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릅니다. 어렸을 때는 세상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축구 경기에서 1초에 30번 프레임을 찍으면 그냥 축구 경기지만, 1초에 3000번 찍으면 슬로 모션이 되죠. 그런 식으로 어렸을 때는 세상을 슬로 모션으로 사는 겁니다.

몇 년 전에 아주 유명한 논문이 있었는데 왜 파리 잡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내용이었어요. 파리는 사람보다 훨씬 신경세포 정보 전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파리가 볼 때 사람 손은 슬로 모션으로 오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이 먹었을 때 신경세포들의 속도를 다시 어린 신경세포로 바꿔 놓을 수가 있을까. 아직 그런 화학적 약은 없고, 유일하게 제가 아는 방법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커피를 드시면 됩니다. 카페인이 그런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효과가 5분밖에 안 간다는 겁니다. 둘째는 집중을 하면 됩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집중을 하는 순간 훨씬 더 많은 정보 전달이 되고, 아까 저희가 봤던 착시 현상도 집중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24시간 내내 집중할 수는 없잖아요. 이것의 메시지는 뭐냐면, '아 그렇다면 내가 정말 선택을 잘해야 되겠구나'라는 겁니다.

제가 뇌과학을 20년 정도 했는데, 제 개인적인 삶에는 이 부분이 가장 많은 도움이 됐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세상에 대해서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불만이 뭐냐면 제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미 세상이 존재하더라는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동의한 적 없잖아요. 그냥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먼저 온 사람들이 규칙을 다 만들어 버렸어요. 세상의 규칙, 대한민국의 규칙.

그러니 세상이 갑(甲)이고, 개인은 을(乙)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먼저 규칙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런데 저는 어쩌면 갑을 관계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봤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10년, 20년, 30년 후의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 그 미래의 내가 지금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기억할까요? 지금 현재와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상상 속 미래의 내가 지금을 기억했을 때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할 것 같다는 결정이 나면 거기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기억에 슬로 모션으로 입력이 되어 있을 거예요.

우리가 보통 젊은 사람들한테 애기를 할 때 네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주인공보다 더 좋은 역할이 있죠. 감독이 되면 되겠죠, 편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결론은 저희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슬로 모션으로 입력을 할 수 있고 괴롭거나 슬픈 순간은 압축해서 입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는 겁니다.
4. 늙는다는 건 삶의 의미를 정할 자유를 갖는다는 것우리는 왜 늙을까요? 우리가 젊었을 때와 나이 먹었을 때하고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가장 큰 차이는 나이를 먹으면 확률적으로 이미 자식을 가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나이 먹은 사람은 자연이 이미 우리에게 준 숙제를 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동일한 문제가 있을 때 자연은 어린이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죠. 두 가지 위중한 병이 있다고 칩시다. 첫째 병은 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에 나타나는 병입니다. 그런데 그 병을 만들어낸 유전자가 그다음 세대로 전달이 될까요? 당연히 안 되겠죠. 자손을 낳기 전에 그 병 때문에 이미 죽을 테니까요. 그 질병과 그 유전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거죠. 근데 나이가 먹어서 나타나는 치매 같은 증세들은 우리가 이미 자손을 낳고 나서 나오는 증세들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로 이미 전달이 되어 버렸어요. 결국 확률적으로 어렸을 때 생기는 문제를 만드는 유전자는 다 걸러졌지만, 나이가 먹어서 생기는 증세들은 그다음 세대로 이미 전달이 되어버린 겁니다. 결국 자연은 어렸을 때 문제 되는 것들은 잘 푼다는 겁니다.

늙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의 무관심입니다. 자연이 우리한테 관심이 없다는 걸 가지고 우리가 울고불고할 수도 있겠는데, 저는 이걸 오히려 아주 좋게 보고 싶어요. 늙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자연의 무관심으로 해석한다면 상당한 자유가 생긴다는 거죠. 결국 늙음이라는 건 남이 나한테 준 의미가 아니고, 나 스스로 삶의 의미를 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5. 창의적 인생을 산다는 것,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인공지능 연구는 최근 들어 급격히 발전하고 있어요.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새로운 방법이 생기고 나서 지난 50년간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못 풀었던 문제들이 다 풀리고 있습니다. 연구하는 분들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100년 후 먼 미래가 아니라 20년, 30년 후 미래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2013년 옥스퍼드대 연구 결과를 보면 기계가 만약에 사람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면 영국과 미국에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사라진다는 거예요. 대부분 화이트칼라 직업들이 사라집니다.〈위클리비즈 2014년7월19일자 C4면 참조〉그럼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요. 3가지 카테고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직업, 둘째는 감성적인 것 또는 인간적인 것, 셋째는 아주 중요한 판단을 하는 직업군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학생들한테 여전히 국·영·수를 가르쳐 주고 있어요. 근데 20~30년 후에 직장을 찾으려면 그때는 100%가 학생들이 명문 대학교 가고 유학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들하고 경쟁해서 일자리를 얻어야 할 세대일 텐데 20년 후에는 100% 기계가 국·영·수를 잘합니다. 당연히.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린아이들한테 20년 후에 기계하고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도구를 하나도 안 주고 있는 거죠, 현재로서는.

저희가 막연하게 인문학적인 개념에서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창의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할 때는 선호도의 문제입니다. 창의적으로 안 살아도 아무 문제 없어요. 근데 20년, 30년 후가 되면 아름답고 창의적인 인생은 선택이 아니고 필연이 되어버리는 거죠.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살지 않으면 그냥 다 실업자가 돼요. 우리 아들딸들 세대에는 창의적이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하면 사실 지구에서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는 게 오늘의 메시지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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