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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3일 금요일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자들의 현실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지 어느새 60년이 지났다. 이념대결의 결과치곤 너무나 참담한 북한의 실상에 경악할 뿐이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자가 많아지고 체제에 반대하기만 하면 강제수용소 등의 감옥에서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해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살 수가 없어 생존을 위해 생지옥과 같은 곳에서 자유를 얻으려고 탈출하였지만 다시 붙들리기만 하면 강제 북송되어 감옥에 갇치면서 반동이라는 죄목으로 더욱 혹독하게 고문과 태형을 수시로 당하여 대부분 죽게된다. 따라서 안 붙잡히려고 계속적으로 숨어 살면서 지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다. 어서 통일이 되어서 우리의 북한 주민들도 인간의 권리와 복을 누리며 사는 날이 속히 오기를 오매불망 염원한다.




동남아에서 필사적인 탈출을 하는 탈북자들



강제노역하는 어린아이들








탈북자를 검거하거나 사살하면 노동당에 입당하거나 금전적인 보상을 한다고 한다.







2007년 2월 현재






2006년 태국에 불법체류자들이라고 체포되어 있는 탈북자들

2010년 12월 15일 조선일보 사설

최근 북한 40·50대 엘리트 간부들의 탈북(脫北)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군에서 러시아어(語) 통역관으로 일해온 최모(41)씨가 러시아로 밀입국한 뒤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을 통해 한국 망명을 요청했다. 최씨는 망명 동기에 대해 "북한 밖에서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북한 체제를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외화 벌이 창구의 하나인 네팔 옥류관 책임자도 지난주 인도로 탈출했다. 작년 6월엔 북한 양강도 설정식(40) 청년동맹 제1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고, 공관장급 북한 외교관과 외화 벌이 총회사의 사장도 서울에 왔다.

이들은 북한의 대외(對外) 업무를 맡아온 중간 간부들로 북한에서 안정된 삶이 보장된 계층 출신이다. 북한은 외국 근무자를 선발할 때부터 충성심과 가족 성분 등을 철저히 따지고, 외국 임지(任地)로 부임할 때는 가족 전체 또는 일부를 북한에 남겨 놓도록 하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쳐놓았는데도 40·50대 엘리트들의 이탈(離脫)을 막지 못했다.

지난 10월 말로 국내 거주 탈북자가 2만명을 넘었다. 15세 이상 탈북자의 취업률은 39.9%, 취업자 평균 월급은 126만여원이며, 탈북자 54.4%가 기초생활보호 대상이다. 북한에서 당 간부나 전문직 종사자, 엘리트층에 속했었다 해도 한국에 오면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까지 내몰린 북한 일반주민들은 그래도 한국에 오려고 온몸을 내던지지만 북한 엘리트들은 사정이 다르다.

북한 체제의 중간 간부층이나 당 엘리트들이 김정일에게 등을 돌리면 북한 체제의 수명은 더 빨리 끝난다. 독일 분단 시절 서독에 정착한 동독 엘리트들은 정착 지원금은 물론이고 서독의 사회연금을 비롯한 각종 사회보장 혜택까지 누릴 수 있었다. 서독의 이런 정책은 동독 엘리트의 동독 이탈이 갖는 정치적·현실적·상징적 의미를 그만큼 크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 탈북자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질(質)에 따라 보상금과 초기 정착금을 준 뒤 국내 정착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해결할 문제로 놔두고 있다. 탈북자들의 대한민국 정착 성공 스토리는 북한 체제를 압박하는 가장 큰 무기의 하나다. 정부는 북한 엘리트 탈북 문제에 대해 보다 숙고(熟考)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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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탈북자를 관 속에 넣어 북한으로 보내고 있는 중(2010.11.3.자 어느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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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보트도 없어 중국 측에서 준비한 고무에 관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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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시체가 넘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압록강에 나온 혜산 시민들



북한인권운동가 김상헌씨     자유북한방송 FNK


북한 인권 운동가 Nobert Vollertsen 박사.




중국 단둥 탈북자수용소 주변에서 중국군인들이 구보하고 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접한 중국 단둥(丹東)시 외곽 주렌청(九連城)진의 10층짜리 변방지대(邊方支隊·북중 국경업무를 관할하는 부대) 건물. 이 건물 옆에는 투먼(圖們)과 함께 중국에 있는 2개의 탈북자 수용소 중 하나인 단둥수용소가 있다. 중국 공안(公安)들은 탈북자가 늘면서 국경지대를 이 잡듯이 뒤져 탈북자들을 색출, 북송하고 있다. 수만명의 탈북자들이 공안과 숨바꼭질하며 떠돌고 있다.


선양시의 한국 거리인 시타제(西塔街)는 한때 탈북자의 해방구 같았던 곳이다. 
최근 이곳에서도 대대적인 검문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탈북자들의 종적이 아예 사라졌다. 은신하기 좋지만 반대로 ‘신고자’도 많기 때문이다. 탈북자를 지원하는 한 인사는 “이곳에선 누가 누구를 감시하고, 누가 신고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며 “상당수 탈북자들은 이미 인근 소도시들로 옮겨 갔다”고 말했다.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소도시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K군(19)은 9살 때 처음 두만강을 건넌 이후 세 번씩이나 잡혔다가 탈북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엔 은신처에서 꼼짝하지 않고 성경을 베껴 쓰는 일로 시간을 보내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2007년 2월 21일 조선일보



탈북자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그들의 인권보장과 강제북송이 중지되기를 바라고 하루 속히 통일이 되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아래 동영상은 붙잡힌 탈북자인 가날픈 여자를 짐승에게도 하지 못 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고문까지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너무 참혹하여 볼 수가 없다. 북한의 학정에 짓밟힌 인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National Geographic Magazine에서도 이북 탈북자들의 사진을 특별히 게재하였기에  보기를 바란다.
Escaping North Korea — Photo Gallery — National Geographic Magazine


어서 속히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주여 저들을 구해 주소서!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625한국전쟁 미공개사진과 비화:The Korean War You Never Knew

최근의 북한의 계속되는 무력도발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지 오래다. 천암함의 46명의 장병의 목숨을 앗아간지도 오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연평도에 느닷없이 퍼부은 포탄으로 4명의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천인공로할 만행에 말 문이 막힌다.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어선지 라이프 잡지사에서 과거 625동란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과 사진을 공개하기에 게재하면서 다시금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북한에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 어서 통일이 되어 학정과 탄압 그리고 경제 파탄으로 기아선상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우리 동포가 어서 자유를 찾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Life지에서 사진과 함께 게재하였다.

The Korean War You Never Knew - Photo Gallery - LIFE

당시 유명한 사진작가였던 David Douglas Duncan이 한국전 취재중 찍은 사진들

A Great Photographer's Korean War - Photo Gallery - LIFE


한국전쟁 당시 사진 중 처음 공개되는 사진들.
NEVER-SEEN: LIFE in the Korean War - Photo Gallery - LIFE

이락전과 아프카니스탄 전쟁 사진들
At War: Photographers' Best Shots - Photo Gallery - LIFE

2010년 12월 1일 수요일

갑바도기아 유적과 터키

우리의 우방 국가 터키에는  기독교 유적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바도기아( Cappadocia)가 있다. 갑바도기아(Cappadocia)는 예전의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오늘날 터키의 카파도캬(Kapadokya)에 해당된다. 아나톨리아 고원 한가운데에 자리한 갑바도기아는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목으로 대상 행렬이 근대까지 이어졌다.
Cappadocia, Turkey

View Larger Map

대규모 기암 지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많다. 적갈색, 흰색, 주황색의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이것은 수억년 전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터키 기독교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랍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6세기 후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카파도키아에는 현재 100여개의 교회가 남아 있다. 이 석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좋을뿐더러 내부의 장식이 아름답다.
Photo: Cave houses along cliffside
Cave dwellings in Cappadocia


Ürgüp, Göreme, Uçhisar, Avanos and Mustafapaşa (Sinasos) 등의 도시 주위에 있는 'Moonscape' 라는 곳이 유명한 곳인데 돌과 산이 침식작용을 통하여 동굴,바위의 갈라진 틈, 무른 화산돌이 주름모양으로 변형되었다.

Fairy Chimney: 모자모양의 강한 돌이 원뿔모양의 연한 돌로 된 뾰죽한 바위 위에 있다.



Zelve Monastery:

4세기경 기독교인들이 만든 동굴들







Photo: Windows of a cave house in Turkey


Caves in Erdemli Valley outside the town of Yesilhisar in Cappadocia
약 1,000개의 초기 기독교인 동굴교회와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00개 정도의 지하처소가 있다고 한다. 약 5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연한 화산돌들을 여러가지 용도로 파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거의 집안 살림사리에 필요를 위해 포도주저장소, 마구간, 새장, 음식물저장소, 피난처 그리고 교회용으로 손으로 조각을 해서 만들었다. 이 동굴들은 지하로 약 100미터 그리고 돌언덕의 꼭대기로부터 약 100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지하도시(KAYMAKLI / DERINKUYU)



초기 그리스도교의 박해시기부터 있었으리라 추정하고 있는 이 곳의 도시들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치 않다. 약 2세기 경에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도들은 안타키야(Antakya)와 카이세리(Kayseri) 지방을 거쳐 이곳에 정착하였다. 로마 군사들이 발견하기 힘든 동굴과 지형으로 자연스럽게 지하에서 오랜 세월을 살게 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도시는 36개로서 서로 연결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지상에서는 알아 볼 수 없는 거대한 지하 도시를 건설했다.  

네브쉐히르에서 남쪽을 약 29Km와 30Km 떨어진 지점에 각각 위치하고 있는 카이막클르와 데린쿠유는 일종의 지하도시다. 기원전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지하로 굴을 파고 거주했으리라 믿어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면서 거주민들은 더 넓은 주거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더 많은 시설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해 결국 오늘날엔, 하나의 거대한 지하 도시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 지하도시는 방들이 서로 연결되게 만들고 그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하게 보안을 위해 만들었고 터널의 입구에는 큰 돌을 비치하여 유사시 터널을 봉쇄하였다. 여러 방들 중 어떤 곳은 기도실로 만들어져, 그곳에 제단과 십자가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이곳에는 학교, 세례 장, 56개의 통풍 통로, 80m의 우물 등이 있다.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데린 쿠유와 카이막르 지하도시 형태는 서로 비슷하다.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대형 지하도시는 현재 8층까지 내려 갈 수 있다. 피난민이 늘어날수록 더 큰공간의 넓이가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지하도시 안에는 평상시에 밖에서 사료를 날라다가 저장해 둘 뿐 아니 라 추수한 곡식들이 서늘한 지하도시에 보관되고 비상시 음료수를 위해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포도주를 놓아둔 흔적들이 있다. 땅속 깊이 우물 을 파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또한 이것을 지하 공기를 맑게 해주 는 통풍장치로 사용하였다. 동굴 중간중간에는 외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둥근 맷돌 모양의 틈 석문이 놓여 있다. 20,000명 정도 수용되는 이 지하도시는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들, 부엌, 교회, 곡물 저장소, 동물 사육장, 포도주 저장실, 성찬 및 세례식을 갖는 장소, 신학교, 지하 미장 지 등 도시기능을 완전히 갖추었다. 이곳은 긴급시 타 지하도시로 피신 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있는데 9㎞까지 연결되었다. 이 같은 지하도시 가 이 지역에 36개정도 더 있다. 이 지하도시에는 일체의 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네브쉬힐 주변의 수십개의 지하도시와 기암군 중 데린쿠유(Derinkuyu) 와 카이막르(Kaymakli)만이 일반에게 공개된다. 테린쿠유는 네브쉬힐에서 29km떨어진 마을이다.

4세기에 수도사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카이세라(Kaisera)에서 Saint Basileious가 Nyssa 에서 Saint Gregorios가 나와 갑바도기아에 정착하였다. 박해를 피해 이 곳으로 모여들면서 많은 교회가 생겨졌다. 자연적인 동굴과 새로이 만드는 동굴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숨어 살 필요가 없어지자 그들은 이곳을 떠났으나 서기 647년에 아랍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다시 적당한 지역의 동굴로 피신하여 생활하였다. 이 곳에는 적어도 600여 개의 교회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토굴과 암혈을 파고 숨어살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은신처들, 기도처와 신학교, 동굴 교회들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모습을 갖고 있어 탐방자들의 눈을 놀라게 하며 유대인들과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초대 교회(베전 1,1)의 생생한 역사를 볼 수 있다.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이 갑바도키아에 이주해 와서 살던 모습, 기독교 자체 내에 성화파들과 성화를 반대하는 이크노클라스파들간의 종파싸움을 계기로 성화파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와 비잔틴 예술의 극치를 이루었던 성화들을 동굴교회에 장식했던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곳은 기독교의 근원적인 모습들, 기독교 성장에서 오는 모순들, 기독교와 타종교간의 마찰, 그리고 기독교 자체내의 종파 싸움으로 인한 쇠퇴기와 멸망의 원인들을 잘 설명해 주는 살아 있는 기독교 박물관이다. 

이곳에 지하 동굴을 최초로 파기 시작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아니었다. 기원전 1200년경에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하자 소아시아 반도는 암흑기로 접어들면서 동부는 투 왕국, 남동부는 신 히타이트 왕국, 서부는 리디아 왕국, 중부는 프리지아 왕국이 차지하며 서로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 후 기원전 6세기경 중반에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대왕이 순식간에 소아시아 전체를 통일 점령한 후 B.C.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침입할 때까지 페르시아 영토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아리아리테스 2세가 갑바도키아 왕국을 세워 기원전 2세기말까지 비교적 독립을 유지하다가 결국 기원 후 17년에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같이 수많은 왕국의 교체 과정에서 전쟁 패잔병들이 소규모의 토굴을 파고 은신해 살아 왔다. 그후 영원한 나라를 세우려던 로마 지역의 박해가 심해지나 소아시아 반도를 비롯 각 지역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대거 몰려옴으로서 오늘의 역사적 현장을 만들었다. 갑바도키아 괴레메(Goereme)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그 옛날 알렉산더 대왕 이후 갑바도기아 왕국 (BC257-64)이 창설되어 약 2백년간 존속된 곳이다. 갑바도기아 지방은 아나톨리안 중부 지역내에 수도인 네브쉬힐(Nevsehir)을 기점으로  카이세리 (Kayseri),남쪽으로는 니이데(Nigde), 그리고 악사라이(Aksaray), 키르세힐(Kirsehir) 지역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교 자료에 의하면 '카이사리'의 성 바실리오 주교는 그 시대의 종교적 경향인 운둔 생활의 개별화를 방지하기 위해 이 곳에 종합적인 수도원을 설치했다고 하는데 1년 365일에 해당하는 365개의 암굴교회가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약 30여 개의 교회만이 야외박물관으로 개장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의 황량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프레스코로 장식되어있다.

괴레메 계곡에는 기암괴석이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을 띠면서 어떤 것 은 수많은 수도승의 모습을, 어떤 것은 피라미드, 가족 등 다양한 형상 을 하고 있다. 과거 여기에 사람이 집으로 굴을 파서 사용했다. 괴뢰메 계곡은 천연의 자연 조각품으로 환상적으로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은 데린구유나 카이막카르 지하 도시와는 달리 지상에 있는 바위 동굴 속에 프레스코와 성화들이 교회마다 장식 되어 있다. 성화들이 많이 파괴된 곳도 있으나 토카트르 교회 같은 곳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 되어 있다.

우상숭배를 배척하는 회교인들과 어린이들의 장난으로 초기 성화들이 많이 파괴 되었으나 당시 비잔틴 예술을 이해 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어두운 교회의 천정과 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의 기적들, 최후만찬, 유다의 배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등이 그려져 있다. 사과교회, 집시교회, 토칼르교회, 성 바르바르 교회 등 수 많은 교회 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등을 주제로 성화가 그려져 있으며, 천정 모퉁이에는 성경 기록자들의 성화도 그려져 있다. 


Uchisar: Pigeon Houses
우치사르 계곡에는 비둘기 집이 많다. 그것도 1천년이상 된 것들이다. 집을 짓지 못하고 헤메던 비둘기를 위해서 이 계곡에 처음 집을 지었다. 지역의 이름이기도 한 이곳은 60m의 높은 성체이다. 마치 왕관의 모양이, 혹은 창문이 군데군데 박힌 고층 건물처럼 산꼭대기에 서 있어서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수없이 뚫려 있는 구멍들을 볼 수 있는데 이 구멍들은 비둘기 집이다. 이 집들의 주인이었던 비둘기들은 이 곳에 거주하던 그리스도교인들에겐 귀한 손님이었다. 성화를 그리기 위한 재료인 알을 주기 때문이다. 이 곳 사람들은 비둘기 알에서 염료를 얻어 석굴예배당의 성화를 채색하였다. 최근에는 성채에서 지하 100m 이르는 곳에 위치한 비밀터널이 발견되었는데 이 곳은 전시에 대비하여 물을 공급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Snow-capped rock caves and pigeon houses in Goreme
Honey Valley near Uchisar in Cappadocia


Grape Vine

갑바도기아는 647년에 아랍인에 점령되고 1072년에는 셀주크의 치하에 들어갔고 1399년에는 오스만 제국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1923년 10월 23일에 오스만 술탄국의 통치가 폐지되고 터키공화국이 건국되었다.
현대식 호텔


Stonehouse Cave Hotel in Goreme

Sandstone formation

Chimney sweep...dwellings built into the rock Uchisar

Cave Resort in Cappadocia

Photo: Hot air balloons over Cappadocia, Turkey


터키의 이모저모
Photo: Suleymaniye Mosque, Istanbul
Suleymaniye Mosque, Istanbul: Monument to a mighty ruler, Istanbul's many-domed Süleymaniye complex looks over the Golden Horn, Bosporus, and Sea of Marmara to Asia. Built in the 1550s by court architect Sinan, the mosque was surrounded by colleges, a hospital, a soup kitchen, baths, and the tombs of Süleyman and his wife, Roxelana. Istanbul—then known as Constantinople—became the seat of Ottoman power in 1453, when Süleyman's great-grandfather Mehmed II seized the Byzantine capital.
Photo: Mevlevi Order dancers
Mevlevi Order Dancers- Whirling Dervishes perform a ritual dance each December to commemorate the death in 1273 of their founder, Celaleddin Rumi. Pivoting on one foot as they circle the room—right hand facing heaven, left hand facing earth—the dancers symbolize spinning planets revolving about God.
Photo: Selimiye Mosque
Suleymiye Mosque, Edirne: The mosque was built by Sinan in the 1570s for Selim II.
Photo: Castle of Bodrum
Castle of Bodrum, Istanbul: Thorns in his side, the valiant Knights of St. John, occupying the castle of Bodrum on Turkey's Aegean coast, interfered with Süleyman's control of crucial trade routes and lines of communication. In 1522 he routed them from their stronghold on nearby Rhodes, but his chivalry in allowing them to leave unharmed backfired on him 43 years later.
Photo: Mostar, Bosnia and Herzegovina
Mostar, Bosnia and Herzegovina
Photo: Mosque at sunset
Blue Mosque, Istanbul: The Sultan Ahmet Mosque in Old Town Istanbul is better known by its nickname, the Blue Mosque. The famed structure, with cascading domes and six minarets, was built beginning in 1609 by the 19-year-old Ottoman Sultan Ahmet I. 
Photo: Colorful tiled ceiling of Topkapi Palace
Topkapi Palace, Istanbul: The structure was first built in the mid-1400s but was added to and renovated nearly continually over the centuries, eventually reaching a footprint of some 170 acres (69 hectares).
Photo: Ruins of a church
Ruined Church, Ani, situated on the uneasy border between Turkey and its historical adversary, Armenia, Ani endured centuries of war and earthquakes before being left to the desert plateau
Photo: Elaborately carved white columns
Library of Ephesus Evidence still stands, however, of its rule by the Greek and Persian empires more than 4,000 years ago. Situated near the Cayster River in western Turkey, the ancient city's most famous edifices include the Temple of Artemis and the Library of Celsus, shown here.
Photo: Tourists walking through Hagia Sophia in Istanbul
Hogia Sophia, Istanbul, built in just six years by Byzantine Emperor Justinian in the mid-sixth century A.D., Istanbul's Hagia Sophia stood as Christendom’s largest cathedral for almost a thousand years.
Photo: Man throwing a carpet
Turkish Carpet
Photo: Aerial view of Istanbul, Turkey
Galata Bridge, Istanbul. The first bridge across Istanbul's Golden Horn waterway was a temporary structure erected by the Ottoman army in 1453. The current span, connecting the modern Galata neighborhood with Old Istanbul, is the bridge's fifth incarnation. Built in 1992.
Photo: Elaborately decorated interior of museum
Built in just six years by Byzantine Emperor Justinian, Istanbul's opulent Hagia Sophia has been a cathedral and a mosque, and now it's a museum.
Photo: Grand Bazaar
Grand Bazaar hundreds of shops selling everything from carpets to gold jewelry to soccer shirts.
Photo: Çemberlitas Baths
Cemberlitas Baths:  Luxuriating in the warmth of a heated stone platform, built by the famed architect Sinan in the 1500s, indulges in a time-honored Turkish tradition.
Photo: Cherry juice vendors
Cherry Juice Vendors

갑바도기아 여행 동영상
터키 여행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