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從北)’을 왜 ‘진보(進步)’라고 하나 ?
최 응 표 (뉴욕에서 /뉴데일리 고문)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悖惡(패악)은 종북을 진보로 격상시켜 줌으로서
우리나라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悖惡(패악)은 종북을 진보로 격상시켜 줌으로서
저들을 '스포일' 시킨 데 그 원인이 있다.
그 첫째 책임은 스스로를 '진보'로 위장한 종북 세력에게 있지만,
그 첫째 책임은 스스로를 '진보'로 위장한 종북 세력에게 있지만,
절반의 책임은 위장된 ‘종북’을
‘진보’라고 대변하는 영혼 없는 지식인들과
위장 세력에게 아첨 내지 영혼을 판 언론에게 있다.
일본 전 총리 나카소네의 말대로 보수의 가치가
일본 전 총리 나카소네의 말대로 보수의 가치가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 같이 중시하는 것’에 있다면,
진보의 가치는 잘못된 사회의 모순을 고치며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질적 개선과 시간적 방향성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이런 가치들이 뒤죽박죽이다.
어느 학자나 정치가도 19세기 중엽의 유명한 설교가(목사)였던
어느 학자나 정치가도 19세기 중엽의 유명한 설교가(목사)였던
헨리 워드 비쳐( Henry Ward Beecher)만큼 진보에 대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간결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린 사람은 없다.
“진보란 우리에게 씨앗으로 왔던 것이 다음 세대에 가서 꽃을 피우고,
꽃으로 왔던 것이 그 다음 세대에 가서
열매를 맺도록 열심히 살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
이것이 비쳐 목사가 내린 진보에 대한 정의다.
제임스 앨런은 개혁(진보)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한 정신적 삶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종북 좌파 어느 구석에서 진실한
제임스 앨런은 개혁(진보)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한 정신적 삶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종북 좌파 어느 구석에서 진실한
정신적 삶을 찾아볼 수 있는가.
진실한 정신적 삶의 에너지(자유민주의 힘)가
진실한 정신적 삶의 에너지(자유민주의 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