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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9일 화요일

칠레 여행기



배낭 하나 매고 떠난 칠레…

카테고리 : 배낭 여행 | 작성자 : 사막의향기

지난 3월 부터 떠나려 했으나 이런 저런 해야 할 일들 때문에 칠레 여행은 계속해 뒷전으로 밀리고 있었다.   더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지난번 인도여행 계획처럼 영영 못 떠나고말것  같아 무조건 비행기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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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달에 떠났다면 칠레의 최남단 파타고니아 지역을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겨울이 되어 대부분의 산길들은 끊어져 버렸다.  할수 없이 북쪽 사막으로 향해야 할듯.
인생을 돌아보아도 내 계획대로 된적은 별로 없는듯하다.  
그러나 가려던 길이 막히면 반드시 다른 길이 열렸다.. .

가족과 여행할때는 호텔을 예약하고 갈 곳들을 미리미리 정하고 나서 떠났다.
그러나 혼자 떠나는 요번 여행은 그냥 발 닿는대로 다녀 보고 싶었다…

칠레의 산티아고 호텔들을 알아보니 하루에 $100 ~200 정도 한다. 
혼자 가는데 비싼 호텔에 묵는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싼 호텔을 찾아보니 호스텔 이란것이 있다.  
‘아 ~ 호스텔 !   맞어, 배낭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곳 ~’  예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방하나에 침대가 4~8개 있고, 서로 모르는 여행자들끼리 방을 나눠 쓰는데, 하루에  $10~ 15 정도로 저렴했다. 
이곳에 가면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을것 같아 예약을 했다.  2주를 머물러도 호텔 하룻밤 비용밖에 들지 않았기에 정 견디기 힘들면 호텔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밤 비행기를 탈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늙어갈수록 밤 비행기는 더 힘들게 느껴진다. 
밤 12시에 애틀란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아침 9시나 되서야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칠레는 비자가 필요 없었다.  입국비를 $140 내야했지만… 
공항에서 약간의 돈을 바꾸었다.  미국 공항에서는 달러당 430페소를 준다고 해서 바꾸지 않았는데, 칠레 공항에서는 470 페소를 주었다. (나중에 시내 은행에 가니 490 페소를 준다. ) 
 

피곤해 택시를 탈까 망설였으나 기왕에 거지 배낭여행 나왔는데 좀더 수수하게 여행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벽마다 온통 낙서로 도배되어 있어 첫인상은 지저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예술성이 높은 낙서도 보인다. 

발파리소의 거리 
Santiago de Chile, Bienvenidos

  산티아고, 산크리스토발 산에 올라가는 길

칠레인들은 예술성이 뛰어난듯 하다.  낙서에서 조차도 탁월하고 독창적인 예술성이 돗보였다. 

허름한 호스텔에서 여장을 풀고 거리로 나갔다. 
‘플라자 데 아르마’ 라는 광장의 벤치에 앉아 지나치는 칠레인들을 몇시간 동안이나 구경했다.

유럽의 백인과 인디오가 섞여 묘한 느낌이 든다.  머리는 금발인데 얼굴은 동양인인 사람도 있고, 까만 머리에 서구적인 눈동자를 지닌 사람도 있다.   그래도 대체적으론 인디오의 동양적인 모습들이어서 동양외국인이 끼어들어도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얼굴은 포르투칼 사람들 처럼 어둡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밝은 표정도 아닌듯 느껴졌다. 

광장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그림그리는 사람들, 그리고 한편에서는 서양장기를 두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길거리서 아이들 사진 찍어주는 사진사 아저씨 와 그림을 전시하고 파는 미술가들이 여럿있었다. 
  나도 이 아저씨에게 초상화 한장을 부탁했다.  보통 캐리캐처 그리듯 금방 그려주는줄 알았는데 30분이 넘도록 얼마나 열심이 그리던지…  나중에는 좀이 쑤셔서 혼났다.  모델이 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가격은 4천원.  너무 정성껏 그려줘서 오천원을 드렸다. 

배가 고파 근처의 시장으로 갔다.  한국의 재래 시장처럼 해산물과 과일을 파는데 한쪽에서는 해산물로 음식을 해서 팔기도 한다.



각종 해산물을 넣어 만든 해물탕과 성게를 시큼한 레몬즙과 양파에 넣어주었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닌데, 싱싱한 재료에 비해 감칠 맛이 나오지 않아 좀 섭섭했다.  
‘아, 이렇게 싱싱한 해산물로 매운탕을 끓여 먹었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아 ~ 이렇게 싱싱한 성게로 초밥이나 알밥을 만들어 먹었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
계속 아쉬워 하면서 시큼한 성게와 해물탕을 먹었다.   그나마 성게 애피타이져는 너무 시어서 다 먹지못하고 말았다. 

해산물은 정말 싸다.  전복 1kg 에 6천원 정도.
사과,  포도도 2천원 만 주면 한 보따리씩 싸준다.

6인용 방이지만 시즌이 지나서 그런지 첫날은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비누는 물론 타월도 없다.   이런것이야 각오 했지만 물이 차거운것은 좀 심하다. 
한참 기다리니 겨우 미지근 물이 나온다.   벌벌 떨면서 대충 닦고 나와 스프링이 튀어나와 옆꾸리를 찌르는 꿀렁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첫날 부터 외로움이 밀려 온다. 
내가 미쳤지… 이런곳엘 뭐하러 돈들이고 왔는지…

칠레인들의 사랑과 자랑, 파블로 네루다

카테고리 : 배낭 여행 | 작성자 : 사막의향기

칠레를 떠나기전 칠레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나라가 존나게 길다는것 외에는. (흠… 말끝마다 폭과 퐈킹을 사용해 대는 젊은 친구들과 몇일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용하는 단어들이 거칠어 진다.)
 
파블로 네루다.

칠레는 정말 길다, 남북으로4000 km 가 넘는다고 한다.
칠레와 관련된 사람은 파블로 네루다, 피노체, 체 게바라 정도가 떠오른다. (사실 체 게바라는 칠레와 별 관계도 없는 사람이지만…) 
칠레에 와보니 칠레인들이 파블로 네루다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실감이 난다. 

칠레와 한국은 여러모로 닮은점도 많은것 같다. 
60년대 부터 90년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 좌파와 우파간 심한 갈등을 겪은것도 비슷하다.   70년 공산당 후보 파블로 네루다와 연합한 인민연대의 살바도르 아옌데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사상 처음 평화적인 투표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73년  피노체 군부의 구테타로 독재정권이 시작되었고 반대파에 대한 탄압이 17년간 자행 되었다.  
 
기억 과 인권 박물관(Museum of Memory and Human Rights)
기억과 인권 박물관에는 피노체 독재정권을 반대하다가 고문당했거나 죽임을 당한 수천명의 사진과 명단이 벽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감옥에서 쓴 편지와 그림 조각등이 전시되어 있다. 

30여대의  대형 TV 를 이용해 탱크진입과 시가지 총격전등, 구테타 당시의 상황을 그당시 뉴스와 외신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해 보여 주고 있었다.  독재와 맞써 투쟁한 젊은이들의 증언과 기록을 전시해 자유의 고귀함을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배려한 칠레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구테타가 시작되자 파브로 네루다는 군부를 강력하게 비난하다, 군정권이 들어선지 열흘만에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내 심장을 위해선 너의 가슴 하나면 족하고
너의 자유를 위해선 내 날개만 있으면 족하다.
네 영혼위에 내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내 입으로부터 하늘까지 가 닿으리라
<파블로 네루다 20가지 사랑의 시 중에서> 

네루다는 3채의 집을 소유했었다.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검은 섬) 라는 바닷가의 집, 발파리소 항구 도시의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집, 그리고 산티아고의 산 크리스토발 언덕아래 있는 라 차스코나(La Chascona).  

원래는 한곳만 가려고 했는데 이슬라 네그라 해변가에 있는 집이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변했다.
이슬라 네그라에 위치한 파블로의 집에는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아기자기한 골동품들이 집안에 꽉 차있었다.   네루다는 천재 시인일 뿐만 아니라 건축, 미술,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것 같다.

Pablo Neruda documentary "Pablo Neruda: The Poet's Calling" Pt 1

수백개의 유리제품, 전세계에서 수집한 수천개의 조개 껍질,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선물받고, 수집한 크고 작은 조각물이 각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방문했던 칠레 박물관 보다 오히려 더 흥미롭고 볼거리가 많았다.

해변가의 기괴암에 부딪쳐 흰거품을 품어내는 파도와  해변 풍경도 일품이었다.   



 이슬라 네그리 집은 배를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바다와 배를 사랑했던 네루다는 집을 배처럼 길게 지었다.  그래서  어느 방에서건 바닷가가 보인다.   첫번째 방에는 커다란 배의 마스코트(위 3번째 사진) 10여개가 장식 되어있다.    

 남자 전용 화장실 – 자그마한 화장실 벽 3면엔 여자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지금 보면  별것 아닌 사진이지만 그당시엔 상당히 야한 사진들이었다고 ^^

파블로 네루다의 여성 편력도 상당했다고 한다.  결혼을 세번 했지만 그외에도 상당수의 애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슬라 네그라 집앞에는 파블로와 아내의 무덤이 있다.

집앞에 종이 여러개 달려 있는데, 여행을 갔다 오면 이종들을 쳐서 자신이 돌아 왔음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사진: 상> 이스터 섬의 악마 조각품.   무신론자였던 파브로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간은 무서웠던지 악마 조각품의 왼쪽 눈알을 빼 버렸다고 안내인인 설명 해준다  ^^ (Just in case… 혹시라도 만일에 대비해…)

<중> 전세계에서 수천점의 조개껍질을 수집했다.

<하> 바닷가 언덕에 길게 늘어선 파블로 네루다의 집, 이슬라 네그라.

Pablo Neruda documentary "Pablo Neruda: The Poet's Calling" Pt 2
시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게 겨울이었는지 강가였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 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해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
밤의 한자락에서
뜻하지 않는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파브로 네루다의 또 다른 집은 발파리소 라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 언덕 높은 곳에 있다.
언덕의 경사가 심해 주민들을 위해 100년 도 넘은 이런 엘리베이터 4개 있었는데 지금도 작동하고 있었다.  요금은 2~3백원정도 

네루다의 집에서 내려다본 바다 풍경
발파리소 집은 매우 협소한 6층 집이었다. 
네루다의 집 3채중 가장 재미없었던듯.

한곳만 간다면 당연히 이슬라 네그라 집을 봐야 할것이고,  그다음이 산티아고에 위치한 “라 차스코나” .  마지막 발파리소 저택은 안봐도 별로 섭섭하지 않을듯 하다. 

발파리소 언덕에 위치한 네루다의 집.
—-
 가장 슬픈 시

나는 오늘 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밤은 별들이 촘촘히 수놓여 있고, 푸른 별들은 저 멀리서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라고 씁니다.

밤바람은 하늘을 맴돌며 노래합니다.

나는 오늘 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 나를 사랑했습니다.

오늘 같은 밤이면 나는 내 품에 그녀를 안고 있었습니다.
저 끝없는 하늘 아래서 수없이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가끔은 그녀를 사랑하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녀의 꼼짝 않는 눈동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녀가 없어 저으기 막막해 보이는, 그 막막한 밤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러면 이슬이 풀밭에 떨어지듯 시는 영혼 위에 내립니다.

내 사랑이 그녀를 지킬 수 없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밤은 별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건만, 그녀는 내 곁에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노래를 부릅니다. 저 멀리서.
그녀를 잃어버린 나의 영혼은 결코 채워지질 않습니다.

그녀를 내 곁으로 데려오기라도 할 듯이 내 눈길은 그녀를 찾아 헤매입니다.
내 가슴에 그녀를 찾아 헤매이건만, 그녀는 내 곁에 없습니다.

똑같은 나무들의 하얗게 밝히고 있는 똑같은 밤입니다.
우리는, 그때의 우리들은, 이미 지금의 우리가 아닙니다.

이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요.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 닿으려고 바람을 찾곤 했지요.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맑은 육체, 그녀의 끝모를 눈동자들.
다른 남자의 것입니다. 이마 다른 이의 것일 겁니다. 전에는 내 입술의 것이었던 것처럼.

이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하지만
혹시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그토록 짧고, 망각은 그토록 길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있었기에,
그녀를 잃어버린 내 영혼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것이 그녀가 내게 안겨주는 마지막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쓰는 마지막 시가 될지라도 말입니다.


파블로의 시집 중에서 “20가지 사랑의 시와 절망의 시 하나” 는 칠레인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파블로는 10살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스무살에 시집 두 권을 내면서 일약 남미 문학계의 스타로 떠 올랐다.

파블로는 정치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지만 칠레인들의 마음엔 언제나 사랑의 시인으로 남아있다.   네루다는 죽기 2년 전인 7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파블로는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다가 죽었으나, 말년에 가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모순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라차스코나 의 안내원이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파블로 네루다의 3번째 집은 산티아고, 산크리스토발 언덕아래 위치한 “라 치스코나” 



네루다의 친구 디에고 리베라가 마틸데를 두 얼굴의 여자로 그린것인데 집안에 걸려있다.

가이드에 의하면 네루다와 결혼하기 전까지 비밀리에 서로 만났어야 했기에 마틸데의 두얼굴을 그린것이라고 …  좀 짖궂은 화가 였던듯..^^
그리고 저 그림안에 숨은 그림 찾기도 있는데, 파블로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 (찾을수 있으신지?)

마틸데의 머리카락 웨이브 속에 파블로 네루다의 옆모습이 보인다. 

마틸데는 남편이 죽은후에도 망명하지 않고 이집에 남아 피노체 독재정부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용기있는 여인이었다고… 그러나 자유를 되찾은 칠레의 모습을 끝내 못본채  파블로의 무덤 옆에 뭍혔다.
Documentales sobre Chile

해발 4600m에 노상 온천이? 비키니 미녀는 덤

카테고리 : 배낭 여행 | 작성자 : 사막의향기


칠레의 북쪽 산과 사막 대부분은 인간이 건드리지 않은 처녀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막, 소금평야, 눈덮인 하얀 산들은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건조한 사막이 이처럼 숨막히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명산이라 자랑하는 후지산보다 더 아름다운 설산 수십개가 칠레 북부 사막에 줄지어 늘어서 있다.  
Chile, nature, environment and science (sequence 1)


All in Chile: whales, copper production and recognized wines (sequence 2)


Vessels design, fruit and sustainable forest products (sequence 3)


New year's eve in Valparaíso (sequence 4)

 이런 커다란 선인장은 웬만한 사막에 가도 구경하기 쉽지가 않다. 
수백년 이상 자란 자이언트 선인장을 볼 수 있었던것은 행운이었다. 


 밤새 온천 수증기가 날려 풀잎에 내려앉아 얼음 꽃을 피웠다가 낮엔 다시 녹는다.
밤엔 영하 20도 로 내려갔다가 낮에 해가 뜨면 영상 20도로 올라간다. 

동이 트자마자 햇쌀이 내리 쪼이는데 그렇게 강렬한 햇빛은 처음이다. 
동해에 뜨는 해를 보면서 따갑다고 느껴본적이 있으신지…?

해발 4600 미터에서는 동이 틈과 동시에 햇살이 얼굴을 내려 찍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희박하고 오존층이 엷기때문에 오늘 반나절 고지에서 보내고 나니 얼굴과 입술이 바싹 마르고 다 부르텄다 ( 몇일 동안의 사막 여행에도 끄떡 없었는데 단 반나절 만에 다 망가졌다. ㅠㅠ)


물은 뜨겁고 밖은 영하 15도, 물속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진퇴양난…

일단 옷을 벗었으면 다른길은 없다… 그냥 처음의 뜨거움을 참고 온천에 뛰어 들어야…

가이져 지대의 노상 온천에서 언 몸을 녹이는 온천욕은 천하 일품… (일본이나 아이스랜드의 온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미녀들 감상은 덤)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는 노상 온천의 온도는 35도 에서 50도 정도… 뜨거운 물과 찬물이 잘 섞인 곳을 찾아야한다.  잘못 들어가면 화상을 입을수도 있다.  

해발 4500미터의 가이져 열탕 지대.

조금만 빨리 걸으면 헉헉 숨이차오르고 심장이 두배는 더 빨리 뛴다.  몇주전 한국관광객 한명이 고산병으로 숨졌다고 한다.  

일몰시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상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모래사막,  그 뒤의  풍광에 깍낀 돌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설산…. 사진으론 도저히 표현이 안된다…





 바싹 마른 호수는 소금평원으로 변했다. 

소금 호수… 물위에 올라온것은 전부다 소금 덩어리들..
끝없이 펼쳐지는 소금밭 위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소금 평원… 50 센티미터 정도가 소금으로 덮혀있다. 



칠레의 긴 해변가 역시 긴 모래사장과  풍랑에 깍인 암석등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곳이 많다. 


  
칠레 중북부 뿐타 초로스 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각종 새들과 물개 돌고래가 사는 동물의 왕국 다마스 섬이 있다 

Isla Damas


Las 45 maravillas del mundo son de Chile


 새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섬은 새똥으로 하얗게 덮혀 있었다. 


훨씬 남쪽에 살고 있는 펭귄이 특이하게도 이섬에 살고 있었다.  펭귄을 자연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물개도 수백마리가 돌섬에 살고 있었다. 

칠레 배낭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을 위한 몇가지 tip:
.
* 나라가 워낙 길다보니 가고자 하는 지역에 따라 계절 선택이 중요. (남미는 북미계절의 정반대임을 참조하시고..)  남쪽 파타고니아 지역은 11월에 부터 3월 사이가 좋고, 북쪽 사막은 5월에서 10월 까지가 좋은듯… 그러나 북쪽은 일년 내내 가능.
.
* 치안은 다른 남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잘 되어 있다고 생각됨.  그래도 돈은 일주일치 혹은 필요한 정도만 가지고 있고, 크리딧 카드 혹은 은행카드로  인출해서 쓰는것이 안전.  여권과 크레딧카드, 은행카드 가 가장 중요.  이것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것이 좋은듯. (호스텔에서 묵는다면 여러사람이 방을 들락 거리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하는것이 좋을듯)   개인함이 있는곳도 있는데 작은 자물쇠 가지고 다니면 편리.
돈은 칠레 공항에서 100불 정도만 바꾸고 시내로 들어와 은행에 가서 바꾸면 환율이 훨씬더 좋다. 
.
* 숙박에 대한 자료는  www.hostels.com  혹은  www.hostelworld.com 등을 참조하시길. 한국어 사이트는 “배낭여행” 으로 검색 하시면 됩니다.
호스텔 숙박시설은 보통 한방에 8인용에서 부터 6인용, 4인용, 2인용, 독방도 있으나 내려 갈수록 가격은 올라감.   여성 전용 방도 있으나 1~2달러 정도 더 비싸게 받음.   방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따로 있는것은 약간 더 ($2 정도) 비싼데 그래서 그런지 요번엔 거의 독방을 쓰다 시피 했음.  가격과 시설은 지역과 호스텔에 따라 천차 만별임.   인터넷에서 호스텔에 대한 이용자들의 평가를 어느정도 조사한후 선택 하시길…
 .
* 배낭여행하는 분들에게 배운것인데 스마트폰에 지도, 스페니쉬 사전, 나침판, 환율 application 을 다운 받아 가시면 매우 편리.  
.
* 택시를 탈 경우엔 미터기가 있는 택시인지 화인하고, 타기전에 목적지를 말하고 얼마인지 확인하시길.  얼마인지 알아 듣기 힘들면 종이에 쓰라고 하면 됨.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것은 버스를 타는것이 편리함.  그러나 한두명 동료가 있다면 택시를 타도 가격은 비슷.  택시에 따라 12,000 칠레페소 (24달라) 부터 200 달라 까지 달라고 하는 바가지 택시도 있으니 꼭 확인 하시길.  
미터기를 꺽고 달리는 택시라 할지라도 어리버리한 외국인이라 생각하면 빙빙 돌아 갈수 있기 때문에 가격은 반드시 물어보고 타는게 안심.  공항에서 시내까지 2만 페소 이하면 괜찬은 가격이라 생각됨 (2012년  5월 기준)
 .
* 호스텔 안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전반적으로 영어가 안통하는 곳이 많음.  기본적인 스페시쉬는 꼭 숙지하고 떠나시길.   완전히 말할 필요는 없음.  단어만 알아도 다 통함.
예를 들어 화장실이 어디냐 라고 물을 때 “돈데 에스따 엘 반요?” 할 수도 있지만 “반요?” 이렇게 만 말해도 다 통하니까… 
.
* 칠레 내에서 비행기를 탈 경우엔 반드시 영어 웹사이트가 아닌  ”스페시쉬 웹사이트”에서 예약 할것.  영어 비행기 예약 웹사이트는 가격이 2배 까지 더 비싸기도 함. (이건 정말 완전 외국인에 대한 차별임)   스페니쉬가 가능한 호스텔 직원에게 부탁해서 예약하시길.
.
* 산티아고는 서울처럼 지하철이 매우 잘 되어 있고 사용하기도 편리함.  (산티아고에 일주 이상 머문다면 지하철 카드 구입해 사용하면 매번 표사기위해 줄서지 않아도 됨)
고속버스 시설도 매우 훌륭함.  Tur Bus  와 Pullman 이란 회사가 가장 큰듯.  좌석도 비행기처럼 1등석, 프리미움, 일반석 이있는데 장거리 여행시는 가능하면 프리미움 이상을 구입하시길.  1등석은 완전히 누울수 있고, 특석도 거의 누울수 있을 정도로 넓다. 

산페드로 아타카마에서 산티아고 까지 내려오는데 거의 2,000Km 정도 되는듯.  대여섯번 휴식을 취하긴 하지만 거의 논스톱으로 달리는데 23시간 걸렸다. 가격은 날자에 따라 다르지만  프리미엄이 40~50달러 정도, 일반석은 20~30달러, 1등석은 60~70달러.
프리미엄 이상 좌석은 빨리 판매 되기 때문에 미리 미리 예약하는것이 좋다. (최소한 1주전에)

고속버스 중에는 이층 버스도 많이 있는데,  이층 맨 앞좌석을 예약해 내려오는 내내 계속해 변해가는 경치를 보는것도 재미있음 (앞에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파노라마로 칠레를 구경할 수 있다. )  좌석이 호스텔 침대보다 더 편해서 장시간 버스여행이었지만 오랜만에 푹 쉴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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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에서 먹을경우 보통 팁을 10% 정도 주는데 몇번인가는 계산서에 팁이 아예 포함되어 나왔다.  팁이 포함 되었는지 확인하시길.
.
* 칠레 재래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물건 살 경우 한국 재래시장 처럼 가격을 깍을 수 있음.   나는 비싼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고 천원, 이천원 짜리 작은 기념품 밖에 사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달라는 대로 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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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밭에 앉아 자연의 침묵을 들어 보려 했으나 햇빛이 너무 강렬해 집중이 잘 안되었다.

혼자 여행을 할 경우엔 정말 미칠 정도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과  적막함 뿐이라고 한다.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신을 찾고자 하는 고대인들은 사막으로 나가 그 거처를 삼았는가 보다…

아래는 사막 에 세워진 일명 “사막의 손” 조각.  
92년 마리오 라는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차를 타고 달리다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나타난다.
마치 부처님의 손 처럼…
                                                                                                                 


콜라보다 와인이 더 싼나라, 칠레


요번에 칠레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여행 목적으로 온것이 아니라 직장을 구하기 위해 온 젊은이를 2명이나 만났다.
 ’유럽에서 남미 칠레로 직장을 구하러 온다?’   
조금은 의하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곧 이해가 된다. 

요즘 스페인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25세 미만의 젊은이들 중에서 60% 이상이 직장을 못 구했다고 한다.  뉴스로 듣는것보다 훨씬더 심각한 듯 하다.    그런데 칠레는 구리값이 오르면서 칠레의 구리광산엔 전문 기술자가 오히려 모자란다고.

대학에서 폭팔물을 전공 했다는 한 스페인 친구는 칠레에 온지 3일만에 일자리를 구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월급은 어느정도 되냐고 물었더니 $3,000 정도 된다고 답한다. 그정도면 칠레에서는 상당히 높은 봉급에 속한다고 말해준다. 

전세계 구리의 1/3이 칠레에서 생산되고 있다.   구리값이 폭등하면서 칠레의 경제 역시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구리 뿐만 아니라 배터리의 주요 재료인 리티윰 역시 소금사막에 무진장 저장 되어있다. 

칠레의 주요 수출품을 살펴보면 구리등 광산물이 반이상을 차지하지만, 해산물, 농산물, 그리고 목재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칠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역시 와인이 아닐런지…

일주일 정도 칠레의 와이너리만 돌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운두라가(Undurraga) 라는 와이너리를 가보고나서 그만 두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나 칠레의 와이너리나 별로 다른게 없어 보였기 때문에…

130년 전통의 칠레 와이너리 “운두라가” –  역사를 전통을 보여주려는듯 와이너리 들어가는 입구에 이곳에서 사용했던 오래된 마차가 전시되어 있다. 

포도를 쏟아놓으면 불량품을 걸러내는 일을 맡은 아가씨들.  그런데  일은 하지않고 잡담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포도를 으깨 즙이 나오면 이런 커다란 통에 넣고 온도를 일정하게 맞춘후 발효시킨다.

 발효된 와인은 주로 프랑스산 떡갈나무 통에서 숙성시킨다  나무통은 보통 5번 정도 재 사용 한다.   가장 좋은 와인은 와인통을 첫번째 사용할때가 아닌 두번째 라고 한다.   첫번째 숙성시엔 나무 향이 술에 너무 진하기 배어들기 때문에 두번째 숙성시키는 나무통을 가장 선호 한다고…

10 여년전 9도 가 넘는 칠레 대지진때 와이너리도 상당부분 무너져 내렸고, 와인 통 역시 다 깨져서 2백만 리터 정도가 손실 되었다고 한다… (애고 아까운거…)

 와인 보물 창고.  지난 100 여년 동안 생산된 와인중 상품만을 모아놓은 저장 창고이다. 

 
와인 투어가 끝나면 시음 시간이 있다.   와이너리 로고가 새겨진 포도잔도 선물로 준다.    칠레 여행시 이 포도잔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다른 포도주를 맛 보았다.

상급 카버넷 소비뇽 한병과 달작지근한 Late Harvest 디저트 와인을 구입해 호스텔로 돌아와 그곳의 젊은이들과 나눠 마셨다.  

칠레의 와인은 정말 싸다.  마켓에 가면 $2~3 짜리 와인이 선반 가득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곳에서는 와인 바로 옆에 2 리터 짜리 콜라가 있는데 보니 $4 정도 한다. 콜라보다 와인이 더 싼 나라가 바로 칠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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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천원 짜리 와인이라고 해서 형편 없는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10~15 정도 하는 와인 수준정도 되는듯 하다.   칠레 여행 도중 매일 다른 와인을 한병씩 맛 보았다.  $3 짜리 싸구려 부터 $30 짜리 고급와인까지… (여기서는 $30 이면 상당한 고급와인에 속했다. 물론 여기도 $100 이상 하는 와인도 있지만 거지여행 중인지라 절제 하기로 했다.)

2주동안 이것 저것 맛본 결론은 가격대비 와인 수준이 상당히 괜찬다는것.  그러나 진한 감동을 주는 와인은 못 만나 보았다는것… 그래서 약간은 서운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은 몬테스 알파 인듯 하다. 
미국에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와인인데 한국에 가보니 넘버 원 와인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몬테스 와이너리와 미국에서 잘 알려진 “카사 라포스토예”  둘다  콜차구아 (Colchagua Valley)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콜차구아에서 품질좋은 캐버네 소비뇽 같은 진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칠레에서 처음 맛본 와인도 있었는데 바로 “까미네르” 라는 종류의 와인.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까미네르 의 97%가 칠레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맛은 캐버네 소비뇽 보다는 소프트 하고  멜로 와 피노누와 중간 정도 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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