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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8일 화요일

[김대중 칼럼] 이 광풍의 끝은 어디인가?

입력 2020.07.28 03:20 | 수정 2020.07.28 14:45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바람은 어디로 불 것인가
기고만장한 집권 세력 강타하고 레임덕 겹치면 야권의 도전은 어쩌면 앞당겨질 수도

김대중 칼럼니스트
김대중 칼럼니스트
마침내 '광풍(狂風)'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것도 현직 검사장 입에서 나왔다. 채널A 기자의 강요 미수 의혹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동훈 검사장은 2020년 7월을 광풍의 시기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권력이 반대하는 수사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기획된 공작(工作)의 피해자'라고 했다.

지금 이 나라엔 코로나19의 병풍(病風)과 정치 광풍이 함께 불고 있다. 정치 광풍은 4·15 총선을 계기로 극대화하기 시작했다. 선거에서 이기더니 집권 세력은 기고만장해졌다. 권력 측에 불리한 모든 정치적, 형사적 쟁점을 일거에 묵살하거나 묻어버리려 하고 있다. '미친 바람'은 국민의 살림살이에도 불었다. 국민 경제의 미래는 어두워졌고 실물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시장의 '자살'과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등 권력자들의 성적(性的) 일탈이 광풍 위에 폭풍을 몰고 왔다. 박원순씨의 이른바 '자살'은 누군가의, 어딘가의 방조 혹은 방호로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시민 천만 명의 시장인 고위 공직자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으로 '자살'했는지 현장이 밝혀지지 않은 나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무엇이 두려워 이런 것을 감추려 하는가? 이 문제는 집권 세력의 차기 대권 구도와 맞물려 또 다른 추행을 낳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이틀 만에 거짓말처럼 그 말을 뒤집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다. 이 지사는 친문 세력에 '폭행'당한 것이다.

집값 파동은 집권 세력의 기고만장 중 최고 작품(?)이다. 이념 지향적인 아마추어들이 집값을 주무르다가 동티가 난 것이다. 제 집 마련 꿈을 접어야 하는 수많은 젊은 세대가 한탄하고 있다. 급기야 '나라가 네 거냐'는 조롱 섞인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집권당은 그린벨트 해제다, 군용지 징발이다, 호들갑을 떨더니 급기야 이미 위헌 판정이 난 세종시 '천도'를 들고나왔다.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비난을 호도하는 연막작전으로, 왝 더 독(꼬리가 개를 흔드는)의 전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감이다. 그의 존재감은 지난 몇 개월의 광풍 속에서 현저히 희미해졌다. 일부 비판론자는 문 대통령이 입이 있는가 없는가 묻더니 이제는 대통령이 있는지 없는지 묻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그의 국정(國政) 장악력은 부정이 긍정을 앞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국정이라는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있기는 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과거 야당의 대표 시절, 후보 시절 그리고 취임 직후 했던 상식적이고 긍정적이고 법률가다운 발언은 이제 거의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비판론자들은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그는 그런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할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런 그의 언급이나 약속이 그의 부하들, 그의 조직 세력에 의해 하나둘씩 반대로 뒤집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는 좌파의 운전석에서 밀려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의 뒤에는 좌파 정치를 이끄는 '라운드 테이블'이 있고 이들이 광풍을 이끌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신임 통일부 장관이 이 나라의 국부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백선엽 장군의 영결식을 대통령이 외면하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 발언을 뒤집는 등의 일은 어쩌면 이미 그의 의도와는 별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 일련의 광풍이 휘몰아가는 방향을 보면 결국 문 대통령의 레임덕과 연결돼 있다. 좌파 세력은 레임덕에 들어선 문 대통령을 제치고 자기들의 장기 또는 영구 집권을 위한 집단적 '세상 바꾸기' 작전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이제 그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걸리적거리는 것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정치 일정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광풍이 어느
 쪽으로 불지가 관건이다. 이 두 선거에는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의미까지 얹혀 있다. 지금의 광풍이 역풍을 일으켜 기고만장했던 집권 세력을 강타하고 레임덕이라는 상수(常數)가 겹치면 야권의 도전은 어쩌면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새로운 야당이 누구를 내세워 어떤 과정을 거쳐 서울과 부산의 선거에 임하는가에 따라 광풍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2020년 7월 2일 목요일

[김용삼 칼럼] 역사 연구를 국가보안법으로 재갈 물리겠다고 나선 정치인과 그 부역자들

-송영길 의원, 조선시대 판 분서갱유, 사문난적(斯文亂賊)의 완벽한 부활을 선포하다

#1. 역사 연구를 국가보안법으로 통제하겠다고?

지난 2일,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이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의 대표 저자 이영훈 교수를 비롯한 필진과, 수업 시간에 ‘위안부’ 발언을 한 연세대 류석춘 교수를 고소·고발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유는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일본제국주의 전쟁범죄로 평생 고통 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노동의 대가조차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학자들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양심은커녕 피로써 되찾은 대한민국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는 행동에 대한 사법기관의 엄정한 판단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양태정 변호사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을 출간한 이영훈 등은 “건전한 역사관을 뒤흔들고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을 더할 수 없이 아프게 하고 있다”면서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비롯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진들과 류석춘 교수를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을 밝히면 『반일종족주의』와 그 후속작인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은 송영길 의원이나 양태정 변호사가 말하는 그런 주장이 전혀 사실적 근거가 없음을 사료를 통해 밝혀낸 학술연구서다. 그러한 주장은 미신이나 다름없는 반일종족주의의 망상에서 기인한 것이란 점을 밝힌 것이다. 자신들의 주장이 허구라고 폭로한 이 책이 그리도 무서웠던 것일까? 총선이 끝나자마자 ‘역사왜곡 금지법’ 제정을 선포하더니 이번에는 국가보안법까지 들먹이며 학문 활동에 재갈을 물리겠단다.

역사 연구를 국가보안법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앞장선 원조는 황태연 동국대 교수다. 그는 지난해 10월 발매한 『일제종족주의』라는 책에서 “일제 식민통치 옹호행위 및 일제의 역사부정에 대한 내응 행위 처벌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법의 제정이 안 될 경우 국가보안법을 동원해서라도 일본의 주장에 부역하는 '부왜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황태연 외 지음, 『일제종족주의』, 넥센미디어, 2019, 92~102쪽).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억악하는 악법이니 폐지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외쳐댔던 좌파 인사들이 일제히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면서, 그 법에 의해 역사 연구자들을 처벌하라고 쌍나팔을 불고 있으니 상전벽해의 세상이 실감난다. 아이구 무서워라. 인권과 민주를 밥먹듯 외치는 사람들이 알고 보니 팟쇼 전체주의자였군 그래.

2020년 7월 2일, 드디어 이 땅에 조선시대 판 분서갱유이자, 사문난적(斯文亂賊)의 완벽한 부활이 선포되었다. 대체 이 분들 뭘 어쩌자고 이러는 것일까? 그들의 역사 부정죄 처벌의 논리 구조는 무엇일까?

지난 2일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이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저자들을 고소고발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유는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일본제국주의 전쟁범죄로 평생 고통 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노동의 대가조차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은 송 위원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란 점을 사료를 통해 낱낱이 밝힌 학술서다. 조선시대판 분서갱유, 사문난적의 시대가 도래했다(사진 연합뉴스).
지난 2일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이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저자들을 고소고발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유는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일본제국주의 전쟁범죄로 평생 고통 받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노동의 대가조차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은 송 위원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란 점을 사료를 통해 낱낱이 밝힌 학술서다. 조선시대판 분서갱유, 사문난적의 시대가 도래했다(사진 연합뉴스).
 

#2. 쇄국·근대화의 가치관 충돌

서세동점의 질풍노도가 몰려온 이래 이 땅에는 두 가지 사고체계가 똬리를 틀고 대립 격돌했다. 하나는 주자성리학의 고수를 통한 기존 체제(조선왕조·대한제국)의 유지, 즉 폐쇄 쇄국의 길이있다. 다른 하나는 개혁 개방을 통한 개인의 자유 확보, 즉 근대화의 길이었다. 이 두 상이한 가치관은 1876년 일본에 의한 개항 이래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인들을 두 패로 갈라 죽기 아니면 살기,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치 식의 충돌 대립을 야기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좌익과 우익, 자유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진보와 보수, 자유통상 대 자력갱생, 개인의 자유와 파쇼적 전체주의, 해양문명과 대륙문명,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친미·친일과 친중·친북이라는 대립구도는 번지르르한 레토릭일 뿐, 그 핵심 본질은 쇄국과 근대화의 가치관 충돌이다.

송영길 의원 및 위안부, 징용 피해자들에게 고소당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8명의 저자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송영길 의원 및 위안부, 징용 피해자들에게 고소당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8명의 저자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3. 그들은 무엇을 수호하려 발버둥 쳤나?

폐쇄·고립·쇄국을 통한 봉건 질서의 존속을 추구한 주자성리학자들은 조선의 양반 관료요, 곧 양반 관료가 될 선비·유생 세력이었다. 그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보다 잔인하고 가혹한 반상(班常)의 신분구조를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고수하려고 발버둥 쳤다.

특정 가문의 세도정치를 통한 권력의 대물림, 교육의 세습을 통해 대토지 소유, 수백~수천 명 노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대대손손 막강한 부를 향유해온 집단이 주자성리학자들이었다. 세종의 여덟 째 아들 영응대군 집에는 노비 1만 명, 광해군의 형 임해군은 서울에 300명, 시골에 수천 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문소영, 『못난 조선』, 나남, 2018, 152쪽).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은 집안에 노비가 367명이었다. 이황은 노비로부터 받아야 할 공물이 늦으면 “통렬히 징계하여 하나하나 받으라”고 명령했다. 그의 소유 토지는 경상도에 355필지 2,915두락, 노비들이 운영하는 전답 116두락이었다. 이황이 소유한 땅 면적을 평수로 환산하면 58만 3,000평이었다(박종인, 『대한민국 징비록』, 와이즈맵, 2019, 246~247쪽).

겉으로는 안빈낙도와 청빈을 인생 최고의 가치관으로 내세웠던 그들이었기에 그 행태가 더더욱 가증스럽다.

퇴계 이황이 벼슬을 사직하고 낙향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모습. 안빈낙도를 외쳤던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은 집안에 노비가 367명이었고, 소유한 땅 면적은 58만 3,000평의 대지주였다(사진 연합뉴스).
퇴계 이황이 벼슬을 사직하고 낙향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모습. 안빈낙도를 외쳤던 조선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은 집안에 노비가 367명이었고, 소유한 땅 면적은 58만 3,000평의 대지주였다(사진 연합뉴스).
 

#4. 주자성리학자들의 유토피아, 조선

그들 세계에선 조선왕조가 곧 지상천국, 유토피아였다. 동족을 노비로 사고 파는 악질적 노예제 국가라는 비난이 제기되건 말건, 가렴주구로 백성들이 죽어나든 말든 그것은 양반들이 알 바 아니었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의 향유와 대물림을 위해선 조선왕조가 절대 망해선 안 된다. 주자성리학자들은 죽기 살기로 근대화에 저항했고, 개혁 개방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상것들, 천한 것들이 근대화 물을 먹으면 저항 세력이 된다. 개인의 자유를 요구한다든가, 나라의 주인 행세 하려 드는 의회를 설립한다든가, 양반과 말을 섞는 따위의 행위는 대역죄에 해당하므로 이들 편드는 개화 세력은 사문난적(斯文亂賊)로 몰아 삼족을 멸했다.

그들은 의병까지 일으켜 조선왕조, 대한제국의 안녕을 수호하고 나섰다. 그런데, 의병투쟁이라는 수단까지 동원하여 그들이 수호하려 한 실체는 이 강토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이 아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보호해주는 보수 반동의 왕조체제, 양반-상놈의 신분제도, 착취구조를 합리화 시켜주는 주자성리학적 가치관이었다.

#5. ‘소중화(小中華)’라는 정신질환

그들에게 주자성리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가치였다. 자신들이 이상향으로 섬겨왔던 대국 명나라가 상스러운 오랑캐 야만의 청나라에 멸망한 후 그들은 중화의 법통을 조선이 이어받아 소중화(小中華)가 되었다고 자위했다. 급기야 소중화의 레토릭은 점점 더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진화한다.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중독된 국사학자들은 고종이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행위, 청나라 연호를 폐기하고, 광무(光武)라는 독자 연호 사용을 선포한 것을 명실상부한 독립국으로서의 출발이라고 해석한다. 이태진 같은 학자는 대한제국이 18세기 영조·정조 이래의 민국 정치이념을 계승해 일본의 천황대권을 규정한 메이지헌법과 제국의회에 비견되는 대한국(大韓國) 국제(國制) 및 중추원을 기반으로 수립된 근대 국민국가라고 주장했다(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4, 74~81쪽).

#6.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까닭은?

이것은 순전히 이태진 교수의 개인 의견이니 착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은 그런 주장과는 정반대다.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 스페에르의 비밀 보고에 의하면 스페에르는 “세계 어느 나라도 고종을 황제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극력 반대했다.

하지만 고종은 “대원군과 대비의 음모 때문에 황제 즉위식이 부득이하다. 영국에 체류하고 있는 대원군의 손자(이준용)를 왕으로 옹립시켜 자신을 퇴위시키려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황제 즉위를 강행했다(1897년 10월 28일 스페에르 대리공사가 본국 외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

조선 국왕과 지배 엘리트는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순간까지도 중화(明)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은 꿈도 꾸지 못했다. 칭제건원의 기본 논리는 “조선은 한·당·송·명의 중화문물을 계승한 적자다. 중화의 법통을 이어받아 ‘기자(箕子)의 땅’ 조선에 진정한 중화가 완성되었으니 우리도 황제의 나라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착각과 환상에 빠졌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것은 ‘조선중화주의’의 완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고식이었다. 이제 조선이 주자성리학의 본향이요, 지구상 가장 선진문명 집단이 되었으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번창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오른쪽 세 번째). 이제 학문 연구도 법으로 재단당하는 파쇼 전체주의 시대가 이 땅에 재현되고 있다.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오른쪽 세 번째). 이제 학문 연구도 법으로 재단당하는 파쇼 전체주의 시대가 이 땅에 재현되고 있다.
 

#7. 무엇을 위한 의병투쟁이었나?

지고지순의 유토피아 조선을 개혁개방, 근대화의 이름으로 짓밟은 악마는 금수(禽獸)나 다름없는 서양 야만인과, 그들의 앞잡이인 ‘왜놈’이었다. 특히 문명국가 축에 끼지도 못했던 왜놈 쪽발이의 조선 침략은 주자성리학자들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폭거였다. 그들은 의병을 일으켜 유토피아의 숨통을 끊으려 하는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했다. 그러한 항거의 중심에는 대부분 주자성리학자들이 있었다.

조선주차군사령부가 간행한 『조선폭도 토벌지』에 따르면 1910년 8월 말 한국병합 때까지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횟수는 2,819회, 전투에 참여한 의병은 4만 1,603명이었다. 1906년부터 1911년까지 6년간 일본군은 조선 의병 1만 7,779명을 사살했다.

일본군의 가혹한 토벌로 한반도 내에서 의병활동이 불가능하자 그들은 강 건너 러시아로, 간도로 이주하여 투쟁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해외까지 나가 고군분투한 의병들의 투쟁 목표와 활동지침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의 독립?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물론 그런 목표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자성리학자 출신 의병장들의 목표는 분명하고 뚜렷했다. 주자성리학의 법도가 왕성하게 작동되는 유토피아의 회복! 이것을 위해 그들은 투쟁·폭력·암살·파괴의 길로 매진했다.

#8. 신채호의 ‘한놈 정신’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해석하는 인물이 신채호다. 오늘날 신채호의 화끈하고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민족주의적 투쟁사관은 대한민국 전 영역, 특히 문화적·정신적·사상적 영역마저 완벽하게 석권했다.

신채호가 자신의 투쟁사관을 표출하기 위해 1916년 상하이에서 쓴 단편소설이 『꿈하늘』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한놈’이다. 신채호의 ‘한놈’은 그가 꿈꾸어 왔던 독립운동가의 표상이다. 어느 날 한놈은 천관(天官)으로부터 “인간에게는 싸움뿐이니라.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나니 신의 명령이 이러하니라”라는 계시를 받는다.

신채호의 ‘한놈’은 죽기 살기로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여 무한 투쟁을 반복하는 존재다. 투쟁 과정에서 동지가 배반하면 동지를 죽이고, 부모가 나를 배반하면 부모도 서슴없이 죽인다. 왼팔이 배반하면 왼팔을 베어버리고, 오른팔이 배반하면 오른팔마저 베어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몸뚱아리 데굴데굴 굴려가며 일제와 투쟁하는 화끈하고 강렬한 투쟁정신과 민족감정….

이러한 ‘한놈’ 정신의 완벽한 표출이 김원봉의 의열단이요,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가랑잎 타고 바다를 건너시며, 모래알로 쌀밥을 지어 먹으며 왜놈을 물리친” 백두혈통 김일성 장군 신화가 창조되었다.

#9. ‘이씨 조선’에서 ‘김씨 조선’으로 부활한 북한

오늘날 북한은 완벽한 조선왕조의 부활이다. 왕조 창업자가 이씨에서 김씨로 치환되었을 뿐, 황홀한 세습 시스템과 주자성리학을 대체한 영생불멸의 주체사상과 수령론으로 무장한 파쇼 전체주의의 극치를 세계만방에 떨치고 있다.

그들 사상적 뿌리는 폐쇄 쇄국이요, 공산당이 양반을 대체한 계급 독재다. 봉건왕조 체제 유지를 위해 인민들의 이동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지구상 최악의 실패국가다. 그런 세계를 유토피아로 동경하는 주체교 신자들이 남한 땅에도 우글거린다. 신채호의 ‘한놈’ 정신으로 똘똘 뭉친 21세기판 주자성리학자들이다.

#10.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는 개혁·개방 세력

대한민국 건국 세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주자성리학이 판을 치던 구한말에 개화·개혁·개방의 봉화를 올린 세력이다. 대부분 의사와 역관 출신의 중인으로 구성된 개화세력은 명분이 아닌 실사구시, 사농공상(士農工商)가 아닌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신분구조, 강고한 신분제도 타파, 여성의 인권 보장, 신분세습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예우 받는 사회, 만민평등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스스로의 힘으로 개혁·개방이 불가능하자 그들은 외부의 힘을 빌려 이 땅을 개혁하려 했다. 개혁의 실패는 곧 조선의 폐망이었고, 나라가 망한 후엔 현실적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이 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 신채호의 ‘한놈’ 식 투쟁이 아닌,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고 세계 공론 에 호소하는 외교독립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했을 때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분리시킨 다음,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 건국은 ‘한놈’ 식 항일무장 결사투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유엔이라는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이란 사실조차 저들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애오라지 만주벌판에서 항일무장투쟁의 결과 일제를 꿇리고 조국광복을 이루었다는 만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에 무지한 채 ‘한놈’ 정신에 도취되어 애오라지 투쟁만을 부르짖는 국수주의 세력들이 반일·반미 감정을 부추기며 쇄국·폐쇄·자력갱생·우리 식대로·주체의 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이것은 비단 문재인 정부 관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의 국뽕에 취한 국수주의적 정치인, 언론인, 학자, 교수, 법조인, 필부필부들도 동일한 사상의 궤적을 탐미하고 있다.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함정에 빠져 집단 세뇌된 정치인과 국민들에게 닥칠 미래는 중세적 암흑뿐이다. 드디어 대한민국도 ‘조선’으로의 거대한 퇴보를 시작했다. 근대에서 중세 봉건시대로 격렬하게 후진하는 이 나라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국의 뜻 있는 인사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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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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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靑 "사실 왜곡" 주장에 "진실 적은 것" 반박...靑 별도 추가 입장 표명은 없어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연합뉴스)
‘볼턴 회고록’ 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서 이뤄졌는지를 곳곳에서 증언하고 있다. 실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은 파탄을 맞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회고록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 없이 기존에 밝힌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비방만 내놨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밝혀온 대북정책 내용들과 볼턴 회고록에 담긴 뒷배경은 상당부분 다르다. 청와대는 볼턴 회고록이 공개되고 사흘가량 뒤인 지난 23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한다. 정 실장은 “(회고록은)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협의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는 등으로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에 나타난 문 대통령의 ‘비핵화 망상’은 여러 군데다. 청와대는 회고에 나타난 여러 항목들에 대한 ‘반박’을 일부 내놓지만, 볼턴 전 보좌관은 ‘메모광’으로 알려진 만큼 그의 주장은 신뢰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을 나서 북한 김정은을 만나러 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경호원들에 제지당해 멈춰있는 문재인 대통령(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을 나서 북한 김정은을 만나러 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경호원들에 제지당해 멈춰있는 문재인 대통령(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먼저 2018년 판문점 미북 회동 당시다. 볼턴 회고록에는 “문 대통령이 4월 판문점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해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문 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직후엔 자신이 참여하는 3자 회담으로 바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했다고도 볼턴은 전한다. 볼턴은, 그런식으로 문재인은 포토쇼에 끼기 위해 애썼고, 2019년 6월 판문점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회동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서 “나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받았다”고 거짓말한다. 판문점 미북 회동 직후와 볼턴 회고록 공개 이후 위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며 “문 대통령이 포토쇼에 목숨을 걸었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미북 정상회담의 제안 문제다. 볼턴 전 보좌관은 “미북회담은 한국 정부의 창조물”이라며 “트럼프를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의 초청은 정 실장이 제안했다”고 적었다. 우리 정부가 사실과 다른 말로 미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미북회담 담당이던 볼턴은 “나중에 정의용은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초청하라고 처음부터 제안한 사람이 자기라고 거의 인정했다!”라고까지 지적한다. 그런데 정 실장은 2018년 3월 대북 특사로 평양에 다녀온 뒤 “북측은 비핵화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를 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볼턴은 “문 대통령이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합의가 우선’이라며 여러 번 거절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정 실장은 당시 발표문에서 “한미 정상은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AFP=연합뉴스
볼턴 전 보좌관./AFP=연합뉴스


청와대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직전 2018년 5월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한 볼턴 회고록 부분에도 “두 정상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했을 때 밝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밀도 있게 협의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한미 양국이 대북지원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볼턴 회고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자 문 대통령이 낙관적으로 대답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담이 잠정 취소됐던 정황을 문 대통령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이 당시에도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손을 맞잡으며 ‘평화’를 말하는 사진을 뿌리며 관련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릴 뿐이었다.

정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사실 왜곡” 주장에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유권자가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시점에 이런 일들에 관해 진실을 쓰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 반박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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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게이트 ③] “북한,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문재인 외면 시작...판문점 회동은 文이 끼어들겠다며 고집”

볼턴 회고록을 통해본 판문점회동 전말]
볼턴 “문재인은 평양이 냉정하게 구는 것이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매우 걱정”
“문재인, 국내 문제 생길 때마다 일본을 이슈로 만들려...”
“트럼프, 북 미사일 발사한 5월 9일 이후 비밀리에 대북제재 강화”
“트럼프, 한국에 매년 방위비 50억 달러 요구...미군 철수로 위협해야 한다 말해”

2019년 6월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2019년 6월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북한은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뒤로 남한과 연락을 끊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냉담하게 구는 것이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또다시 세기의 극적인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기획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회담장을 걸어 나갔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의 제안을 거절했다. 트럼프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해야 하며 사전에 이 같은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6월 판문점에서의 ‘깜짝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곁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 끼어들기로 결심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내세우며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이상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밝힌 판문점 회동과 관련한 비화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문재인은 강경화 외무장관, 정의용과 함께 4월 11일 워싱턴에 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며 “우리는 한국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재인은 평양이 핵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구는 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고 밝혔다.

볼턴은 “문재인은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는 판문점 회동 또는 미 해군 함정에서의 만남 들을 제안하면서 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형태에 관해 극적인 접근을 촉구했다”고 했다. 볼턴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보다는 형태에 대해 걱정했으며 문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문재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누구도 두 번 회담장을 걸어 나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은 서울에 돌아갔을 때 북한에 6월 12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번에도 “날짜는 상관없지만 사전에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계속 3차 미북정상회담을 고집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볼턴이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볼턴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인 2019년 5월 4일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주말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중요성을 희석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북한에 직접 식량을 원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전화통화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눈치챈다. 실제로 문재인은 “하노이 이후 북한과 실제적인 협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트럼프는 비공식적으로 대북제재를 비밀리에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G20 회의에서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날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트럼프의 보좌진들은 모두 깜짝 놀랐으며 특히 볼턴은 “구역질이 났다.”

볼턴은 “폼페이오는 앞으로 있을 김정은-트럼프 회담에 끼어들려는 문재인의 노력을 관리하고 있었다”며 “트럼프는 문재인이 곁에 없기를 바랐다(Trump wanted Moon nowhere around). 그러나 문재인은 3자 회담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문재인과의 논쟁이 모든 일을 망쳐버리기를 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며 “왜냐하면 김정은도 문재인이 곁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판문점 회동 직전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자신이 판문점에 따라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볼턴은 “문재인은 김정은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자신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과 인사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인도해준 다음 떠나겠다고 말했다”며 “폼페이오가 끼어들어 전날 밤 북한이 문재인의 의견을 거절했다고 말했고 트럼프도 문재인이 함께 가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도 문재인은 미국 대통령들이 DMZ를 방문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고 회고했다.

또한 트럼프는 문재인에게 DMZ로 떠나는 자신을 서울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 미군들과 만남이 예정된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문재인은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문재인은 트럼프를 OP올렛(Ouellette,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DMZ 관측 지점)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으며,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는 문재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도 좋으며 함께 OP올렛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볼턴은 “트럼프는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매우 큰 사인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하는지 몰랐다. 문재인은 한국이 김정은과 핫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 본부 안에 있으며 김정은은 결코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웠던 남북관계 개선과 핫라인 개통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2020년 대선 운동 기간 동안 북한이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완전히 능력 있는 핵무기 국가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며 연달아 4개의 행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멈추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래 미국 행정부는 필연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북한정권과 마주해야만 한다”며 “우리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 북한은 이동 가능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위협은 더욱 증가됐다. 우리는 북핵이 임박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기를 오직 바랄 뿐”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다음은 볼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중 판문점 회동 관련 부분(Chapter 11) 발췌 요약이다.

“한국(그리고 일본과 유럽 동맹국들)의 관계를 몹시 괴롭혔던 한 가지 이슈는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가였다. 사실상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나라들이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금액과 분담금 산정 방식은 다양했으며 실제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실제적 합의가 없었다. 국방부의 창의적인 회계기술 아래서 거의 어떤 비용도 높거나 낮거나 간에 정당화됐다. 다른 군사비용 문제들처럼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들이 충분히 돈을 내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셀 수 없이 많은 토론 뒤에도 트럼프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이유는 한국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집단 방위” 또는 “상호 방위” 또는 복잡한 국제적 형태로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독일을 방어하고, 일본을 방어하고, 에스토니아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내야만 했다. 훌륭한 사업가가 그렇듯 미국은 특별한 이익이 없는 이 모든 국가들을 방어해주는 대가로 수익을 얻어야만 했다(트럼프는 종종 “왜 우리가 이 모든 나라에 주둔하는 것이지?”라고 묻곤 했다). 최소한 우리는 더 나은 사업 전략을 발휘해야 했다. 이는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재개될 때마다 시작됐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주둔국이 미군 주둔 “비용+X%”를 지불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18년 4월 시리아에서 철군하겠다고 압박하면서 트럼프는 “비용 플러스 50%”를 설득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들렸던지 트럼프는 “공정한 분담” 또는 “완전하고 공정한 상환”과 같은 다른 이름으로 이를 불렀다. 그러나 정말이지 트럼프가 원한 정확한 금액, 또는 최소한 그가 협상을 시작하기 원했던 정확한 금액은 “비용 플러스 50%”였다. 한국의 경우에 주한미군 특별협정에서 그 비용은 매년 50억 달러였다. 한국이 이전에 매년 10억 달러 이상 지불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이다. 현 협정은 2018년 12월 31일에 끝난다. 미 국무부와 펜타곤 모두 매우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미군이 마치 용병인 것처럼 주둔국이 지불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매우 많은 방위비 증가가 어렵다는 사실도 안다. 한국은 방위비 협정 종료일 때문에 첫 번째 협상국이 되었다. 일본이 다음 상대였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한국의 경우 트럼프의 궁극적 협박(트럼프가 보기에 적합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 국가로부터 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실제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이상의 전략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에게 주한미군 철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주둔군의 비용을 상당하게 증가시키는 것에 대한 그들의 지속적인 반대는 그 위험을 증가시켰다. 불행하게도 나는 절벽의 끝이 어딘지 알았다. 2018년 12월 31일 한국과의 결론에 이르지 않는 협상이 우리를 압도한 후에 한국은 현 수준보다 훨씬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 년에 10억 달러 이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트럼프와 한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얻기 위해, 미군 철수를 막길 희망하면서, 내년에 또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2019년까지 지속된 상황이다.

문재인은 4월 11일 워싱턴에 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 폼페이오와 나는 문재인을 노전 9시 블레어 하우스에서 처음 맞았다. 강경화 외무장관과 정의용도 함께였다. 늘 하는 인사말이 오간 뒤에 우리는 한국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한은 하노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문재인은 평양이 핵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구는 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 왜냐하면 문재인은 “햇볕”이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회의와 문-트 회담에서 가능하면 적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정부 안에서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방해자로 지목받기에 논리적으로 적합한 사람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했던 유사한 전략이 성공한 것을 볼 때 그것도 분명히 먹혀들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은 정오에 백악과에 도착했다. 폼페이오와 나, 트럼프는 문재인과 강경화, 정의용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트럼프는 나쁜 거래에 사인을 하는 것보다는 걸어나는 것이 낫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드러난 방식에 대해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그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가 생각하기에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는 판문점 회동 또는 미 해군 함정에서의 만남 들을 제안하면서 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형태에 관해 극적인 접근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그의 독백을 중단시켰는데 그것은 잘된 일이었다. 왜냐면 트럼프는 졸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문재인의 생각을 인정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다음 번 정상회담에서 실제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번 만나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문제될 것 없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두 번 걸어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보다는 형태에 대해 걱정했다. 문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다른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업무 오찬을 위해 캐비닛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의 발전에 대해 살펴보고 양자 간 무역 문제들에 대해 약간 대화를 나눈 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증가시켰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매년 주둔비용은 50억 달러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은 한국이 미국에 TV를 판매함에 따라 매년 4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은 다음 협상에서 더 많이 지불하기로 했으므로 한국도 더 내야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을 매우 보호하고 싶다고 느끼며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많은 한국 회사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기본비용과 관련해 트럼프의 기대가 너무 높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부지를 임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공짜인지 질문했으나 문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한국은 방위비로 GDP의 2.4%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 문제를 슬쩍 피해갔다. 곧이어 트럼프는 독일이 적정한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트럼프는 다시 한국 문제로 돌아왔다. 미국은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매년 5조를 지불했는데 한국은 협상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트럼프는 미국에 공정한 방식으로 협상을 조율하길 원했다.

북한에 대한 더 많은 토론이 있은 후 트럼프는 일본과의 관계가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는 모두 도쿄와 서울 간 어려움이 증가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으며 이는 다음 몇 달 동안 더욱 빠르게 악화될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취소하려고 했다. 일본의 관점에서 그 조약은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 특히 2차 대전의 고난과 잘 알려진 ‘위안부’ 문제로 인해 발생한 적대감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문재인은 지난 역사가 양국 관계의 미래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데 때때로 일본이 그 일을 이슈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문재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다른 한국인 정치 지도자들처럼 문재인은 국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본을 이슈로 만들려 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일본과 군사훈련을 함께 하길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으로써 함께 싸울 수 있는지 질문했다. 문재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쿄와 서울은 함께 군사훈련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 일본군이 주둔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지난 역사를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다시 물었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맞서 싸워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이 일본의 참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문재인은 답변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 분명했다. 문재인은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말했다. 그는 한국 영토에 일본 자위대가 주둔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되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서울에 돌아갔을 때 북한에 6월 12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날짜는 상관없지만 사전에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계속해서 설명했다.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실무급 외교관들은 전혀 재량권이 없으므로 그는 고위급 회담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내가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베 총리는 4월 26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는 문재인과 거의 정반대의 견해를 보여주였다. 트럼프는 아베에게 하노이 정상회담을 떠난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베는 경과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 트럼프만이 걸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쉽게 해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시간은 우리의 편이라고 강조했고 트럼프도 동의했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계속해서 미사일 시험을 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시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ICBM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중단거리 미사일들은 한국과 일본을 매우 위협했다.

5월 3일 저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나는 폼페이오와 섀너헌에게 즉시 전화했다. 던포드와 전화한 뒤 나는 트럼프에게 알리기로 결정했다. 미사일들은 단거리였고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북한이 진짜로 어떤지 알지 못한다.

나는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가볍게 생각하자구. 가볍게 생각하자구” 그의 친구 김정은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무렵 한국 국방부가 성명을 발표했고 언론 보도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세 번째로 전화했다. 내가 추측했던 것처럼 트럼프는 어떠한 성명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오케이”라는 말로 끝이었다. 그것은 트럼프가 특별한 이슈에 대해 우리가 결론을 내린 방식에 대해 그가 안도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성명이 있든지 말든지, 사거리가 얼마나 되든지 간에 이 탄도미사일 시험들은 대북제재의 근간이 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 내가 우려했던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침범할 수 없는 지위가 아니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우려한 것은 만약 우리가 중요한 위반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묵살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잘못된 교훈을 배울 것이고 중요한 제재 위반을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조금 위험한 것 이상이었다.

나의 우려를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트럼프에게 최신 정보를 전달했다. 그는 “그것을 ‘포’라고 부르시오”라고 말했다. 마치 존재하는 어떤 것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지를 붙이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처럼. 트럼프는 또한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게 한 약속을 깨트리길 원치 않는다. 거래는 성사될 것이다!”고 했다. 트럼프는 분명히 이 트위터들이 김정은과의 관계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이 트럼프가 거래에 필사적이라는 인상을 강화하면서 그를 파괴시키는 보좌진들(누군지 알아맞춰보라)이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우리는 모두 트위터를 중단시킨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트위터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한국정부도 사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로켓들을 ‘발사체’라고 부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자국민을 굶기며 전 세계에 음식을 구걸하면서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사용할 잔돈은 충분한 평양에 있는 정권 때문이었다.

다음날 문재인은 지난 주말에 있었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말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놀랍지도 않았지만 문재인은 이전에 트럼프가 그랬던 것처럼 그 문제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문재인이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실망했다는 말을 늘어놓는 동안 트럼프는 문재인이 김정은과의 관계를 잃은 것 같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김정은은 이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트럼프는 이 결렬이 문재인의 잘못이라고 보지 않았지만 분명이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문재인은 하노이 이후 북한과 실제적인 협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다. 문재인은 한국이 UNICEF와 세계 식량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 대신에 미국이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 원조를 해야한다는 식으로 논쟁의 방향을 돌리려는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는 유엔 기관들을 통해 식량원조를 하는 것을 축복할 것이라면서 문재인에게 북한이 그가 이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그가 반대하는 강경파들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결같은 일이었다. 북한은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니 식량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얼마나 거래를 원하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끔찍한 신호였다. 나는 포틴저와 후커에게 우리는 스스로 어떤 식량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말해두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히 북한에 자원을 공급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북한에 전달되는 식량 원조는 매우 주의깊게 모니터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봄과 여름에 걸쳐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다. 김정은이 보복은 없으며 아마도 쌀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5월 9일 내게 말했다. “제재를 더 가하시오” 후에 이것은 “대량 제재”로 업그레이드됐지만 공표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브롤터 암벽을 닮은 풍향계를 만들었다.

늦은 5월 트럼프는 일본을 방문했다. 레이와 시대의 첫 국빈이었다. 이것은 트럼프에게 굉장한 영광이었다. 아베는 일본의 동맹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나는 트럼프와 아베의 회담을 최종 준비하기 위해 며칠 일찍 일본으로 떠났다. 5월 25일 한 기자가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유엔 미국 대사로 있을 때 유엔 결의안 1695와 1718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나는 당시에 그토록 강조했던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논리의 문제로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한 ICBM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하는 미사일 발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그 약속을 통해 사실상 브루클린 다리를 팔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트럼프가 멍청해 보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성공을 이뤄냈다는 트럼프의 믿음을 흔들 수 없었다. 트럼프는 에어포스 원으로 일본에 도착한 직후 이렇게 트위터를 썼다: “북한이 몇몇의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그것이 나의 참모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가 조 바이든을 아이큐가 낮은 사람이라고 불렀을 때 미소를 지었다”

나는 트럼프가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트럼프는 그것을 중요하지 않게 보았지만 북한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꺼리지 않는다” 아베는 트럼프가 납북자 가족을 만나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함으로써 회담을 시작했다.

오후 3시에 아베와 트럼프는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럼프는 다시 한 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베는 트럼프가 옆에 서있는데도 공공연하게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그 분열을 좋아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루 내내 미국과 일본 동맹의 견고함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베와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북한에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6월 28일 오사카 G20 회의에 참석한 트럼프는 오전 8시 30분에 아베와 다시 만났다. 내가 보기에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세계 지도자는 아베다(동료로서뿐만 아니라 골프 친구로도). 그리고 영국의 보리스 총리도.

아베는 다시 한 번 트럼프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준 것에 대해 따뜻하게 감사를 표했다. 아베는 북한이 매우 급박하게 거래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 지도자들에게 다른 의미를 가졌다. 아베에게 이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분명한 행동을 취해야하며 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에게 아름다운 친서들과 생일 카드를 보내왔으며 대북제재가 끔찍하게 상처를 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이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제재를 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트럼프는 아베와 문재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질문을 했다. 그들은 모두 제재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나는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게 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확신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트럼프는 제재를 가하는 것에는 돈이 들지만 만약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훗날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안했던 것처럼 한 개 이상의 핵 시설을 폐기하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또 다른 미북정상회담을 원했다. 그는 북한이 볼튼, 펜스, 폼페이오를 미워하지만 자신은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웃었다. 트럼프는 로켓이나 핵시험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날 또 다른 양자회담을 가졌다. 독일을 메르켈 총리와의 짧은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언급하면서 G20 회의 이후에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DMZ에서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미국 대표부가 들었던, 트럼프가 김정은을 DMZ에서 만나길 원한다는 첫 번째 발언이었다.

우리는 그 말은 토요일 아침에도 들었다. 멀베이니는 그의 핸드폰으로 나에게 트럼프의 트위터를 보여주었다. 나에게 이미 보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진핑 중국 대통령과의 만남 등 매우 중요한 회담 후에 나는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갈 것이다(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그곳에서 만약 북한의 김 위원장이 이것을 본다면 나는 국경인 DMZ에서 그를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고 싶다---

멀베이니는 나만큼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트위터가 그냥 한번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일찍 멀배이니가 폼페이오와 나를 한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는 북한사람들이 그 트위터는 북한이 원했던 공식적인 초대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이것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혼란입니다”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다음 일은 트럼프가 북한이 요청했던 “공식” 초청장에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는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폼페이오는 또한 앞으로 있을 김-트 회담에 끼어들려는 문재인의 노력을 관리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곁에 없기를 바랐다(Trump wanted Moon nowhere around). 그러나 문재인은 3자 회담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나는 문재인과의 이 논쟁이 모든 일을 망쳐버리기를 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문재인이 곁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비행기를 이용해 오사카에서 서울로 날아갔다. 때문에 나는 문재인이 연 저녁식사에 참가할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DMZ 준비가 점점 더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관여하는 한 트-김 회동은 악수와 사진찍기에 국한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미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것은 절대로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당시 DMZ에 가야하는지 아니면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몽고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울란 바토르로 곧장 가야하는지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당초 나는 트럼프의 DMZ 방문에 합류할 계획이 아니었다.

나는 빗나간 트위터가 실제로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 비록 나는 트럼프를 움직였던 것은 이 전례없는 DMZ 만남에 대한 언론보도와 사진찍기일 뿐 실제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얼마간의 위안을 가졌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DMZ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갖길 원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김정은에게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발됐다. 우리는 여전히 이것이 트럼프와-김정은의 양자 회담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인시킬지 알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가졌다. 그리고 트럼프도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졌다. 이것은 외교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불균형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국익 사이에서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했다.

6월 30일 토요일 나는 폼페이오가 DMZ 회담에 참석하기로 한 것을 알고 놀라서 일어났다. 나는 그에게 가기로 결정했는지 질문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그가 답장을 보냈다. “내가 그곳에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곳에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가 간다면 나도 역시 갈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한국인들과 미국 재계 지도자들과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우리는 문재인과의 회담을 위해 청와대로 갔다. 가는 길에 나는 북한이 사진찍기 후에 거창한 양자회담을 원하지 않으며 단지 약 40분 간 리더와 다른 한 명이 배석하는 회담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 나는 리영호 외무상이 “다른 한 명”으로 참석하기로 예정됐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폼페이오가 우리측의 “다른 한 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나는 김정은과 실질적인 회담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울란 바토르로 떠나기로 했다.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동안 DMZ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는 트럼프가 내가 이전에 해준 충고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나는 멀배이니에게 자세히 알렸다. 그는 내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청와대에서 매우 제한적인 양자 회담 중에 문재인이 DMZ에 갈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계획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와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를 만나자고 요청했지만 문재인이 훌륭하게 보이도록 함께 DMZ에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가 우리에게 말한 것과 달랐다. 따라서 폼페이오는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형식을 포함해 북한 측과 조율한 것을 말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트럼프의 질문에 나는 폼페이오의 발언을 거들었다. 트럼프는 우리가 만날지 만나지 않을 지는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회담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 문재인은 김정은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문재인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과 인사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인도해준 다음 떠나겠다고 말했다. 폼페이오는 또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문재인의 의견을 전날 밤 북한에 전달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함께 간다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구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완전히 상상에서 나온 말이었다). 문재인은 미국 대통령들이 DMZ를 방문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에게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큰 기회를 놓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첩보기관이 말한 것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화제를 바꿨다. 그는 북한과 실무협상은 항상 매우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접근하면 결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다음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 대선이 끝난 다음이 될 것이라고 물어보겠다고 했다. 이 순간에 트럼프는 그의 첩보 수장인 토니 오르나토에게 몸을 돌렸다. 나는 아마도 DMZ 회담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그는 왜 재러드와 이방카가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는지(참석하지 않을 완벽하게 좋은 이유가 있었다)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오르나토에게 그들을 불러오도록 명령했다(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심지어 한국인들도 놀랐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자신이 최소한 약간은 김정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제안했다. 아마도 문재인이 DMZ로 떠나는 그를 서울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 미군들과 만남이 예정된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문재인은 모든 제안을 거부하면서 그가 트럼프를 OP올렛(Ouellette,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DMZ 관측 지점)까지 데려다주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OP올렛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갑자기 주한미군 기본비용에 대한 화제로 말을 돌렸다. 폼페이오와 내가 이전에 이 문제를 문재인에게 제기했다고 말하면서. 트럼프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미국은 매년 한국과의 무역에서 20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었다. 일각에선 380억 달러 적자(숫자는 매번 달라졌다)를 보는 대신에 한국에 관세를 부여하면 미국이 300억 달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문재인과의 관계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그해 전에 트럼프는 내게 주둔비를 계산해보고 한국과 공정하고 공평한 분담금을 위해 협상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한국이 분담해야 할 방위비는 일 년에 50억 달러 또는 55억 달러(숫자들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리고 나서 모든 다른 경우에 말했다. 그리고 나서 트럼프는 2018년 말에 한국은 10억 달러 이하로 방위비를 지불했지만 다른 모든 나라들도 주둔비를 더 내기로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최소한 당시에는 그랬다). 트럼프는 우리는 미국을 위해 공정하고 공평한 거래를 해야 한다며 미국은 매년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40억 달러를 손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고 만약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에게 폼페이오나 나와 협상할 누군가를 임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한국의 이웃이 얼마나 적대적인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출됐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트럼프가 4월에 백악관에서 50억 달러를 제시한 것을 아마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문재인은 경제적 이슈들과 관련해서 트럼프가 취임한 후 무역 흑자는 줄어들었으며 한국은 미국 LNG의 최대 수입국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는 증가했으며 한미 간 무역 균형은 현재 미국에 더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10억 달러 방위비와 무료 지대, 시설 건축, 무기 구입 모두가 한미 공동 방위에 중요한 공헌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즈음 트럼프는 점점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는 문재인에게 빨리 말하라는 제스처를 했고 우리와 다른 한국인들을 향해 몹시 화가 난 얼굴을 했다. 더 당황스러운 일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우리가 그 땅을 소유한 것이 아니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떠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방위하기 위한 땅에 부동산세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윤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매우 부유한 나라가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상환받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제 그의 손을 흔들면서 어깨를 으쓱였고 한숨을 쉬었다. 문재인의 말을 듣기에 지쳤고 다음 단계로 옮겨가기를 원한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한국은 GDP의 2.4%를 방위비로 쓰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독일과 일본도 한국과 같은 처지지만 그들은 위협 아래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의했다. 트럼프는 50억 달러를 원했고 내게 협상을 이끌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에 70년 동안 주둔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한국을 구하기 위해 김정은을 만나려고 했다. 문재인은 서울이 도움을 받기만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저항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내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라고 하면서 거래가 시작됐다고 말하며 말을 끝냈다.

언론이 떠난 뒤 점심시간에 트럼프는 김정은이 몹시도 만나고 싶어한다고 거듭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측에 문재인을 위해 준비가 돼 있는지 다시 물었다. 트럼프는 왜 김정은이 한국 대표를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 엉큼하게도 내 의견을 물었다. 문재인은 북한의 경직성 때문에 남북 간 의미있는 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국이 미국의 편을 들고 있으며 이것이 북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양자회담에서 한국이 제공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 강조할 것이며 김정은과 그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것을 문재인에게 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국경을 넘기에 합의했으며 실무급 협상이 곧바로 재개되길 원했다. 따라서 트럼프도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길 원했다. 이 모든 것이 넌센스였다. 누가 가장 이 만남을 원하는지는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트럼프는 주둔비용에 대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말하면서 내게 임무를 맡겼다. 트럼프는 내게 이전에 누구와 협상을 했는지 질문했고 내게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말했다. 정의용은 이에 대해 매우 기분이 나빠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중국의 환율 조작 문제로 넘어갔다. 문재인은 김정은이 체제 안전 보장을 원한다는 화제로 토론을 돌리려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보장을 원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이며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니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한국의 안전을 보장했지만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 짧지만 매우 성공적인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재인을 위해 매우 좋은 일이었다. 문재인은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유명하다는 것을 안다고 우쭐댔다. 그는 그의 클럽에서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는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매우 큰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하는지 몰랐다. 문재인은 한국이 김정은과 핫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 본부 안에 있으며 김정은은 결코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비록 그 업무 오찬이 20분 늦게 시작했지만 트럼프는 예정된 종료시간인 오후 1시가 되기 5분 전에 지금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에 나는 백악관 안보 팀은 모두 참석하라는 공지를 받았지만 DMZ 대신 몽고로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트럼프에게 말하기 위해 비스트 근처에서 기다렸다. 나는 내가 DMZ에 있지 않은 것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후 일찍 한국을 떠나 울란 바토르로 향했다. 트럼프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사진찍기 때문에 트럼프는 북한 땅으로 걸어들어갔다. 쿠슈너와 이방카는 근처에 있었다. 김정은은 사진에서 매우 즐거워보였고 또 그래야만 했다. 트럼프는 개인적 홍보를 위해 DMZ를 방문함으로써 김정은에게 얼마나 엄청난 선물을 주었던가. 이 모든 것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대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도 나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김-트 회담은 약 50분 간 지속됐다. 그리고 두 정상은 실무급 협상이 속히 다시 재개돼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물론 비건은 아직도 새로운 카운터파트를 갖지 못했다. 그의 전임자는 표시도 없는 무덤 속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7월 1일 울란 바토르에서 회담을 가진 후에 나는 워싱턴을 향해 떠났다. 나는 DMZ 회담에 관한 뉴스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한 기사가 특히 나빠 보였다. DMZ에서도 미국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타임즈는 “핵 동결”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문제 많은 비건이 하노이 이전에 따랐던 바로 그 길이었다. 나는 트럼프가 회담장을 걸어나갔을 때 우리가 이 접근방식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나타났다. 이전보다 훨씬 나쁜 상태였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기본적으로 매우 부풀려진 것이었지만 최소한 어떤 것을 포기하거나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기본적인 어떤 것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건은 트럼프의 열정을 북한과의 다음 회담을 형성하기 위한 자격증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그러한 방식의 회담은 30년 동안 실패한 것이었다. 나는 공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때였다. 게다가 내가 사임한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닐 것이다. 몇 번이나 초안을 고친 후에 나는 다음과 같은 트위터를 썼다:

---나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백악관안보팀이나 나는 ‘북한과 핵 동결에 합의한다’는 것을 들어보거나 논의한 적이 없다. 이것은 대통령을 방해하려는 누군가의 부끄러운 시도이다---

나는 트럼프로부터 이 트위터에 대해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나는 린지 그래이험이 이것을 리트윗한 것에 기뻤다.

7월 3일 나는 폼페이오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타임즈 기사와 나의 트위터에 대해 매우 불평하면서 말했다. “왜 내게 전화하지 않았소?” 그는 물었다. “비건이 말한 것은 대통령의 생각에 훨씬 가까운 것이요”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오싹한 일이었다. 나는 그와 비건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하길 원한다고 대답했다: 왜 그들은 내게 전화하기 않았습니까? 나의 트위터는 여전히 공식적인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대변했다. 그러나 비건의 브리핑은 그렇지 않았다. 폼페이오는 그에 대해 논쟁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으며 우리가 모두 본질을 다룬다면 훨씬 더 능률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동의했다....

트럼프가 DMZ에서 열린 파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고? 그날 후에 트럼프는 “어느 누구도 내가 한 것을 하지 못했다. 오바마는 11번이나 불렀지만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 있는 동안 나는 대북제재가 자연스럽게 완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대부분 (대북제재 완화에) 방해를 받았다.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거나 트럼프 대신 행정부 관리들을 공격할 때만 제외하고.

워싱턴에 돌아온 후 7월 16일 폼페이오와 나는 최고로 예민해진 김정은을 화나게 만들었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멈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이 훈련은 거의 모든 것이 컴퓨터로 이뤄진다. B-52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해군이 해안을 타격하는 훈련이 아니라고 거듭 확인시켰지만 트럼프는 연합훈련을 취소하길 원했다.... 폼페이오는 내게 북한이 8월 중순이나 말까지 어떠한 실무급 회담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DMZ 회당 후에 비건과 다른 이들이 말한 7월 중순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

며칠 후에 나는 주둔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향해 떠났다.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중요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북한, 중국의 호전성을 저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태평양 지역에서 NATO와 같은 기구를 갖고 있지 못했다. 오직 일련의 대도시 거점 방식의 양자 동맹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위해 항상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들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의 무관심한 행정부 안에서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은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연합을 증가시키기 위한 길이었다. 더욱이 성공적인 북한 핵 타결을 위한 트럼프의 우선순위 목록의 높은 곳에는 일본과 한국이 큰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있었다. 트럼프는 북한에 “외국 원조”를 주지 않으며 오직 대규모의 이윤이 남는 사적인 투자만을 허락할 작정이었다.

... 나는 워싱턴에 돌아왔을 때 트럼프에게 주둔비 협상에 대해 말했다. (폼페이오와 므누신이 다른 이슈와 관련해 오벌 오피스에 나와 함께 있었다) 트럼프는 매년 각각 80억 달러와 60억 달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당신은 매우 강력한 협상 위치에 둘 것이다”라고 트럼프는 말했다... 다음날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듣는 중에 트럼프는 “지금이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의용에게 한일 양국이 한 달 동안이라고 “정지 협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양국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며칠간의 심한 밀당 끝에 우리는 휴전을 향해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북한은 7월 30일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일본해에 쏘아올린 것을 포함해 단거리 미사일들을 계속해서 쏴댔다.

2020년 대선 운동 기간 동안 북한이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김정은이 그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대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트럼프를 나쁜 거래를 하도록 유혹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와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보다 외교정책에 더 경험이 없는 나긋나긋한 민주당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 정답이 무엇이든지간에 완전히 능력 있는 핵무기 국가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연달아 4개의 행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멈추는데 실패할 것이다.

그것은 미래 행정부가 필연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북한정권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정권이 미국에 셀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을 마주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 북한은 이동 가능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위협은 더욱 증가됐다. 우리는 북핵이 임박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기를 오직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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