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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김정은이 무서워 하는 것

입력 : 2017.11.25 23:21

국제사회 이슈로 떠오른 북한 인권

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락(Gulag)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73년 ‘수용소 군도’라는 소설을 펴내면서 국제사회에 실체가 드러났다. 

솔제니친은 이 작품에서 소련 전역에 산재해 있던 수용소들을 군도(群島)에 비유하면서 수백만 명이 강제노역으로 숨져가는 굴락의 참혹한 실태를 폭로했다. 솔제니친은 포병 대위로 근무하다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내용이 문제가 돼 체포당한 뒤 굴락에서 무려 8년간(1945~1953)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다. 굴락은 원래 소련에서 강제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이었다.

미국 언론인으로 퓰리처상 수상자인앤 애플바움은 저서 ‘굴락의 역사’에서 스탈린 시대 소련 전역에 설치된 470여 개의 굴락에 1800만여명이 수용돼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고 이 과정에서 최소 450만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공산주의의 적’으로 몰려 굴락에 수용된 사람들은 ‘기생충’ ‘독초’ 등으로 낙인찍힌 채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굴락에 수용된 사람은 범죄자들을 비롯해 반체제 활동을 해온 정치범들이었다. 굴락은 스탈린 사후 해체돼 1960년대부터 존재하지 않게 됐다.

소련의 굴락보다 수감자들을 더욱 잔인하고 악독하게 다루는 곳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이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15만~20만명이 감금돼 있으며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미국 비정부기구인 북한 인권위원회(HRNK)가 발간한 ‘숨겨진 굴락(Hidden Gulag)’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영양실조로 죽기 전까지 12~15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옷은 한 벌만 주어지고 비누, 양말, 속옷, 휴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으로 탈출했다 체포된 임신부들은 강제로 낙태시키고 유아를 살해한다고 한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주로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전기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어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고문, 처형,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자들이 속출해 말 그대로 ‘인간 쓰레기장’이라는 것이다.

HRNK는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보고서에서 수많은 죄 없는 북한 주민들이 정치범수용소에서 평생 과도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식량과 치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은 뒤 묘비 없는 무덤에 묻히는 처지가 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정권의 안전을 위해 죄 없는 주민들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고 있다면서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 등에 대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 8월 북한의 6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보고서에서 수감자들은 ‘걸어다니는 해골(walking skeletons)’ ‘난쟁이(dwarfs)’ ‘불구자(cripples)’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수용소마다 영양실조로 매년 1500~2000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북한 정권은 그동안 정치범수용소에서 비인간적·반인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러왔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왜 트럼프는 인권 문제 들고나왔나?

북한 정권은 국제사회의 인권 탄압과 유린에 대한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들어 노동교화소를 대거 만들어 수감자들을 학대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 HRNK 선임고문은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 노동교화소를 촬영한 위성사진 20장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양강도를 제외한 북한 전역 도(道) 단위 기준 최소 한 개 이상의 교화소가 설립돼 있으며, 수감자는 일반 범죄자뿐만 아니라 정치범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교화소 입구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벽 위엔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다. 폐쇄구역 내부엔 수감자를 통솔하는 감시탑, 기숙사동, 작업장이 포착됐고 일부 교화소 인근에는 광산도 있다. 노동교화소들은 인민보안성(옛 사회안전부)이 관리하고 있으며 주로 도시 외곽 또는 산악 지역에 복합시설 형태로 세워졌다. 호크 고문은 “북한 노동교화소의 위생상태는 끔찍하고 식량 배급은 부족해 수감자들이 영양실조와 관련된 병으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면서 “잔인하고 혹독한 노동과 극도로 부실한 영양상태, 약품 부족 등으로 많은 수감자가 끔찍하게 죽는다”고 폭로했다. 호크 선임고문은 “김정은 정권이 노동교화소를 북한 주민들을 영원히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해왔다는 비판을 들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죽하면 한국 방문에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북한의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신랄하게 비난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 7일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통해 북한을 ‘감옥국가(prison state)’로, 김정은을 ‘잔혹한 독재자’로 각각 규정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상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부패한 지도자들이 압제, 파시즘, 탄압의 기치 아래 자국민을 감옥에 감금하고 있다”면서 “10만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들이 수용소에서 강제노역과 고문, 기아, 강간과 살인을 견디며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잔인한 독재정권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란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주민을 평가하고 점수 매기고 계급을 나눈다”면서 “북한은 당신(김정은)의 할아버지(김일성)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라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부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인권 문제를 분명하게 거론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한 정권은 반인도 범죄에 해당하는 인권 탄압을 지금도 계속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인권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고도화하자 미국은 김정은을 북한 인권 탄압의 책임자로 지목하는 등 과거와는 달리 인권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통하지 않을 경우 김정은 이 가장 두려워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맥스웰 조지타운대학 전략연구센터(CSS) 부소장은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 정권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지난 9월 11일 유엔 안보리에서 김정은을 사실상 ‘전범(戰犯)’으로 규정해 자산동결을 비롯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고 시도했었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로 김정은을 제재하는 것이 무산됐었다. 

유엔 안보리는 대신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인권을 무기로 김정은을 본격적으로 압박하지는 않고 있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을 물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ICC는 집단살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상설 국제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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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15호 요덕 정치범수용소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위부 경비대 자택 및 본부 위성사진, 완전통제구역 위성사진, 요덕수용소 정문과 위성사진. photo 엔케이워치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려면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려면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결의를 통과시켜야 한다.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김정은을 제소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ICC 회원국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국가원수라고 하더라도 면책은 없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은 2001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반인도적 범죄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발칸반도의 도살자’라는 말을 들어온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은 현직 국가원수가 임기 도중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된 첫 번째 사례다. 밀로셰비치가 재판 중이던 2006년 사망하는 바람에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제법적으로 특정 국가의 국가원수도 처벌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ICC 제소 추진은 김정은을 최대로 압박하는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부각시킬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유엔이 개념을 규정한 ‘국민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Protect)’에 따라 국제사회가 북한에 무력 개입하는 것이다. R2P는 특정국가가 반인도적 범죄, 집단살해,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며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유엔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는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무아마르 카다피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R2P를 처음 적용했다. 유엔 안보리는 2011년 3월 17일 채택한 결의 1973호에서 ‘카다피의 학살행위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한다’면서 군사개입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미국 등 나토는 카다피의 정부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에 나섰다. 결국 카다피는 10월 20일 자신의 고향인수르트에서 나토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반군에 붙잡혀 처형됐다. 42년간 철권을 휘둘러온 독재자가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북한처럼 자국민을 정치범수용소나 노동교화소에 수감시켜 강제노동과 고문 등으로 숨지게 하거나 지속적인 기아사태로 몰아넣는 감옥국가의 통치자를 처벌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북한과 김정은은 R2P의 충분한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유엔 공식기구인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2월 채택한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반인도적 범죄가 자행돼왔다”면서 “국제사회는 R2P에 따라 인권침해 책임자 처벌 등 인권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I는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2013년 3월 21일 만장일치로 설립을 결의한 이래 1년간에 걸쳐 9개 분야를 조사했었다. 

유엔 총회에서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제3 위원회는 2014년 11월 18일 COI의 보고서를 내용으로 하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11, 반대 19, 기권 55로 통과시켰다. 제69차 유엔총회도 같은 해 12월 18일 제3위원회 결의안을 찬성 116표, 반대 20표, 기권 53표로 처리했다.

12월 유엔 총회서 결의안 통과되나 제3 위원회는 지난 11월 14일 북한 인권결의안을 전원동의(컨센서스)로 채택했다. 2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북한 인권결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하는 국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그만큼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분(公憤)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로베르타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이번 결의안이 표결 없이 합의 처리된 점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 쿠바 등 북한과 가까운 나라들조차 북한의 인권유린 사실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R2P도 이번 결의안 내용에 포함돼 있다.

12월 열리는 제72차 유엔 총회도 이번 제3위원회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이 분명하다. 미국 국무부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은 북한 당국자들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라고 밝혔다.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태 담당 대변인은 이렇게 강조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있는 초법적 살인, 강제노동, 고문,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장기 구금, 강간, 강제낙태, 성적 폭력 등의 인권유린을 국제사회가 묵과해서는 안 된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북한 인권유린의 책임규명과 처벌은 북한 인권 보호 활동의 필수적 요소”라고 밝혔다.

비록 유엔 총회의 결의안이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유린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는 것은 김정은에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유엔 193개 회원국들의 결의를 무시한다는 것은 북한정권으로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 경우 김정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미치광이 대통령이 저지른 만고 죄악을 단죄한다”면서 “트럼프의 악담을 체제 전복을 위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최고 존엄 중상모독, 북한 사회주의제도 비방, 인민 생활 먹칠, 대북 압살 등의 ‘죄악’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박테리아’ ‘바퀴새끼’ 등으로 지칭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선제타격이 어려울 경우 R2P에 따른 군사 개입을 도모할 수도 있다. 김정은은 이미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고 이복형인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암살해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김정은의 인권 탄압이 극에 달할 경우 국제사회는 더 이상 인내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핵무기만이 자신의 안전보장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24/2017112401711.html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 'DJ 對北 송금' 전말 15년 만에 털어 놓다

위기의 우파

회고록을 통해 15년 만에 열린 진실의 문 |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의혹을 왜 터뜨렸을까?

“김대중 정부가 S그룹에도 대북사업 참여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 듣고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 엄낙용 전 총재는 4000억원의 대북송금 자금이 북한 신무기 구입 및 제작에 사용됐을 것으로 판단
⊙ 엘리트 코스 달려온 독실한 기독교인
⊙ 김대중 정부, 현대 외에 다른 대기업에도 대북사업 참여 압박한 듯
⊙ “덮어 두면 가슴 속에 암(癌)이 될 것 같았다”
⊙ 제2연평해전 소식 듣고 정의로운 기획 폭로 위해 문중 모임에서 얼굴 익힌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 찾아가
⊙ 폭로로 인해 친한 공직 선배 처벌에 가슴아파 … 그래도 침묵했다면 평생 자신을 가책하면서 괴로워했을 것
2002년 9월 25일 국회정무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은 2002년 《월간조선》 5월호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당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은 기사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요지는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소개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나기 위해 막후 흥정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보내기로 약속하는데, 자금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현대상선을 거쳐 현대아산으로 대출하도록 하고 이를 달러로 환전, 국가정보원 등을 시켜 해외의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불법송금하고 나서 평양회담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 기사를 근거로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을 추적한 엄 전 의원은 행시·사시 양과 합격 후 김영삼 정권에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서울 중부경찰서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대중 정권 초인 1998년 경찰청 진흥과장으로 발령나자 불만을 표시한 뒤 사표를 제출하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엄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교인 경남고 출신이다.
 
  2002년 9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 때 엄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나라당의 부산 사하갑 출신 엄호성 위원입니다. 본 위원은 현대그룹에 대한 특혜지원과 관련해서 증인들께 신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금년 《월간조선》 5월호에 의하면 금강산 관광 대가 지급 관련해서 이면계약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현대는 정말 북한에 4억 달러를 비밀리에 주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그 기사에 보면 2002년 3월 25일 미국 의회조사국은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레리 닉시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한미관계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가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 대가로 지급한 4억 달러 외에 비밀리에 4억 달러를 웃돈으로 주었고 이 돈이 군사비로 전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레리 닉시는 《월간조선》 측과의 통화에서 ‘비밀자금 제공 정보는 한국 측 소스로부터 들었으며 믿을 만하다, 한국 국회에서 조사하면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 위원은 이 기사를 읽고 대북사업에서 공식으로 약속한 대금 이외에 별도의 웃돈을 주어야 한다는 대북사업에 관한 상식에 입각해서 이 과제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사실로 판명됐다는 것을 먼저 전제로 하고 하나하나씩 밝혀 나가겠습니다.”
  
  
  2002년 9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은 2002년 《월간조선》 5월호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당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은 기사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엄 전 의원의 질문에 솔직히 답변했다.
  
  다음은 당시 회의록 내용이다.
  
  〈엄호성 위원: 엄낙용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이 건 대출할 당시에는 산업은행 총재직에 안 계셨던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엄낙용 증인: 예, 그렇습니다.
  
  엄호성 위원: 그래서 부임하고 나니까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찾아왔거나 또는 전화를 걸었거나 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엄낙용 증인: ….
  
  엄호성 위원: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말씀만 하세요.
  
  엄낙용 증인: 만난 적 있습니다.
  
  엄호성 위원: 있습니까? 그때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나는 이 돈 갚지 못하겠다, 이것은 현대아산으로 건너갔고 이것이 바로 북으로 갔다, 이것 정부에서 책임져야 된다’ 그런 사정을 얘기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바로 북으로 갔다는 얘기는 제가 못 들었습니다.
  
  엄호성 위원: 그러나 ‘이 돈이 현대아산으로 갔다, 이것 내가 책임질 수 없다, 이 정부에서 책임져야 된다’ 이런 얘기는 들었습니까?
  
  엄낙용 증인: 현대상선이 사용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갚을 수 없다는 얘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엄호성 위원: 현대상선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회사에서 갚을 수 없다 … 어디에 사용했답디까?
  
  엄낙용 증인: 그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엄호성 위원: 현대아산이 썼다고 안 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그 부분은 제가 듣지 못했습니다. ‘현대상선에서 사용한 돈이 아니다, 정부에서 대신 갚아 주어야 될 돈이다’ 하는 얘기는 저에게 했습니다.
  
  엄호성 위원: 아, 현대상선에서 쓴 돈이 아니다, 정부에서 대신 갚아 주어야 된다. 그러면 후임 산은총재로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라고 추정이 되는데 그 얘기를 듣고 산은총재로서 그 자금 회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예컨대 정부라는 얘기를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이 얘기했으니 정부 관계자를 만난 사람이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누구누구를 만났습니까?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만났습니다.
  
  엄호성 위원: 또 진념 재경부장관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함께 있는 자리에서 보고드렸습니다.
  
  엄호성 위원: 이근영 금감위원장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위원장도 함께 계셨습니다.
  
  엄호성 위원: 같이 있었습니까? 혹시 국정원의 대북담당하는 김보현(金保鉉) 3차장 만난 사실이 있습니까? ‘예, 아니오’로만 답변하십시오.
  
  엄낙용 증인: 만났습니다.〉
  
  엄 전 총재의 답변으로 인해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대북송금 사건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이 2000년 6월 14일 오후 11시20분 김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 공동선언문을 서명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아 들고 있다.
  
엄 전 총재는 2002년 10월 4일 재경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 출석해서는 더욱 자세한 내용을 폭로했다.
  
  “4000억원 대출과정에 대해 이근영 금감위원장에게 물어봤더니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하도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북송금 사건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회의록에서 관련 내용만 발췌했다.
  
  〈김효석 위원(민주당): 산은의 현대상선 당좌대월 4000억원이 문제가 있다고 봅니까?
  
  엄낙용 증인: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통상적인 사안이 아닙니다.
  
  김효석 위원: (이 문제를 폭로한) 엄호성(嚴虎聲) 한나라당 의원과 같은 영월 엄씨입니까?
  
  엄낙용 증인: 그렇습니다.
  
  김효석 위원: 자주 만나는 사이입니까?
  
  엄낙용 증인: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닙니다.
  
  김효석 위원: 이 문제로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누설을 했는지 질문하는 것입니까?
  
  김효석 위원: 만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엄낙용 증인: 종친회에서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김효석 위원: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지난 6월 제2연평해전 후 일부 신문에서 북한이 새로운 무기와 화력을 보강해 우리 함정을 공격했다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대북) 지원자금에 의해 공격당하는 사례가 일어났다면 하는 생각에 내 고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로 누군가와 상의했습니다. 상의한 것이 법적 문제가 된다면 누구와 의논했는지 얘기하겠습니다.
  
  김효석 위원: 우리가 준 돈이 북한에 넘어갔다는 말입니까?
  
  엄낙용 증인: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당시에 실제로 현대로부터 많은 현찰이 넘어가고 있는데, 현대의 자금대출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한구 위원(한나라당):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에게 4000억원 관련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까?
  
  엄낙용 증인: 김 사장이 당시 (산은의) 오규원 담당 이사에게 말하고 (나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직접 들었습니다.
  
  이한구 위원: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날 때 그쪽의 요청이 있었습니까?
  
  엄낙용 증인: 이 문제로 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경제현안회의였습니다. 회의 말미에 (이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한구 위원: 어떤 말을 전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김충식 사장 얘기가 우리가 그 돈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그 돈을 만져 본 적이 없다, 정부가 쓴 돈이니 정부가 갚아야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임태희 위원(한나라당): 이기호 수석과 김보현(金保鉉) 국정원 3차장이 뭐라 답했나요?
  
  엄낙용 증인: 이 수석은 ‘알았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고, 김 차장은 ‘알았다. 우리가 조치하겠다.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임태희 위원: 이근영 위원장에게 강력한 지시를 한 사람이 누군지 말할 수 있습니까?
  
  엄낙용 증인: 말할 수 있습니다. (이근영 위원장이) 청와대 한 실장(당시 한광옥 비서실장)이 전화 주셨다고 했습니다.〉
  
  
  미흡한 감사원 감사, 특검으로 이어져
  
2003년 4월 23일 오전 엄낙용 전 산은총재의 소환으로 본격적인 특검수사가 시작되었다. 송두환 특별검사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특검은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조사해 5억 달러 불법송금 의혹을 밝혀 내고, 이근영 전 금감원장 등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불법대출해 준 사실도 밝혀 냈다. 특검은 박지원·이기호·이근영을 구속기소했다.
 
엄 전 총재의 폭로 직후인 10월 14일 감사원은 산업은행 감사에 착수했다. 2003년 1월 30일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1월 28일 현대상선이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5월 18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천억원은 전액 운항경비로 지급하거나 단기차입금을 상환하는 등으로 사용하였고, 2000년 6월 7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4000억원의 경우 1000억원은 현대건설 주식회사의 기업어음(CP) 매입자금으로, 765억원은 현대상선의 기업어음 등 상환자금으로, 나머지 2235억원은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각각 사용한 것으로 돼 있음.〉
  
  김대중 정부는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 모르쇠로 일관해 왔었다. 대북송금 사건은 특별검사(특검)팀까지 갔다. 감사원이 2235억원을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밝혀 내긴 했지만, 곳곳에 ‘덮어 주기 감사’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감사원은 현대상선으로부터 산업은행 대출금 2235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자료를 받았음에도 관계자 소환조사나 추가 질의 등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감사원은 “계좌추적권이 없어 자료의 신빙성을 단시간 내 확인하기가 어렵고 어차피 검찰에서 조사할 것으로 판단, 자료 검토만으로 감사를 종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뿐 아니라 2235억원의 수표 26장에 배서(背書)된 6명의 필체가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필체로 판단됐는데도 감사원은 경찰에 배서자의 신원확인을 의뢰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감사원은 현대상선 수표에 배서한 6명 중 1명은 외환은행 직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2월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구성된 일명 ‘대북송금 의혹 특검(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조사해 5억 달러(현금 4억5000만 달러에 물품을 합한 금액) 불법송금 의혹을 밝혀 내고, 이근영 전 금감원장 등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불법대출해 준 사실도 밝혀 냈다. 특검은 박지원·이기호·이근영을 구속기소했다.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누구?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를 알린 엄 전 총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2002년 10월 7일 자 《조선일보》 ‘엄낙용씨 누구?’ 제목의 기사를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폭탄발언’을 터뜨린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서울 출신인 엄 전 총재는 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8회)에 합격, 재무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사무관 시절에는 때때로 괄괄하고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 ‘불독’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초 미국 유학시절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다닐 때 부인과 함께 교회에 나가면서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하느님 덕에 출세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그는 재경원 차관보 시절엔 여름휴가를 교회의 수양회로 대신하고 일요일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을 정도로 독실했다. 국제업무와 세제업무에 밝은 그는 98년 3월 관세청장으로 나갔다가 99년 5월 재경부에 차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00년 8월 산은 총재로 옮기면서 ‘현대그룹 살리기’를 위한 ‘회사채 신속인수’ 제도에 반대하는 등 당시 진념(陳稔) 경제팀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평소 소신을 굽히지 않던 성격이 결국 화(禍)를 불렀다는 얘기가 관가(官街)에서 흘러나왔다. 엄 전 총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적어도 국감에서 위증(僞證)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평가다.〉
  
  대북지원 의혹에 처음 불을 질렀던 엄 전 총재는 이후 15년 가까이 침묵했다. 2003년 7월 30일 《조선일보》와의 미니 인터뷰에서 “덮어 두면 가슴속에 암(癌)이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대북송금에 대한 진실을 얘기한 겁니다”라며 “대북송금 여파로 이근영(李瑾榮) 전 금감위원장과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구속된 데 대해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라고 말한 게 사건 폭로와 관련한 마지막 발언이었다.
  
  
  엄낙용 전 총재가 대북송금 사건을 폭로한 진짜 이유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2017년 3월 《한 공직자의 경제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지난 2002년 대북송금 사건을 폭로하게 됐던 당시 상황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이런 엄 전 총재가 2017년 3월 《한 공직자의 경제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지난 2002년 대북송금 사건을 폭로하게 됐던 당시 상황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눈길을 끄는 내용이 많은데,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책이 출간된 지 7~8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회고록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다. 엄 전 총재가 주변 인사들이 다칠 것을 알면서도 국회증언을 통해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를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회고록에 따르면 우선 엄 전 총재는 대출 자금이 북한에 제공됐을 것으로 거의 확신했다.
 
  〈산업은행 총재로서 정부와의 마찰은 부임 초부터 시작했다. 전임자에 의하여 비정상적인 여신(與信)이 현대상선에 제공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필자는 이 여신이 정부의 고위층에 의하여 지시된 것임을 확인했다. 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현대 측이 상환을 거부하며 정부로부터 받으라고 버티는 것을 보고 대출된 자금이 북한에 제공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리고 현대그룹의 자금흐름을 살펴보자 매우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이 요청은 금융감독원 간부로부터 산업은행 임원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자금의 용도가 확실한 현대그룹의 만기도래 회사채를 차환하기 위하여 발행되는 회사채의 신속인수 등엔 동의했다. 그러나 자금의 용도가 불분명한 지원요청에 대하여 “구두로 요청하지 말고 문서로 요청하라”고 면박하자 필자의 속내를 모르는 정부 측 인사들이 펄펄 뛰며 분개한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경하게 대응한 필자도 사임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정작 사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2001년 초 정부의 핵심 보직 개편에서 비롯됐다. 과거 필자에게 많은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 분명한 P씨와 S씨가 권력구조의 정점에 복귀하면서 필자가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둘째, 엄 전 총재는 김대중 정부가 현대그룹 이외에도 다른 대기업을 대북사업에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심각하게 판단했다. 김대중 정부 때 대기업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의 예에서 보듯 대북 현금 제공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2002년 초. S그룹의 임원인 Y씨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다. Y씨는 과거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명절에 봉투를 들고 필자에게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가 Y씨를 차에 태우고 하남에 있는 장애인 자립시설로 데리고 가 그 봉투를 그곳에 전달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필자가 공직을 떠난 다음 가끔 연락이 와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는 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Y씨가 지금 정부에서 S그룹에 대북사업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골치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필자는 짐짓 모른 체하고 그러냐고 하였지만 속으로 큰일이구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되뇌어 보니 이를 어떻게 하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미국의 군사문제연구소 등에서 북한의 군비확충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내용과 핵개발 의혹 등에 대한 발표자료를 언론을 통해 접한 바 있었기 때문에 현대그룹에 이어 다른 기업까지 대북사업에 연루되는 것은 이러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제2연평해전 다음 날인 2002년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아키히토 일왕(왼쪽), 이희호 여사(오른쪽)와 2002월드컵 독일 브라질 결승전을 관람하는 김대중 대통령.
 
 셋째, 엄 전 총재는 2002년 6월 29일에 있었던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이 사용한 신무기는 우리가 보낸 자금으로 만들거나 도입했다고 봤다.
  
  〈2002년 6월 한국의 월드컵 4강전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오른 날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필자는 빠른 속도로 기동 중인 우리 해군의 고속정을 북한 경비정이 단 한 번의 포격으로 핵심부위를 명중시켰다는 보도를 접하고 북한 경비정이 고성능의 무기를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곧이어 북한 경비정이 장착한 무기가 탱크포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우리 고속정의 급소를 탱크포로 단번에 명중시켰다는 발표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우리 해군 함정들의 반격에 의해 침몰상태로 파괴된 북한 경비정을 아군이 끌고 오지 않고 북한의 다른 함정이 예인하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금도 필자는 그러한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북한군의 이러한 신무기 무장이 남한에서 보낸 자금으로 이루어진 것일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필자를 잠 못 이루게 했다.〉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다음 날인 6월 30일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참관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그다음 날인 7월 1일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부 장관, 이남신 합동참모의장 등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장례식에 불참했다.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2002년 6월 27일 대북감청부대장인 한철용 소장은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한 소장은 “군 수뇌부가 (보고를) 묵살했다”며 “우리가 충분히 제2연평해전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런 실상을 공개했다가 보직 해임됐다.
  
  
  기획폭로 준비
  
  제2연평해전을 보고는 행동을 결심한 엄 전 차관은 정의로운 기획폭로 준비에 나섰다.
  
  〈필자는 이 문제를 표면화시키는 데 직접 나서기로 하고 당시 야당의 엄호성 의원에게 필자의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연락했다. 엄호성 의원을 지목한 것은 문중 모임에 초청받아 한두 번 만난 적이 있고, 엄 의원은 경찰 출신이니 보안의식이 확실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엄 의원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국정감사에서 필요하면 필자가 직접 증언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렇지만 막상 국정감사장에서 엄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게 되었을 때 필자는 어깨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눌리는 느낌과 함께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지는 통증을 느꼈다. 가장 뇌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분과는 아무런 개인적 인연이 없고 업무상 한두 번 보고한 것밖에는 없지만, 필자는 그로부터 각별하다고 느낄 만한 관심과 격려를 받은 바 있다. 그의 커다란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는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너무 괴롭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 대통령의 통찰력과 판단력을 많이 존경하였는데 지금 이 문제에서는 필자가 그의 노선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우 곤혹스러웠다. 

필자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하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 명백하므로 동의할 수 없었다. 필자가 담당했던 해외차관 도입 업무에서도 국제금융기구나 차관제공 국가에서는 그 자금이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적에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확인했다. 더구나 자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은행을 경영위기에 직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만약 그러한 비밀스러운 자금 제공으로 남북관계에 근본적 화해가 형성된다면 모르겠지만 제2연평해전에서 나타난 결과는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를 그들의 손에 쥐여준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다시 그런 상황이 재현돼도 같은 선택 할 수밖에
  
  엄 전 총재는 대북송금과 관련한 내용 마지막에 본인의 폭로로 인해 사법처리된 인사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면서도 “인간적 고통이 컸지만, 국가를 위한 일인 만큼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중에 특검을 거쳐 많은 사람이 사법처리되는 단계에서 필자의 인간적 고뇌는 더욱 커졌다. 이기호 수석과 이근영 전임 산은총재는 필자가 여러모로 감사하고 친밀하게 생각하는 공직의 선배임에도 그들에게 이러한 고난을 끼치고 말았다는 것은 필자에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가 알기에는 이기호 수석은 비밀스러운 자금 제공 대신 다른 대안을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못한 탓으로, 이근영 전임 산은총재는 북한에 제공되는 자금인 줄 모르고 현대그룹에 대한 금융지원 차원에서 이 일에 연루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필자가 인간적 어려움으로 이를 외면하고 침묵한다면 평생을 두고 자신을 가책하면서 괴로워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러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지금 다시 그러한 상황이 필자 앞에 재현된다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크리미아 섬: Beautiful Land of Crimea

The peninsula of Crimea (pronounced “cry-mia”) is located on the northern shore of the Black Sea. The area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locations in Eastern Europe, in both architecture and natural wonder. Historically, the southern part of Crimea was colonized by many ancient civilizations, including the Greeks and the Romans. It enjoys sub-tropical weather thanks to its proximity to the Black Sea.



The Adalary (rocky islands) of Gurs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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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1991, with the fall of the Soviet Union, Crimea became part of independent Ukraine, but in 2014, Russian forces invaded Crimea and currently occupy it. The area is now disputed between Ukraine and Russia – the Russians insist that Crimea deserves to be an independent entity while Ukraine demands to have it returned to their control. 



​Jur-Jur Water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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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kily, the dispute has not damaged the natural beauty of the region as you can see in the following photos.



Abandoned Soviet-era Submarine 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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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mean Mountains (Black Sea in the back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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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e Fiolent
Cape Fiolent is a place of beauty. The name "Fiolent" comes from the Italian word 'violento', meaning 'turbulent' or 'violent', referring to the turbulent waters of the cape during certain times of the year. But don't let it deter you, when the water is calm, it is a clear, azure color that mesmerizes onloo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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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ave in Mt. Ay-Pe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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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urch of Christ's Resurrection, Foros
Sitting on the edge of a cliff overlooking the village of Foros, the church is a favorite wedding venue. It was consecrated in 1892 and even the last Tsar of Russia prayed i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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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s over Khap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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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ly inhabitant of an abandoned farm near Sud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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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r sunset over Mt. Ai-Pe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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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ki-Kermen
This was a medieval underground city-stronghold in Crimea, built by the Byzantines in the fifth century, and eventually destroyed by the Mong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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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Gate Arch, Kara Dag reserve
The reserve was created in 1979 to protect the unique flora and fauna in the area, as well as the abundant precious stones - remnants of ancient volcanic eruptions from 150 million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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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 Fingers" above Lapsy 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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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zil-Kaya, overlooking the town of Ya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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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h-CoshCove
Known as the Crimean Grand Canyon, it hides many incredible secrets, one of which is considered to be a fountain of youth, called "Kara 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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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ter spout forming over the Black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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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Vladimir's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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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oese Fortress, Sudak
One of the most famous locations in Sudak is this Roman fortress, built in the sixth century by emperor Justinia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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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llows' Nest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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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Dag ("Black Mountain")
Kara Dag is a volcanic formation located in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Crimea peninsula. The area is rich in minerals and semi-precious st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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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ghthouse overlooking the Black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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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wn of Balaklava
balaclava is a tightly knit garment that covers the head and face (also known as a ski-mask). The garment got its name from this town, as it was commonly used during the freezing wi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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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view of the Jur-Jur waterfall
Known as the most powerful waterfall in Crimea, Jur-Jur waterfall is part of the Ulu-Uzen river, which spills from the Crimean mounta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