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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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방콕으로부터 서북쪽으로 115km에 칸차나부리 라는 도시가 있고 이곳을 흐르는
콰이강 위에 건설된 다리가 "콰이강의 다리" 이다.
이 다리가 유명세를 타고 꾸준히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57년작 영화 "Bridge on the River Kwai(콰이강의 다리)"의 역활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영화의 내용은 잘 알면서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일본군 군속으로
이 다리 건설에 참여했던 조선인 중 52명이 일본인으로서 전후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거나 후에 사면되었으나 불행한 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 가는 길-
** 콰이강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고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강력한 스피드 보트가
아니면 운행이 어렵다.
-스피드 보트로 콰이강을 역류하는 관광객들-
- 리버 콰이 리조텔(River Kwai resotel) 선착장-
**방콕에서 콰이강의 다리까지의 중간 지점에 하룻밤 묵어 갈 수있는 리조텔이 있는데 육로로도 들
어갈 수 있으나 스피드 보트로 깊은 계곡물을 역류하여 들어가는것이 더 운치가 있다.
- 리조텔 안내판-
** 계곡 맞은편 언덕위(표고 약 100m)에 조성된 대 단지의 리조텔은 외모로는 현대식 물건이 전혀 보이지 않는 완전 토속식의 리조트이다.
-클럽 하우스 내의 식당과 안내 데스크-
- 클럽 하우스 테라스-
-숲속에 지어진 방갈로우 들-
- 2층 짜리방갈로우-
**필자가 묵었던 연못 옆에있는 첫번째 2층짜리 숙소(안내판)는 단지내에 4채가 있다.
-숙소 내부-
** 샤워 시설이있다.
-단지 중앙 연못위에 있는 컨벤션 센터(?)-
-방갈로우 주변의 열대 식물들-
-도로가에 마련된 살아있는 신(?) 푸미 폰 국왕의 어진(?)을 모신 제단-
-콰이강의 다리 옆의 상점들-
** 이곳을 찾는 많은 서양인들 중에 상당수가 러시아 인들이라고 했다.
-콰이강과 철교-
-콰이강의 다리와 철도를 설명하는 모형 동판-
** 위의 모형은 이곳보다 조금 상류에 있는 원래 콰이강의 다리에 있는것을 설명을 위해 앞으로
내 놓은 것이다.
사판(모형) 오른 쪽 아래에 보이는 1번 위치에 Original "콰이강의 다리"가 있다.
이곳이 칸차나부리로 일본군의 본부와 베이스 캠프가 있었고 주변에 희생자들의 묘지가 있다.
다음 사진의 목조 철교는 오리지날 철교보다 약간 하류에 위치하지만
영화의 장면과 가장 비슷한 모양의 목조 철교라서 이곳을 찾는 것이다.
콰이강은 두개의 지류가 평행으로 흐르다가 칸차나부리에서 합류한다.
북쪽 콰이강은 콰이 야이(Kwai Yai)라고 부르고 남쪽 콰이강은
콰이 노이(Kwai Noi)라고 부른다.
콰이강의 다리는 콰이 야이 위에 건설되어있다.
-영화의 장면과 가장 비슷하다는 목조 철교-
-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등장하는 목조다리-
-영화의 한 장면을 화상하며 걸어볼 수 있는 목조 철교-
** 이 철교 주변에는 어떤 안내판이나 설명도 없다. 다만 상술이 이곳으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것이아닌가 생각된다.
"콰이강의 다리"가 촬영된 곳은 스리랑카의 암베푸사(Ambepussa)라는 곳을 포함하여 다섯 곳에서 촬영되었다.
- 목조 교각-
**암벽을 깎아내리며 난공사를 했던 곳이라 길은 없지만 필자는 굳이 교각까지 내려가 보았다.
-철교 옆 동굴 사원-
** 철교옆에는 깊지는 않으나 커다란 동굴이 있고 여기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의 다리-
-콰이강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바지선-
-콰이강의 다리 오른편의 수상 위락시설들-
-태극기 휘날리며,,,,,,,-
-동쪽(건너 쪽)에서 본 다리-
**연합군 포로들이 건설했던 다리는 영화에서 처럼 특공대원 윌리암 홀덴에 의해 폭파되는 것이
아니고 미군의 폭격기에 의해 폭파된다.
이 철교는 후에 미군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전범자 일본이 사용하던 다리 옆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 전시된 두대의 기관차 중 한대의 앞에는 "구형 C5 기관차 보존회" 라는 일본인 단체가
1977년 2월 7일 기증한다는 일본말 표지가 붙어있다.
-팽창주의 중국사람들의 흔적-
**철교 끝 왼쪽에는 화군비(華窘碑)라는 중국군대의 참전을 기념하는 비가 있다.
자그마한 오벨리스크 형태의 비석에는 "외로운 군인 영원히 잠들다(孤軍永睡)"라는 비문과
"중국 원정군의 전공이 하늘처럼 높다(中國遠征軍功高如天)라고 쓰여있다.
옆의 현수막에는 "중국원정군 전사자 영면" 이라는 글도 보인다.
2차대전 시 태국전선에 중국군이 참전했다는 것도 금시초문...
-철도공사에 한국인이 참여한 증거-
** 앞서 소개한 사판 오른편 상단에는 일본과 한국인 10.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되어있고
이중 상당한 한국인이 전후 전범자로 처형되거나 비참한 생을 마쳤지만 잊혀진 역사로
누구 하나 관심도없다.
명품이 거기 있었다면 당장 소문이 났겠지만....
중국, 일본 사람들과 한국인의 차이인가?
이 동판 옆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새긴 또 하나의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2차대전 중 약 700명의 미군포로는 태국과 버마로 이송되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고
태국--버마간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이들 중 질병, 영양실조, 과로, 그리고 육체적인 혹사로 사망한 356명의 장병을
특별히 기리고자한다.
-제5지구(태국) 해외 참전 미국 재향군인회-
-연합군 전몰 장병 묘지-
** 이 묘지에는 영국, 네델란드, 호주, 미국 등 6,982명이 묻혀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약자에겐 평화를 누릴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끝-
댓글 1개: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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