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흥서도 KBS 시청…전파 더 세게
● 北 대남방송은 1980년대 ‘나꼼수’
● 101연락소 3국, 네이버·다음 댓글 담당
● 김정은, 해외정보 수집 해커부대 창설
● 北 테러용 좀비 PC 40만 대 넘게 확보
그는 좌파에서 우파로 노선을 전환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으로 NL(민족해방) 계열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로 활동했다. 임수경 민주당 의원과는 서로 ‘태경아’ ‘수경아’라고 부르는 친구다. 1992년 박성희, 성용승 씨 밀입북에 관여해 옥살이를 했다. 북한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에 나섰을 즈음이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이 식량난에 시달릴 때 중국 지린(吉林)대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탈북자를 직접 만나 북한 실상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 6개월 동안 옌볜(延邊)에서 중국어를 익히면서 탈북자 수백 명을 인터뷰했고요.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가명으로 ‘신동아’에 기고한 적도 있습니다. 박사 공부하면서 주말마다 국경지역으로 달려갔습니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일부 486세대는 지금도 맹목적 반미, 종북(從北)을 진보라고 착각합니다. 독재 집단에 눈감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에요.”
7월 27일 정전 60주년을 맞았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어느덧 60년 세월이 지났다. 그는 “정전 후 남북 대립의 실체는 매체 간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남과 북이 다양한 매체를 내세워 말과 논리로 격렬한 전투를 지속해왔던 것이 정전 60년과 남북대립의 실질입니다.”
남북은 60년 동안 서로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여왔다. 군사학은 심리전을 “명백한 군사적 적대행위 없이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에게 심리적 자극과 압력을 줘 정치, 외교, 군사 면에서 아국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하 의원이 최근 남북이 치열하게 벌여온 심리전을 다룬 연구서를 펴냈다. ‘삐라에서 디도스까지 : 북한 사이버 테러의 현재와 미래.’ 1980~1990년대 운동권 시절의 실제 경험, 2005~2012년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얻은 정보와 취재 내용,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취득한 정보가 녹아들어가 있다.
“심리전과 관련한 책자가 전혀 없더군요. 2000년대 초 북한 공식 자료를 참조해 논문 쓰듯 정리한 내용에 개인적 경험,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획득한 정보, 국가정보원 및 통일부 등이 파악한 내용을 씨줄, 날줄로 엮어 책을 썼습니다.”
1980년대 북한은 한국에서 혁명을 유도하고자 ‘구국의 소리’를 비롯한 라디오 매체를 활용했다. 하 의원도 라디오 방송을 필사한 문서를 읽으면서 통일을 꿈꿨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미국 SNS 마이스페이스의 친북 계정에 게재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진.
“구국의 소리 주장대로라면 라디오 방송의 주체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라는 한국 내 전위조직이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라는 말로 방송을 끝냈기에 남한에서 방송하는 지하방송이라고 믿는 이도 많았죠. 납북자, 월북자를 이용해 서울말로 방송했습니다. ‘통영의 딸’ 구출운동으로 유명해진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 있을 때 ‘민영훈 교수’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진행했다더군요. 대남방송은 1980년대의 ‘나꼼수’였습니다. 나꼼수가 권력에 대한 조롱, 조소를 팟캐스트로 전달하면서 대중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대남방송은 국가권력을 비판하면서 행동 노선을 전파했죠. 당시 북한이 486세대 일부에게 전한 논리가 일종의 정서로 남아 있습니다. 1980년대의 추억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겁니다.”북한의 대남방송은 ‘파쇼하에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같은 구호를 내건 자생적 운동권 정파들의 과격함과 비교할 때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직선제로 개헌해야 한다’ ‘민주정부 수립하자’ 같은 슬로건은 정세에 매우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라디오 키즈(kids)들은 북한 방송에 환호했고요. 한국 뉴스에서 들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해줬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침투와 시장개방 압력을 비판하거나 지배계층의 비리, 부정축재를 고발했죠. 농어민, 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주체사상이 부지불식간에 학생들의 정신세계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거죠. 대남방송을 청취하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던 이들이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했습니다. 나중에는 재야운동권까지 접수했고요.”
김일성은 “남조선 혁명을 수행하려면 남조선 내부에 혁명적 당이 존재해야 한다”고 여겼다. 북한 당국이 지하당을 형성하는 핵심 수단으로 사용한 게 라디오였다. 통일전선부는 산하에 평양방송, 평양FM방송, 구국의 소리, 개성TV방송을 두고 대남 심리전을 진두지휘했다. KAL기 폭파 사건 때 “미국 CIA와 안기부의 음모다. 문제를 제기하라”고 행동 지침을 하달한 게 대표적이다.
“운동권 모두가 대남방송에 환호한 건 아닙니다. 총학생회 선거 때마다 민중민주(PD)의 소련식 사회주의자냐, NL의 북한식 사회주의냐를 두고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방송 내용을 필사해서 뿌린 걸 읽은 사람을 포함하면 NL 운동권의 70~80%가 대남방송을 접했어요. 임수경 의원 같은 이는 1980년대 다수 운동권의 영향을 받아 종북 성향이 부분적으로 있었지만 진성은 아니었어요. 일베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젊은 우파들이 임 의원을 막 몰아세우던데, 우리 기준으로는 그렇진 않아요. 임 의원은 대남방송을 듣고 조직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사상적으로 깊이가 얕았죠.”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수령론, 품성론 등 주체사상의 기본을 담아 작성한 팸플릿 ‘강철서신’은 1980년대 중반 대학 운동권에서 필독서로 통했다. 통일전선부는 라디오를 통해 김 연구위원과 접촉했다. “평양의 큰아버지가 서울의 조카에게 보낸다” 등의 코멘트가 나온 후 “17, 30, 46…” 식으로 숫자를 불렀다. 난수표 지령을 해독하는 책자를 가진 이들을 상대로 지령을 전달한 것. 김 연구위원은 “초기엔 학생운동을 중시하라, 조직을 굳건히 하라 등의 일반적 내용을 전했다. 1992년 선거 때 민중당을 지원하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내려왔다. 1차 북핵 위기 때인 1994년에는 전쟁 위험에 대비해 간부들은 피신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한 후 한민전의 10대 강령을 원용해 강령으로 삼은 한국 내 자생적 종북 조직의 대표적 사례가 ‘일심회’다. 2007년 대법원은 “주체사상을 신봉했으며, 북한 공작원을 만나 기밀을 보고했다”면서 일심회 구성원에게 징역 3~7년형을 선고했다. 다음은 일심회 조직원이 북한에 보고한 내용 중 한 대목이다.
“2005년 3월 17일 조직에서는 김○○ 동지를 통해 미제의 핵 잠수함 로스앤젤레스호가 남조선 진해항에 입항한다는 정보를 보고 받았습니다. 무기 탑재 여부 등에 대하여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무조건 폭로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정보를 취득해 사실 관계를 더욱 치밀하게 조사할 수 없는 관계로 단발성 기자회견을 우선 열기로 하고 3월 23일 녹색연합 명의로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위반 사항을 문제화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당시 녹색연합 내의 일부 의견은 조국이 핵 보유 선언을 한 조건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가 타당한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미제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한반도 핵 위협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문제이므로 무조건 강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조사 사업이 치밀하지 못해 남조선 국방부의 반박 성명에 대해 조직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 번 위대한 장군님의 영도 실현을 위해 한 목숨 바칠 것을 결의하며 이상으로 사업보고를 마칩니다. 그리운 조국의 동지들 부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일심회를 비롯한 한국의 자생적 주사파 조직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북한과 연결됐다. 2000년 12월부터 난수표 방송은 사라졌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라디오를 통해 지령을 내릴 필요가 없어져서다. 주사파의 추억이 깃든 구국의 소리는 2003년 3월 방송을 전면 중단한다. 라디오가 뉴미디어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김정일은 “남조선 혁명에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라”고 ‘말씀’했다. 북한은 김일성의 지시는 ‘교시’, 김정일의 지시는 ‘말씀’으로 칭한다. ‘김일성 교시’ ‘김정일 말씀’은 헌법 위에 군림한다. 교시, 말씀은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北, 2003년 대남방송 중단
통일전선부 산하에 101연락소, 813연락소, 310연락소, 26연락소가 있다. 이 네 연락소는 모두 대남공작 부서다. 101연락소는 심리전 전담 공작기구다. 산하에 5국을 두고 있다. 1국은 신문, 2국은 잡지, 3국은 인터넷, 4국은 음악, 5국은 문학을 담당한다. 3국이 네이버, 다음 등 한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남 심리전을 벌인다. 5국은 한국 작가 명의로 내부 선전용 체제 선전물을 만든다. 813연락소는 대남선전물을 출판한다. 제작된 출판물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재중조선인총연합회(재중총련) 등에 배포한다. 310연락소는 한국 내 친북단체인 것처럼 위장해 활동한다. 백두한라, 나라사랑실천연대 등의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것. 26연락소가 라디오를 통해 대남 심리전을 펼치던 곳인데, 지금은 ‘인터넷 연락소’로 개편됐다.
하태경 의원은 “공안당국이 적발한 해외 친북 사이트가 300개에 육박한다. 친북 사이트에 실린 글이 국내 종북 세력에 의해 신속하게 전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태경 의원이 직접 받은 휴대전화 해킹 문자메시지.
“연락소 명칭이 숫자인 것은 대남공작 부서이기 때문입니다. 드러내놓고 ‘대남공작소’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숫자는 김정일에게 설치를 허락받은 날을 뜻합니다. 예컨대 101연락소는 10월 1일 김정일이 결재한 겁니다. 26연락소가 구국의 소리 방송을 중단하고 인터넷 심리전 조직으로 바뀐 것은 라디오보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심리전 수단을 확대하고 있고요.”공안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운영하는 온라인 대남매체는 지난해에만 2만여 회에 달하는 대남 심리전 활동을 벌였다. 북한이 대남 심리전의 대표선수 격인 ‘우리민족끼리’를 개설한 것은 구국의 소리 방송을 중단한 다음 달인 2003년 4월. 이후 80여 개 플랫폼을 구축해 심리전 공격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에만 남측 당국 비방, 4대강 사업 비판, 서해 NLL(북방한계선) 무력화 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과 관련해 2만 건 넘는 선동 및 비방 글을 유포해 국내 여론을 왜곡하려 했다. ‘우리민족끼리’는 2010년 유튜브, 트위터, 플리커 계정도 개설했다. 2011년부터는 국내 SNS 서비스와의 연동에도 나섰다.
야당과 엇비슷한 北 주장
북한 공작기관은 국내외 연계세력과 함께 ‘맞장구치는’ 방식으로 북한의 주장이 담긴 글을 게재, 확산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정책을 비방하고 대북 우호 여론을 확산하는 게 주목적. 북한은 평상시에는 선군정치의 우월성, 김정은의 위대성 등 체제 선전 글을 주로 유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함 폭침,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 현안이 불거졌을 때는 국내 사이트와 SNS에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글을 집중 게재한다. 북한 공작기관이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글에 필명을 대거 동원해 댓글 달기를 조직적으로 실시하는 등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이다(신동아 2013년 4월호 ‘국정원女 사건으로 본 남북한 치열한 심리전 내막’ 제하 기사 참조).
하 의원의 설명은 이렇다.
“앞서 말한 통일전선부 산하 101연락소 3국에서 댓글팀을 운영합니다. 댓글팀 사무실에 노크를 하면 안에서 ‘들어오삼’이라는 말을 할 만큼 한국 네티즌들의 신조어를 사용하는 데도 능통하다고 해요. 네이버 다음 등에 여론조작을 위한 댓글을 답니다. 활동 목적은 친북 세력의 확장이겠죠. 통일전선부에서 일한 한 탈북자는 ‘댓글 요원들이 북핵이 남한을 위한 핵이라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고 증언했습니다. 북한 요원들은 인터넷 여론 조작에 활용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상당수 확보해놓고 있습니다. 요원 한 명당 평균 150여 개의 주민등록번호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정원은 북한의 이 같은 심리전에 대응하고자 2009년 대북 심리전단을 확대 개편했다. ‘국정원녀’ 김모 씨가 바로 이 조직 소속이다. 국정원은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대응해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한 반면 검찰은 정보기관이 불법으로 정치 및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봤다. 앞으로 법정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듯하다. ‘국정원녀’ 사건과 관련한 그의 견해는 이렇다.
“국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국정원의 방어 논리는 북한이 심리전을 벌이면서 남북문제뿐 아니라 4대강, 천안함, 원자력발전 등 남쪽의 이슈를 건드려 맞대응했다는 겁니다. 북한 공작기관이 건드리니까 우리도 했다는 건데, 국정원이 올린 댓글의 문구만 보면 정치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죠. 북한이 국내 정치나 한국 내 이슈와 관련해 주장하는 것은 사실 야당의 그것과 엇비슷합니다. 민간에 놔두면 자연스럽게 정화될 지엽적인 일에 개입한 측면도 커요. ‘김일성 동지 만세’ ‘핵 문제’ ‘남북 관계’에 대해서만 대응했어야 하는데….”
하 의원은 “스테가노그래피의 실체가 최초로 확인된 것은 2001년 검찰이 적발한 왕재산 사건”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왕재산 그룹은 스테가노그래피를 활용한 암호 기법을 사용해 북한 225국과 총 230회에 걸쳐 교신하며 북한의 지령문을 받고, 대북보고문 등을 북측에 전달했습니다. 그중 40회의 소통이 스테가노그래피로 이뤄졌고요. 스테가노그래피는 2001년 9·11 테러 때 빈 라덴과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한 방식입니다.”
북한은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상대로 한 사이버 테러에도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가 7월 31일 단독으로 보도한 ‘北정찰총국, 南에 좀비PC 11만 대 구축’ 제하 기사의 앞 대목을 읽어보자.
학생운동권 출신의 국내 정보기술(IT)업체 대표가 북한 정찰총국 간첩과 북한 해커에게 국내 전산망 서버 접속권한을 넘겨 국내외 개인용 컴퓨터(PC) 약 11만 대가 좀비 PC가 돼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북한이 좀비 PC 11만 대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이나 해킹 같은 사이버 테러를 감행했다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것이 공안당국의 분석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와 국가정보원은 중국에 있는 북한 해커가 국내 전산망에 악성바이러스를 유포시켜 좀비 PC 네트워크 ‘봇넷’을 구축할 수 있게 돕고, 정찰총국 소속 간첩과 접촉한 혐의 등(국가보안법상 편의제공, 회합·통신)으로 IT업체 A사 대표 김모 씨(50)의 회사와 자택, 서버 제공업체 2곳을 30일 압수수색했다.
“김정은 주도로 해커부대 설치”
우리 내부에서 열어준 문으로 북한의 ‘트로이 목마’가 침투한 셈이다. 하 의원은 “디도스 사이버 테러는 물론이고 GPS(위성위치정보시스템) 장애 역시 북한의 개성 인근에서 나온 방해 전파에 의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았나. 북한의 사이버 테러는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35개 사이트를 공격한 2009년 7·7디도스 공격, 70여 개국 746대의 공격 명령 서버를 이용해 40여 개 공공망을 공격한 2011년 3·4 디도스 공격, 2011년 4·12 농협전산망 공격, 올해 3월 25일 방송사 및 금융사 공격 등 북한발(發)로 추정되는 사이버 테러가 잇따라 발생했다.
“북한의 고위급 소식통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에 따르면 북한의 인터넷 심리전이 통일전선부 중심으로 이뤄지는 반면 사이버 테러는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산하 기관에서 주로 자행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사이버 부대 창설 때부터 김정은이 깊이 관여했다는 겁니다. 김정일과 고령의 장군들은 IT에는 무지했죠. 김정은의 한 측근인사가 ‘북한의 군사 전략상 사이버전쟁에서 우위에 서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페이퍼를 제출했고 김정은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김정은의 주도 아래 2009년 주변국들의 정치, 경제 전략 정보를 수집 분석하기 위한 4개의 해커부대가 조직됐습니다. 한국팀, 미국-일본팀, 중국-러시아팀, 동남아시아팀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디지털 강국인 터라 공격당할 곳이 많아요. 반대로 북한은 인터넷망이 존재하지 않죠. 공격할 곳이 없는 셈입니다. 사이버 부대는 북한이 가진 ‘비대칭 전력’인 거죠. 고위급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사이버 테러 부대는 벌써부터 디도스 공격에 쓸 좀비PC를 한국에 40만 대 넘게 확보했습니다.”
“AM 주파수 대북방송에 할당을”
심리전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보다 북한이 더 크다는 분석도 많다. 심리전을 통해 김정은 집단을 주민과 분리해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올 2월까지 고위 안보 당국자로 일한 A씨는 “대북 심리전은 북한의 사상적 방화벽에 구멍을 뚫는, 우리가 가진 비대칭 무기”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독자 핵개발, 미군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는데 현실성 없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에겐 핵 못지않은 비대칭 무기가 있다. 북한이 가장 겁내는 게 심리전이다. 핵으로도 막지 못하는 바이러스다. 북한 체제의 취약점은 ‘진실’이다. 북한 정권은 세계로부터 주민을 격리해 체제를 지켜왔다. 외부 세계의 진실, 내부의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핵으로 막지 못한다. 그것을 막을 백신이 없다.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북한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전을 많이 구사했다. 현재 신의주 라인(신의주~함흥·북위 40도)까지 북한 주민이 한국의 대북방송을 TV로 시청할 수 있다. 수신이 잘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북한 주민이 공중파로 우리 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라디오의 경우 과거엔 주파수가 고정돼 있었지만, 요즘엔 장마당에서 중국산 라디오가 팔린다. 한국 콘텐츠가 담긴 USB, DVD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하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열린북한방송을 통해 대북 심리전을 수행했다. 민주주의진흥재단(NED), 국경없는기자회(RSF) 등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
“수년 전 탈북자 상대로 샘플 조사를 했더니 12%가 열린북한방송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북한 인구 2000만 명(북한 인구는 2300만 명으로 추산된다)의 12%면 240만 명입니다. 탈북자가 특수하다는 점을 고려해 반으로 줄이더라도 120만 명이에요. 중국 단파 라디오가 북한에 돌아다니죠. 그 사람들도 외부 소식이 궁금하니까. 한국처럼 영토가 좁으면 단파가 필요 없어요. AM, FM으로 커버하니까. 중국은 땅덩어리가 커서 단파방송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송출하는 단파방송이 1980년대 북한의 대남방송이 그랬듯 북한 주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회의원이 된 후 그는 열린북한방송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우리도 북한 방송 개방해야”
“1970~19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이들은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기억할 겁니다. 북한은 더 이상 삐라를 보내지 않습니다. 삐라를 많이 수거한 사람을 표창하던 제도 역시 2007년 폐지됐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민간인들이 삐라를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과 외부 세계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죠. 북한 당국은 삐라 수거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화학물질이 묻었으니 만지지 말고 신고하라, 반드시 장갑을 끼고 나와라, 전단과 함께 담겨 있는 사탕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몸에서 이상이 생기면 반드시 알려라’고 교육합니다.
삐라가 이 정도일진대 라디오의 영향력은 훨씬 더 큽니다. 한국에서 잘 듣지 않는 AM 주파수의 일부를 대북방송으로 돌려야 해요. 비공식적으로 국경지방을 통해 한국 영화, 드라마나 외부 소식이 담긴 USB, DVD, CD를 북한에 대량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한류나 외부 소식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럴 때 공급을 늘려줘야 합니다. 해안가 쪽으로는 현재 함흥까지 KBS 전파가 미칩니다. 평양에서도 고층아파트에서 한국 TV를 볼 수 있고요. 북한 전역에서 한국 TV를 볼 수 있게끔 더 강한 전파를 쏴야 합니다.”
그는 북한 매체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이 보수진영과 나의 차이점인 것 같은데, 북한 TV 방송을 비롯해 언론매체를 누구나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민족끼리’ 이런 것도 다 열어야 해요. 대신 우리가 방송 등을 이용해 더 세게 심리전을 하면 됩니다. 김정은은 아버지와 다르게 직접 네이버에 들어와 한국 뉴스를 볼 겁니다. ‘벌초’ 운운하는 북한의 반응을 보면 김정일 시대와 다르게 즉각적입니다. 김정은처럼 북한 주민들이 드라마, 영화를 넘어 1980년대 북한의 대남방송이 그랬듯 시사적인 것을 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하면 북한과 국내 일부 세력이 반발할 겁니다. 반발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북한 매체를 개방해버리는 겁니다. ‘일베’ 같은 극단적인 사이트가 생긴 게 전염균 자체가 들어오지 않아섭니다. 부작용을 걱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북한 방송을 접하면 오히려 제대로 된 안보의식이 생길 겁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동아일보 20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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