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9일 토요일
인구 2600만 상하이 봉쇄…수십만 아사한 1948년 창춘의 기억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26회>
봉쇄와 박멸...1948년 창춘 봉쇄, 1958년 20억마리 참새 대학살 떠올라
지난 4월 5일 국제 금융 허브 상하이 지역의 전면 봉쇄가 무기한 연장되면서 세계의 촉각이 다시금 중국에 쏠리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위드(with) 코비드” 정책으로 돌아섰는데, 중국은 “제로(zero) 코비드”를 외치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다수 국가에선 의학적 상식에 따라 결국 바이러스와의 불편한 공존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중국은 강력한 봉쇄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상하이 지역에서 2600만에 달하는 거주민들이 모두 집안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보이지 않는 인민의 적 “코비드-19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세계 최대의 대도시를 통째로 봉쇄하는 중국공산당의 전격 방역 작전은 중국 현대사의 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국공내전(1946-1949)이 절정이던 1948년 5월부터 5개월간 지린성 창춘(長春)시를 완벽하게 봉쇄해서 10만의 국민당군을 굴복시키고 수십만 양민까지 아사시켰던 공산당군 사령관 린뱌오(林彪, 1906-1971)의 현대판 공성전(攻城戰)과 1958년 중국 전역에서 전 인민을 동원해서 20억 마리의 참새를 박멸했다는 “참새 대학살 촌극”이다. (송재윤, <<슬픈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 참고)
중공 중앙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진정 전 중국을 무균지대로 만들겠다는 발상인가? 설사 중국 전역이 일시적으로 무균지대가 된다 한들 과연 며칠, 아니 몇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대체 이 활달한 전(全) 지구화의 시대에 중국은 국제사회를 향한 “개혁개방”의 문호를 다시 걸어 잠글 수 있나? 이후 신종 바이러스가 엄습할 때마다 대규모 봉쇄령을 내릴 작정인가? 상식적으로 방외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역시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1950년대 이래 중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시진핑 “코로나와 투쟁은 인민 전쟁 총체전”...관제 언론, 연일 방역 칭송
1949년 건국 이래 중국공산당은 끊임없이 적인(敵人, 인민의 적)을 색출해 박멸하는 정치운동이나 대규모 국책 사업에 전(全) 인민을 불러내는 총동원령을 발동시켜왔다. 인민 총동원령의 최고조는 최대 4500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대약진운동(1958-1962)과 “1억1천 3백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는 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표출되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1950-60년대와 같은 인민 총동원의 정치운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음에도, 중공 중앙은 틈만 나면 다양한 형식의 정치운동을 쉴 새 없이 벌여왔다.
2020년 이래 시진핑 총서기는 코비드-19와의 투쟁을 “인민 전쟁 총체전”이라 부르고 있다. 중국 현대사에서 “인민 전쟁”이란 전면적 위기의 타개책으로 전 인민을 일사불란하게 총동원하는 전시의 비상 전략을 의미한다. 시진핑 정권은 바이러스에 대항한 “인민 전쟁”의 대의(大義)를 내걸고 “동태청령(動態淸零)”의 전술을 취해왔다. “동태청령”이란 역동적으로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검사하고, 감염사례를 추적하고, 감염자를 격리하는 방법으로 깨끗이 박멸하고 청소해서 급기야 제로 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지난 2년 동안 중국공산당 기관지들은 날마다 “동태청령”의 정책이 놀라운 성과를 냈다며 중국식 방역 성공을 칭송해왔다. 중국 측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코비드-19 확진자의 누적 집계는 30만 명도 못 미치며, 그중 사망자의 총수는 4638명에 그친다. 물론 중국 측의 수치는 객관적으로 국제적 공신력이 없을뿐더러 대규모 봉쇄에 따르는 사회·경제적 피해와 인권 침해는 전면 배제된 정치선전용 통계에 불과하다.
단적인 예로 2021년 중국의 사망률은 1천 명당 7.18명으로 2000년 이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2020년에 비해 2021년 16만 명이 더 많이 사망했다.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봉쇄령 때문에 기저질환자의 병원 내방이 어려워지고, 응급 치료의 실패나 의료 방치의 사례도 늘어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인민 전쟁”이 설혹 바이러스의 확산세를 둔화시켰다 해도,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음을 보여 준다.
중앙정부서 지방 농촌까지 486만개 공산당 기층조직을 가진 나라
제로-코비드 방역은 오직 중국과 같은 강력한 전체주의적 일당독재의 국가에서만 실행될 수 있는 전면 통제(total control)의 극단적 방법이다. 현재 세계에서 그 어떤 나라도 제로-코비드 방역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은 단 한 마디의 행정명령으로 수천만의 시민들을 가택 연금 상태로 묶어놓은 후 군사작전 펼치듯 순식간에 감염자를 색출해내는 ‘빅브라더’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갖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략 일곱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공산당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농촌 마을에 이르기까지 무려 486만여 개의 공산당 기층조직을 잘 갖춘 탄탄한 레닌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둘째, 전체의 이익과 공동선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집단주의 문화가 중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다수 중국 인민은 이미 70여 년 동안 당과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습되어 왔기 때문이다.
넷째, 정보기술 혁명의 결과 중국공산당은 최첨단의 디지털 장치를 활용하여 대민 감시와 통제의 능력을 극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중국은 오늘도 강력한 법적제재를 통해 반대자를 억압하고 비판세력을 탄압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정부가 공적 매체를 독점한 결과 비판적 언론의 자유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오늘날 중국의 헌법 체계가 이상 모든 것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의 통치 수단이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으로 오늘날 중국공산당의 권력을 설명하기 위해선 1978년 민주장(民主牆) 운동에서 1989년 톈안먼 대학살까지 “개혁개방” 초기 10년의 세월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그 시절 민주화 운동의 처참한 실패가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는 중국의 기본 체제”...1980년 짧지만 강렬했던 사상의 해빙기
이미 살펴봤듯 덩샤오핑은 1980년 8월 18일 강화문 “당과 국가의 영도제도(지도 체제) 개혁”에서 과감하게 권력 집중을 비판하면서 당정 분리의 당위를 설파했다. 덩샤오핑이 화두를 던지자 중공 중앙의 이론가들은 본격적으로 민주 담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중앙당교 총장을 역임하다가 1980년 중앙서기처의 총서기에 부임한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이 전면에 나섰다. 1980년 10월 14일 연설에서 후야오방은 “민주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며, 우리나라의 기본 체제”라는 과감한 테제를 던졌다.
<중앙서기처의 총서기에 부임한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 사진/공공부문>
<중앙서기처의 총서기에 부임한 후야오방(胡耀邦, 1915-1989). 사진/공공부문>
개혁개방 초기 후야오방은 덩샤오핑의 오른팔이었다. 그는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주석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9월에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그 지위가 격상되었다. 이후 그는 중공 중앙의 보수파들에 맞서서 시장경제의 과감한 도입과 정치 개혁을 주도했고, 그 결과 1987년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배후로 지목되어 총서기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이 서거한 후, 4월 22일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5만여 명의 학생들이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요컨대 후야오방은 1980년대 중국 민주화 운동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개혁파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후야오방이 덩샤오핑의 화두를 받아서 민주 담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자 중공중앙의 이론가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다. 그들 중 다수는 1950년대부터 중공중앙의 사상·문화·이념을 담당했던 이론가들이었다. 표면상 그들은 마르크시즘을 깊이 연구한 사회주의자들이었지만, 개혁개방의 정국에서 해빙의 시기가 왔을 땐 기다렸다는 듯 열성적으로 자유와 권리, 권력분립, 민주의 가치 등을 논하기 시작했다.
1980년 10월 말, 중공 중앙 당사(黨史) 연구실 부주임 류가이룽(廖盖隆, 1918-2001)은 공개적으로 언론의 자유, 개인의 기본권, 입법부의 독립, 정부 내 견제와 균형, 노동조합의 독립성까지 강조했다. 또한 지금까지도 중공중앙 정치국의 시녀에 불과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양원제의 입법기구로 재편하는 파격적인 개혁안도 제출했다.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답습하기보다는 문혁의 극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민주의 가치를 역설했던 자생적 민주주의자였다.
<1980년 2월, 산시(山西)성 한 농촌 마을에서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사진/Wang Yue>
이때쯤 중공 중앙의 학술지에 민주 관련 논문들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이 최고의 가치로 선양했던 레닌의 “민주집중제”를 비판하는 논문도 있었다. 가령 1980년 10월 <<철학연구>>에 실린 논문 “민주는 수단이며 목적이다”에서 후즈차오(卢之超, 1933- )는 레닌의 “민주집중제”는 민주주의를 권력 집중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결국 전제주의로 귀결되고 만다는 파격적인 논변을 개진했다.
만주족 출신의 탁월한 헌법학자 위하오청(于浩成, 1925-2015)은 문혁 시절 친청 감옥에 수감되어 3년 넘게 독방에서 혹사당했던 반골의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1978년에야 사면·복권되었고, 이후 군중출판사의 편집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이미 1950년대부터 마오쩌둥의 전제적 통치와 중국공산당의 반민주성에 비판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20년 훨씬 지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적 장치에 관해 논할 수 있었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독립 언론의 창간을 요구했다. 그는 주요 언론이 모두 당에 장악된 현실을 개탄하면서 “독점이 종식되지 않고선 자유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그는 1989년 톈안먼 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당적을 박탈당했다.
이들 외에도 톈안먼 대학살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서 투쟁을 이어갔던 난징대학 교수 출신의 궈뤄지(郭羅基, 1932- )와 언론인이자 철학자 왕뤄쉐이(王若水, 1926-2002) 역시 1980년 이래 맹활약을 펼쳐지는데, 이 두 사람의 빛나는 투쟁에 대해선 앞으로 차차 다루기로 한다.
1980년 짧지만 강렬했던 사상의 해빙기에 민주, 언론 독립, 자유와 권리, 삼권분립, 입헌주의를 주장했던 중공중앙의 이론가들은 이후 10년의 세월을 거쳐 목숨을 건 저항과 투쟁의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 오늘날 중국을 지배하는 일당독재의 레닌주의 국가는 바로 그들의 육성을 억누르고 굴러가는 반민주적 일당독재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계속>
#송재윤의 슬픈 중국
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전국교수모임 "文정부, 약탈적 진영정치… 부패특권층 전락"
◇다음은 정교모의 3차 시국선언서 전문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제3차 시국선언
- 8.15 헌법수호·국민주권회복·신문명합류 선언 -
2020년 8월 15일 건국 72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헌법의 수호와 자유·진실·정의 가치의 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이하 정교모)의 6200 회원은 우국충정의 비장한 심경으로 제3차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우리는 이미 제1차 시국선언(2019.9.19)에서 비리·범죄 혐의자 조국에 대한 장관임명 반대선언으로 시민의 승리를 이끌었고, 제2차 시국선언(2020.1.15)에서 경제·외교·안보 파탄으로 인한 체제위기를 확인하였으며, 이어 3.1운동 101주년을 기한 자유대한민국 제2 독립선언(2020.3.1.)을 통해 자유수호 시민운동을 진작한 바 있다.
이제 우리 정교모는 국가위기와 체제파괴의 암울한 상황에 처하여, 다시 문재인 정권이 행한 반(反)주권·반헌법·반문명의 폭정을 고발하는 한편, 대한민국 국민의 주권회복과 헌법수호·신문명 합류의 시대적 대의와 그에 대한 우리의 신성하고도 절실한 책무를 자각하여, 아래와 같이 국내외 모든 국민과 우방 앞에 선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였으나, 문재인정권 아래에서 대한민국은 더 많은 자유, 더 고른 평등, 더 높은 번영의 유토피아 대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짓과 선동·독재와 무능·부패의 나라”인 비정상·반문명의 문(文)디스토피아로 전락하고 있다.
문재인정권은 출범과 함께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밝히면서 ‘주권자 민주주의’와 ‘생성적 권력’이라는 개념을 창안·표명한 바 있는데, 이는 위임받은 권한을 넘어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 내며, 그 권력을 자기 세력 기반 확대로 쓰겠다는 이른바 총통제(수령제)로의 이행을 선포한 것이다. ‘생성적 권력’이 통치하는 ‘주권자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적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초(超)국가주의 전체주의의 수사적 변용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은 대한민국의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으로 결정되었고, 헌법 수호의 선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성적 권력’이라는 초헌법적 관념을 통해 자유대한민국의 입헌적 정당성(legitimacy)을 스스로 내팽겨쳤다. 지난 3년 3개월 간 문재인은 그 관념대로 대한민국 헌법 위에 군림하고 행정부를 청와대 참모진의 시녀로 만들었으며 삼권분립의 법치를 무시하는 ‘유사전체주의’ 폭정을 행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는 마비되었고, 이로 인해 국민의 자유와 주권은 철저히 유린되어왔다.
이리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문재인의 유사전체주의 이념독재 아래에 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당과 행정부 등 집권세력이 사법·언론·노동·교육·문화·지역을 망라하는 이른바 ‘진보’세력 진지와 함께 반자유·반법치의 기득권카르텔을 맺어 ‘약탈적 진영정치’를 구축하였고, 음모와 선동으로 대중을 폭민화시켜 범죄적 이익을 독점하고 부패를 자행하는 방패막이로 삼았다. 우리는 그들이 천박한 ‘부패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공정과 법치가 실질적으로 종식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문재인정권의 ‘약탈적 진영정치’는 이념편향의 세뇌교육과 분열적 사회정책의 남발로 이어졌다. 전교조는 이념편향 교육으로 청소년세대의 역사 및 사회 의식을 왜곡해오고 있으며 중등교육을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표밭 가꾸기 현장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강요 사태에서 드러난 선택적 정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부동산 정책의 난맥상은 미래 세대의 권리와 자존감마저 짓밟았다. 한편 집권 고위층의 성범죄가 연쇄적으로 발생했지만, 문재인과 586세력은 지지층을 동원하여 이를 오히려 축소하거나 미화하는 위선과 선동의 작태를 보였다. 의료계의 현실을 무시한 공급확대 정책은 공공의료 체계를 붕괴시키고 보건재정상황의 파탄과 첨단의료시대의 심각한 수급불균형을 자초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이념적 패권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미래세대의 권익을 편취하고 사회・경제 체제를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위선적이며 전체주의적 ‘부패특권층’으로 전락하였다.
우리는 문재인정권이 불법적으로 감행한 공수처법의 통과, 사법부와 검찰의 시녀화, 국회의 ‘통법부화’에 의해 삼권분립에 입각한 입헌주의와 다원적 민주주의가 빈사(瀕死)의 상태에 빠졌음을 통탄한다. 21대 국회 상임위 구성에서의 협치의 말살, 절차의 무시 등 의회의 대정부 견제기능을 마비시켜 주권자인 국민의 공분(公憤)을 일으키고 차별금지법·역사왜곡금지법 등 반민주적 법률안을 남발, 강행을 예고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살해하고 있다. 아울러 공수처법 등 국가 사법질서의 근간이 되는 법률의 위헌성에 대한 판단도 미루고 있는 헌법재판관들은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문재인정파와 586NL주사파의 연합정권이, 국내적으로 반 자유대한민국 종북(從北)·종중(從中)정책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북한 세습 전체주의 및 중국 디지털 전체주의 반동과 결합함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 중국·북한·한국의 전체주의 삼각체제 구축을 도모하려는 것을 고발한다. 최근 미국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전체주의 도발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규정했듯이, 문재인정권의 친 전체주의 정책은 안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밖으로는 미국과의 가치동맹을 허물려는 ‘역사적 범죄’임을 경고한다. 호혜적 주권, 보편적 인권, 자유 시장을 재정비한 21세기 신문명 국가들은 디지털 전체주의 중국의 패권적 도발을 물리칠 것이며, 우리 또한 결코 반동적인 친 전체주의 행로로써 반문명적 야만·암흑의 노예사회로 전락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21세기 신문명 세계의 일원으로 ‘문명의 최전선’을 지켜내고 ‘자유의 파도’가 되어 북한을 해방하고 중국 공산당의 패권주의를 붕괴시켜 ‘동아시아 자유화’의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
이상과 같이 정교모 회원 일동은 자유대한민국 주권자 국민 모두와 함께 문재인정권의 반헌법·반주권·반문명적 폭정을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범죄’로 규정하며, 자유민주헌정의 수호와 국민 및 국가 주권의 회복 그리고 신문명에의 합류와 번영의 지속을 위해 변함없이 진실과 정의의 투쟁에 선봉이 될 것임을 재확인하면서, 아래와 같이 다짐한다.
하나. 문재인 유사전체주의 독재에 맞서 대한민국 자유민주진영의 대동단결에 앞장서고, 자유·진실·정의의 투쟁을 선도할 것이다. 분열과 무기력에 가라앉은 야당을 질책하고 독려하여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을 회복하는데 협력할 것이며, 다양한 자유시민운동에 동참하고 후원하여 위선적 좌파 진지의 격파를 견인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 사회의 책임 있는 기성 지식인 집단으로서 위선 계급이 교묘하게 부러뜨린 학생・청년 등 다음 세대의 사다리를 다시 세우며, 이들이 세대융화와국가 및 세계 발전에 기여할 내일의 창조적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켜 줌으로써 우리의 보람을 미래세대와 함께 찾을 것이다.
하나, 4.15총선의 불법·부정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고 대규모 법정소송이 제기된 상황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적 의혹해소의무를 회피하고 있고, 대법원은 선택적인 증거보전 인용과 재검표의 무한지연 등으로 헌법기관으로서의 고귀한 권위를 저버린 채 스스로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 두 기관은 즉시 그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4.15 총선 부정에 대한 국민적 의혹 제기와 관련하여, 이미 드러난 불법사실은 물론 선거부정행위의 전모를 자유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추적하여 범죄자와 직무유기자들을 법치주의와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세울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주권과 공명선거의 원칙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민주국가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데 앞장 설 것이다.
하나. 문재인정권의 헌법파괴와 입법독재, 사회체제변혁을 저지하기 위해 가칭 ‘국민소추기록원’을 설치하여 공수처법·준연동형 비례대표제선거법 등 명백한 헌법파괴적 법령을 비롯하여 금후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쏟아 놓을 각종 제도의 발안자들과 그 집행자들에 대하여 위헌적 죄상과 직무유기 등의 책임을 찾고 기록하여, 장차 역사는 물론 현실의 법정 심판대에 세울 증거를 확보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책임에는 헌법상의 소급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음을 천명한다. 그 죄과와 책임이 엄중한 것은 정교모 내에 설치될 ‘국민위헌심판원’을 통해 위헌성과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고 공론을 진작하여 국민의 주권과 기본권을 보호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하나. 우리는 의로운 공직자들, 영혼이 살아있는 관료들과 함께할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모든 공직자와 국민들에게 요청한다. “모든 공직 업무는 투명·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소수의 유사전체주의 혜택을 받는 자들의 이권 통로로서 공직이 쓰여서는 안 된다. 위헌적·불법적인 모든 지시는 거부하고, 서면으로 행하여지지 않는 지시에는 따르지 말라. 모든 지시는 기록하고, 근거를 명확히 남겨두어 후일 국민들에 의한 소추에 대비하라.” 그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국가 공직자는 이 처절한 암흑의 시기에서 취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며, 우리 정교모는 국민과 함께 그날을 철저하게 대비할 것이다.
2020년 8월 15일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출처 : http://news.chosun.com
2020년 8월 6일 목요일
[이인호 칼럼] 반역인가 무지인가?
일제로부터의 해방 75주년, 대한민국 건국 72주년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이제 여드레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르고 감사의 묵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정치권력은 이미 우리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새로 독립국가로 출범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기념하기는 고사하고 그 역사적 사실과 함께 자유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실체를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세력에게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북한주민들 앞에서 자기를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남측 대통령’이라 불렀고 북한이 마치 자기 나라 인 듯 착각하는 듯한 그의 골수 측근들이 이제 행정부는 물론 입법, 사법까지 3부를 모두 독점했다. 국정원, 검찰, 경찰, 군대 등 권력기구 모두를 정권의 하수인으로 길 드리고 있는데 이 나라가 건재한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이미 ‘촛불혁명’으로 자유민주 공화국으로서의 국가적 기반을 파괴당한 것인데 70년간 굴러온 관성 때문에 이직까지도 국민은 그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듯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주권자로서 법 앞에 평등을 누리는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우대 대상으로 지정하는 집단이나 개인들 만이 법의 단속도 받지 않을 수 있는 특권층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들 집단이 자의적으로 만들어 내는 지령과 변덕스런 해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피지배집단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법을 마구 무시해도 상관없는 선거는 이제 요식행위에 불과하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이미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며 대응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함을 넘쳐 공포심까지 자아내는 정치, 문화, 사회 현상들을 결코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숨쉬기 조차 어렵게 바짝 조여오는 불안과 압박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은 물론이다.
70년 넘게 피와 땀으로 쌓아온 민주주의의 토대가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지는 원인이 이전의 반체제, 현재의 집권세력의 반역인가 무지인가? 아마도 그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목매게 외쳤지만 민주주의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현실적 뒷 바침이 필요한가, 어떨 때 그것이 실패하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선망뿐인 몰이해에 더해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권력에 대한 욕구를 오래 억제 당해 왔던 사람들 특유의 탐욕과 증오, 그리고 자기기만으로 까지 치닫는 도덕적 선민의식과 오만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자기는 오랫동안 약자와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주장은 모두 옳은 것일 수 밖에 없고 자기의 행동은 항상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일종의 역선민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소위 “진보” 이념이란 100년도 더 넘게 낡았고 이미 역사의 심판에서 판정패를 받은 레닌주의적 혁명이론의 훨씬 더 거친 아류에 불과하다. 조금만 역사와 현실정치에 관해 공부를 했으면 그런 이념을 현실에 옮기려 했던 시도들이 어떻게 철저하게 실패했는가를 알고 더구나 그 세력 내에서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종말은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실로 옮겨진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란 정치경제 도덕 모든 면에서 파탄을 맞게 된다는 것은 러시아나 동유럽, 쿠바 등 사례를 통해 역사가 거듭 증명하고도 남으며 인기영합주의의 위험은 남미에서 특히 두드러진 사례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집권 3년차부터는 이미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파격적인 이른바 친서민 정책의 역효과가 애꿎은 서민층의 곤욕으로 들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친북, 친중, 친 서민적 인기영합주의란 결국 권력갈취와 독점을 위한 수단일 뿐 어떤 심오한 정치철학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 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우며 정 정권 실세들에 대해 가혹한 토벌행위를 자행했던 신 정권이 각종의 심각한 정치, 경제 관련 부정에 휘말리면서 도덕적 권위는 급속히 실추되었다. 특히 조국과 윤미향 사건, 그에 뒤이어 자살한 박원순 시장에 대한 서울특별시장 집행 등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서민층에게 까지도 이 정권의 반역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런 모든 일을 겪고도 4.15 선거에서 문재인 세력은 압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이었다. 선거부정 가능성을 열어둔다 하더라도 국민이 단호하게 부정적 심판을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 몰락의 단서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과 연결되어 있는 반 대한민국 세력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통한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철주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사실 목숨 밖에 잃을 것이 없다는 결기로 뛰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상적 좌우 대립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반대한민국적 체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국민가운데 극히 소수일 수 밖에 없었다. 기대치를 넘은 빠른 경제성장의 성과는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의 흔적마저 지울 수 있을 듯 했다. 더구나 유럽과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은 북한에 대해 판정승을 거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몰락의 시작이 될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이기주의와 안일함, 정신적 나태와 비굴함은 반체제 좌익 세력의 탐욕과 분노와 무지 못지 않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헛개비처럼 무너져 내리는데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현 세대는 그 들의 선대들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자유와 안정과 부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소중하다함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를 지키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식도 없었다. 대한민국 독립과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독재자”, 심지어는 “친일파”로 몰아도,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 한다 해도, “제헌절”을 국경일에서 제외한다 해도 어떤 반국가적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은가를 의심 할 줄 몰랐고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는 마치 평화통일이나 서민의 권익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다는 체제인양 좌파의 “민중, 민주, 민주, 평화” 의 구호 앞에 주눅이 들어 뒷거름 치기를 거듭했고 심지어는 인류보편의 인도주의, 민주주의 가치들이 소위 “진보” 좌파의 선동적 구호 앞에서 마구 짓밟혀도 제어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며 변화에 적응 못하는 존재는 모두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원칙들도 있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법칙들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나라가 그렇지 않은 개인이나 사회보다는 더 번영하고 또 열심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우리 문재인 정권의 경제사회 정책에서는 그 원칙이 배격 당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하여 제대로 된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한 사람은 죄인취급을 받는다. 국가 보조금을 받는 것, 곧 남의 노력덕분에 내가 혜택을 받는 일이 고마워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당연한 권리요 자랑으로 여기는 풍조가 복지국가정책이라는 미명아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팽배해 가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 할 수 있을까. 주택정책의 실패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드디어 반정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당장 느낄 수 있는 경제적 권익 문제뿐 아니라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여객선 침몰사고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추모에 소모되는 국민의 혈세가 전사한 국군장병들을 위해 쓰이는 예산과 비교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러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평화롭게 이루어 지는 나라에서 대중시위로 대통령을 몰아내는 일이 참여 “민주주의”로 포장되어도, 대통령이 자기의 조수격이었던 여자와 “경제공동체”를 이룬다는 기상천외의 법이론이 나와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항의를 하지 않았고 드디어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돌아갈 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사람이 그 “공로”로 국회의원이 되어도 속수 무책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나 경제만이 아니다. 이성적 사고의 능력, 도덕적 판단의 기준, 사회 기강, 국민 의식, 민족적 자긍심이 모두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이 집권세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이 무엇보다도 큰 비극이다. 죽음 앞에 사람은 모두가 평등해지고 죽은 자 앞에서 산 자는 무한히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고 박원순 시장의 불의의 사망에 대해 애도하고 가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자살을 한 사람을 위해 명예장례식을 치뤄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게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동서고금 거의 모든 문화권이 자살을 죄악시 하는 데 우리는 자살을 격려하는 듯한 관행으로 지금 치닫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살이 단순히 자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살을 당했다”는 표현까지 돌고 있는 마당에서 저명인들의 자살을 부검도 없이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좌우, 여야 구분을 떠나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자살한 서울시장에 대한 처우와 대조되는 것이 고 백선엽장군에 대한 홀대이다. 6.25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국립묘지를 만드는데 주역을 한 인물을 청년기에 일본군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아, 심지어는 어떤 여 교수처럼 우리민족을 향해 총을 쏘았다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모시기에 부적절하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다면 어떤 궤변도 어떤 거짓도 횡포도 통용될 수 있다. 설사 일제치하 20대 초반의 우리 청년이 우리독립군과 싸우는 부대에 편입되었던 일이 있었다 가정하더라도 그는 평생 친일파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는가? 운동권 학생이 반체제 시위로 처벌받은 일이 있었다 해서 그가 평생 반역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합리적, 도적적 사유가 결여되면 결국 결국 대화는 통하지 않고 폭력 밖에 기댈 곳이 없어지는 사회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까지 오는 것을 미리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현 집권세력뿐 아니라 이제 정치권력은 완전히 상실했지만 사회적 책임은 면제 받을 수는 없는 대한민국 기득권세력에게도 있지 않은가 한다. 스스로 반성해서 뒤늦게나마 속죄하는 의미에서 사태를 바로 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기회주의자로 처신하다가 반성을 강요 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비극의 규모는 그 만큼 더 커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73주년 광복절을 맞으면서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번영을 위해 혼신투구 하셨던 선열들 앞에서 아무리 깊히 고개를 숙여 사죄해도 모자라는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이념적 토대가 건실했고 그 때문에 잘 나가던 나라를 지켜내기 조차 못하는 못난 후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것을 간절히 빌어야 할 것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 펜앤드마이크 출처 명기한 전재 및 재배포는 환영합니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주권자로서 법 앞에 평등을 누리는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우대 대상으로 지정하는 집단이나 개인들 만이 법의 단속도 받지 않을 수 있는 특권층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들 집단이 자의적으로 만들어 내는 지령과 변덕스런 해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피지배집단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법을 마구 무시해도 상관없는 선거는 이제 요식행위에 불과하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이미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며 대응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괴함을 넘쳐 공포심까지 자아내는 정치, 문화, 사회 현상들을 결코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숨쉬기 조차 어렵게 바짝 조여오는 불안과 압박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은 물론이다.
70년 넘게 피와 땀으로 쌓아온 민주주의의 토대가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지는 원인이 이전의 반체제, 현재의 집권세력의 반역인가 무지인가? 아마도 그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목매게 외쳤지만 민주주의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현실적 뒷 바침이 필요한가, 어떨 때 그것이 실패하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선망뿐인 몰이해에 더해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권력에 대한 욕구를 오래 억제 당해 왔던 사람들 특유의 탐욕과 증오, 그리고 자기기만으로 까지 치닫는 도덕적 선민의식과 오만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자기는 오랫동안 약자와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주장은 모두 옳은 것일 수 밖에 없고 자기의 행동은 항상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일종의 역선민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소위 “진보” 이념이란 100년도 더 넘게 낡았고 이미 역사의 심판에서 판정패를 받은 레닌주의적 혁명이론의 훨씬 더 거친 아류에 불과하다. 조금만 역사와 현실정치에 관해 공부를 했으면 그런 이념을 현실에 옮기려 했던 시도들이 어떻게 철저하게 실패했는가를 알고 더구나 그 세력 내에서 주도권 다툼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종말은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실로 옮겨진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란 정치경제 도덕 모든 면에서 파탄을 맞게 된다는 것은 러시아나 동유럽, 쿠바 등 사례를 통해 역사가 거듭 증명하고도 남으며 인기영합주의의 위험은 남미에서 특히 두드러진 사례를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집권 3년차부터는 이미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파격적인 이른바 친서민 정책의 역효과가 애꿎은 서민층의 곤욕으로 들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친북, 친중, 친 서민적 인기영합주의란 결국 권력갈취와 독점을 위한 수단일 뿐 어떤 심오한 정치철학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 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세우며 정 정권 실세들에 대해 가혹한 토벌행위를 자행했던 신 정권이 각종의 심각한 정치, 경제 관련 부정에 휘말리면서 도덕적 권위는 급속히 실추되었다. 특히 조국과 윤미향 사건, 그에 뒤이어 자살한 박원순 시장에 대한 서울특별시장 집행 등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서민층에게 까지도 이 정권의 반역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런 모든 일을 겪고도 4.15 선거에서 문재인 세력은 압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이었다. 선거부정 가능성을 열어둔다 하더라도 국민이 단호하게 부정적 심판을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 몰락의 단서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과 연결되어 있는 반 대한민국 세력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통한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철주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사실 목숨 밖에 잃을 것이 없다는 결기로 뛰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상적 좌우 대립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반대한민국적 체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국민가운데 극히 소수일 수 밖에 없었다. 기대치를 넘은 빠른 경제성장의 성과는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의 흔적마저 지울 수 있을 듯 했다. 더구나 유럽과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은 북한에 대해 판정승을 거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몰락의 시작이 될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이기주의와 안일함, 정신적 나태와 비굴함은 반체제 좌익 세력의 탐욕과 분노와 무지 못지 않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헛개비처럼 무너져 내리는데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현 세대는 그 들의 선대들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자유와 안정과 부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소중하다함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를 지키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식도 없었다. 대한민국 독립과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독재자”, 심지어는 “친일파”로 몰아도,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 한다 해도, “제헌절”을 국경일에서 제외한다 해도 어떤 반국가적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은가를 의심 할 줄 몰랐고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는 마치 평화통일이나 서민의 권익에 대한 배려는 하지 않는다는 체제인양 좌파의 “민중, 민주, 민주, 평화” 의 구호 앞에 주눅이 들어 뒷거름 치기를 거듭했고 심지어는 인류보편의 인도주의, 민주주의 가치들이 소위 “진보” 좌파의 선동적 구호 앞에서 마구 짓밟혀도 제어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며 변화에 적응 못하는 존재는 모두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원칙들도 있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법칙들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나라가 그렇지 않은 개인이나 사회보다는 더 번영하고 또 열심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우리 문재인 정권의 경제사회 정책에서는 그 원칙이 배격 당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하여 제대로 된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한 사람은 죄인취급을 받는다. 국가 보조금을 받는 것, 곧 남의 노력덕분에 내가 혜택을 받는 일이 고마워 해야 할 일이 아니고 당연한 권리요 자랑으로 여기는 풍조가 복지국가정책이라는 미명아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팽배해 가고 있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 할 수 있을까. 주택정책의 실패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드디어 반정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당장 느낄 수 있는 경제적 권익 문제뿐 아니라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여객선 침몰사고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과 추모에 소모되는 국민의 혈세가 전사한 국군장병들을 위해 쓰이는 예산과 비교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러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평화롭게 이루어 지는 나라에서 대중시위로 대통령을 몰아내는 일이 참여 “민주주의”로 포장되어도, 대통령이 자기의 조수격이었던 여자와 “경제공동체”를 이룬다는 기상천외의 법이론이 나와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항의를 하지 않았고 드디어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돌아갈 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사람이 그 “공로”로 국회의원이 되어도 속수 무책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나 경제만이 아니다. 이성적 사고의 능력, 도덕적 판단의 기준, 사회 기강, 국민 의식, 민족적 자긍심이 모두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이 집권세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이 무엇보다도 큰 비극이다. 죽음 앞에 사람은 모두가 평등해지고 죽은 자 앞에서 산 자는 무한히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 고 박원순 시장의 불의의 사망에 대해 애도하고 가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자살을 한 사람을 위해 명예장례식을 치뤄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게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동서고금 거의 모든 문화권이 자살을 죄악시 하는 데 우리는 자살을 격려하는 듯한 관행으로 지금 치닫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자살이 단순히 자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살을 당했다”는 표현까지 돌고 있는 마당에서 저명인들의 자살을 부검도 없이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좌우, 여야 구분을 떠나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자살한 서울시장에 대한 처우와 대조되는 것이 고 백선엽장군에 대한 홀대이다. 6.25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국립묘지를 만드는데 주역을 한 인물을 청년기에 일본군에 근무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아, 심지어는 어떤 여 교수처럼 우리민족을 향해 총을 쏘았다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모시기에 부적절하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다면 어떤 궤변도 어떤 거짓도 횡포도 통용될 수 있다. 설사 일제치하 20대 초반의 우리 청년이 우리독립군과 싸우는 부대에 편입되었던 일이 있었다 가정하더라도 그는 평생 친일파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는가? 운동권 학생이 반체제 시위로 처벌받은 일이 있었다 해서 그가 평생 반역자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합리적, 도적적 사유가 결여되면 결국 결국 대화는 통하지 않고 폭력 밖에 기댈 곳이 없어지는 사회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까지 오는 것을 미리 막지 못한데 대한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현 집권세력뿐 아니라 이제 정치권력은 완전히 상실했지만 사회적 책임은 면제 받을 수는 없는 대한민국 기득권세력에게도 있지 않은가 한다. 스스로 반성해서 뒤늦게나마 속죄하는 의미에서 사태를 바로 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기회주의자로 처신하다가 반성을 강요 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비극의 규모는 그 만큼 더 커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73주년 광복절을 맞으면서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번영을 위해 혼신투구 하셨던 선열들 앞에서 아무리 깊히 고개를 숙여 사죄해도 모자라는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이념적 토대가 건실했고 그 때문에 잘 나가던 나라를 지켜내기 조차 못하는 못난 후진들을 위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실 것을 간절히 빌어야 할 것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 펜앤드마이크 출처 명기한 전재 및 재배포는 환영합니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2020년 6월 29일 월요일
한반도 게이트 ④]볼턴회고록에 구체적 반박은 못한 채 비방만 잇는 靑..."논란 넘어 진실이 규명되어야"
對北정책 '파탄' 평가 받음에도 볼턴 회고록 구체적 반박은 없이 기존 입장 되풀이・비방만
볼턴, 2018 판문점 美北 회동 당시 "文 포토쇼 끼기 위해 애써"...당시엔 "초대받았다" 거짓말
볼턴은 美北정상회담 제안도 정의용이 했다고 주장하지만...과거 정의용 "北 대화 용의 표명" 거짓말
볼턴, 하노이 결렬 이후 韓美회담서 "文, 3차 美北회담 요구했지만 트럼프 거절"...靑은 당시 "구체적 의견 교환" 거짓말
靑, 北 비핵화 실패하면서도 '대북지원 방안 논의' '평화 분위기 조성' 등 홍보 마케팅만
볼턴, 靑 "사실 왜곡" 주장에 "진실 적은 것" 반박...靑 별도 추가 입장 표명은 없어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연합뉴스)
‘볼턴 회고록’ 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서 이뤄졌는지를 곳곳에서 증언하고 있다. 실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은 파탄을 맞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회고록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 없이 기존에 밝힌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비방만 내놨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밝혀온 대북정책 내용들과 볼턴 회고록에 담긴 뒷배경은 상당부분 다르다. 청와대는 볼턴 회고록이 공개되고 사흘가량 뒤인 지난 23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한다. 정 실장은 “(회고록은)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협의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는 등으로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에 나타난 문 대통령의 ‘비핵화 망상’은 여러 군데다. 청와대는 회고에 나타난 여러 항목들에 대한 ‘반박’을 일부 내놓지만, 볼턴 전 보좌관은 ‘메모광’으로 알려진 만큼 그의 주장은 신뢰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을 나서 북한 김정은을 만나러 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경호원들에 제지당해 멈춰있는 문재인 대통령(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먼저 2018년 판문점 미북 회동 당시다. 볼턴 회고록에는 “문 대통령이 4월 판문점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해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문 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직후엔 자신이 참여하는 3자 회담으로 바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했다고도 볼턴은 전한다. 볼턴은, 그런식으로 문재인은 포토쇼에 끼기 위해 애썼고, 2019년 6월 판문점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회동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서 “나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받았다”고 거짓말한다. 판문점 미북 회동 직후와 볼턴 회고록 공개 이후 위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며 “문 대통령이 포토쇼에 목숨을 걸었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미북 정상회담의 제안 문제다. 볼턴 전 보좌관은 “미북회담은 한국 정부의 창조물”이라며 “트럼프를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의 초청은 정 실장이 제안했다”고 적었다. 우리 정부가 사실과 다른 말로 미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미북회담 담당이던 볼턴은 “나중에 정의용은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초청하라고 처음부터 제안한 사람이 자기라고 거의 인정했다!”라고까지 지적한다. 그런데 정 실장은 2018년 3월 대북 특사로 평양에 다녀온 뒤 “북측은 비핵화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를 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볼턴은 “문 대통령이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합의가 우선’이라며 여러 번 거절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정 실장은 당시 발표문에서 “한미 정상은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AFP=연합뉴스
청와대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직전 2018년 5월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한 볼턴 회고록 부분에도 “두 정상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했을 때 밝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밀도 있게 협의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한미 양국이 대북지원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볼턴 회고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자 문 대통령이 낙관적으로 대답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담이 잠정 취소됐던 정황을 문 대통령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이 당시에도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손을 맞잡으며 ‘평화’를 말하는 사진을 뿌리며 관련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릴 뿐이었다.
정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사실 왜곡” 주장에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유권자가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시점에 이런 일들에 관해 진실을 쓰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 반박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 펜앤드마이크 출처 명기한 전재 및 재배포는 환영합니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볼턴, 2018 판문점 美北 회동 당시 "文 포토쇼 끼기 위해 애써"...당시엔 "초대받았다" 거짓말
볼턴은 美北정상회담 제안도 정의용이 했다고 주장하지만...과거 정의용 "北 대화 용의 표명" 거짓말
볼턴, 하노이 결렬 이후 韓美회담서 "文, 3차 美北회담 요구했지만 트럼프 거절"...靑은 당시 "구체적 의견 교환" 거짓말
靑, 北 비핵화 실패하면서도 '대북지원 방안 논의' '평화 분위기 조성' 등 홍보 마케팅만
볼턴, 靑 "사실 왜곡" 주장에 "진실 적은 것" 반박...靑 별도 추가 입장 표명은 없어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연합뉴스)
‘볼턴 회고록’ 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위에서 이뤄졌는지를 곳곳에서 증언하고 있다. 실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은 파탄을 맞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회고록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 없이 기존에 밝힌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비방만 내놨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밝혀온 대북정책 내용들과 볼턴 회고록에 담긴 뒷배경은 상당부분 다르다. 청와대는 볼턴 회고록이 공개되고 사흘가량 뒤인 지난 23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한다. 정 실장은 “(회고록은)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협의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는 등으로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에 나타난 문 대통령의 ‘비핵화 망상’은 여러 군데다. 청와대는 회고에 나타난 여러 항목들에 대한 ‘반박’을 일부 내놓지만, 볼턴 전 보좌관은 ‘메모광’으로 알려진 만큼 그의 주장은 신뢰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을 나서 북한 김정은을 만나러 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경호원들에 제지당해 멈춰있는 문재인 대통령(우).(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먼저 2018년 판문점 미북 회동 당시다. 볼턴 회고록에는 “문 대통령이 4월 판문점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해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문 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직후엔 자신이 참여하는 3자 회담으로 바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했다고도 볼턴은 전한다. 볼턴은, 그런식으로 문재인은 포토쇼에 끼기 위해 애썼고, 2019년 6월 판문점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회동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서 “나도 오늘 판문점에 초대받았다”고 거짓말한다. 판문점 미북 회동 직후와 볼턴 회고록 공개 이후 위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며 “문 대통령이 포토쇼에 목숨을 걸었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미북 정상회담의 제안 문제다. 볼턴 전 보좌관은 “미북회담은 한국 정부의 창조물”이라며 “트럼프를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의 초청은 정 실장이 제안했다”고 적었다. 우리 정부가 사실과 다른 말로 미북회담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미북회담 담당이던 볼턴은 “나중에 정의용은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초청하라고 처음부터 제안한 사람이 자기라고 거의 인정했다!”라고까지 지적한다. 그런데 정 실장은 2018년 3월 대북 특사로 평양에 다녀온 뒤 “북측은 비핵화 협의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를 할 용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볼턴은 “문 대통령이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합의가 우선’이라며 여러 번 거절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정 실장은 당시 발표문에서 “한미 정상은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AFP=연합뉴스
청와대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직전 2018년 5월 있었던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한 볼턴 회고록 부분에도 “두 정상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했을 때 밝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에 대해 밀도 있게 협의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한미 양국이 대북지원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볼턴 회고록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자 문 대통령이 낙관적으로 대답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회담이 잠정 취소됐던 정황을 문 대통령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이 당시에도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손을 맞잡으며 ‘평화’를 말하는 사진을 뿌리며 관련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릴 뿐이었다.
정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의 “사실 왜곡” 주장에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유권자가 그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시점에 이런 일들에 관해 진실을 쓰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이라 반박했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 펜앤드마이크 출처 명기한 전재 및 재배포는 환영합니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한반도 게이트 ③] “북한,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문재인 외면 시작...판문점 회동은 文이 끼어들겠다며 고집”
볼턴 회고록을 통해본 판문점회동 전말]
볼턴 “문재인은 평양이 냉정하게 구는 것이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매우 걱정”
“문재인, 국내 문제 생길 때마다 일본을 이슈로 만들려...”
“트럼프, 북 미사일 발사한 5월 9일 이후 비밀리에 대북제재 강화”
“트럼프, 한국에 매년 방위비 50억 달러 요구...미군 철수로 위협해야 한다 말해”

북한은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뒤로 남한과 연락을 끊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냉담하게 구는 것이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또다시 세기의 극적인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기획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회담장을 걸어 나갔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의 제안을 거절했다. 트럼프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해야 하며 사전에 이 같은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6월 판문점에서의 ‘깜짝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곁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 끼어들기로 결심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내세우며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이상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밝힌 판문점 회동과 관련한 비화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문재인은 강경화 외무장관, 정의용과 함께 4월 11일 워싱턴에 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며 “우리는 한국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재인은 평양이 핵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구는 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고 밝혔다.
볼턴은 “문재인은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는 판문점 회동 또는 미 해군 함정에서의 만남 들을 제안하면서 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형태에 관해 극적인 접근을 촉구했다”고 했다. 볼턴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보다는 형태에 대해 걱정했으며 문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문재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누구도 두 번 회담장을 걸어 나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은 서울에 돌아갔을 때 북한에 6월 12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번에도 “날짜는 상관없지만 사전에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계속 3차 미북정상회담을 고집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볼턴이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볼턴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인 2019년 5월 4일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주말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중요성을 희석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북한에 직접 식량을 원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전화통화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눈치챈다. 실제로 문재인은 “하노이 이후 북한과 실제적인 협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트럼프는 비공식적으로 대북제재를 비밀리에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G20 회의에서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날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트럼프의 보좌진들은 모두 깜짝 놀랐으며 특히 볼턴은 “구역질이 났다.”
볼턴은 “폼페이오는 앞으로 있을 김정은-트럼프 회담에 끼어들려는 문재인의 노력을 관리하고 있었다”며 “트럼프는 문재인이 곁에 없기를 바랐다(Trump wanted Moon nowhere around). 그러나 문재인은 3자 회담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문재인과의 논쟁이 모든 일을 망쳐버리기를 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며 “왜냐하면 김정은도 문재인이 곁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판문점 회동 직전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자신이 판문점에 따라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볼턴은 “문재인은 김정은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자신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과 인사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인도해준 다음 떠나겠다고 말했다”며 “폼페이오가 끼어들어 전날 밤 북한이 문재인의 의견을 거절했다고 말했고 트럼프도 문재인이 함께 가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도 문재인은 미국 대통령들이 DMZ를 방문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고 회고했다.
또한 트럼프는 문재인에게 DMZ로 떠나는 자신을 서울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 미군들과 만남이 예정된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문재인은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문재인은 트럼프를 OP올렛(Ouellette,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DMZ 관측 지점)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으며,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는 문재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도 좋으며 함께 OP올렛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볼턴은 “트럼프는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매우 큰 사인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하는지 몰랐다. 문재인은 한국이 김정은과 핫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 본부 안에 있으며 김정은은 결코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웠던 남북관계 개선과 핫라인 개통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2020년 대선 운동 기간 동안 북한이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완전히 능력 있는 핵무기 국가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며 연달아 4개의 행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멈추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래 미국 행정부는 필연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북한정권과 마주해야만 한다”며 “우리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 북한은 이동 가능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위협은 더욱 증가됐다. 우리는 북핵이 임박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기를 오직 바랄 뿐”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다음은 볼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중 판문점 회동 관련 부분(Chapter 11) 발췌 요약이다.
“한국(그리고 일본과 유럽 동맹국들)의 관계를 몹시 괴롭혔던 한 가지 이슈는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가였다. 사실상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나라들이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금액과 분담금 산정 방식은 다양했으며 실제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실제적 합의가 없었다. 국방부의 창의적인 회계기술 아래서 거의 어떤 비용도 높거나 낮거나 간에 정당화됐다. 다른 군사비용 문제들처럼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들이 충분히 돈을 내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셀 수 없이 많은 토론 뒤에도 트럼프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이유는 한국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집단 방위” 또는 “상호 방위” 또는 복잡한 국제적 형태로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독일을 방어하고, 일본을 방어하고, 에스토니아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내야만 했다. 훌륭한 사업가가 그렇듯 미국은 특별한 이익이 없는 이 모든 국가들을 방어해주는 대가로 수익을 얻어야만 했다(트럼프는 종종 “왜 우리가 이 모든 나라에 주둔하는 것이지?”라고 묻곤 했다). 최소한 우리는 더 나은 사업 전략을 발휘해야 했다. 이는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재개될 때마다 시작됐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주둔국이 미군 주둔 “비용+X%”를 지불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18년 4월 시리아에서 철군하겠다고 압박하면서 트럼프는 “비용 플러스 50%”를 설득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들렸던지 트럼프는 “공정한 분담” 또는 “완전하고 공정한 상환”과 같은 다른 이름으로 이를 불렀다. 그러나 정말이지 트럼프가 원한 정확한 금액, 또는 최소한 그가 협상을 시작하기 원했던 정확한 금액은 “비용 플러스 50%”였다. 한국의 경우에 주한미군 특별협정에서 그 비용은 매년 50억 달러였다. 한국이 이전에 매년 10억 달러 이상 지불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이다. 현 협정은 2018년 12월 31일에 끝난다. 미 국무부와 펜타곤 모두 매우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미군이 마치 용병인 것처럼 주둔국이 지불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매우 많은 방위비 증가가 어렵다는 사실도 안다. 한국은 방위비 협정 종료일 때문에 첫 번째 협상국이 되었다. 일본이 다음 상대였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한국의 경우 트럼프의 궁극적 협박(트럼프가 보기에 적합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 국가로부터 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실제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이상의 전략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에게 주한미군 철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주둔군의 비용을 상당하게 증가시키는 것에 대한 그들의 지속적인 반대는 그 위험을 증가시켰다. 불행하게도 나는 절벽의 끝이 어딘지 알았다. 2018년 12월 31일 한국과의 결론에 이르지 않는 협상이 우리를 압도한 후에 한국은 현 수준보다 훨씬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 년에 10억 달러 이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트럼프와 한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얻기 위해, 미군 철수를 막길 희망하면서, 내년에 또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2019년까지 지속된 상황이다.
문재인은 4월 11일 워싱턴에 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 폼페이오와 나는 문재인을 노전 9시 블레어 하우스에서 처음 맞았다. 강경화 외무장관과 정의용도 함께였다. 늘 하는 인사말이 오간 뒤에 우리는 한국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한은 하노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문재인은 평양이 핵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구는 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 왜냐하면 문재인은 “햇볕”이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회의와 문-트 회담에서 가능하면 적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정부 안에서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방해자로 지목받기에 논리적으로 적합한 사람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했던 유사한 전략이 성공한 것을 볼 때 그것도 분명히 먹혀들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은 정오에 백악과에 도착했다. 폼페이오와 나, 트럼프는 문재인과 강경화, 정의용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트럼프는 나쁜 거래에 사인을 하는 것보다는 걸어나는 것이 낫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드러난 방식에 대해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그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가 생각하기에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는 판문점 회동 또는 미 해군 함정에서의 만남 들을 제안하면서 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형태에 관해 극적인 접근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그의 독백을 중단시켰는데 그것은 잘된 일이었다. 왜냐면 트럼프는 졸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문재인의 생각을 인정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다음 번 정상회담에서 실제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번 만나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문제될 것 없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두 번 걸어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보다는 형태에 대해 걱정했다. 문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다른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업무 오찬을 위해 캐비닛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의 발전에 대해 살펴보고 양자 간 무역 문제들에 대해 약간 대화를 나눈 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증가시켰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매년 주둔비용은 50억 달러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은 한국이 미국에 TV를 판매함에 따라 매년 4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은 다음 협상에서 더 많이 지불하기로 했으므로 한국도 더 내야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을 매우 보호하고 싶다고 느끼며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많은 한국 회사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기본비용과 관련해 트럼프의 기대가 너무 높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부지를 임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공짜인지 질문했으나 문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한국은 방위비로 GDP의 2.4%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 문제를 슬쩍 피해갔다. 곧이어 트럼프는 독일이 적정한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트럼프는 다시 한국 문제로 돌아왔다. 미국은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매년 5조를 지불했는데 한국은 협상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트럼프는 미국에 공정한 방식으로 협상을 조율하길 원했다.
북한에 대한 더 많은 토론이 있은 후 트럼프는 일본과의 관계가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는 모두 도쿄와 서울 간 어려움이 증가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으며 이는 다음 몇 달 동안 더욱 빠르게 악화될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취소하려고 했다. 일본의 관점에서 그 조약은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 특히 2차 대전의 고난과 잘 알려진 ‘위안부’ 문제로 인해 발생한 적대감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문재인은 지난 역사가 양국 관계의 미래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데 때때로 일본이 그 일을 이슈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문재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다른 한국인 정치 지도자들처럼 문재인은 국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본을 이슈로 만들려 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일본과 군사훈련을 함께 하길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으로써 함께 싸울 수 있는지 질문했다. 문재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쿄와 서울은 함께 군사훈련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 일본군이 주둔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지난 역사를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다시 물었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맞서 싸워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이 일본의 참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문재인은 답변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 분명했다. 문재인은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말했다. 그는 한국 영토에 일본 자위대가 주둔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되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서울에 돌아갔을 때 북한에 6월 12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날짜는 상관없지만 사전에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계속해서 설명했다.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실무급 외교관들은 전혀 재량권이 없으므로 그는 고위급 회담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내가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베 총리는 4월 26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는 문재인과 거의 정반대의 견해를 보여주였다. 트럼프는 아베에게 하노이 정상회담을 떠난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베는 경과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 트럼프만이 걸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쉽게 해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시간은 우리의 편이라고 강조했고 트럼프도 동의했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계속해서 미사일 시험을 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시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ICBM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중단거리 미사일들은 한국과 일본을 매우 위협했다.
5월 3일 저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나는 폼페이오와 섀너헌에게 즉시 전화했다. 던포드와 전화한 뒤 나는 트럼프에게 알리기로 결정했다. 미사일들은 단거리였고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북한이 진짜로 어떤지 알지 못한다.
나는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가볍게 생각하자구. 가볍게 생각하자구” 그의 친구 김정은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무렵 한국 국방부가 성명을 발표했고 언론 보도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세 번째로 전화했다. 내가 추측했던 것처럼 트럼프는 어떠한 성명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오케이”라는 말로 끝이었다. 그것은 트럼프가 특별한 이슈에 대해 우리가 결론을 내린 방식에 대해 그가 안도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성명이 있든지 말든지, 사거리가 얼마나 되든지 간에 이 탄도미사일 시험들은 대북제재의 근간이 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 내가 우려했던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침범할 수 없는 지위가 아니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우려한 것은 만약 우리가 중요한 위반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묵살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잘못된 교훈을 배울 것이고 중요한 제재 위반을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조금 위험한 것 이상이었다.
나의 우려를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트럼프에게 최신 정보를 전달했다. 그는 “그것을 ‘포’라고 부르시오”라고 말했다. 마치 존재하는 어떤 것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지를 붙이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처럼. 트럼프는 또한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게 한 약속을 깨트리길 원치 않는다. 거래는 성사될 것이다!”고 했다. 트럼프는 분명히 이 트위터들이 김정은과의 관계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이 트럼프가 거래에 필사적이라는 인상을 강화하면서 그를 파괴시키는 보좌진들(누군지 알아맞춰보라)이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우리는 모두 트위터를 중단시킨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트위터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한국정부도 사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로켓들을 ‘발사체’라고 부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자국민을 굶기며 전 세계에 음식을 구걸하면서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사용할 잔돈은 충분한 평양에 있는 정권 때문이었다.
다음날 문재인은 지난 주말에 있었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말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놀랍지도 않았지만 문재인은 이전에 트럼프가 그랬던 것처럼 그 문제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문재인이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실망했다는 말을 늘어놓는 동안 트럼프는 문재인이 김정은과의 관계를 잃은 것 같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김정은은 이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트럼프는 이 결렬이 문재인의 잘못이라고 보지 않았지만 분명이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문재인은 하노이 이후 북한과 실제적인 협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다. 문재인은 한국이 UNICEF와 세계 식량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 대신에 미국이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 원조를 해야한다는 식으로 논쟁의 방향을 돌리려는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는 유엔 기관들을 통해 식량원조를 하는 것을 축복할 것이라면서 문재인에게 북한이 그가 이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그가 반대하는 강경파들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결같은 일이었다. 북한은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니 식량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얼마나 거래를 원하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끔찍한 신호였다. 나는 포틴저와 후커에게 우리는 스스로 어떤 식량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말해두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히 북한에 자원을 공급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북한에 전달되는 식량 원조는 매우 주의깊게 모니터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봄과 여름에 걸쳐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다. 김정은이 보복은 없으며 아마도 쌀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5월 9일 내게 말했다. “제재를 더 가하시오” 후에 이것은 “대량 제재”로 업그레이드됐지만 공표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브롤터 암벽을 닮은 풍향계를 만들었다.
늦은 5월 트럼프는 일본을 방문했다. 레이와 시대의 첫 국빈이었다. 이것은 트럼프에게 굉장한 영광이었다. 아베는 일본의 동맹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나는 트럼프와 아베의 회담을 최종 준비하기 위해 며칠 일찍 일본으로 떠났다. 5월 25일 한 기자가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유엔 미국 대사로 있을 때 유엔 결의안 1695와 1718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나는 당시에 그토록 강조했던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논리의 문제로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한 ICBM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하는 미사일 발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그 약속을 통해 사실상 브루클린 다리를 팔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트럼프가 멍청해 보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성공을 이뤄냈다는 트럼프의 믿음을 흔들 수 없었다. 트럼프는 에어포스 원으로 일본에 도착한 직후 이렇게 트위터를 썼다: “북한이 몇몇의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그것이 나의 참모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가 조 바이든을 아이큐가 낮은 사람이라고 불렀을 때 미소를 지었다”
나는 트럼프가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트럼프는 그것을 중요하지 않게 보았지만 북한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꺼리지 않는다” 아베는 트럼프가 납북자 가족을 만나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함으로써 회담을 시작했다.
오후 3시에 아베와 트럼프는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럼프는 다시 한 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베는 트럼프가 옆에 서있는데도 공공연하게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그 분열을 좋아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루 내내 미국과 일본 동맹의 견고함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베와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북한에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6월 28일 오사카 G20 회의에 참석한 트럼프는 오전 8시 30분에 아베와 다시 만났다. 내가 보기에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세계 지도자는 아베다(동료로서뿐만 아니라 골프 친구로도). 그리고 영국의 보리스 총리도.
아베는 다시 한 번 트럼프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준 것에 대해 따뜻하게 감사를 표했다. 아베는 북한이 매우 급박하게 거래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 지도자들에게 다른 의미를 가졌다. 아베에게 이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분명한 행동을 취해야하며 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에게 아름다운 친서들과 생일 카드를 보내왔으며 대북제재가 끔찍하게 상처를 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이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제재를 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트럼프는 아베와 문재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질문을 했다. 그들은 모두 제재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나는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게 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확신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트럼프는 제재를 가하는 것에는 돈이 들지만 만약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훗날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안했던 것처럼 한 개 이상의 핵 시설을 폐기하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또 다른 미북정상회담을 원했다. 그는 북한이 볼튼, 펜스, 폼페이오를 미워하지만 자신은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웃었다. 트럼프는 로켓이나 핵시험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날 또 다른 양자회담을 가졌다. 독일을 메르켈 총리와의 짧은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언급하면서 G20 회의 이후에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DMZ에서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미국 대표부가 들었던, 트럼프가 김정은을 DMZ에서 만나길 원한다는 첫 번째 발언이었다.
우리는 그 말은 토요일 아침에도 들었다. 멀베이니는 그의 핸드폰으로 나에게 트럼프의 트위터를 보여주었다. 나에게 이미 보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진핑 중국 대통령과의 만남 등 매우 중요한 회담 후에 나는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갈 것이다(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그곳에서 만약 북한의 김 위원장이 이것을 본다면 나는 국경인 DMZ에서 그를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고 싶다---
멀베이니는 나만큼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트위터가 그냥 한번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일찍 멀배이니가 폼페이오와 나를 한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는 북한사람들이 그 트위터는 북한이 원했던 공식적인 초대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이것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혼란입니다”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다음 일은 트럼프가 북한이 요청했던 “공식” 초청장에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는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폼페이오는 또한 앞으로 있을 김-트 회담에 끼어들려는 문재인의 노력을 관리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곁에 없기를 바랐다(Trump wanted Moon nowhere around). 그러나 문재인은 3자 회담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나는 문재인과의 이 논쟁이 모든 일을 망쳐버리기를 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문재인이 곁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비행기를 이용해 오사카에서 서울로 날아갔다. 때문에 나는 문재인이 연 저녁식사에 참가할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DMZ 준비가 점점 더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관여하는 한 트-김 회동은 악수와 사진찍기에 국한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미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것은 절대로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당시 DMZ에 가야하는지 아니면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몽고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울란 바토르로 곧장 가야하는지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당초 나는 트럼프의 DMZ 방문에 합류할 계획이 아니었다.
나는 빗나간 트위터가 실제로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 비록 나는 트럼프를 움직였던 것은 이 전례없는 DMZ 만남에 대한 언론보도와 사진찍기일 뿐 실제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얼마간의 위안을 가졌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DMZ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갖길 원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김정은에게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발됐다. 우리는 여전히 이것이 트럼프와-김정은의 양자 회담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인시킬지 알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가졌다. 그리고 트럼프도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졌다. 이것은 외교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불균형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국익 사이에서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했다.
6월 30일 토요일 나는 폼페이오가 DMZ 회담에 참석하기로 한 것을 알고 놀라서 일어났다. 나는 그에게 가기로 결정했는지 질문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그가 답장을 보냈다. “내가 그곳에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곳에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가 간다면 나도 역시 갈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한국인들과 미국 재계 지도자들과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우리는 문재인과의 회담을 위해 청와대로 갔다. 가는 길에 나는 북한이 사진찍기 후에 거창한 양자회담을 원하지 않으며 단지 약 40분 간 리더와 다른 한 명이 배석하는 회담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 나는 리영호 외무상이 “다른 한 명”으로 참석하기로 예정됐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폼페이오가 우리측의 “다른 한 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나는 김정은과 실질적인 회담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울란 바토르로 떠나기로 했다.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동안 DMZ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는 트럼프가 내가 이전에 해준 충고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나는 멀배이니에게 자세히 알렸다. 그는 내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청와대에서 매우 제한적인 양자 회담 중에 문재인이 DMZ에 갈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계획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와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를 만나자고 요청했지만 문재인이 훌륭하게 보이도록 함께 DMZ에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가 우리에게 말한 것과 달랐다. 따라서 폼페이오는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형식을 포함해 북한 측과 조율한 것을 말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트럼프의 질문에 나는 폼페이오의 발언을 거들었다. 트럼프는 우리가 만날지 만나지 않을 지는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회담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 문재인은 김정은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문재인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과 인사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인도해준 다음 떠나겠다고 말했다. 폼페이오는 또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문재인의 의견을 전날 밤 북한에 전달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함께 간다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구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완전히 상상에서 나온 말이었다). 문재인은 미국 대통령들이 DMZ를 방문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에게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큰 기회를 놓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첩보기관이 말한 것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화제를 바꿨다. 그는 북한과 실무협상은 항상 매우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접근하면 결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다음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 대선이 끝난 다음이 될 것이라고 물어보겠다고 했다. 이 순간에 트럼프는 그의 첩보 수장인 토니 오르나토에게 몸을 돌렸다. 나는 아마도 DMZ 회담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그는 왜 재러드와 이방카가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는지(참석하지 않을 완벽하게 좋은 이유가 있었다)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오르나토에게 그들을 불러오도록 명령했다(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심지어 한국인들도 놀랐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자신이 최소한 약간은 김정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제안했다. 아마도 문재인이 DMZ로 떠나는 그를 서울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 미군들과 만남이 예정된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문재인은 모든 제안을 거부하면서 그가 트럼프를 OP올렛(Ouellette,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DMZ 관측 지점)까지 데려다주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OP올렛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갑자기 주한미군 기본비용에 대한 화제로 말을 돌렸다. 폼페이오와 내가 이전에 이 문제를 문재인에게 제기했다고 말하면서. 트럼프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미국은 매년 한국과의 무역에서 20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었다. 일각에선 380억 달러 적자(숫자는 매번 달라졌다)를 보는 대신에 한국에 관세를 부여하면 미국이 300억 달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문재인과의 관계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그해 전에 트럼프는 내게 주둔비를 계산해보고 한국과 공정하고 공평한 분담금을 위해 협상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한국이 분담해야 할 방위비는 일 년에 50억 달러 또는 55억 달러(숫자들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리고 나서 모든 다른 경우에 말했다. 그리고 나서 트럼프는 2018년 말에 한국은 10억 달러 이하로 방위비를 지불했지만 다른 모든 나라들도 주둔비를 더 내기로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최소한 당시에는 그랬다). 트럼프는 우리는 미국을 위해 공정하고 공평한 거래를 해야 한다며 미국은 매년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40억 달러를 손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고 만약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에게 폼페이오나 나와 협상할 누군가를 임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한국의 이웃이 얼마나 적대적인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출됐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트럼프가 4월에 백악관에서 50억 달러를 제시한 것을 아마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문재인은 경제적 이슈들과 관련해서 트럼프가 취임한 후 무역 흑자는 줄어들었으며 한국은 미국 LNG의 최대 수입국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는 증가했으며 한미 간 무역 균형은 현재 미국에 더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10억 달러 방위비와 무료 지대, 시설 건축, 무기 구입 모두가 한미 공동 방위에 중요한 공헌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즈음 트럼프는 점점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는 문재인에게 빨리 말하라는 제스처를 했고 우리와 다른 한국인들을 향해 몹시 화가 난 얼굴을 했다. 더 당황스러운 일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우리가 그 땅을 소유한 것이 아니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떠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방위하기 위한 땅에 부동산세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윤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매우 부유한 나라가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상환받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제 그의 손을 흔들면서 어깨를 으쓱였고 한숨을 쉬었다. 문재인의 말을 듣기에 지쳤고 다음 단계로 옮겨가기를 원한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한국은 GDP의 2.4%를 방위비로 쓰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독일과 일본도 한국과 같은 처지지만 그들은 위협 아래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의했다. 트럼프는 50억 달러를 원했고 내게 협상을 이끌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에 70년 동안 주둔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한국을 구하기 위해 김정은을 만나려고 했다. 문재인은 서울이 도움을 받기만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저항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내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라고 하면서 거래가 시작됐다고 말하며 말을 끝냈다.
언론이 떠난 뒤 점심시간에 트럼프는 김정은이 몹시도 만나고 싶어한다고 거듭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측에 문재인을 위해 준비가 돼 있는지 다시 물었다. 트럼프는 왜 김정은이 한국 대표를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 엉큼하게도 내 의견을 물었다. 문재인은 북한의 경직성 때문에 남북 간 의미있는 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국이 미국의 편을 들고 있으며 이것이 북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양자회담에서 한국이 제공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 강조할 것이며 김정은과 그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것을 문재인에게 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국경을 넘기에 합의했으며 실무급 협상이 곧바로 재개되길 원했다. 따라서 트럼프도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길 원했다. 이 모든 것이 넌센스였다. 누가 가장 이 만남을 원하는지는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트럼프는 주둔비용에 대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말하면서 내게 임무를 맡겼다. 트럼프는 내게 이전에 누구와 협상을 했는지 질문했고 내게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말했다. 정의용은 이에 대해 매우 기분이 나빠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중국의 환율 조작 문제로 넘어갔다. 문재인은 김정은이 체제 안전 보장을 원한다는 화제로 토론을 돌리려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보장을 원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이며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니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한국의 안전을 보장했지만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 짧지만 매우 성공적인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재인을 위해 매우 좋은 일이었다. 문재인은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유명하다는 것을 안다고 우쭐댔다. 그는 그의 클럽에서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는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매우 큰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하는지 몰랐다. 문재인은 한국이 김정은과 핫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 본부 안에 있으며 김정은은 결코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비록 그 업무 오찬이 20분 늦게 시작했지만 트럼프는 예정된 종료시간인 오후 1시가 되기 5분 전에 지금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에 나는 백악관 안보 팀은 모두 참석하라는 공지를 받았지만 DMZ 대신 몽고로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트럼프에게 말하기 위해 비스트 근처에서 기다렸다. 나는 내가 DMZ에 있지 않은 것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후 일찍 한국을 떠나 울란 바토르로 향했다. 트럼프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사진찍기 때문에 트럼프는 북한 땅으로 걸어들어갔다. 쿠슈너와 이방카는 근처에 있었다. 김정은은 사진에서 매우 즐거워보였고 또 그래야만 했다. 트럼프는 개인적 홍보를 위해 DMZ를 방문함으로써 김정은에게 얼마나 엄청난 선물을 주었던가. 이 모든 것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대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도 나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김-트 회담은 약 50분 간 지속됐다. 그리고 두 정상은 실무급 협상이 속히 다시 재개돼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물론 비건은 아직도 새로운 카운터파트를 갖지 못했다. 그의 전임자는 표시도 없는 무덤 속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7월 1일 울란 바토르에서 회담을 가진 후에 나는 워싱턴을 향해 떠났다. 나는 DMZ 회담에 관한 뉴스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한 기사가 특히 나빠 보였다. DMZ에서도 미국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타임즈는 “핵 동결”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문제 많은 비건이 하노이 이전에 따랐던 바로 그 길이었다. 나는 트럼프가 회담장을 걸어나갔을 때 우리가 이 접근방식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나타났다. 이전보다 훨씬 나쁜 상태였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기본적으로 매우 부풀려진 것이었지만 최소한 어떤 것을 포기하거나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기본적인 어떤 것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건은 트럼프의 열정을 북한과의 다음 회담을 형성하기 위한 자격증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그러한 방식의 회담은 30년 동안 실패한 것이었다. 나는 공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때였다. 게다가 내가 사임한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닐 것이다. 몇 번이나 초안을 고친 후에 나는 다음과 같은 트위터를 썼다:
---나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백악관안보팀이나 나는 ‘북한과 핵 동결에 합의한다’는 것을 들어보거나 논의한 적이 없다. 이것은 대통령을 방해하려는 누군가의 부끄러운 시도이다---
나는 트럼프로부터 이 트위터에 대해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나는 린지 그래이험이 이것을 리트윗한 것에 기뻤다.
7월 3일 나는 폼페이오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타임즈 기사와 나의 트위터에 대해 매우 불평하면서 말했다. “왜 내게 전화하지 않았소?” 그는 물었다. “비건이 말한 것은 대통령의 생각에 훨씬 가까운 것이요”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오싹한 일이었다. 나는 그와 비건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하길 원한다고 대답했다: 왜 그들은 내게 전화하기 않았습니까? 나의 트위터는 여전히 공식적인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대변했다. 그러나 비건의 브리핑은 그렇지 않았다. 폼페이오는 그에 대해 논쟁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으며 우리가 모두 본질을 다룬다면 훨씬 더 능률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동의했다....
트럼프가 DMZ에서 열린 파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고? 그날 후에 트럼프는 “어느 누구도 내가 한 것을 하지 못했다. 오바마는 11번이나 불렀지만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 있는 동안 나는 대북제재가 자연스럽게 완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대부분 (대북제재 완화에) 방해를 받았다.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거나 트럼프 대신 행정부 관리들을 공격할 때만 제외하고.
워싱턴에 돌아온 후 7월 16일 폼페이오와 나는 최고로 예민해진 김정은을 화나게 만들었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멈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이 훈련은 거의 모든 것이 컴퓨터로 이뤄진다. B-52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해군이 해안을 타격하는 훈련이 아니라고 거듭 확인시켰지만 트럼프는 연합훈련을 취소하길 원했다.... 폼페이오는 내게 북한이 8월 중순이나 말까지 어떠한 실무급 회담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DMZ 회당 후에 비건과 다른 이들이 말한 7월 중순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
며칠 후에 나는 주둔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향해 떠났다.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중요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북한, 중국의 호전성을 저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태평양 지역에서 NATO와 같은 기구를 갖고 있지 못했다. 오직 일련의 대도시 거점 방식의 양자 동맹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위해 항상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들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의 무관심한 행정부 안에서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은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연합을 증가시키기 위한 길이었다. 더욱이 성공적인 북한 핵 타결을 위한 트럼프의 우선순위 목록의 높은 곳에는 일본과 한국이 큰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있었다. 트럼프는 북한에 “외국 원조”를 주지 않으며 오직 대규모의 이윤이 남는 사적인 투자만을 허락할 작정이었다.
... 나는 워싱턴에 돌아왔을 때 트럼프에게 주둔비 협상에 대해 말했다. (폼페이오와 므누신이 다른 이슈와 관련해 오벌 오피스에 나와 함께 있었다) 트럼프는 매년 각각 80억 달러와 60억 달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당신은 매우 강력한 협상 위치에 둘 것이다”라고 트럼프는 말했다... 다음날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듣는 중에 트럼프는 “지금이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의용에게 한일 양국이 한 달 동안이라고 “정지 협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양국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며칠간의 심한 밀당 끝에 우리는 휴전을 향해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북한은 7월 30일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일본해에 쏘아올린 것을 포함해 단거리 미사일들을 계속해서 쏴댔다.
2020년 대선 운동 기간 동안 북한이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김정은이 그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대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트럼프를 나쁜 거래를 하도록 유혹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와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보다 외교정책에 더 경험이 없는 나긋나긋한 민주당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 정답이 무엇이든지간에 완전히 능력 있는 핵무기 국가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연달아 4개의 행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멈추는데 실패할 것이다.
그것은 미래 행정부가 필연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북한정권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정권이 미국에 셀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을 마주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 북한은 이동 가능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위협은 더욱 증가됐다. 우리는 북핵이 임박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기를 오직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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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문재인은 평양이 냉정하게 구는 것이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매우 걱정”
“문재인, 국내 문제 생길 때마다 일본을 이슈로 만들려...”
“트럼프, 북 미사일 발사한 5월 9일 이후 비밀리에 대북제재 강화”
“트럼프, 한국에 매년 방위비 50억 달러 요구...미군 철수로 위협해야 한다 말해”
2019년 6월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북한은 2019년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뒤로 남한과 연락을 끊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냉담하게 구는 것이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또다시 세기의 극적인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기획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회담장을 걸어 나갔던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의 제안을 거절했다. 트럼프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이 핵무기를 제거해야 하며 사전에 이 같은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6월 판문점에서의 ‘깜짝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곁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 끼어들기로 결심했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내세우며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이상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밝힌 판문점 회동과 관련한 비화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문재인은 강경화 외무장관, 정의용과 함께 4월 11일 워싱턴에 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며 “우리는 한국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재인은 평양이 핵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구는 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고 밝혔다.
볼턴은 “문재인은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는 판문점 회동 또는 미 해군 함정에서의 만남 들을 제안하면서 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형태에 관해 극적인 접근을 촉구했다”고 했다. 볼턴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보다는 형태에 대해 걱정했으며 문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문재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누구도 두 번 회담장을 걸어 나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은 서울에 돌아갔을 때 북한에 6월 12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번에도 “날짜는 상관없지만 사전에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계속 3차 미북정상회담을 고집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볼턴이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볼턴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인 2019년 5월 4일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주말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중요성을 희석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미국이 북한에 직접 식량을 원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 전화통화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눈치챈다. 실제로 문재인은 “하노이 이후 북한과 실제적인 협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트럼프는 비공식적으로 대북제재를 비밀리에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G20 회의에서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날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트럼프의 보좌진들은 모두 깜짝 놀랐으며 특히 볼턴은 “구역질이 났다.”
볼턴은 “폼페이오는 앞으로 있을 김정은-트럼프 회담에 끼어들려는 문재인의 노력을 관리하고 있었다”며 “트럼프는 문재인이 곁에 없기를 바랐다(Trump wanted Moon nowhere around). 그러나 문재인은 3자 회담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문재인과의 논쟁이 모든 일을 망쳐버리기를 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며 “왜냐하면 김정은도 문재인이 곁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판문점 회동 직전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자신이 판문점에 따라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볼턴은 “문재인은 김정은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자신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과 인사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인도해준 다음 떠나겠다고 말했다”며 “폼페이오가 끼어들어 전날 밤 북한이 문재인의 의견을 거절했다고 말했고 트럼프도 문재인이 함께 가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도 문재인은 미국 대통령들이 DMZ를 방문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고 회고했다.
또한 트럼프는 문재인에게 DMZ로 떠나는 자신을 서울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 미군들과 만남이 예정된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문재인은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문재인은 트럼프를 OP올렛(Ouellette,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DMZ 관측 지점)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으며,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트럼프는 문재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도 좋으며 함께 OP올렛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볼턴은 “트럼프는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매우 큰 사인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하는지 몰랐다. 문재인은 한국이 김정은과 핫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 본부 안에 있으며 김정은은 결코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웠던 남북관계 개선과 핫라인 개통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2020년 대선 운동 기간 동안 북한이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완전히 능력 있는 핵무기 국가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며 연달아 4개의 행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멈추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래 미국 행정부는 필연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북한정권과 마주해야만 한다”며 “우리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 북한은 이동 가능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위협은 더욱 증가됐다. 우리는 북핵이 임박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기를 오직 바랄 뿐”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다음은 볼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중 판문점 회동 관련 부분(Chapter 11) 발췌 요약이다.
“한국(그리고 일본과 유럽 동맹국들)의 관계를 몹시 괴롭혔던 한 가지 이슈는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분담해야 하는가였다. 사실상 미군이 주둔하는 모든 나라들이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러나 금액과 분담금 산정 방식은 다양했으며 실제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실제적 합의가 없었다. 국방부의 창의적인 회계기술 아래서 거의 어떤 비용도 높거나 낮거나 간에 정당화됐다. 다른 군사비용 문제들처럼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들이 충분히 돈을 내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셀 수 없이 많은 토론 뒤에도 트럼프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이유는 한국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는 개념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었다. 미국은 “집단 방위” 또는 “상호 방위” 또는 복잡한 국제적 형태로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독일을 방어하고, 일본을 방어하고, 에스토니아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내야만 했다. 훌륭한 사업가가 그렇듯 미국은 특별한 이익이 없는 이 모든 국가들을 방어해주는 대가로 수익을 얻어야만 했다(트럼프는 종종 “왜 우리가 이 모든 나라에 주둔하는 것이지?”라고 묻곤 했다). 최소한 우리는 더 나은 사업 전략을 발휘해야 했다. 이는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재개될 때마다 시작됐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주둔국이 미군 주둔 “비용+X%”를 지불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18년 4월 시리아에서 철군하겠다고 압박하면서 트럼프는 “비용 플러스 50%”를 설득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들렸던지 트럼프는 “공정한 분담” 또는 “완전하고 공정한 상환”과 같은 다른 이름으로 이를 불렀다. 그러나 정말이지 트럼프가 원한 정확한 금액, 또는 최소한 그가 협상을 시작하기 원했던 정확한 금액은 “비용 플러스 50%”였다. 한국의 경우에 주한미군 특별협정에서 그 비용은 매년 50억 달러였다. 한국이 이전에 매년 10억 달러 이상 지불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이다. 현 협정은 2018년 12월 31일에 끝난다. 미 국무부와 펜타곤 모두 매우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미군이 마치 용병인 것처럼 주둔국이 지불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매우 많은 방위비 증가가 어렵다는 사실도 안다. 한국은 방위비 협정 종료일 때문에 첫 번째 협상국이 되었다. 일본이 다음 상대였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한국의 경우 트럼프의 궁극적 협박(트럼프가 보기에 적합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 국가로부터 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실제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이상의 전략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에게 주한미군 철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주둔군의 비용을 상당하게 증가시키는 것에 대한 그들의 지속적인 반대는 그 위험을 증가시켰다. 불행하게도 나는 절벽의 끝이 어딘지 알았다. 2018년 12월 31일 한국과의 결론에 이르지 않는 협상이 우리를 압도한 후에 한국은 현 수준보다 훨씬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 년에 10억 달러 이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트럼프와 한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얻기 위해, 미군 철수를 막길 희망하면서, 내년에 또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2019년까지 지속된 상황이다.
문재인은 4월 11일 워싱턴에 왔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분명했다. 폼페이오와 나는 문재인을 노전 9시 블레어 하우스에서 처음 맞았다. 강경화 외무장관과 정의용도 함께였다. 늘 하는 인사말이 오간 뒤에 우리는 한국이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실질적인 접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한은 하노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문재인은 평양이 핵문제와 남북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구는 것이 그에게 정치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다. 왜냐하면 문재인은 “햇볕”이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회의와 문-트 회담에서 가능하면 적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 정부 안에서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방해자로 지목받기에 논리적으로 적합한 사람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했던 유사한 전략이 성공한 것을 볼 때 그것도 분명히 먹혀들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은 정오에 백악과에 도착했다. 폼페이오와 나, 트럼프는 문재인과 강경화, 정의용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트럼프는 나쁜 거래에 사인을 하는 것보다는 걸어나는 것이 낫기 때문에 하노이에서 드러난 방식에 대해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그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가 생각하기에 세기의 정상회담이 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 극적인 것을 원했다. 그는 판문점 회동 또는 미 해군 함정에서의 만남 들을 제안하면서 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 형태에 관해 극적인 접근을 촉구했다. 트럼프는 그의 독백을 중단시켰는데 그것은 잘된 일이었다. 왜냐면 트럼프는 졸린 듯 보였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문재인의 생각을 인정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다음 번 정상회담에서 실제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번 만나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것은 문제될 것 없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두 번 걸어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보다는 형태에 대해 걱정했다. 문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에 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다른 미북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업무 오찬을 위해 캐비닛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의 발전에 대해 살펴보고 양자 간 무역 문제들에 대해 약간 대화를 나눈 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주둔 비용을 증가시켰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매년 주둔비용은 50억 달러라고 설명하면서 미국은 한국이 미국에 TV를 판매함에 따라 매년 4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은 다음 협상에서 더 많이 지불하기로 했으므로 한국도 더 내야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을 매우 보호하고 싶다고 느끼며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많은 한국 회사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기본비용과 관련해 트럼프의 기대가 너무 높다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이 부지를 임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공짜인지 질문했으나 문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한국은 방위비로 GDP의 2.4%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 문제를 슬쩍 피해갔다. 곧이어 트럼프는 독일이 적정한 방위비를 지불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트럼프는 다시 한국 문제로 돌아왔다. 미국은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매년 5조를 지불했는데 한국은 협상하기에 가장 어려운 상대였다. 트럼프는 미국에 공정한 방식으로 협상을 조율하길 원했다.
북한에 대한 더 많은 토론이 있은 후 트럼프는 일본과의 관계가 어떠냐고 물었다. 우리는 모두 도쿄와 서울 간 어려움이 증가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으며 이는 다음 몇 달 동안 더욱 빠르게 악화될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취소하려고 했다. 일본의 관점에서 그 조약은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 특히 2차 대전의 고난과 잘 알려진 ‘위안부’ 문제로 인해 발생한 적대감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했다.
문재인은 지난 역사가 양국 관계의 미래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데 때때로 일본이 그 일을 이슈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문재인이었다. 내가 보기에 다른 한국인 정치 지도자들처럼 문재인은 국내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본을 이슈로 만들려 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일본과 군사훈련을 함께 하길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으로써 함께 싸울 수 있는지 질문했다. 문재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쿄와 서울은 함께 군사훈련을 할 수 있지만 한국에 일본군이 주둔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지난 역사를 상기시킨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다시 물었다. 만약 우리가 북한과 맞서 싸워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그리고 한국이 일본의 참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문재인은 답변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 분명했다. 문재인은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말했다. 그는 한국 영토에 일본 자위대가 주둔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되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서울에 돌아갔을 때 북한에 6월 12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3차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날짜는 상관없지만 사전에 거래가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계속해서 설명했다.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실무급 외교관들은 전혀 재량권이 없으므로 그는 고위급 회담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폼페이오와 내가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베 총리는 4월 26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는 문재인과 거의 정반대의 견해를 보여주였다. 트럼프는 아베에게 하노이 정상회담을 떠난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아베는 경과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 트럼프만이 걸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쉽게 해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시간은 우리의 편이라고 강조했고 트럼프도 동의했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계속해서 미사일 시험을 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시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ICBM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 중단거리 미사일들은 한국과 일본을 매우 위협했다.
5월 3일 저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나는 폼페이오와 섀너헌에게 즉시 전화했다. 던포드와 전화한 뒤 나는 트럼프에게 알리기로 결정했다. 미사일들은 단거리였고 즉각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북한이 진짜로 어떤지 알지 못한다.
나는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 가볍게 생각하자구. 가볍게 생각하자구” 그의 친구 김정은이 위험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무렵 한국 국방부가 성명을 발표했고 언론 보도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확실히 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세 번째로 전화했다. 내가 추측했던 것처럼 트럼프는 어떠한 성명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오케이”라는 말로 끝이었다. 그것은 트럼프가 특별한 이슈에 대해 우리가 결론을 내린 방식에 대해 그가 안도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성명이 있든지 말든지, 사거리가 얼마나 되든지 간에 이 탄도미사일 시험들은 대북제재의 근간이 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 내가 우려했던 것은 유엔 안보리 결의의 침범할 수 없는 지위가 아니었다. 나는 현실적으로 우려한 것은 만약 우리가 중요한 위반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묵살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잘못된 교훈을 배울 것이고 중요한 제재 위반을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조금 위험한 것 이상이었다.
나의 우려를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다음날 아침 트럼프에게 최신 정보를 전달했다. 그는 “그것을 ‘포’라고 부르시오”라고 말했다. 마치 존재하는 어떤 것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지를 붙이면 그것이 사라지는 것처럼. 트럼프는 또한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게 한 약속을 깨트리길 원치 않는다. 거래는 성사될 것이다!”고 했다. 트럼프는 분명히 이 트위터들이 김정은과의 관계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이 트럼프가 거래에 필사적이라는 인상을 강화하면서 그를 파괴시키는 보좌진들(누군지 알아맞춰보라)이 그런 방식을 취하는 것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우리는 모두 트위터를 중단시킨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트위터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한국정부도 사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로켓들을 ‘발사체’라고 부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자국민을 굶기며 전 세계에 음식을 구걸하면서도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사용할 잔돈은 충분한 평양에 있는 정권 때문이었다.
다음날 문재인은 지난 주말에 있었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말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놀랍지도 않았지만 문재인은 이전에 트럼프가 그랬던 것처럼 그 문제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문재인이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에 실망했다는 말을 늘어놓는 동안 트럼프는 문재인이 김정은과의 관계를 잃은 것 같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김정은은 이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트럼프는 이 결렬이 문재인의 잘못이라고 보지 않았지만 분명이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문재인은 하노이 이후 북한과 실제적인 협상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인정했다. 문재인은 한국이 UNICEF와 세계 식량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것 대신에 미국이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 원조를 해야한다는 식으로 논쟁의 방향을 돌리려는 것으로 보였다. 트럼프는 유엔 기관들을 통해 식량원조를 하는 것을 축복할 것이라면서 문재인에게 북한이 그가 이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그가 반대하는 강경파들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결같은 일이었다. 북한은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니 식량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얼마나 거래를 원하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끔찍한 신호였다. 나는 포틴저와 후커에게 우리는 스스로 어떤 식량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말해두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순히 북한에 자원을 공급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북한에 전달되는 식량 원조는 매우 주의깊게 모니터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봄과 여름에 걸쳐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다. 김정은이 보복은 없으며 아마도 쌀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5월 9일 내게 말했다. “제재를 더 가하시오” 후에 이것은 “대량 제재”로 업그레이드됐지만 공표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브롤터 암벽을 닮은 풍향계를 만들었다.
늦은 5월 트럼프는 일본을 방문했다. 레이와 시대의 첫 국빈이었다. 이것은 트럼프에게 굉장한 영광이었다. 아베는 일본의 동맹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다. 나는 트럼프와 아베의 회담을 최종 준비하기 위해 며칠 일찍 일본으로 떠났다. 5월 25일 한 기자가 북한이 최근 발사한 미사일들이 유엔 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유엔 미국 대사로 있을 때 유엔 결의안 1695와 1718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나는 당시에 그토록 강조했던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논리의 문제로서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한 ICBM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안보리 결의들을 위반하는 미사일 발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그 약속을 통해 사실상 브루클린 다리를 팔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트럼프가 멍청해 보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성공을 이뤄냈다는 트럼프의 믿음을 흔들 수 없었다. 트럼프는 에어포스 원으로 일본에 도착한 직후 이렇게 트위터를 썼다: “북한이 몇몇의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그것이 나의 참모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가 조 바이든을 아이큐가 낮은 사람이라고 불렀을 때 미소를 지었다”
나는 트럼프가 북한의 미사일 시험에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트럼프는 그것을 중요하지 않게 보았지만 북한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내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꺼리지 않는다” 아베는 트럼프가 납북자 가족을 만나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함으로써 회담을 시작했다.
오후 3시에 아베와 트럼프는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럼프는 다시 한 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베는 트럼프가 옆에 서있는데도 공공연하게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그 분열을 좋아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루 내내 미국과 일본 동맹의 견고함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베와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북한에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6월 28일 오사카 G20 회의에 참석한 트럼프는 오전 8시 30분에 아베와 다시 만났다. 내가 보기에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가장 친한 세계 지도자는 아베다(동료로서뿐만 아니라 골프 친구로도). 그리고 영국의 보리스 총리도.
아베는 다시 한 번 트럼프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준 것에 대해 따뜻하게 감사를 표했다. 아베는 북한이 매우 급박하게 거래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두 지도자들에게 다른 의미를 가졌다. 아베에게 이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분명한 행동을 취해야하며 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에게 아름다운 친서들과 생일 카드를 보내왔으며 대북제재가 끔찍하게 상처를 내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일본이 미국이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제재를 가하고 있는지 물었다. 트럼프는 아베와 문재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질문을 했다. 그들은 모두 제재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나는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게 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확신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트럼프는 제재를 가하는 것에는 돈이 들지만 만약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훗날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북한이 제안했던 것처럼 한 개 이상의 핵 시설을 폐기하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또 다른 미북정상회담을 원했다. 그는 북한이 볼튼, 펜스, 폼페이오를 미워하지만 자신은 사랑한다는 사실에 대해 웃었다. 트럼프는 로켓이나 핵시험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날 또 다른 양자회담을 가졌다. 독일을 메르켈 총리와의 짧은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언급하면서 G20 회의 이후에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DMZ에서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무엇인가를 하길 원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미국 대표부가 들었던, 트럼프가 김정은을 DMZ에서 만나길 원한다는 첫 번째 발언이었다.
우리는 그 말은 토요일 아침에도 들었다. 멀베이니는 그의 핸드폰으로 나에게 트럼프의 트위터를 보여주었다. 나에게 이미 보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시진핑 중국 대통령과의 만남 등 매우 중요한 회담 후에 나는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갈 것이다(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그곳에서 만약 북한의 김 위원장이 이것을 본다면 나는 국경인 DMZ에서 그를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고 싶다---
멀베이니는 나만큼 깜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트위터가 그냥 한번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후 일찍 멀배이니가 폼페이오와 나를 한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는 북한사람들이 그 트위터는 북한이 원했던 공식적인 초대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는 내게 말했다 “나는 이것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혼란입니다” 그것은 우리 둘 모두에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게 된 다음 일은 트럼프가 북한이 요청했던 “공식” 초청장에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는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폼페이오는 또한 앞으로 있을 김-트 회담에 끼어들려는 문재인의 노력을 관리하고 있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곁에 없기를 바랐다(Trump wanted Moon nowhere around). 그러나 문재인은 3자 회담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 끼어들기로 결심했다. 나는 문재인과의 이 논쟁이 모든 일을 망쳐버리기를 원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문재인이 곁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비행기를 이용해 오사카에서 서울로 날아갔다. 때문에 나는 문재인이 연 저녁식사에 참가할 수 없었다. 내가 서울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DMZ 준비가 점점 더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보았다. 내가 관여하는 한 트-김 회동은 악수와 사진찍기에 국한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미 내일에 대한 기대감에 흥분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것은 절대로 빨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당시 DMZ에 가야하는지 아니면 이미 오래 전에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몽고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울란 바토르로 곧장 가야하는지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당초 나는 트럼프의 DMZ 방문에 합류할 계획이 아니었다.
나는 빗나간 트위터가 실제로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 비록 나는 트럼프를 움직였던 것은 이 전례없는 DMZ 만남에 대한 언론보도와 사진찍기일 뿐 실제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얼마간의 위안을 가졌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DMZ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갖길 원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김정은에게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발됐다. 우리는 여전히 이것이 트럼프와-김정은의 양자 회담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인시킬지 알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가졌다. 그리고 트럼프도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졌다. 이것은 외교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불균형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국익 사이에서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했다.
6월 30일 토요일 나는 폼페이오가 DMZ 회담에 참석하기로 한 것을 알고 놀라서 일어났다. 나는 그에게 가기로 결정했는지 질문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그가 답장을 보냈다. “내가 그곳에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곳에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약 그가 간다면 나도 역시 갈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한국인들과 미국 재계 지도자들과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후에 우리는 문재인과의 회담을 위해 청와대로 갔다. 가는 길에 나는 북한이 사진찍기 후에 거창한 양자회담을 원하지 않으며 단지 약 40분 간 리더와 다른 한 명이 배석하는 회담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 나는 리영호 외무상이 “다른 한 명”으로 참석하기로 예정됐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폼페이오가 우리측의 “다른 한 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나는 김정은과 실질적인 회담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울란 바토르로 떠나기로 했다.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동안 DMZ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는 트럼프가 내가 이전에 해준 충고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나는 멀배이니에게 자세히 알렸다. 그는 내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청와대에서 매우 제한적인 양자 회담 중에 문재인이 DMZ에 갈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계획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실제와 달리 트럼프는 김정은이 그를 만나자고 요청했지만 문재인이 훌륭하게 보이도록 함께 DMZ에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가 우리에게 말한 것과 달랐다. 따라서 폼페이오는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형식을 포함해 북한 측과 조율한 것을 말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트럼프의 질문에 나는 폼페이오의 발언을 거들었다. 트럼프는 우리가 만날지 만나지 않을 지는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은 트럼프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회담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 문재인은 김정은이 한국 영토에 들어올 때 문재인이 그곳에 있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은과 인사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인도해준 다음 떠나겠다고 말했다. 폼페이오는 또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문재인의 의견을 전날 밤 북한에 전달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함께 간다면 좋겠지만 북한의 요구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완전히 상상에서 나온 말이었다). 문재인은 미국 대통령들이 DMZ를 방문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은 처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
트럼프는 자신은 김정은에게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큰 기회를 놓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첩보기관이 말한 것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화제를 바꿨다. 그는 북한과 실무협상은 항상 매우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접근하면 결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다음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 대선이 끝난 다음이 될 것이라고 물어보겠다고 했다. 이 순간에 트럼프는 그의 첩보 수장인 토니 오르나토에게 몸을 돌렸다. 나는 아마도 DMZ 회담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신에 그는 왜 재러드와 이방카가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는지(참석하지 않을 완벽하게 좋은 이유가 있었다)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오르나토에게 그들을 불러오도록 명령했다(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심지어 한국인들도 놀랐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자신이 최소한 약간은 김정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제안했다. 아마도 문재인이 DMZ로 떠나는 그를 서울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 미군들과 만남이 예정된 오산 미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문재인은 모든 제안을 거부하면서 그가 트럼프를 OP올렛(Ouellette,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이름을 딴 DMZ 관측 지점)까지 데려다주면 좋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문재인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신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OP올렛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갑자기 주한미군 기본비용에 대한 화제로 말을 돌렸다. 폼페이오와 내가 이전에 이 문제를 문재인에게 제기했다고 말하면서. 트럼프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미국은 매년 한국과의 무역에서 200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었다. 일각에선 380억 달러 적자(숫자는 매번 달라졌다)를 보는 대신에 한국에 관세를 부여하면 미국이 300억 달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문재인과의 관계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그해 전에 트럼프는 내게 주둔비를 계산해보고 한국과 공정하고 공평한 분담금을 위해 협상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한국이 분담해야 할 방위비는 일 년에 50억 달러 또는 55억 달러(숫자들은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리고 나서 모든 다른 경우에 말했다. 그리고 나서 트럼프는 2018년 말에 한국은 10억 달러 이하로 방위비를 지불했지만 다른 모든 나라들도 주둔비를 더 내기로 동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최소한 당시에는 그랬다). 트럼프는 우리는 미국을 위해 공정하고 공평한 거래를 해야 한다며 미국은 매년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40억 달러를 손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고 만약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에게 폼페이오나 나와 협상할 누군가를 임명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한국의 이웃이 얼마나 적대적인지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출됐다고 말했다.
문재인은 트럼프가 4월에 백악관에서 50억 달러를 제시한 것을 아마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문재인은 경제적 이슈들과 관련해서 트럼프가 취임한 후 무역 흑자는 줄어들었으며 한국은 미국 LNG의 최대 수입국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는 증가했으며 한미 간 무역 균형은 현재 미국에 더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10억 달러 방위비와 무료 지대, 시설 건축, 무기 구입 모두가 한미 공동 방위에 중요한 공헌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즈음 트럼프는 점점 불만스러워 보였다. 그는 문재인에게 빨리 말하라는 제스처를 했고 우리와 다른 한국인들을 향해 몹시 화가 난 얼굴을 했다. 더 당황스러운 일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우리가 그 땅을 소유한 것이 아니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떠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을 방위하기 위한 땅에 부동산세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윤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매우 부유한 나라가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상환받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이제 그의 손을 흔들면서 어깨를 으쓱였고 한숨을 쉬었다. 문재인의 말을 듣기에 지쳤고 다음 단계로 옮겨가기를 원한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한국은 GDP의 2.4%를 방위비로 쓰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동맹국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독일과 일본도 한국과 같은 처지지만 그들은 위협 아래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동의했다. 트럼프는 50억 달러를 원했고 내게 협상을 이끌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에 70년 동안 주둔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한국을 구하기 위해 김정은을 만나려고 했다. 문재인은 서울이 도움을 받기만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저항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내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라고 하면서 거래가 시작됐다고 말하며 말을 끝냈다.
언론이 떠난 뒤 점심시간에 트럼프는 김정은이 몹시도 만나고 싶어한다고 거듭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측에 문재인을 위해 준비가 돼 있는지 다시 물었다. 트럼프는 왜 김정은이 한국 대표를 원하지 않는지에 대해 엉큼하게도 내 의견을 물었다. 문재인은 북한의 경직성 때문에 남북 간 의미있는 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국이 미국의 편을 들고 있으며 이것이 북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양자회담에서 한국이 제공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 강조할 것이며 김정은과 그 사이에 일어난 모든 것을 문재인에게 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국경을 넘기에 합의했으며 실무급 협상이 곧바로 재개되길 원했다. 따라서 트럼프도 점심식사를 빨리 마치길 원했다. 이 모든 것이 넌센스였다. 누가 가장 이 만남을 원하는지는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트럼프는 주둔비용에 대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말하면서 내게 임무를 맡겼다. 트럼프는 내게 이전에 누구와 협상을 했는지 질문했고 내게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말했다. 정의용은 이에 대해 매우 기분이 나빠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중국의 환율 조작 문제로 넘어갔다. 문재인은 김정은이 체제 안전 보장을 원한다는 화제로 토론을 돌리려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보장을 원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이며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니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한국의 안전을 보장했지만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 짧지만 매우 성공적인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문재인을 위해 매우 좋은 일이었다. 문재인은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유명하다는 것을 안다고 우쭐댔다. 그는 그의 클럽에서 한국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다가와 그를 끌어안았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어떻게 상황이 변했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는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매우 큰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도 김정은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하는지 몰랐다. 문재인은 한국이 김정은과 핫라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조선 노동당 본부 안에 있으며 김정은은 결코 그곳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비록 그 업무 오찬이 20분 늦게 시작했지만 트럼프는 예정된 종료시간인 오후 1시가 되기 5분 전에 지금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에 나는 백악관 안보 팀은 모두 참석하라는 공지를 받았지만 DMZ 대신 몽고로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트럼프에게 말하기 위해 비스트 근처에서 기다렸다. 나는 내가 DMZ에 있지 않은 것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후 일찍 한국을 떠나 울란 바토르로 향했다. 트럼프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사진찍기 때문에 트럼프는 북한 땅으로 걸어들어갔다. 쿠슈너와 이방카는 근처에 있었다. 김정은은 사진에서 매우 즐거워보였고 또 그래야만 했다. 트럼프는 개인적 홍보를 위해 DMZ를 방문함으로써 김정은에게 얼마나 엄청난 선물을 주었던가. 이 모든 것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대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도 나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김-트 회담은 약 50분 간 지속됐다. 그리고 두 정상은 실무급 협상이 속히 다시 재개돼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물론 비건은 아직도 새로운 카운터파트를 갖지 못했다. 그의 전임자는 표시도 없는 무덤 속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7월 1일 울란 바토르에서 회담을 가진 후에 나는 워싱턴을 향해 떠났다. 나는 DMZ 회담에 관한 뉴스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한 기사가 특히 나빠 보였다. DMZ에서도 미국의 정책은 수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타임즈는 “핵 동결”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문제 많은 비건이 하노이 이전에 따랐던 바로 그 길이었다. 나는 트럼프가 회담장을 걸어나갔을 때 우리가 이 접근방식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나타났다. 이전보다 훨씬 나쁜 상태였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기본적으로 매우 부풀려진 것이었지만 최소한 어떤 것을 포기하거나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기본적인 어떤 것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건은 트럼프의 열정을 북한과의 다음 회담을 형성하기 위한 자격증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그러한 방식의 회담은 30년 동안 실패한 것이었다. 나는 공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때였다. 게다가 내가 사임한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닐 것이다. 몇 번이나 초안을 고친 후에 나는 다음과 같은 트위터를 썼다:
---나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백악관안보팀이나 나는 ‘북한과 핵 동결에 합의한다’는 것을 들어보거나 논의한 적이 없다. 이것은 대통령을 방해하려는 누군가의 부끄러운 시도이다---
나는 트럼프로부터 이 트위터에 대해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나는 린지 그래이험이 이것을 리트윗한 것에 기뻤다.
7월 3일 나는 폼페이오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타임즈 기사와 나의 트위터에 대해 매우 불평하면서 말했다. “왜 내게 전화하지 않았소?” 그는 물었다. “비건이 말한 것은 대통령의 생각에 훨씬 가까운 것이요”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 오싹한 일이었다. 나는 그와 비건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하길 원한다고 대답했다: 왜 그들은 내게 전화하기 않았습니까? 나의 트위터는 여전히 공식적인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대변했다. 그러나 비건의 브리핑은 그렇지 않았다. 폼페이오는 그에 대해 논쟁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으며 우리가 모두 본질을 다룬다면 훨씬 더 능률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동의했다....
트럼프가 DMZ에서 열린 파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고? 그날 후에 트럼프는 “어느 누구도 내가 한 것을 하지 못했다. 오바마는 11번이나 불렀지만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에 있는 동안 나는 대북제재가 자연스럽게 완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대부분 (대북제재 완화에) 방해를 받았다.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거나 트럼프 대신 행정부 관리들을 공격할 때만 제외하고.
워싱턴에 돌아온 후 7월 16일 폼페이오와 나는 최고로 예민해진 김정은을 화나게 만들었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멈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이 훈련은 거의 모든 것이 컴퓨터로 이뤄진다. B-52가 날아다니는 가운데 해군이 해안을 타격하는 훈련이 아니라고 거듭 확인시켰지만 트럼프는 연합훈련을 취소하길 원했다.... 폼페이오는 내게 북한이 8월 중순이나 말까지 어떠한 실무급 회담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DMZ 회당 후에 비건과 다른 이들이 말한 7월 중순과 매우 다른 것이었다.
며칠 후에 나는 주둔비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본과 한국을 향해 떠났다.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중요한 두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정상화는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북한, 중국의 호전성을 저지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태평양 지역에서 NATO와 같은 기구를 갖고 있지 못했다. 오직 일련의 대도시 거점 방식의 양자 동맹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위해 항상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국가들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의 무관심한 행정부 안에서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은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연합을 증가시키기 위한 길이었다. 더욱이 성공적인 북한 핵 타결을 위한 트럼프의 우선순위 목록의 높은 곳에는 일본과 한국이 큰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있었다. 트럼프는 북한에 “외국 원조”를 주지 않으며 오직 대규모의 이윤이 남는 사적인 투자만을 허락할 작정이었다.
... 나는 워싱턴에 돌아왔을 때 트럼프에게 주둔비 협상에 대해 말했다. (폼페이오와 므누신이 다른 이슈와 관련해 오벌 오피스에 나와 함께 있었다) 트럼프는 매년 각각 80억 달러와 60억 달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당신은 매우 강력한 협상 위치에 둘 것이다”라고 트럼프는 말했다... 다음날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듣는 중에 트럼프는 “지금이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의용에게 한일 양국이 한 달 동안이라고 “정지 협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것은 양국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며칠간의 심한 밀당 끝에 우리는 휴전을 향해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북한은 7월 30일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일본해에 쏘아올린 것을 포함해 단거리 미사일들을 계속해서 쏴댔다.
2020년 대선 운동 기간 동안 북한이 백악관을 목표로 할 것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김정은이 그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대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트럼프를 나쁜 거래를 하도록 유혹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와 아무런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보다 외교정책에 더 경험이 없는 나긋나긋한 민주당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볼 것인가? 정답이 무엇이든지간에 완전히 능력 있는 핵무기 국가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연달아 4개의 행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 확산 위협을 멈추는데 실패할 것이다.
그것은 미래 행정부가 필연적으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북한정권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정권이 미국에 셀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것을 마주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좀 더 일찍 행동했다면 이러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거의 30년 동안 북한은 이동 가능한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위협은 더욱 증가됐다. 우리는 북핵이 임박해지기 전에 그것을 막을 기회가 있기를 오직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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