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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9일 월요일

관료를 위한 변명 - 정규재 칼럼


죽 끓듯 하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국가 조직이 관료제다. 정치가 혼돈의 열정이라면 관료제는 이성의 질서다. 그게 전문가 제도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대한민국 공직의 부패상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싸구려 이익집단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필시 그것에 합당한 사연과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교정도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감동적이었지만 관료 개혁, 국가 개조의 전체 그림은 아니다. 우선 지난 20년간 썩은 정치가 관료조직에 침투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당에 줄을 대고, 당파성에 따라 '우리가 남이가' 하는 끼리집단(inner circle)이 형성된 것이 기강 해이와 조직 붕괴의 제1 원인이다. 고위직은 물론 실무선까지 모래성이 물에 잠기듯 정치를 빨아들였다. 한국은 연고(nepotism)라는 낡은 소속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낮은 단계의 사회다. 지자체 20년은 그런 퇴행현상을 말단에까지 심어나갔다. 관료의 신분보장은 원래 정치 중립을 위한 장치다. 그러나 철밥통을 공고히 하는 데만 기여했다.

사람들이 종종 잊는 것은 국회 독재, 정치 우위가 행정부를 무능한 정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감히 국회의원 나리들에게 대들다간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의원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면 장관들의 자부심은 땅으로 팽개쳐진다. 품위도 자존심도 없다. 장관과 정부 부처가 단독으로는 한 건의 법안도 원안대로 통과시키지 못할 정도로 국회의원의 위세는 막강하다. 힘이 너무 세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를 시녀로 삼고 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라는 바로 그 저질 국회의원들의 무식과 억지, 그리고 오만방자는 고위 공직자의 인내심을 끊임없이 고갈시키고 있다. 애국심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청문회는 장차관 후보자를 무참하게 욕보이는 그런 절차다. 아니 국회의원들은 청문회를 통해 행정부를 길들인다. 무슨 조폭 입단식 같다. 아니라면 어디 감히!라며 기어이 낙마시킨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렇게 몇 사람이 낙마했다. 떨어뜨리고 싶은 자에게서만 비리가 적출된다는 것은 채동욱 케이스에서 드러난 그대로다. 그것이 시녀같은 장관시대를 만들어 왔다.

결정적 요인은 또 있다. 정부 조직을 전국으로 분산, 산개시킨 소위 균형정책이다. 처음부터 우려됐던 바로 그 사태다. 공무원들은 철도 자동차 비행기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장관도 부재(不在), 차관도 국장도 과장도 사무관도 출장 중인 그런 정부다. 산하단체 공공기관 공기업도 전국으로 찢어발겨졌다. 간단한 실무회의조차 온통 전화통을 돌려 날짜를 잡아야 하고, 1시간짜리 회의를 위해 수십 명이 도로 위에서 시간과 세금을 축낸다. 장관도 실무자도 서로를 찾아 헤맨다. 모두가 출장 중이다. 장관은 주5일을 여의도에서 방황한다. 이런 난장판에 무슨 업무를 집중력 있게 할 것이며 어떤 일에 신속하게 대처할 것인가. 그게 지금 대한민국 행정부의 시간표다. 누가 텅 빈 행정도시를 만들었고, 누가 행정 인프라를 파괴한 것인가.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관료들을 죽인다. 감사원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4대강 공무원들의 무릎을 꿇리고 겁을 주었다. 이런 판에 무슨 애국심이며 창의성이 나오겠나. 정권이 바뀌면 간판이 또 바뀔 미래부 공무원들은 또 무엇이 신이 나서 창조경영을 추진하겠는가. 대한민국 공직자들을 무능 부패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정치다. 그 정치인들이 지금 국회에서 또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장관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 책임지겠다는 국회의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해수부 공무원들의 등에 올라타 호령해대던 그들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뻔뻔스럽다. 한국의 3류 정치야말로 직업 관료제를 파괴한 바로 그 주범이다. 이 엄중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백가지 개혁정책이 모두 공염불이다. 관료들은 면종복배할 것이다. 여론은 이번에도 잘못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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