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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6일 수요일

윌리엄 부케로의 미술 작품



 William Bouguereau's Collection 
  
(윌리엄 부케로의 미술 작품)


Adolphe William Bouguereau


프랑스 인상파 화가(1825.11.30.~1905.8.19 )

 부케로는 시인 이상이 이야기한 '박제된 천재' 입니다.
현재 사람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화파는 다름 아닌 '인상파' 입니다.
프랑스의 고전주의적이며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긴
윌리엄 부게로는 시대가 발달하여 현대적으로 접어들며
바뀐 예술적 흐름에서도 고전적인 화풍을 고집하였다...
센잔, 마네,모네, 드가, 피사로, 르느와르 .. 후기 인상파로 빈센트 반 고흐,
고갱 현재 가장 평가 받는 화파가 인상파이며  인상파의 탄생에 의해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고 알고있습니다.
부게로의 그림은 곧 세밀한 묘사, 특히 손과 발, 피부의 묘사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고 살롱에서 그의 작품은 인기 있는 품목이었습니다
.
          
      아카데미 화풍으로 충실하게 그려진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William Bouguereau 는 그 지워진 '기존화파'의 대가로서 사실 저주 받았다기 
  보다는 그로서 대표되는 Academic Art 전체가 저주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寫實的으로 표현했기에  死後에서야 빛을 보게된
William Bouguereau (윌리암 부궤로)의 미술작품을 모았습니다.
Dante and Virgil in Hell 1850
 어린 나이에 미술에 소질을 보이고, 나이 속여 미술학교에 일찍 입학하여 그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연이은 수상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뜨리에에서, 밥먹는곳도
 아뜨리에, 친구들을 만나는곳도 역시 먼지나는 작업실. 하루 16시간, 일주일에
7일을 꼬박 그림만을 그리며 한 평생을 보내고, 그리고  다시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한, 당시 최고의 미술가라 불리며, 그렇게 평생을 바쳐
 80년동안 822점 (현재 알려진)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낸. William Bouguereau..
그런 작가가 존재했었고,
어둠속에 잊혀졌던 수십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Charity  
어려서는 교육기관에서, 졸업후에는 아뜨리에서 도제방식의 수년의 연마를 통해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기본과 안정적인 구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을 고수하며, 원근법과 해부학적인 관점을 중시여긴
사실적인 묘사, 전통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표현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를수 있었던 사람...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근육, 핏줄, 뼈대.. 생생한 색깔,
그중의 최고로 평가받는 부궤로.
The Virgin and Angels  
당시의 주류였던 아카데미즘과의 대립에서의 승리 하지만, 그 와중에 인상파 사조의
직격탄을 맞게된 William Bouguereau 와 19세기의 화가들, 특히 마지막까지 자신의
교육방식을 고집하던 부궤로의 경우 Academism 화가의 대표자로 인식되어 집중적인
비난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까지 프랑스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작품들도 주로 미국쪽에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르노아르의 경우 안경을 맞추러 간 자리에서 조차  쓰던걸
내던지며 "이런, 부궤로 같으니라구.." 했던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인상파를 이은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완성도높은 기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 감성적인데다
고전적인 방식, 소재, 모더니즘과 대치되는 모든것을 갖고 있는 대표자로서 인식되어
그는 서양 미술사에 깨끗이 지워집니다. 1940년부터 1980년사이에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름이 되고 마는 것이죠.
Young Girl Defending Herself Against Cupid 1880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려고 하는, 다가온 사랑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녀. 하지만, 그림의 하단에는 대개 이런 유형의 간단한 문구가
따라붙곤 합니다.
'들판에 나가 그린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그린 것이며, 뒤의 배경은 작가가
살던 인근 프랑스지역의 산이다.'
Pain of Love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  기술에만 치중하며  겉만 번지르하고 내용은
없다고 치부 되었던 작품.
Biblis
한때 대중과 소수의 평론가들에게 사랑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편 없는 그림이라평가되어, 미술관에서조차 퇴출되어 창고에 쌓여있던 그림들. 이제는 몇점이나
그렸으며,지금은 어디에 보관 되어 있는지 출처조차 찾기 힘든 그림들.
아직도 그가 몇년에 죽었는지(1905년) 조차 잘못 기록되어 돌아다니는 현실.
Nymphs and Satyr
Fred Ross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1977년에 Clark Museum에서 르노아르의 그림을
보러갔다가 그 구석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보았다고 하는데... 무척 당혹스러운
기억이었다고 말합니다. 알고 있는 모든 작가를 생각해보았으나, 도무지 누구일까..
떠오르지가 않았던, 콜럼비아대학에서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자신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그림.
Birth of Venus
그는 의문을 품습니다. 생전에 엄청난 경력을 가진 화가가 어떻게 철저하게
묻혀질 수 있는지,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자료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가 시작됩니다.
The Nymphaeum
동시대를 연구하고, 버려진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그는 이 엄청난 유기가 '부궤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The Youth of Bacchus
First Kiss
Fred Ross
'부궤로'에 대한 말도 안되는 편견과 인신공격, 악의적 왜곡이수십년간 지배됐음과
한 시대의 그림에 대해 일방적인 평가와,  집단적 매도, 그리고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예쁘장' 한게 아니라, 미술사에서도 정점에 남을 만한 명작인거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죠.
Dawn
The Flagell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irst mourning (아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담과 이브)
A Soul Brought to Heaven
Love is Fleeting 1901
예술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원래 그렇게 늘 바뀌는 건가?
의문이 들게 합니다.
렘브란트.. 그의 작품들은 사후 100년 동안 사장 되었다고 합니다.
Night Watch라는 작품의 경우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아 그림의 하단을 벽면에
맞는 크기로 잘라내는 조건으로 내걸렸던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림을 잘라내어
벽에 맞추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합니다.
Little Shepherdess 1891
미의 기준이 변하는 것,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가장 순수해야할 미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무척 허약한 게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지배하는 어떠한
거품 같은 게 잔뜩 있는 건 아닌가, 그 안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나약한건 아닌가.
그런 의구심과 함께.
The Little Marauder 1900
 어느 정도의 기준이 변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 정도를 넘어서까지 그 가치라는 게 변할 수 있다는 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Two Girls (Childhood Idyll) 1900
The Abduction of Psy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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