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0년 6월 8일 화요일

장영희가 남긴 아름다운 향기

□ 이야기 하나



살아가면서 우리는 보통 세 부류의 사람들을 알고 지낸다고 한다.

첫째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다섯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서로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둘째는 사랑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에게서 한 걸음쯤 떨어져 있다.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 때문에 자신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넘어질 때 기꺼이 내게 손을 내민다. 아니 함께 넘어지고 서로 부축해 함께 일어난다.



셋째는 나를 미워하는 이들인데, 그들은 나와 등을 맞대고 밀착하고 있다.

숨소리 하나까지 나의 움직임에 민감하며 여차하면 나를 밀어버리기 위해 꼭 붙어 있다. 언제나 내 실수를 기다리고 있다가 교묘히 이용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손뼉 치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으로 밀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서로 사랑과 미움의 기다란 고리를 이루며 살아간다, 나는 지금 내가 아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한 걸음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밀치고 밀리면서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어, 너무 멀리 서 있다면

조금 더 앞으로, 등 맞대고 서 있으면 조금 뒤로,

함께 넘어지고 일어나며 운명을 같이하는 한 걸음의 거리를 유지한다면

세상에 몹쓸 전쟁 따위도 없을 것이고,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텐데...




□ 이야기 둘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묻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을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다”

즉 바로 지금 내 옆의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 삶이 더욱 풍부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사는 게 늘 만만치 않아 짜증이 나도, 때론 별로 재미없어도,

내 옆에 있는 지금 이 사람에게 좋게 대하면 정말 나까지 행복해지는지

나도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합니다.





□ 이야기 셋


오래 전에 미국에서 있을 때 일이다.

친구의 이웃이던 킹 부인이 갑자기 좀 와달라는 전갈이 왔다.

한국 고아를 입양해 사회복지소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날인데 낯선 땅에

와서 푸른 눈의 엄마를 처음 상면하는 자리에 같은 한국인이 있어 한국말을 좀 해줄 수 있다면 아이의 충격이 훨씬 덜하리라는 배려에서였다.

킹 씨 집에 도착했을 때 킹 부부는 집안에 꽃과 동물인형을 배치하며 제이슨이라는 아이를 맞이할 채비로 분주했다.

마침내 심한 뇌성마비로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고 한쪽 눈까지 먼,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받아 안고 킹 부인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상태를 보고 그녀가 실망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 했는데,

그러나 그녀는 제이슨을 꼭 보듬어 안으며 하는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정말 예쁘군요. 이렇게 예쁜 아기가 어떻게 내 아이가 되었을까요? 내가 운이 너무 좋지요?”

지난해 다시 제이슨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제 거의 열 살이 된 제이슨은 엄마 뒤에서 나를 훔쳐보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었다. 제이슨을 처음 보고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었다고 말하자

킹 부인이 대답했다.

“제이슨은 지금도 늘 나를 울게 만들지요. 어제도 포크를 여러 번 떨어뜨리면서도 혼자 식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서 울었답니다.

저는 눈물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이슨은 제게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킹 부인의 말처럼 사랑이란 결국 아주 쉽고 단순한 감정

불쌍하고 약한 자를 보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 라고 했다.

척박한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아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이 찬란한 봄을 맞는 아침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 이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中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