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22년 3월 23일 수요일

우크라 전쟁, 유라시아 제국…푸틴의 망상 부추긴 ‘푸틴의 브레인’

‘올해 60세 알렉산드르 두긴의 유라시아 구상: 중국은 해체돼야 …러시아의 극동 파트너는 일본 이철민 선임기자 러시아의 무리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달이 되면서, 애초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크림반도 침공과 동부 돈바스 지역의 사실상 병합을 부추겼던 러시아의 정치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60)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두긴은 1997년 600쪽에 달하는 ‘”지정학의 기초: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라는 책을 냈다. 더블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광활한 유라시아 제국의 건설을 꿈꾸는 두긴의 생각은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정치엘리트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책과 평소 지론을 통해, 영국을 유럽연합(EU)에서 떼어내야 하며,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는 극도로 위험하고, 독일의 러시아 자원 의존도를 심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의 인종∙종교적 분열을 부추기고 고립주의 성향을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실제로 지난 20년간 푸틴의 국제정치 ‘각본’이 됐다. 그래서 과장됐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두긴은 이후 ‘푸틴의 브레인’으로 불렸다. 일각에선 반대로 푸틴의 ‘라스푸틴(제정 러시아 말기의 황당한 궁정 예언가)’라고 비꼬기도 한다. 푸틴의 철학가, 브레인으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두긴(왼쪽). 그러나 일각에선 그를 제정 러시아 말기에 황제의 신임을 배경으로 폭정을 일삼은 황당한 예언가 그레고리 라스푸틴(오른쪽)에 빗대기도 한다./위키피디아 두긴의 ‘유라시아 구상’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중국과 일본의 역할이다. 러시아∙중국의 외견상 ‘밀월(蜜月)’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긴은 중국은 러시아의 유라시아 제국을 위해 결국 ‘해체’돼야 하며, 극동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주니어 파트너는 일본이라고 봤다. ◇소련 해체 후 새로운 이념 찾아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는 새로운 이념에 목말랐다. 1996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0세기 러시아를 보면, 왕조주의∙전체주의∙페레스트로이카∙민주화를 밟았고 각 단계마다 이념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때 러시아의 연약한 모습에 실망한 일군(一群)의 학자들은 ‘러시아의 이름으로 합의’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러시아의 과거 ‘영광’을 되찾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라는 러시아 전통에서 답을 찾았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직무대행이 된 푸틴은 이 ‘러시아의 이름으로 합의’에 속한 학자들과 연을 맺었다. 그에겐 러시아 경제와 정치체제의 안정화라는 급선무가 있었다. 때마침 고(高)유가의 도움으로 경제는 살아났고, 2000년대말 푸틴은 옐친이 애초 찾았던 ‘러스키야 이데야(러시아의 사상)’의 문제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푸틴은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기존의 틀이 아니라, 러시아 고유의 법칙과 도덕성을 통해 부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러시아 정교회와 결탁했고, 동성애를 범죄화하고 서방의 자유주의 성향을 배격했다. 러시아의 이러한 보수주의는 서방의 보수주의와는 정반대였다. 국가 권력을 옹호하고 개인은 국가에 복종∙봉사해야 한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이었다. 애초 1920년대 러시아의 망명 지식인들이 불을 피웠고, 두긴이 되살린 신(新)유라시아주의와 맞아 떨어졌다. ◇볼셰비키 혁명의 망명자들이 ‘유라시아주의’ 펼쳐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유럽으로 망명한 러시아 지식인들은 러시아를 ‘유럽 문명의 지진아’로 보는 서구화주의자들이나, 러시아 전체를 계급투쟁을 통해 개조하려는 볼셰비키주의자 모두 배격했다.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를 비롯한 이들 지식인은 “러시아는 고유의 발전 경로와 역사적 사명을 지닌 나라로서, 유럽∙아시아 양쪽의 기질을 갖춘 새로운 문명과 권력의 핵(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는 궁극적으로 몰락하며, 러시아가 세계의 대표 국가가 되는 때가 온다고 믿었다. 1921년 이들은 ‘동방으로의 탈출(Exodus to the East)’이라는 이념집을 냈다. 이 책에 따르면, 러시아 지배자는 영토 확보의 필요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변경의 위험한 인구∙민족은 동화시켜야 하며, 지도자는 반드시 제국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나 개방 경제, 지방 정부, 세속적 자유는 매우 위험하고 수용할 수 없었다. ◇유라시아주의자들의 모델은 징키스칸 따라서 이들 망명 지식인에게, 18세기 러시아 제국을 세우고도 서구화하려고 했던 표트르 대제(1672~1725)는 ‘역적’이었다. 오히려 칭키스칸 제국이 러시아에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이며, 피라미드식 복종과 통제 체제라는 교훈을 제공했다. 이 유라시아 주의는 1990년대말 러시아의 새로운 이념을 찾는 캠페인에서 다시 부각됐다. 푸틴과 같은 ‘애국주의자’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었다. ◇두긴의 등장: 세계는 로마(러시아)와 카르타고(영국∙미국)과의 싸움 알렉산드르 두긴은 1991년 ‘대륙들간 전쟁‘이란 팜플렛을 내 유명세를 얻었다. 두긴에게 세계는 두 글로벌 파워의 지정학적 투쟁이었다. 한 편은 국가주의∙공동체∙이상주의∙바다 문명∙공동선(善)을 우선하는 ‘영원한 로마’이고, 다른 편은 개인주의∙무역∙물질주의에 기초한 ‘영원한 카르타고’였다. ‘영원한 로마’ 러시아와 ‘영원한 카르타고’ 미국∙영국 사이에 공존(共存)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싸움에 이기기 위해선, 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다수와 국가 주도 경제, 준(準)종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사회 가치에 복종시키는 보수적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나야 한다. 푸틴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두긴이 1997년에 낸 책 '지정학적 기초'의 표지. 두긴은 이 책에서 "중국은 가능한 한 최대로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말 그는 러시아 전체 극우 진영의 지적 지도자가 된다. 1997년 그가 낸 책 ‘지정학의 기초: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는 러시아 군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두긴, 1920년대 유라시아주의를 흡수 발전시켜 고전적 유라시아주의자들처럼 두긴도 기본적으로 서구∙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전체주의∙이상주의∙사회적 전통을 주창한다. 그러나 두긴의 신(新)유라시아주의는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보다 범위가 훨씬 크다.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는 동쪽의 만리장성에서 서쪽의 카르파티아 산맥(루마니아-폴란드)에 그쳤다. 두긴이 꿈꾸는 유라시아 제국은 구(舊)소련 국가들을 품고, 지금의 EU(유럽연합) 국가들은 이 제국의 보호령이 된다. 동쪽으로는 만주∙신장∙티베트∙몽골까지, 남서쪽으로는 인도양에 닿는다. 두긴의 이 세계관에서 미국은 “서로 다른 형질이 하나의 생물체에 사는 괴물(chimera) 같은 존재로, 이식(移植)된 문화를 가진 주제에 타(他)대륙에 반(反)인종적∙반(反)전통적 바벨론과 같은 모델을 강요하는” 최대 적(敵)이다. ◇푸틴의 사상적 자산으로 떠올라 점차 독재자로 변모해 간 푸틴에게 두긴의 사상은 적절한 역사∙지정학적 배경을 제공했다. 푸틴은 자신의 정책 목표를 위해 두긴의 생각을 차용했다. 두긴은 크렘린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TV에 단골로 출연하며 푸틴의 맹방이 됐다. 두긴은 러시아가 ‘대국’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선 개인의 자유 제한, ‘전통적’ 가족 중시, 동성애 반대, 러시아 정교회의 중요성을 필수적으로 본 푸틴의 생각을 대중화했다. ◇우크라이나 침략의 이론 제공 두긴은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우크라이나 동부 침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환영하고 기대하며 ‘제발 와달라’고 요청한다”고 썼다. 당시엔 러시아인의 65%가 푸틴의 침공을 지지했다. 두긴은 또 ‘지정학의 기초’에서 “영토적 야망을 가진 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전체에 막대한 위험이 된다.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륙 정치를 말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썼다. 이에 앞서, 1920년대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를 주장한 트루베츠코이도 1927년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은 러시아인과 러시아정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했다.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푸틴이 행한,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와 민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연설은 바로 이 ‘지정학의 기초’에서 온 것이었다. ◇지난 20년간 두긴의 ‘각본’대로 움직인 푸틴 러시아는 지난 20년간 그의 각본대로 움직였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트럼프 시대에 더욱 두드러진 미국의 인종∙종교적 갈등과 국제적 고립주의, 나토 분열, 영국 내부의 독립주의 성향 고조, 석유∙가스∙곡물을 통한 서부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등 국제정치는 의도했든 안했든, 두긴이 주장한 대로 흘러갔다. 최소한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는 그랬다. ◇우크라이나 이후 푸틴의 수순은? 두긴의 큰 꿈은 대(大)유라시아 제국의 건설이다. 두긴은 유럽이 결국 독일과 러시아 영향력 관할(zone)로 나뉘고, 러시아 자원에 의존하는 독일보다는 러시아가 더 큰 주도권을 쥘 것으로 봤다. 영국이 해체되면서, 러시아의 유라시아 제국은 더블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른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로 볼 때, 이는 과대망상이다. 그러나 시진핑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두긴에 따르면,중국은 궁극적으로 해체돼야 한다. 러시아의 아시아 야망은 “중국의 영토적 분해, 조각내기, 정치 행정적 분할”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후 러시아의 극동 파트너는 일본이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 두긴의 제국주의 세계관을 재조명하면서 “망상(delusion)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망상도 (푸틴 같은) 폭군들이 수용하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했다. 조선일보 2022.3.24.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