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7년 5월 26일 금요일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찾을 수 없을꺼야: I'll never find another you

나이가 들면서 가끔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옛날 젊었을 때의 일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노래를 좋아 해서 그런지 어린 시절 열렬히 들었던 곡들을 다시 들으면 절로 흥이 나고 당시로 돌아가 얽혔던 추억들도 되살아난다.

집사람과는 초등 1학년에 같이 성가대를 했었지만 (나중에 안 일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 만나는 날 얽힌 사연이 있다. 평생 마음에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일을 털어 놓아야겠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고등학교 동창 중 제일 친한 친구 7명이서 여대생들과 함께 건전한 모임을 갖자고 의기 투합하여 일을 시작하였다. 때는 1969년 봄이었다.

우리 중에 누가 여대생을 모을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지만 모두들 숙맥이라 아는 여자 친구 하나도 없어서 서로 눈치를 보던 중 희철이가 어머니에게 부탁하겠다고 하였다. 어머니 친구 중 딸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 모집(?)을 해 보겠다고 하였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해결될 것 같아 모두들 저으기 안심을 하며 이제나 저제나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희철이가 희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 딸이 자기 친구들을 모아서 우리와 함께 첫모임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여자들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슴이 부풀어 올라 하루가 여삼추같이 지나갔다.

나는 그때까지 여학생들과는 교회 성가대의 같은 공간에 늘 있었지만 중고등 6년간 여자애들과 말 한번 섞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의 관심은 노래 듣고 친구들과 함께 운동하며 공부하고 영화 보는 것이 전부였기에 여자는 관심 밖의 존재여서 말을 주고 받은 여자애들이 없었다. 너무 순진하기도 하고 덜 성숙했기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모임을 영모임으로 명칭하고 일주일에 한번 명동의 카돌릭 회관의 방하나를 빌려서 첫 시작을 하였는데 여자는 4인가 5밖에 안 와서 극심한 성비 불균형의 상태로 시작하게 되어 모두들 한껏 부플어 올랐던 기대는 실망으로 기울어졌다. 그래도 여학생들과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것 이상 좋은 것은 없었다.

우리는 명동 성당 앞의 다방을 빌려 시사회를 열기도 하고, 나름대로 젊은 대학생들의 고뇌와 열정을 가지고 매주 모이며 토의도 하면서 재미있게 이끌어 나갔다. 그러던 중 모두 강촌으로 1박 2일 10월 3일 개천절날 놀러 가기로 하였다. 

성비 불균형에 대해 본질적으로 심사가 좋지 않은 우리, 특히 나 같은 여성 울렁증이 있던 애들을 위해서 너무나 고맙게도 여자 중 한명이 예고도 없이 떠나는 당일 날 여학생 둘을 데리고 나왔다. 그야말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중 한 여학생이 지금의 집사람이 될 줄이야!!!!

청량리 역 앞에서 처음 보며 인사를 나누는 순간 나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의 매력에 눈과 온 정신이 홀려 버렸다. 그때까지는 한 번도 여학생을 사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누구말대로 첫 눈에 반해 버렸다. 저런 여자라면 무엇이라도 해서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갑짜기 용솟음치며 올라 오고 있었다. 가슴이 쿵쿵 거리며 얼굴이 슬슬 달아 오르는 기분을 맛 보면서 내심 자제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통제 불능의 세상으로 가 버렸다

가는 기차 간에서부터 신경은 온통 그애에게 쏠려 있었다. 우리 모임에 처음 나왔기에 그리고 불란서 인형 같은 이국적인 용모에다 이대 미대 생활미술과 2학년에 다닌다는 정보를 들으면서 슬슬 친하고 싶은 마음이 용광로 같이 뜨거워졌다.

기차로 한 시간 남짓 걸려 난생 처음 들은 강촌에 도착하였다. 당시 강촌은 역은 있었지만 그야말로 깡촌 중 깡촌이었다. 내리니 아무 것도 없이 삭막한 곳이었다. 그래도 우리 중 누군가 시골 집 한채을 빌려서 논 밭을 지나면서 한참을 걸어 폭포 근처에 있는 인기척이라고는 찾기 힘든 곳에  있는 허름한 초가집에 다달았다. 성비는 남 7 여 6인가?  기억이 가물 가물하네.


하루를 지내고 10월 4일 강촌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뒤에 있는 여자가 바로 양혜경, 문희철, 양윤재, ...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 박상준과 함께



이서영 박상준 나 뒤에 양혜경



우리 7명은 기타를 세명이 치고 게다가 희철이는 우쿨렐레까지 하면서 나의 테너 화음으로 어딜가나 좌중을 압도하는 훌륭한 보칼을 자랑하던 때였다. 이미 모임을 통해 친한 친구 사이가 된 우리들은 그 밤을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신나게 보내었다. 새로 온 애에 대해서 무지한 관심들을 다 가지면서.... 누군가 벽에다 게시판을 만들어 놓아 생각나는 글들을 자유롭게 쓰면서 추억거리로 남기자고 했는데.

내가 쓴 글은 딱 한 줄 아까 본 여학생을 두고 당시 너무 좋아했던 노래 제목을 적어 넣었다.
바로 "I'll never find another you" Seekers의 노래였다.



There's a new world somewhere
They call the promised land
And I'll be there someday
If you could hold my hand
I still need you there beside me
No matter what I do
For I know I'll never find another you
There is always someone
For each of us, they say
And you'll be my someone
Forever and a day
I could search the whole world over
Until my life is through
But I know I'll never find another you
It's a long, long journey
So stay by my side
When I walk through the storm
You'll be my guide, be my guide
If they gave me a fortune
My pleasure would be small
I could lose it all tomorrow
And never mind at all
But if I should lose your love, dear
I don't know what I'd do
For I know I'll never find another you
But if I should lose your love, dear
I don't know what I'd do
For I know I'll never find another you
Another you, another you

처음 보자마자 당신 같은 사람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꺼라는 말을 내뱉어 버렸다. 물론 혼자 말이지만. 그날 통성명을 하면서 우린 둘이 초등 1학년부터 6년을 같은 성가대에서 보낸 사실을 알고 서로 놀랬다. 나는 대학생 성가대를 하고 있었기에 잠시 성가대를 떠난 그 애를 다시 불러 들이면서 자연스레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 두번은 함께 성가대에서 만나게 되었다.

조금 전에 이 노래를 다시 듣고 있다가 바로 나에게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에 내 감정을 표현한 곡이기에 당시의 일이 주마등 처럼 지나가 버렸다. 지금도 그 마음이 되살아나 울렁거리고 있다.

나의 숨겨졌던 이야기도 이제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재미 삼아 쓰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짝지어 주시기로 하셨다고 믿으며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고 위해서 사는 가장 친하고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다. 지혜로운 여자를 배필로 허락하신 것에 더더욱 감사를 드리게 된다. 

언젠가 나의 이 이야기를 결혼 후에 집사람에게 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호박이 넝쿨 채 들어 왔다고 평생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말도 고맙기 그지 없다. 둘이 부모를 떠나 하나가 되고 하나님이 짝으로 맺어 준 사이는 죽음이 갈라 놓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사이를 떠어 놓지 못한다는 그 말씀을 되새기면서 젊었을 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본다. 

Marriage is leave, cleave and weave something beautiful!
Lord, my cup runneth over with your blessing. 



















George Girl by the Seeker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