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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맑시즘의 광기”는 지금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를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가? - 류근일 주필의 김 교수의 글을 읽고.

국사학계는 이미 중병 상태...애국 세력이 역사교과서 목숨걸고 방어해야

김철홍 장신대 신약학 부교수

(<조선pub>은 그동안 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글 두 편 <내가 “신앙인,” “학자,” “국민"으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공산주의 이론의 그늘 속에 있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학>을 소개했다.  김철홍 교수는 그가 애초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두 편의 글을 통해 역사 교과서 싸움에서 애국진영의 주요 투사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세 번째 글을 자신의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다. 김 교수는 박영이라는 장신대 학생의 글에 대답을 하는 형식을 통해 좌편향된 우리 사회의 문화를 통찰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글을 소개한다. 원문의 글을 좀 더 읽기 쉽게 단락구분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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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한국 사회의 단면.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서울광장을 비롯한 도심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인 반정부 집회가 열린 가운데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시위대들이 밧줄을 이용해 차벽 대열에 있던 경찰 버스를 끌어내고 있다. /조선DB


“2015년을 살아 달라”는 박영 학생의 부탁과 2015년의 한국문화 분석
11월 4일 나의 두 번째 글이 장신대 일반게시판에 올라가자마자 적지 않은 학생들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 중 임준형 학생은 “ㅋ 학생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디 있습니까? 게시판에 써놓은 학생들의 질문에는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셨는지요? 왜 개인 SNS에 쓰신 차정식 교수의 글에는 장문의 답변을 하시고, 교수님의 글을 정독하고 반박하는 학생들의 글은 외면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차 교수가 쓴 글에도 대답을 했다면, 그보다 더 수준이 높은 학생들의 글에는 당연히 대답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말이다. 올바른 지적이다. “이제 그 정도 말했으면 됐으니 그만 하시라”는 주변 교수님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토론에서 나의 침묵은 미덕이 아닌, 비난과 고발의 사유가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모든 댓글을 다 정독했다. 댓글 중에 내가 “대답할 가치를” 느끼게 하는 글들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댓글을 단 상당수의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능력과 작문 능력은 예상했던 것처럼 수준이 낮았다.

그것은 요즘 학생들 상당수가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쓰레기 수준의 글들이 즐비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동안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교과서를 암기해서 성적을 받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달콤한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것에만 익숙하게 된 나머지, 역사와 정치이념과 같은 씁쓸하고 ‘단단한 인문학’을 입 안에 넣는 것이 그들에게 너무나 생소한 경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수고하셨습니다. 제 점수는요.” 그 뒤에 내가 불러주는 두 자리 숫자가 너무 짜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신학대학원에 만연하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주는 꿀맛에 학생들이 너무 오래 중독되어 자신의 지적 능력과 작문 실력이 정말로 A학점이라고 과신(過信)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래 교회의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의 교수로서 내가 갖게 된 작은 소망은 부디 이런 지적(知的) 미성숙 속에 있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들 중 극히 일부이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다. 나는 참다운 기독교 지성인(知性人)을 만드는 교육의 길에 이미 들어섰다. 교육(pedagogy)의 길은 반드시 무지(無知)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내가 입을 다물고 그 터널을 지나갈 수는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처음부터 전혀 침묵을 지킬 뜻이 없다는 것이며, 아직도 할 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내가 읽은 댓글들 중 분량이 적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진실성(sincerity)을 갖고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박영’이라는 학생이다. 나는 이 글에서 그가 던져놓은 정리되지 않은 많은 질문들 중 일부에 대해 답하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다양성’의 신화(神話)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설령 그런 [검인정 교과서의] 좌편향적인 기술이 문제가 된다고 한들, 교수님이 주장한 사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그것을 막아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검인정교과서의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견제할 여러 정책들을 손보는 것이 우선이지, 좌편향 되었으니 국정으로 통일하자는 것은 결국 사고의 다양성을 막겠다는 것과 무엇이 차이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서 다양성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그 무엇이다. 그것이 사고의 다양성이건, 검인정교과서의 다양성이건, 다양성을 없애는 것은 그에게는 절대악(絶對惡)이다. 국정교과서는 한 권이고, 검인정교과서는 일곱 권이다. 그렇다면 “일곱”은 선하고 “하나”는 악한 것인가? 그 교과서의 내용이 어떻든 상관없이 “일곱”은 절대선(絶對善)이고 “하나”는 절대악(絶對惡)인가? 국정화를 지지하는 나는 “하나”가 절대적 선이기 때문에 국정화는 지지하는 것인가? 교과서를 둘러싼 이 논쟁은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과는 상관없는’ 논쟁이 아니다. “하나”냐 “일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적하는 문제는 일곱 개의 교과서의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건 “일곱”이건 내용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들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장신대 학생회 임원들이 디자인하여 교문 입구에 걸어 놓은 국정교과서 반대 현수막,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는 촌철살인의 재치가 엿보이는 수작(秀作)처럼 보이지만, 이 현수막은 대중을 오도(誤導)하고 있다. 나는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라는 현수막 바로 위에 “도마복음은 퇴출되었는데.....” 혹은 “사도행전은 하나뿐인데.....”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걸고 싶은 욕망과 한 동안 맞서 싸워야만 했다.

교회 역사상 신약성경의 정경(canon)을 결정하기 위해 교회는 한 번도 회의를 소집하여 논의하고 결정한 적이 없다. 초대교회 안에서는 네 개의 복음서 외에도 “히브리복음(Gospel of Hebrew),” “베드로복음(Gospel of Peter)”같은 책들을 한 동안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초대교회에서 결국 퇴출되고 말았다. 만약 다양성이 그토록 중요한 덕목이라면 초대교회가 이런 책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 건 범죄행위가 아닌가? 다양성을 위해 이런 복음서들을 포함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초대교회는 다양성(diversity)만 본 것이 아니라 복음서들 사이의 통일성(unity)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통일성은 곧 초대교회가 갖고 있는 복음과 신앙고백의 기준이다. 그 기준과 부합하는 책들은 정경 안에 포함시켰고, 부합하지 않은 책들은 제외시켰다. 만약 그 기준에 맞는 복음서가 한 권뿐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그 한 권만 정경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우리에게 한 개가 아니라 네 개의 복음서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네 개의 복음서는 각각 다른 다양한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하지만 이 다양한 네 개의 복음서 안에는 다양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양성만큼 통일성도 중요하다.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는 다양성만 보고 통일성은 보지 않고, “넷”이란 숫자를 절대선(絶對善)으로 우상화한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는 “도마행전(Acts of Thomas),” “마태행전(Acts of Matthew),” “베드로행전(Acts of Peter),” “바울과 쎄클라 행전(Acts of Paul and Thecla)” 등 다양한 행전들이 교회 안에서 읽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다양한 행전들을 모두 퇴출시키고 오직 사도행전만을 정경에 포함시켰다. 다양성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초대교회는 왜 사도행전 단 한권만을 정경으로 삼았나? 이것은 ‘국정화’에 버금가는 죄악을 저지른 것이며 비난 받아야 될 일인가? 다양성이 그렇게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면 신대원 학생회 임원들은 지금 당장 위의 행전들을 정경에 포함시킬 것을 세계 교회를 향해 요구할 것을 고려해보길 바란다.

초대교회가 복음과 교회의 시작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나름대로 절대적 기준을 갖고 평가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의 책들은 정경목록에서 퇴출시킨 것은 내가 보기엔 정당한 결정이었다.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라는 현수막을 만들기 전에 이런 교회의 역사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는가? 왜 하나만 알고 둘은 생각하지 않는가? 다양성이 중요한 만큼 통일성도 중요하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가?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라는 현수막을 만들고, 그것에 박수를 치며, SNS로 부지런히 퍼서 나른 학생들은 정경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 1시간이라도 투자하여 개론서를 읽어보기나 했는가? 자신의 무지를 이렇게 드러내면서 온 세상에 이 학교의 지적, 신학적 수준의 열등함을 그렇게 자랑해야만 했는가?  나는 이 학교의 교수인 것이 다시 한 번 부끄럽다.

다양성은 현대의 상대주의(relativism) 문화에서 최고의 찬양을 받는 덕목이다. 하지만 다양성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기준과 테두리 안에서 다양성이 발휘될 때 다양성은 그 참된 가치를 발현하게 된다. 절대적 기준이 없는 다양성은 결국 무한대의 다양한 견해의 집합일 뿐이며, 이것은 사상적 무정부주의로 귀결된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들도 정치적 무정부주의(anarchism)와 사상적 무정부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내가 인정하는 다양성은 아무런 절대적 기준도 없는 무분별한 다양성이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다양성은 절대적 기준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되는 다양성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다양성은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국가적 이념과 정체(政體)를 인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발현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애국시민들에게 호소한다: “다양성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절대적 가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다양성은 퇴출되어야 한다.”

작금의 교과서 논쟁에서 다양성의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은 마치 상대주의의 기수(旗手)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다양성은 이제 그들의 우상(偶像)이고 신(神)이다. 그들은 이미 다양성을 절대화함으로 상대주의를 배신한 변절자들이 되었다. 이미 한국 국사학계에서는 다양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며칠 전 모일간지 기자가 나에게 전화로 물었다.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집필을 사양하고 있어서 필진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국사학계가 매우 건강하지 못한 학문적 풍토 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의 입장에 서서 근현대사를 보지 않으면 무식한 사람이 되는 학문적 분위기라면, 국사학계는 이미 병들었고, 중병 상태입니다. 이런 병든 사람들이 쓴 교과서는 자라는 세대를 병들게 합니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오래 전에 퇴출시켜 놓고도 그들은 지금 뻔뻔스럽게 다양성의 깃발을 흔들면서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구호를 외친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역겨운 말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이고(정의구현사제단-인권 부재의 북한에 가서는 인권에 침묵하고, 남한에서는 인권을 부르짖는 위선자들), 두 번째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이 다양성을 수호하겠다는 것이다(검인정 역사학자들). 검인정 역사학자들은 정의구현사제단 같은 분들이며,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설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그 내용이 천편일률적이고 다양하지 않다. 검인정 교과서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교학사 교과서를 학살(虐殺)함으로 다양성을 철저하게 퇴출시켰다. 이제 검인정 교과서를 퇴출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독재(獨裁) 아래에서 우리가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밤을 깊은 고민으로 보냈을 박근혜 대통령의 고뇌에 동감하며 나는 국정화를 위한 대통령의 결단에 감사한다.

나는 일단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앞으로 기회를 보아 국정교과서를 단계적으로 검인정으로 전환하는 것도 정부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유물사관을 주입하는 교과서가 검인정 안에 들어오지 않게끔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는 사람들로 검인정 심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하고 다양한 역사 교과서로 다음 세대를 교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가 인문학 공부의 한 부분으로서 공산주의 이념과 역사관에 대해 배울 필요는 있다.

나는 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자율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미성숙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이념을 현재의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여 주입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이념 교육은 대학에 가서 얼마든지 교양교육을 통해 할 수 있고, 그 때에는 찬반양론이 균형 잡힌 인문학 교과과정을 통해 가르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는 하루라도 빨리 퇴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공산주의에 겁먹은 사람이 아니다. 박영 학생처럼 나를 향해 “레드 콤플렉스”를 운운하는 것에 나는 미소를 지을 뿐이다.

나는 공산주의나 빨간색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다. 콤플렉스는 “공산주의자(빨갱이)”를 “공산주의자(빨갱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현상이며, 나는 빨간색을 빨간색이라고 말하므로 나에겐 레드 콤플렉스가 없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아니다.

박영 학생이 제기한 두 번째 문제는 좌편향 된 교과서로 좌편향 된 학생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비관론(悲觀論)의 신화(神話)다. 그의 비관적 견해를 먼저 들어보자.
“단순히 나열된 단어들과 좌편향된? 시야가 과연 중고등학생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중략) 그리고 솔직히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인 차정식 교수]도 해석하지 못 한 부분을 중고등학생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해석하여 계급투쟁을 꿈꾸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야겠다는 의식화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 의견은 설사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그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는 묘한 주장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이 견해는 검인정교과서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좌파 이념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이다. 그래봐야 학생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괜챦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입장은 갑자기 낙관론(optimism)으로 끝난다. 이런 낙관론과 비관론을 기묘하게 조합한 정신분열적 주장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왜냐하면 지난 10월 17일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에 참가한 김포 통진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전혜린 학생이(이하에서 ‘통진 소녀’라고 부르기로 하자) 위의 질문에 대해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대답을 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위를 마친 뒤 미디어와 촬영한 인터뷰 동영상에서 통진 소녀는 기자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말하자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금 이 동영상을 보고 계신 분들이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하지만 사회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혁명) 뿐입니다”

유투브(Youtube) 동영상에 있는 통진 소녀의 겉모습만 놓고 보면 프롤레타리아보다는 외려 부르주아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본인이 자신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고 주장하므로 우리가 그 주장을 거부할 수는 없다. 내가 쓴 첫 번째 글에서 나는 검인정 교과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산주의 역사관의 용어들이 학생들에게 유물론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했고, 두 번째 글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은 결국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행(移行)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학생들에게 심어준다고 주장했다. 통진 소녀는 나의 주장이 옳았고, 박영 학생의 낙관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서 걸어 다니는 증거다. 굳이 대단한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우리는 박영 학생과 통진 소녀가 만났을 경우 아래와 같이 묻고 대답하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박영: “단순히 나열된 단어들과 좌편향된[?] 시야가 과연 중고등학생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통진 소녀: “네, 영향을 줍니다. 저를 보시고도 모르시겠어요?”

박영: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도 해석하지 못 한 부분을 중고등학생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해석하여 계급투쟁을 꿈꾸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야겠다는 의식화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통진 소녀: “네, 가능합니다. 오빠는 지금 중고등학생의 이해능력을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요? 저는 교과서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석하고 있고, 계급투쟁을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고 있어요, 오빠.”

박영: “좌파 지식인들이 의도한 의식화 교육이 실패나 마찬가지란 소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것을 해석할 시간적 여유와 심화적인 학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교육은 철저한 입시위주의 교육이지, 그런 스스로 생각을 할 시간과 수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통진 소녀: “그렇지 않아요, 오빠. 스스로 생각할 충분한 시간과 수업이 제공되고, 심화된 학습이 이미 잘 되었어요.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은 김철홍 교수가 아니라 오빠예요.”

박영: “이념전쟁은 끝이 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자라난 저와 같은 20대는 아무리 자본론을 연구하고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혁명을 꿈꾸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이미 맑시즘의 한계와 효용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시대가 체득하게 해주니까 말이죠.”

통진 소녀: “이념전쟁이 끝났다고요? 누가 그래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전쟁은 지금 진행형입니다. 마르크시즘의 효용은 제가 저절로 체득하게 된 게 아니죠.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아는 겁니다. 참고로 저희 학교 역사 선생님 두 분은 전교조 소속 이예요. 마르크시즘의 한계라고요? 그런 건 없어요. 혹시 오빠도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주아’?”


나는 개인적으로 통진고등학교 일부 선생님들께서 범한 실수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분들의 실수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사상 교육을 시킨 것이다. 고구마를 적당히 구워야 하는데, 너무 많이 구워서 타버렸다. 사실 전교조 교사들이 모든 고등학생들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박영 학생이 지적하듯이 “대한민국의 국민의 대부분이 좌파라고” 보지도 않고, 검인정 교과서로 교육받은 모든 학생이 다 좌파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파들은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하여 어린 학생들을 사회주의 이념에 친화적인(socialism friendly) 시민들을 만들기만 해도 대성공이다. 곧 모두를 혁명전사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혁명의 전사들은 이미 만들어졌고 그 숫자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선생님들은 의욕이 넘쳤고, 결국 수줍은 통진 소녀의 입으로 ‘국정화가 왜 필요한지’를 폭로하게 했다.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나는 통진 소녀의 말을 듣고 환호하였다. 통진 소녀의 한 마디는 객관적인 증거이므로 나의 백 마디 주장 보다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전교조 교사들과 좌파 진영 전체로부터 받을 따가운 눈총과 비난에 평생 시달릴 그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물론 마음이 아프지만, 통진 소녀라는 든든한 아군(我軍)을 얻은 그 기쁨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아픔을 참을 수 있을 듯하다.

박영 학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죄송하지만, 2015년의 현실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 나는 2015년의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현실을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문화적 문맹 상태에 있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문화적 문맹 상태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박영 학생이다.

이제 우리는 이 글의 세 번째 주제인 “문화 읽기”의 영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 학생이 나의 ‘정세(政勢)’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남조선에서의 공산혁명을 위해 한 때 내 목숨을 내어놓은 적이 있다. 혁명 전사의 중요한 덕목은 지금이 혁명의 간조기인지 아니면 만조기인지,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시기에 맞는 투쟁 전략을 세우고 매일 점검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고 사상적 전향 이후에도 정세를 판단하는 나의 못된 옛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특히 계급투쟁에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대학시절 사회주의 예술론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레닌이 쓴 프롤레타리아 예술에 관한 소고(小考)를 포함하여, 해석학을 정치학의 수준으로 고양시켜 유럽 전체의 사회주의 문화예술론의 기초를 놓은 지외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 구조주의(structuralism)를 공산주의 이념에 연결시킨 루이 알뛰써(Louis Althusser), 예술과 문화의 영역을 혁명적 투쟁의 장소로 재조명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연극 무대를 마당으로 이해하고 서사극이라는 종합예술의 장르를 개발한 베를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글들은 물론, 시, 소설, 연극, 영화, 가요, 그림, 등 예술의 역사를 공부했다.

현대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논쟁인 구조주의와 해석학 사이의 긴 논쟁, 즉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기호언어학에서 출발하여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구조인류학을 거쳐, 리꾀르(Paul Ricoeur)의 해석학에 이르기까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기호(記號)’와 ‘구조’, ‘구조’와 ‘역사’, ‘현상’과 ‘본질,’ ‘의미’와 ‘담론(discourse)’, ‘상징’과 ‘해석’을 둘러싼 다소 복잡한 논쟁을 공부했다. 당시 이런 이론들을 공부한 것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문화와 예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활용하여 인민대중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단순한 정치 이론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삶 속에서 생생한 ‘스토리’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2015년을 읽지 못하는 문화적 문맹이 되기에 나는 문화에 대해 이미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좌파 예술론을 공부한 사람들의 문화를 읽는 능력은 박영 학생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흐리멍덩하지 않다. 우리는 그 때 이미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하부구조(sub-structure)이지만 상부구조(super-structure)에 포함되는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 갖고 있는 창조적인 힘에 주목했고, 인간의 의식이 하부구조의 변화, 즉 자본제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때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적이 있다. 군대를 제대한 뒤 86년에 나는 영화이론을 공부하면서 당시 혜화동에 있던 소그룹에서 영화제작을 꿈꾸고 있었다. 내가 영화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영화가 이미지(image)를 다루고 있고, 영화는 미술, 문학, 음악 등과 같은 다른 예술 장르와 쉽게 결합되는 종합예술이이서,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다수의 청중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야 말로 강력한 기호(記號)를 체계적으로 구조화하여 일관된 의미를 담은 담론이 되므로,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본질(예를 들면 노동 속에 숨겨진 자본가들의 착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청중이 이것을 역사 속에서 해석하여 주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효과적 선전(propaganda)의 수단이 된다.

나는 87년에 영화에서 손을 떼고 다른 곳으로 갔지만 그 무렵부터 상당수의 좌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충무로에 진출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영화 분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시, 소설, 연극, 영화, 가요, 그림, 등 거의 모든 예술과 언론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매체의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주장대로 문화의 각종 영역에 들어가 부르주아 계급이 갖고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지배권)을 빼앗고, 그 문화의 영역 속에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자신이 획득한 문화적 헤게모니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사용하는 선전, 선동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1986년은 학생 운동권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86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학생 운동권이 맞서 싸우는 주적(主敵)이 바뀌었다. 86년 이전의 투쟁의 주적은 독재정권이었다. 하지만 86년부터 운동권의 주적은 미제국주의(美帝國主義)로 바뀌었다. 85년 가을부터 대학가에는 소위 “반제국주의(Anti-Imperialism)” 문서가 등장했다. 약자로 반제(反帝) 문서라고 불리는 이 문서들은 현재 남한의 인민들의 진정한 적은 독재정권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며, 미국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인민 해방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문서들에서는 내가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생경한 단어와 표현들이 있었고, 나는 이 문서가 일본의 조총련 계열의 사람들을 통해 북한에서 들어온 문서로 추측했다. 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86년이 되자 반제국주의 그룹은 그 가면을 벗었다. 그 가면 뒤에는 북한의 주체사상이 있었다. 주체사상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결국 학생, 노동, 문화 운동의 다수파가 되었다. 86년 이후부터 문화 예술 분야에는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이해하는 좌파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시절인 1999년에 영화진흥공사를 해산하고 새로운 영화정책 담당기구로서 영화진흥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진흥위원으로 문성근과 같은 좌파들이 들어가 김지미, 윤일봉 같은 노배우들을 다 쫓아내는 영화계의 쿠테타가 성공함으로 그들은 충무로에 영화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진지를 확보하였다. 이 때부터 영화계는 급격하게 좌측으로 돌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전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1999-2015년 기간의 역대 흥행작 1위부터 100위까지의 영화 리스트를 검토해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문제 있는 영화들이 상위권에 다수 포진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역대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을 미화한 “변호인(12위),”이나, 전두환 대통령 암살 계획을 다루는 유치한 내용의 “26년(100위)” 같은 영화는 내용 분석 자체가 시간 낭비이므로 일단 무시하기로 한다.

1980년 광주사태를 다룬 “화려한 휴가(24위)” 같은 노골적인 선동 영화나, 폭력적인 내용으로 반기업적 정서를 만들어내는 “강남 좌파” 수준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3위)” 같은 저질 영화는(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포스터의 구호, “박근혜 정권 퇴진, 뒤집자 재벌 세상!”과 비슷한 정도로 저질이다) 미학(美學)적 분석의 대상이 되기에는 수준 미달이므로 일단 논의에서 퇴출시키기로 하자.

좌파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들의 독립운동을 그린 “암살(7위, 2015년)” 역시 검인정 교과서의 역사 해석 프레임인 좌파 무장 독립운동만이 올바른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선전하는 것이 너무 뚜렷이 보이므로 별도의 분석이 불필요하다. 이런 영화들보다 더 심각한 영화는 관객들의 머리에서 남북 간의 이념적 차이를 지워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에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영화들이다.

남과 북의 이념적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영화로 그 선두주자는 쉬리(35위, 1999년)로 볼 수 있다. 평생 자기 짝과 함께 살다가 짝이 죽으면 함께 죽는 “쉬리”라는 물고기를 영화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과 북의 남녀 비밀첩보원을 통해 남과 북이 “쉬리” 즉, 사랑의 짝의 관계 속에 있다는 낭만적인 주제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북쪽의 공화국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랑해야 할 짝으로 변신한다.

“쉬리”가 남과 북의 관계를 이성간의 사랑으로 그렸다면 그 다음 해 2000년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과 북의 관계를 남자간의 우정으로 그렸다. 대한민국 육군과 인민군 병사들이 서로 오가면서 휴전선에서 우정을 키워가던 병사들은 지극히 인간적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념 때문에 서로 총을 쏘고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 우리의 머리 속에서 남과 북의 이념적 차이와 현재 진행 중인 남북 간의 전쟁을 상상하는 것조차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죄악으로 만든다.

“태극기 휘날리며(10위, 2004년)”는 6.25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 전쟁을 친형제 간의 형제애로 승화하고, “웰컴 투 동막골(21위, 2005년)”는 전쟁을 “팝콘”으로 승화한다. 수류탄이 옥수수 창고에서 터져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 눈처럼 내리는 그 순간 관객은 우리 머리 속에 있는 모든 반(反)공산주의적 사상과 태도를 다 튀겨서 허공으로 날려 버린다. 이 영화에서 이념은 설 자리를 아예 얻지 못하고, 우리의 머리 속에서 추방된다. “한반도(67위, 2006년)”는 통일의 과정에서 남과 북이 일본을 상대로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이제 남과 북은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 “한 몸”이 될 미래를 예언한다. “의형제(40위, 2010년)”와 “은밀하게 위대하게(26위, 2013년)”에서는 아예 남파 간첩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고, 친절하고 우리보다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우리의 이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작품들을 능가하는, 한국 좌파 영화역사에 빛나는 수작(秀作)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괴물(4위, 2006년)”이다. 이 영화에서 미국은 악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미군부대에서 방류한 독극물이 한강에 들어가 돌연변이가 일어난 괴물 물고기가 등장해 무차별 인명살상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 “괴물”이란 기호(記號)는 그 이전에는 한 번도 “미국”이라는 기호(記號)와 연결된 적이 없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이제 괴물은 곧 미국을 의미하는 상징이 된다. 괴물이 주인공의 딸인 어린 여자 중학생을 납치하고 괴물의 은신처에 고립된 교복을 입은 여중생이 공포 속에서 떨 때 관객들은 2002년에 일어난 신효순, 심미선양,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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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한 장면.


그렇다. 미제국주의의 군대가 우리 아이들을 잔인하게 죽였고, 지금 그 미국이란 괴물은 우리의 딸, 여동생을 포로로 잡고 있다. 영화에서 정부, 군대, 경찰 등 국가의 공권력은 문제를 은폐하고, 문제 해결에 전혀 관심도 없다. 그들은 무능하고 결국 두 젊은 남녀 주인공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결국 이 가족이 괴물을 죽이고 우리의 여중생을 구출한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에서 괴물을 죽여 제거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군대인 미군과 미국을 쫓아내는 것이며, 우리의 여동생은 미제국주의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은 이제 미국이 떠난 한반도에서 그 동안 헤어져 있던 남과 북의 한 가족의 재결합(reunion)이며, 진정한 평화의 밥상 공동체의 회복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영화의 상징과 이야기의 구조(structure)가 잘 짜여져 있다. 이 영화는 영화의 문법과 상징이 갖고 있는 힘을 활용하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만든 영화다. 이 영화가 역대 관객동원 역대 4등(1천 300만명 이상) 인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미국을 괴물로 형상화한 것은 미국을 우리가 싸워 물리쳐야 할 주적(主敵)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가 경기도 분당에 퍼져서 분당을 폐쇄한 뒤 미국이 미군 폭격기를 동원해서 분당을 폭격하려고 한다는 극적 설정을 갖고 있는 “감기(87위, 2013년)”같은 영화보다 훨씬 더 반미(反美)적이다.

반미는 곧 반제국주의로 연결되고, 반제국주의 투쟁은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싸움이고 대내적으로는 재벌로 상징되는 부르주아 계급과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노동자 사이의 싸움이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과 괴물의 여중생처럼 연약하게 보였던 우리의 딸, 우리의 여동생은 이제 “통진 소녀”의 더 이상 연약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이지만 저는 연약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사회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뿐입니다.”

이런 반미 정서는 2008년에는 광우병 난동으로 나타났다. 광우병은 미국을 바이러스의 근원으로 보게 하고, 반제국주의의 투쟁은 이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투쟁이 되었다. 좌파들에게 2002년의 효순, 미선이가 죽었을 때 불타오른 반미운동은 2008년 광우병 난동을 거친 뒤 별다른 반미투쟁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5년 1월 1일 여의도 한강공원에 높이 3m, 길이 10m, 무게 5톤의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는 점이다.

괴물 조형물은 서울시의 ‘한강 이야기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고, 밋밋한 한강에 이야기를 입혀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자는 박원순 시장의 빛나는 아이디어로 1억 8천만 원을 들여 탄생했다. 심지어 서울시는 괴물 사진 콘테스트까지 했다. 영화 '괴물'이 개봉한 지 8년이 지닌 시점에 흉측하게 보이는 조형물을 만든 것을 놓고 세금 낭비라는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반미” “반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기호(記號)로서 괴물 영화의 성공을 못내 아쉬워하는 사람이고, 그 시절을 잊지 못해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수도 서울의 시장은 괴수 영화 마니아(mania)가 아니라, 반미(反美) 상징 마니아다. 그리고 서울의 교육감인 조희연은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을 아직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중략] “대중과 사회를 좀 더 급진화해서 뚜렷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2007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발췌). 이런 사람을 향해 공산주의자라고 지적하면 '철지난 색깔론'이라고 대답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국가관에 대한 질문에는 침묵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에 관한 것이고, 역사는 우리의 시대를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으로 보는 것이라면, 문화는 우리 시대를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 지금의 문화가 형성되었으므로, 현재의 문화를 분석하면 지나간 역사가 보인다. 지금 우리는 교과서 논쟁을 하고 있고, 이 논쟁은 역사논쟁이다. 역사논쟁은 본질적으로 이념논쟁이고, 그래서 지금의 이 싸움은 이념전쟁이다. 우리 시대에 이념전쟁은 총, 칼을 갖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문화적 매체를 무기로 하여 싸우는 전쟁이다. 그러므로 역사 논쟁은 문화 전쟁이다.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현재 교과서 내용에 문제가 있으냐 없느냐,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반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사적 경험 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에서 1999년부터 현재까지 영화를 예로 하여 보여준 것처럼 교과서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교과서 문제는 이미 문화의 문제고, 우리는 모든 예술, 문화 분야에 뿌리 내린 좌파 이념에 충실한 활동가들과 싸워 그들의 진지를 빼앗고, 그들의 손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빼앗아 오지 못한다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이 싸움은 긴 싸움이고, 전선이 매우 넓은 싸움이다.

좌파 영화감독들은 남녀 간의 사랑을 저속하게 묘사하는 19금(禁) 영화를 잘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린 학생들이 그들의 영화를 보고 공산주의에 대해 경계심을 풀게 하고, 예술의 이름으로 공산주의에 친화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도 이제 이념 전쟁의 장(場)으로 만든다. 좌파는 이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고, 우파는 이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만, 결과는 똑같다. 영화는 이념의 전쟁의 전장(戰場)이다.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괴물에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의 아들, 딸, 우리의 남동생, 여동생을 구출해오지 못한다면 그들은 머지않아 통진 소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그냥 낭만에 젖어 감상하고 싶지만, 지금의 정세는 영화를 분석하게 하고 현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분석하는 피곤한 일을 하게 만든다. 박영 학생은 나에게 “전 세계적으로 치뤄졌던 이념전쟁은 끝이 난 시대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부분적으로 옳다. 왜냐하면 아직 한반도에서 이념전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영 학생이 언급한 “맑시즘의 광기”는 지금 한반도의 문화와 역사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듯이 나의 “색깔론은 이미 지나버린, 흘러가버린 광기어린 시대와 이념전쟁의 낡은 유산”이길 진심으로 나도 바라지만, 내가 분석한 것처럼 이념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의 현대사에서 공산주의 이념과 싸우는 마지막 전쟁터인 이 땅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나는 2015년 이 시점까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꼼꼼히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를 문화적 문맹으로 고발하려면 나의 문화 분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나에게 “죄송하지만, 2015년의 현실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박영 학생을 향한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미안하지만 2015년의 현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공산주의의 종말을 고한 이 시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 저자들이다. 2015년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박영 학생이다.

제발 부탁이다. 역사와 문화를 읽는 법 좀 배워라.” 더불어 나는 우리 학교 “기독교와 문화” 전공 교수님들이 더욱 분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박영 학생 같은 문화적 문맹 상태에 있는 학생들에게 문화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내가 이 글에서 언급한 좌파 영화들에 대한 본교 기독교와 문화 전공 L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는 각종 영화 모임에 참여하는 등 영화에 대해 상당히 깊은 조예를 갖고 계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950년 대한민국은 북조선 인민민주주의공화국 군대에 쫓겨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다. 낙동강 전선에서 마지막 방어의 교두보를 만들고 인민군과 싸울 때 우리에게는 더 이상 후퇴할 땅이 없었다. 여기서 후퇴하면 이제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고 학도병으로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동네의 친구들과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6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역사 교과서 전선에 서 있다. 나의 아버지는 총을 들고 싸웠지만, 나는 펜을 들고 싸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훈련도 못 받은 학도병이 아니라, 유경험자라는 것이다.

애국세력들은 이미 수도 서울을 빼앗겼고 교과서도 이미 빼앗겼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애국세력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다. 역사 교과서 전선은 우리가 진지를 파고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방어해야 할 전선이다. 여기에서 밀리면 이제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없어질 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낙동강 전선을 지켰듯이 이 교과서 전선에서 물러나지 않고 지킬 것이다. 그것이 내가 2015년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2015년 11월 16일 장신대 부교수 김철홍A




칼럼 | 정치

거짓을 다양성 이름으로 가르칠 순 없다...김철홍 교수의 글을 읽고

글 | 류근일 언론인,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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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지만 우선 인용을 하나 하고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장로교신학대학 김철홍 교수가 국사교과서를 둘러싼 작금의 '문화 전쟁'에 관해 피를 토하는 모습으로 쓴 세 번째 글(조선 pub 11/17)) 중 한 대목이다. 

이 인용문에 나오는 박영이란 사람은 장신대 재학생으로 김 교수의 글에 대해 비판적인 댓글을 단 사람이고, '통진 소녀'라는 이름은 최근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반대해 시위를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외친 고등학교 여학생이다. 

 아래 인용한 박영과 '통진 소녀' 사이의 대화는 실제상황이 아니다. 박영의 비난 댓글에 대해 김 교수가 '통진 소녀'의 입을 빌려 재반박한 일종의 '설정(設定)'이다. 김 교수에 대한 박영의 비판은 "좌경적 교과서라도 다양성의 요청에서 그냥 놓아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교과서로 가르친다 해도 청소년들이 결코 좌경화 되지 않을 만큼 오늘의 한국사회에선 이념의 규정력(力)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 교수더러 "너무 난리치지 말라"는 투로 나무라고 있다. 

 박영의 이런 비판에 대해 김 교수는 "오늘의 '혁명적 좌파'의 문화공작과 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박영의 낙관론인지 비관론인지는,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통진 소녀'의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 운운의 사례만 보아도 이내 알 만한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박영: “단순히 나열된 단어들과 좌편향된(?)시야가 과연 중고등학생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통진 소녀: “네, 영향을 줍니다. 저를 보시고도 모르시겠어요?”
 
 박영: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도 해석하지 못 한 부분을 중고등학생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해석하여 계급투쟁을 꿈꾸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야겠다는 의식화 교육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통진 소녀: “네, 가능합니다. 오빠는 지금 중고등학생의 이해능력을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요? 저는 교과서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석하고 있고, 계급투쟁을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고 있어요, 오빠.” 
 
 박영: “좌파 지식인들이 의도한 의식화 교육이 실패나 마찬가지란 소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것을 해석할 시간적 여유와 심화적인 학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교육은 철저한 입시위주의 교육이지, 그런 스스로 생각을 할 시간과 수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통진 소녀: “그렇지 않아요, 오빠. 스스로 생각할 충분한 시간과 수업이 제공되고, 심화된 학습이 이미 잘 되었어요.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은 김철홍 교수가 아니라 오빠예요.”
 
 박영: “이념전쟁은 끝이 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자라난 저와 같은 20대는 아무리 자본론을 연구하고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혁명을 꿈꾸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이미 맑시즘의 한계와 효용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시대가 체득하게 해주니까 말이죠.”
 
 통진 소녀: “이념전쟁이 끝났다고요? 누가 그래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전쟁은 지금 진행형입니다. 마르크시즘의 효용은 제가 저절로 체득하게 된 게 아니죠.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셔서 아는 겁니다. 참고로 저희 학교 역사 선생님 두 분은 전교조 소속 이예요. 마르크시즘의 한계라고요? 그런 건 없어요. 혹시 오빠도 ‘강력한 힘을 가진 부르주아’?”
 


 필자가 김 교수의 글 한 대목을 이렇게 길게 인용하면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박영 학생의 댓글과(또는 인용문 속 박영 학생의 주장과)  이에 대한 김 교수의(또는 인용문 속 '통진 소녀'의)  반박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너무나 절실하게 전형화(典型化)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필자 자신이 박영 같은 논리에 대해 항상 느끼고 있던 바를 김 교수가 너무나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반가움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래 그런지 김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필자의 입에선 "그렇지, 그렇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 주변엔 박영 같은 논리가 도처에 많아도 아주 많다. 박영 같은 논리는 어떤 것인가? 그의 논리는 우선 소위 말하는 극좌는 아니다. 본격적인 의미의 좌익도 아닐 수 있고, 그런 좌익이 될 덩치도 되기 어렵다. 본격적인 좌익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많고 깊은 독서를 해야 하고, 사회과학 이전에 일정한 철학적 훈련을 거쳐야 하고, 이른바 '투쟁'의 실제상황 속에서 단련을 받는 시행착오도 해 봐야 한다. 

 요즘 세대는 그러나, 우선 책을 읽지 않는다. 이러면서 그들은 이념교사, 이념 교수, 이념구호, 이념 이벤트, 이념 대중연예, 이념 미디어, 이념 종교인, 이념 스타, 현실적 불만, 그리고 마침내는 이념 국사교과서의 글과 말과 비디오-오디오, 광고, SNS를 접하면서 슬슬 "그쪽이 유행이자 대세이며 사부(師父)이고 '구루(guru)'이며 또한 '이문 남는 쪽'이라고 믿기에 이른다. 

 거기다 용어상으로도 '보수' 하면 어째 고루하고 더럽고 거드름 피우고, 썩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느껴지고, '진보' 해야만 어딘가 신선하고 약자 편이고 최신의 것이고 젊은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 연예인과 인기 교수와 그럴 듯해 보이는 종교인과, 대박 낸 영화와, 이마에 띠 두르고 수염 덥수룩한 '운동가'가 연단에 올라 주먹을 불끈 쥔 채 "투재애~~애앵 !!!!" "진보오~오오오!!!" 하고 사자후를 터뜨리면 "아, 저거구나!!" 하고 뿅 가는 것이다. 

 투쟁 용어 역시 '자유민주/시장경제' 어쩌고 하면 영 심심하고 밋밋하고, 간에 기별이 가지 않는데 반해, '민족해방/계급해방/민중해방/ 어쩌고 하면 어쩐지 으스스 해지면서 스릴이 느껴지고 근사한 감이 든다. 아,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민족을 위해, 약자를 위해, 평등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데야, 짧은 밑천에 뭐라고 반박한단 말인가? 그래서 적잖은 청소년들이 짧은 기일 안에 "난 이제 모든 걸 알아버렸다"며, 마치 도통(道通)이라도 한 양 두 눈이 번쩍 띄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판 '깡통 진보' '얼치기 좌파'가 태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한국의 경우에도 착실히 진행돼 왔다. 처음엔 대중문화로 시작해 이벤트로 가서 광장으로 갔다가 드디어 역사관으로까지 왔다. 1980 년대부터 '워밍업'을 한 30~40년 하다가 이제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반(反)민족적, 제국주의 앞잡이" 라는 것을 드디어 공교육 차원에서도 '정설(定說)'로 굳힐 총괄단계에 이르렀다는 선언이다. 

 문제는 이 과정과 결과가 너무나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진행되고 주입되고 축적되었기 때문에, 제법 배웠다는 친구들조차 자신의 인식과 감각과 미(美)의식이 실은 체제변혁의 문화이론-사회과학-역사관에 물든 편향되고 당파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이게 보편적이고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움 그 자체'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100이면 100이 모두 '유사-아류 홍위병'처럼 되는 건 아니다. 그 중 상당수 또는 다수는  '강남 리버럴'이 된다. 

 왜 '강남 리버럴'이 되는가? 한 마디로 안토니오 그람지의 이론 맞다나, 급격한 '와장창 혁명'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완만하고 감성적이고 문화적이고 절충적인 묘약(妙藥)으로 변혁이론을 가랑비에 옷 젖듯이 주입받고 내면화했기 때문에 그런 어정쩡한 유형이 되는 것이다. 그람지 진지(陣地)론의 한 파생물인 셈이다. "나는 좌파는 아니고 ‘자유로운 지성인’일 뿐..."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러나 막상 싸움이 왕창 붙으면 '좌파 친화적인(Left-friendly)' 입장에 서는 유형인 것이다. 

그것도 선진 자유국가 정치의 한 축(軸)인  '민주적 좌파'에 대해 친화적인 것이라면 또 모른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론 한국 좌파 운동권은 NL(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등, 전체주의적 좌익에게 거의 먹혀버렸는데도 말이다.  

 자신들은 언제나 소(小) 부루주아로서 '즐김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머리와 입으로는 자기들보다 오른 쪽이면 경멸해 주고, 왼 쪽이면 전체주의적이라 하더라도 가산점을 주는 게 멋쟁이이고, 먹물 들어 보이고, 예쁘장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런 타입이 우리 주변엔 정말 흔하다. 특히 486 가운데, 학생 때 겁이 나 데모는 못하고 좌익으로 갈 만 한 크기의 간(肝)도 가지지 못했고, 그렇다고 보수, 우익 소리만은 절대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유형인 셈이다. 

이런 유형의 존재 자체를 나무라는 게 아니다. 자유사회의 멤버십엔 이런 스펙트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 나름의 몫과 역활도 있다.  다만 그러나 이런 유형이 내세우는 '이론'과 '논리'와 '명분'에는 '실제적'이 아닌 '관념적'인 데가 있고, 그래서 곧잘 허위의식 같은 게 묻어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관념적' 논리 중 한 가닥이 바로 "다양성을 위해 국정화는 안 되고, 설령 '문제 있는 교과서'라 할지라도 그냥 가르치게 내버려 둬야 하며, 그냥 내버려 둬도 아이들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 "내가 국정화론자들 너희보다 훨씬 더 지적(知的)-미학적-시류(時流)적으로 우월하다"는 투로, 자기가 보기에 참으로 무식하고 고루하고 구제불능인 '보수꼴통'을 향해 비웃으며, 놀리며 한 마디 척 던지는 전형적인 '강남 리버럴' 스러운 논리다. 

 정말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은 것일까? 필자는 괜찮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 박영 학생의 말처럼 "그냥 내버려 둬도 영향력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 해도, 지금의 국사교과서들은 좌파이기 전에 '거짓'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둬선 안 된다. 공교육 현장에서 스승이 제자들에게 거짓을 가르친 다는 것은 교육의 근본을 파괴하는 '악덕'이기 때문이다. 이게 영화인가? 코미디인가? 픽션인가? 아니다. 이건 교육이다. 교육의 으뜸가는 요건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 '1+1=3"이어선 안 되고 반드시 '1+1=2'라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의 책임은 이승만의 정읍발언이었다" "6. 25는 수많은 소규모 충돌의 연장선상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하면 그건 순, 새빨간 거짓말(1+1=3)이다. "분단과 단독정권 수립은 '북조선 인민위원회' 수립이 먼저 한 것" "6. 25는 김일성이 스탈린, 마오쩌둥의 재가를 받아 남침한 것"이라고 말해야 그게 참말(1+1=2)이다. 스승이라면 교단에서 마땅히 1+1=2라고 가르쳐야 옳다. 이래서 현행 국사교과서는 공교육 현장에서 가르쳐선 안 된다. 좌니 우니 하는 건 그 다음 순서다. 

 이런 원칙은 제쳐둔 채, 참과 거짓을 '다양성'이란 명분으로 대등하게 일렬횡대로 세우려는 것은, 그리고 그렇게 해도 아무런 영향력 없으니 신경 끄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너무 피상적인 관찰일 수 있다. 김철홍 교수의 세 번에 걸친 글 가운데 가장 최근 것을 읽고 적어보는 감상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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