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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5일 수요일

고국 나들이

무척이나 기다리던 고국 방문이었다. 집사람과 큰애랑 셋이서 같이 가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딸과 함께 여행을 그것도 고국을 갈 수 있을까? 억지로라도 휴가를 내기로 작정하고 나서 일정을 잡은 것은 제일 일이 한가한 1월로 하기로 하였다. 허지만 소한 대한의 추위와 폭설로 발이 묶이면 낭패인데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모든 것은 우리 운이라고 받아들이자고 하고 1월 8일부터 26일까지로 하고 델타항공편을 예약하였다.

한국의 추위를 견딜 옷에 목도리 장갑 양말 그리고 신발, 게다가 파카에 오바에 그리고 선물 준비를 하면서 12월과 1월 초 한달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8년 만의 한국 나들이라 나이에 맞지 않게 일말의 긴장도 스쳐 갔지만 셋이 떠나는 신나는 여행이니 한껏 들뜬 마음은 두둥실 하늘에 닿아 있었다.

밤 10시 넘어 우리를 맞이한 조카 유건이가 차를 가지고 나와서 너무 다행이었다. 짐이 각자 3개씩 무려 9개라 만약 공항버스를 탓더라면 고생을 말도 못하게 했을텐데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가장 보고 싶은 두 누님과 조카들과 손주들까지 모두 보면서 가족이 주는 든든함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며 한국의 첫날은 지나갔다.

우연히도 도착 다음 날인 10일은 친구 재수의 딸 나연의 결혼식이 있었다. 다행히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결혼식에 가서 그간 보지 못했던 친구들에 부인들까지 보게 되어 모두 기쁘게 만나보았다. 친한 친구들과는 가는 시간이 너무 빨라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학동과 집사람의 친구들인 성연, 신호씨를 분당의 음식점에서 만나 식사를 하면서 회포를 풀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시간의 흐름은 오래 전으로 되돌아 가 버려 마치 동심의 소꼽친구들과 재갈재갈 떠들며 즐거운 만남을 흐드러지게 보냈다.

연일 친구들과 만나던 중 은행 친구들과의 저녁에 먹은 회가 탈이 나서 그 뒤로 열흘 정도는 먹는 것이 부담이 되어 혼이 났다. 게다가 간지 삼일짼가는 두려워 했던 감기까지 걸리면서 이틀을 밖에 못나가고 약을 먹으면서 보내었다.

두 누님과 함께 간 부산 경주 여행은 아주 기분 좋은 나들이었다. 부산에선 친구 두환이가 자기 차로 KTX역에서부터 우릴 데리고 하루 종일 볼만한 곳을 데리고 구경시키고 점심에는 처음 먹는 전복구이로 대접을 받으면서 극진한 환대에 누님들도 감격하였다. 해운대 주변의 주상복합 아파트들의 거대한 건물이 부산의 상징으로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625사변에 우리 가족은 부산에 피난 가서 2-3년을 살았었다. 기억에는 거의 없는 곳이나 그 어려웠던 시절에 살았던 적이 있는 부산은 어느 면에서는 서울과는 전혀 다른 아담하면서 항구의 경치를 가지고 있어서 매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경주의 대명콘도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은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광버스로 불국사에부터 시작하여 신라박물관 황룡사, 첨성대, 왕릉 등 8군데를 보고 점심으로 경주 명물이라는 쌈밥을 먹었다.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몇십년 만에 본 경주는 옛 모습은 없어지고 그야말로 관광 상혼이 깊숙하게 자리 잡아 귀한 문화 유산의 본 모습을 훼손하여 아쉬웠다.

만나야 할 친구들이 너무 많아 다 보지 못하였다. 어떨 때는 집사람과 다른 나만의 스케줄로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야말로 강행군을 감행하며 촌음을 아끼며 돌아 다녔다.

집사람의 제일 친한 친구 부부와는 고속버스로 전주에 가서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구경하기도 하였다. 한 10년 전에 우리 둘이만 가서 본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싸구려 가게가 날림식으로 모양만 그럴 듯한 한옥 속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너무 실망하였다. 어찌 우리의 귀한 문화 유산을 다 감추어 버리고 본질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으로 국민에게 관광이라고 만들어 논 졸속 행정에 한숨만 나왔다. 너무 너무 실망하고 한편 분노도 느끼면서 씁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하루는 밤 10시가 넘어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리 셋은 너무 아름답게 천지를 감싸며 내리는 흰눈에 매료되어 눈길을 걸으며 웃으며 아름다운 세상의 유희에 마냥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르며 걸었다. 겨울에 와서 당연히 기대했던 흰눈을 맞으며 밟고 걸으면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어린아이 같이 기뻐하며 뛰놀았다.

어떤 날은 남대문시장에서 안경을 하고 인사동까지 걸어 가기로 하고 옛날에 걸었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추억이 되살아 나고 어느 순간의 연관된 일과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하나씩 생각이 나면서 당시의 눈에 익숙했던 길과 기분이 살아났다.  시장의 좁은 길을 걸으면서 물씬 한국적인 정취를 느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당시에 멋과 고참의 냄새를 풍기며 마음을 사로잡았던 미군 군화를 사러 형과 함께 남대문 시장에서 그렇게도 신고 싶었던 것을 사서 뛸 듯이 기뻤했던 순간도 지나가고 눈에 익은 미제 물건만 팔던 지하 상가를 지나면서 새삼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해진 한국의 경제를 체험하는 재미도 있었다. 신세계 앞에서 시청으로 가는 길을 가다가 아버지가 625 전쟁 후 1950년대에 근무했던 건물을 발견하였다. 조선호텔 맞은 편의 도서관을 뒤로한 건물이었는데 너무 오래되서 인지 퇴색하고 더러워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근무했던 을지로 네거리 산업은행은 오래 전에 롯테백화점으로 변하여 자리만을 확인하였다. 1973년 처음 입행하며 누비고 다녔던 거리들을 머리 속으로 떠올렸다. 붉은 산은 건물과 그 속의 공간은 때로는 부서별 배구대회의 배구장으로 변하여 땀 흘리며 운동했던 순간과 근무했던 오래된 건물은 공중분해된지 몇 년이 흘렀나? Otis 사의 엘레베터가 있었는데 어찌 오래되고 낡았던지 지금도 올라가면서 흔들거리던 진동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가끔 순서가 되서 해야했던 숙직은 지금 젊은 세대는 알기나 할까? 아나로그 시대면서 국가안보의 한쪽 축을 담당하는 직업을 가져 밤마다 돌아가면서 과장, 대리, 행원 그리고 경비원들이 쪽잠을 자면서 추운 겨울에 야간 순찰을 돌면서 손이 시렸던 적도 있었었지. 잊혀졌던 아니 잃었던 추억이 되살아나 가슴 한편을 잠시 흔들어 버렸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집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하고 갔지만 번번히 헤메어 계속 늦게 도착하여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나름대로 강남도 대체적으로 머리에는 있지만 음식점을 찾기란 너무 어려웠다. 빌딩 숲에서 적은 대문을 찾기가 그렇게도 힘들 줄이야 몰랐다. 우리 길은 원래 계획 없이 자생한 탓인지 거의 미로여서 번지수를 알아도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국 촌놈 행세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헤메였다.

산이라고 한번 올라가고 싶었는데 못하고 대신 매일 만보 이상씩을 걸었다. 우리가 걸으면서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지만 제한된 시간에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열심히 걸어 다녔다. 기뻤던 일 중 하나는 육촌 조카를 생전 처음 대면한 일이었다. 외사촌 누나인 향자누나의 아들인 필웅이와 처를 본 일이었다. 피붙인데 처음 보면서 얼마나 귀하고 든든하던지 두 젊은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필웅이가 4월 말 경에 미국에 다시 들어와 살 예정이라는데 법정통역사를 하고 싶어 관련된 일을 설명하면서 짦은 시간이지만 귀하고 기쁜 시간을 가졌다.

감사할 것 뿐이나 기후가 겨울 날씨 치고는 온화한 편이여서 아무 지장없이 지낼 수 있었다. 눈이 오기도 하여 그것도 감사하고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날아 오리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거의 없어 감기가 악화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귀국할 시간이 되어서 집사람과 둘이는 그간 보낸 일들을 이야기하며 정리해 보았다. 둘이 같이 느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정이 허락되면 돌아와 몇 년을 살면서 내나라를 구경하고 친구들과 얼마 안남은 시간이지만 우정을 나누며 서로 돌보며 지내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이번 여행으로 우리 부부에겐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우리의 앞날의 계획 중에 하나가 추가되어 어쩌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고픈 일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그만큼 커지고 밝아지기에 우리는 서로 유쾌한 웃음을 나누었다. 허락된 시간과 지나간 모든 순간을 간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도와 준 친구들과 특히 두 누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할 길이 없다.

찍은 사진 중 일부를 올려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


미국 생활 30년이지만 아직 한국인이다.

조카와 손자들과 식사


인사동 구경


종각


형순 문범 부부와 저녁 식사


가락 시장에서 쇼핑 거리가 많았다.

어머니 아버지 묘에서 예배하고


한 밤 중에 흰눈을 맞으며



남대문 시장

아버님의 옛 회사가 있던 빌딩, 조선호텔 건너편


추억의 산업은행 자리



재년 부친 일중 김충현 유작전시회





고교 동창들과 부부 저녁






마나님들


전주 전동성당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들




부산 경주 여행차 KTX 서울역




해운대  마천루의 위용

동백섬 일주





경주 대명콘도 호수

불국사






분황사 삼층 석탑



천마총


포석정

신라박물관 에밀레종


김유신 장군 묘

경복궁 구경





출국 날 비가 왔다.

미국 땅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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