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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0일 월요일

미 '금리 인상' 에 대한 찬반 양론

세계경제 화두 '긴축 경련'…풀린 돈 9조 달러

글로벌시장이 긴장 모드다. ‘9조 달러(약 9900조원) 퍼즐(Puzzle)’ 탓이다. 미국의 양적완화(QE) 시대에 미국을 뺀 나머지 국가와 일반 기업이 채권을 팔아 조달한 자금 규모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올 1월 보고서에서 “저금리를 틈타 각국과 기업이 주식 대신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했다”고 설명했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국 통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면 이자 부담이 더 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만든 ‘풍요한 달러 바다’ 탓이었다. 

금리 인상 땐 글로벌 금융시장 홍역 

풍요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이제 심판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Fed가 돈줄을 죄는 순간이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시중 금리는 더 큰 폭으로 오르기 십상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채권 거품’의 붕괴다. QE 덕분에 치솟은 채권 값이 비이성적으로 추락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긴축 경련(Tantrum)’이라고 부르는 사태다. 그러면 신흥시장에서 달러 자금의 이탈을 가속화해 글로벌 금융시장이 홍역을 치를 수 있다. 러스 코스테리치 블랙록 수석 투자전략가는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Fed가 2006년 6월 이후 기준금리를 올린 적이 없다.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투자자들은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 매우 느슨한 통화정책에 익숙해진 투자자에게 정상화의 과정은 어렵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두 여성 리더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바로 재닛 옐런(69) Fed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59)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다. 사실 둘은 그럴 만한 사이는 아니다. 두 사람은 평소 경제 회생을 강조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말한 “궁합이 잘 맞는 여성 금융 리더”였다.

라가르드, 옐런에 긴축 경련 경고 


그런데 요즘 라가르드 총재가 긴축 경련을 잇따라 경고하며 옐런에게 기준금리 인상을 늦추라고 압박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엔 라가르드 부하가 나섰다. IMF 통화자본시장 국장인 호세 비날이 기자회견에서 한술 더 떠 “초강력 경련(Super Tantrum)”을 경고했다. IMF는 외환시장 안정 등을 통해 세계 무역의 안정적 확대를 꾀하고 가맹국의 고용 증대, 소득 증가, 생산자원 개발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IMF 입장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 바람에 옐런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최근엔 미국 내 상황도 꼬여 더욱 그렇다. 실물경제 흐름은 아직까진 선진국 가운데 가장 좋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에서 그나마 작동하는 엔진은 미국뿐”이라고 촌평했다. 하지만 ‘꿈의 실업률(5.5%)’을 달성하며 개선 기미를 보이던 고용지표는 다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3월 신규 일자리 수가 곤두박질쳤다. 물가는 더 문제다. 달러 강세와 국제유가 하락이 물가상승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밖 변수까지 고려해 통화정책을 결정하라는 압력이 커지니 옐런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다. 라가르드만이 기준금리 인상을 늦추라고 압박하는 게 아니다. 마크 카니 영국은행 총재도 “투자자들이 갑자기 자금을 회수하면서 발생할 유동성 폭풍은 글로벌 금융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라가르드가 잇따라 긴축 경련을 경고하는 것은 Fed 일방주의에 대한 사전 견제”라고 풀이했다. 여기엔 역사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은 1994년 벽두에 기습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1차 걸프전 전후 침체 시기에 영국·독일·일본 등과 암묵적으로 유지해온 저금리정책 공조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탈한 것이다. 결과는 멕시코 금융위기(테킬라 효과)였다. 

Fed가 국제적인 차원에서만 일방주의 행태를 보인 게 아니었다. 대공황 직후인 37년엔 마리너 에클스 당시 의장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반대를 무시하고 지급준비율을 연거푸 올렸다.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해 풀어놓은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시장은 무너졌다. 다우지수는 1년 사이에 반 토막(49.1% 하락) 났다. Fed의 성급한 출구전략으로 경제가 망가진 이 사건은 ‘에클스의 실수’로 불린다. 

긴축 경련은 먼 옛이야기만이 아니다. 2013년 벤 버냉키 Fed 의장이 QE 축소(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하자 자금 유출로 인해 신흥국의 통화와 채권·주식이 모두 가파르게 떨어지는 ‘트리플 약세’가 발생했다.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에 따르면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기사화되면서 지난해 하반기에만 15개 신흥국에서 3924억 달러의 자본이 빠져나갔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9개월간 총자본 유출액(5459억 달러)과 비교해도 적지 않다.

자금 유출은 신흥국 경제 엔진이 꺼져가는 것과 다름없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본의 지속적인 유입이 없으면 신흥국의 경우 채무 지불과 적자 재정 개선, 인프라 투자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도 수출경쟁력 약화 등 우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져올 파장은 여러 갈래다. 달러 수요가 늘면서 달러 강세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수출경쟁력 약화와 물가 하락을 야기해 경기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물경제적 파장이다. 미국으로 자금이 유턴하며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전반적인 유동성이 증발하는 통화 파장도 생긴다.

충격이 불 보듯 뻔하지만 옐런이 대외 변수를 감안해 통화 긴축을 미루기도 쉽지 않다. Fed의 컨센서스 붕괴 때문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들이 국내파와 국제파로 나눠 맞서고 있다. 국내파 대표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다. 그는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통화정책은 국내적 목적으로 시행되는 만큼 다른 나라가 두려워한다고 정책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국제파 대표는 스탠리 피셔 Fed 부의장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IMF 연설에서 “Fed는 단순히 미국의 중앙은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미국과 나머지 국가 사이의 피드백 효과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Fed 내에서도 긴축 놓고 의견 맞서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Fed가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뉜 데 이어 국내파와 국제파로 또 갈려 있다”며 “Fed 100여 년 역사에서 이처럼 컨센서스가 부재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옐런이 의견을 모으기 힘든 상황이란 얘기다.

원래 옐런은 국제파에 가깝다. 중앙은행가 모임에서 버냉키처럼 차갑지도 그린스펀처럼 권위적이지도 않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그가 Fed 의장에 취임했을 때 가장 반긴 사람들이 바로 다른 나라 중앙은행 총재”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국제변수를 고려하는 목소리가 FOMC 회의장 밖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발표된 FOMC 성명에 “다른 나라 경제가 위축돼 있는 게 (미국) 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요지의 문장이 들어갔다. Fed 통화정책 결정에서 일방주의가 한풀 꺾일 수 있다는 기미다.

미 금융전문 매체인 글로벌파이낸스는 “옐런이 글로벌 변수를 감안해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결정한다면 28년 이후 사라진 Fed의 국제주의가 87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Fed를 사실상 이끌었던 벤저민 스트롱 전 뉴욕준비은행 총재는 영국과 독일 경제 회생을 위해 재할인율 조정 시점을 조율했다. 

하현옥·강남규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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