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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6일 월요일

이란의 거대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세계제국을 여러 차례 만든 이란은 위대한 예술, 건축, 문화의 힘으로 사막 종교 이슬람을 이란화시켜 세계 종교로 격상시켰다.  글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몇년 전 중동에 주재하는 한 한국대사를 만났다. 그는 이슬람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책도 번역하고 현지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하는 학구파였다.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이 이란을 저렇게 대우하면 안됩니다. 이란과 페르샤의 역사를 알면 그렇게 마구 대할 순 없습니다.'
 그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자 미국 등 서구가 저지책으로 경제봉쇄를 가하더니 협상 쪽으로 돌아 며칠 전 핵개발 동결과 제재해제를 핵심으로 하는 타협이 이뤄졌다. 
  
  영국의 이슬람 전문학자 버나드 루이스가 쓴 '바벨(Babel)에서 드라고만스(Dragomans)까지: 중동을 통역한다'라는 논평집을 읽다가 대사와 비슷한 설명과 만났다. 그는 이란이 인류역사, 특히 이슬람 문화에 끼친 막중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이 글을 읽고나니 호메이니로 대표되는 이란이 아닌 다양하고 풍성하고 교양 있는 페르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문제점을 가지고, 그것도 서구식-기독교적 관점에서만 본 문제의식을 가지고는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하고 깊은 나라가 이란이다. 인구는 약7800만 명, 면적은 한반도의 약8배인 160만 평방킬로미터이다.
   
  
  사진 : 테헤란은 고원지대에 있다. 
  
  이란의 독특하고 위대한 역사와 문화는 먼저 이슬람과 연관되어 설명하는 것이 편하겠다. 이란을 아랍국가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란은 이슬람 국가이지만 아랍국가는 아니다. 이란인들은 아랍족이 아니고 아랍어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유럽, 특히 게르만족과 뿌리가 같은 인종이다. 히틀러는 독일사람들의 인종적 뿌리를 아리안족이라 불렀다. 이란과 아리안은 같은 뜻이다. 
  
  이란은 이슬람화되었지만 다른 中東국가처럼 아랍화되지는 않았다. 첫째, 언어가 아랍화되지 않았다. 서기 7~8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인 거의 모든 중동(中東)국가들은 고유언어를 버리고 아랍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같은 최고(最古)의 문명과 언어를 자랑하는 나라들도 모국어(母國語)를 버리고 아랍어를 쓰게 되었다. 따라서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상당부분 단절되었다. 이슬람은 또 이슬람의 종교사(宗敎史)를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국가와 민족의 역사는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진 : 페르샤식 城. 기원 전 500년에 만든 알그 에 밤 성.
  
  이란은 아랍인들에 의해 점령되고 이슬람을 수용했지만 이란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란어는 독일어나 영어와 비슷한 구조이고 단어도 비슷한 게 많다. 17세기에 비엔나에 파견된 오토만 투르크 대사는 '합스부르그 왕조 사람들은 잡스러워진 이란어를 쓰고 있다'고 오해했다고 한다.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모국어를 지켜갔지만 동시에 아랍어도 배웠다. 이란의 많은 문학가와 지식인들이 아랍어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이슬람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발상한 이슬람은 문화적 깊이가 약했다. 아랍 이슬람은 이란을 이슬람화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했다. 사막적인 종교가 아닌 문화적 종교, 세계적 종교로 변한 것이다. 메디안-페르샤-파르티아-사산 조(朝)로 이어지면서 축적된 독창적이고 풍성한 이란문명이 이슬람에 수혈되어 이슬람을 생동감 넘치는 종교로 거듭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이란의 예술, 건축, 문학이 이슬람과 접목됨으로써 기독교와 경쟁할 수 있는 내용을 갖게 된 것이다. 
  
  
  사진 : 파르티아 제국 시절의 동전
  
  세계로 퍼져간 것은 사막적(아랍적)인 이슬람이 아니라 페르샤적인 이슬람(Persian Islam)이었다고 버나드 루이스는 강조한다. 중앙아시아, 오토만 투르크, 인도지역이 페르샤적인 이슬람 문화권에 들어갔다. 17세기 무굴제국이 세운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데, 이란 건축 기술이 바탕이 되었다. 당시 세계최대 제국이었던 무굴의 지배층은 이슬람 교도였고, 핵심 관리들은 이란 계통이었다. 
  
  이란의 이런 문화적 힘은 역사에서 우러난 것이다. 이란은 중동국가들 가운데 독자성을 가장 오래 유지한 나라이다. 다른 중동(中東)국가들은 이 민족, 저 민족에 의하여 침공받고 점령되어 정치적, 문화적 독자성을 오래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리아를 예로 들면 약8000년의 역사를 통해 33개 문명이 교차했다. 
  
  
  사진 : 사파비드 왕조 때 만든 나그시 이 자한 광장
  
  이란(페르샤)은 그리스로 대표되는 서양에 대해서 항상 우위(優位)를 지켜오다가 서기 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잠시 점령되었으나 곧 파르티아 제국을 만들어 독립했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의 침공도 저지하여 페르샤 지역을 서양화(기독교화)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파르티아를 이은 제국은 사산朝였다. 이 제국은 7세기에 시리아에 본부를 둔 움마야드 왕조에 의해 점령되어 이슬람화되었으나 이란인들은 이슬람을 페르샤화해버렸다. 우수한 문화를 가진 민족은 저급한 문화를 가진 민족에 의해 정복되지만 그 문화의 힘으로 정복자를 다시 정복해버린다. 이란은 이슬람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셈이다. 압바시드 왕조가 움마야드 왕조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란 장군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압바시드 왕조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관료, 지식인들은 거의가 이란인들이었다. 
  
  
  사진 : 팔스 지역의 경치 
  
  13세기에 몽골, 15세기에 티무르의 침공을 받은 이란은 황폐되었다. 이란이 몽골의 서정(西征)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당한 곳이다. 특히 관개시설이 파괴되어 복구에 수백년이 걸렸다. 인구의 약 반이 죽었다고 한다. 몽골이 중국의 宋을 점령하고 세운 元의 관료층 안에는 이란 지식인들이 많았다. 이슬람을 믿는 16세기의 몽골 기마군단이 인도를 점령하고 세운 무굴 제국의 지배층안에도 이란인들이 많았다. 이란은 주변지역, 즉 中東, 중앙 아시아, 터키, 인도를 밝히는 문화적 등불이었다. 
  
  1501년 이란에서 사파비드 제국이 일어나 오스만 투르크와 맞섰다. 이란인들은 세계 역사에 남을 만한 다섯 개의 大제국을 만든 민족이다. 메디안-페르샤-파르티아-사산朝-사파비드 제국이 그것이다. 
  
  
  사진 : 아자디 타워
  
  16~20세기에 中東 이슬람 세계에는 두 라이벌이 있었다. 오토만 투르크와 사파비드 제국 등을 세운 이란이었다. 오토만 투르크는 중동, 유럽,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두 차례 비엔나를 포위하는 등 유럽을 위협했으나 이란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영국의 이슬람 전문가 버나드 루이스에 따르면 오토만 투르크 제국은 문명적 측면에선 이란의 영향권 아래 들어 있었다고 한다. 루이스는 현재의 中東도 터키와 이란이 양대(兩大) 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호메이니

  국부(國父) 케말 파샤의 정교(政敎)분리 원칙에 입각한 터키는 세속적인 공화국이고 호메이니의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은 政敎일치의 이슬람 공화국이란 차이가 있다. 인구도 두 나라는 비슷하다(약8000만 명). 터키는 이스라엘과 미국과 친하고 이란은 원수지간이다. 이란이 핵무장하면 터키도 대응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란의 이런 독자성을 유지해온 여러 가지 힘중의 하나는 과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란인들의 자부심이다. 이런 이란을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함께 '악(惡)의 축(軸)'이라고 불렀다. 김정일이야 惡의 軸이 아니라 악마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란을 이런 김정일 정권과 동격(同格)에 놓을 수 있는가? 
  
 10년 전 할리우드에서 만든 '300'이란 영화는 페르샤의 大軍을 무찌른 스파르타의 300 용사를 超人으로 만들고 페르샤 군대를 괴물이나 바보멍텅구리 집단으로 그렸다. 이란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이 이해가 된다. 이란에 대해서 무식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역사는 문학, 철학과 함께 교양인의 필수과목이다. 역사공부는 다른 문화와 민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마음을 넓혀주고 생각을 깊게 해준다.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존중심을 심어준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작전을 펴기 전에 버나드 루이스 같은 대가(大家)를 백악관으로 초빙하여 몇 시간 강의를 들었다면 다른 전략이 나왔을지 모른다. 당시 미국 CIA 국장 테닛은 최근 회고록에서 '이라크를 왜 굳이 쳐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易地思之(역지사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역사공부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본산(本山)이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도 IS와 싸우는 데 이란의 도움을 받는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가자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블로 세력도 이란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의 내부 사정도 간단하지 않다. 젊은층과 중산층은 친미적이고 지배층은 반미적이다. 이란은 북한과는 특수관계이다. 북한으로부터 무기와 미사일 기술을 수입하고, 현금이나 기름을 지원한다. 이란에 종속된 시리아도 북한과 친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이란을 적대적(敵對的)으로 몰 필요는 없다.
 
 한국의 가장 번화한 거리 이름이 이란의 수도 이름이다. 이란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지정학적 조건이다.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유럽을 연결하고, 인도양과 페르샤만, 그리고 카스피해를 잇는 자리에 있다. 특히 석유자원이 많을 뿐 아니라 석유수송로를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품고 있다. 이란이 1979년 이후 거의 홀로 미국 및 서구와 맞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강점 덕분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이라크 편을 들었다. 고립된 이란을 도와준 것이 북한이었다. 이란 핵협상 타결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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