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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5일 일요일

진정한 산악인은 '응가의 흔적' 남기지 않습니다

입력 : 2014.05.24 03:02

등산 필수품 된 '대변처리 용품' 

세계는 지금 '배설물 회수中' 
인간의 흔적 최소화하려… 美선 50년前부터 캠페인 
국제 자선 단체들은 아프리카에 용변봉투 지원 

山도 즐기고 자연도 지키고 
국내 名山들 '배설물 몸살' 독성 강해 생태계 무너뜨려 
미니 변기·수분 흡수제 등… 다양한 일회용 제품 나와


  [Why] 진정한 산악인은 '응가의 흔적' 남기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서울 북한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백운대를 오르는 모습. / 김지호 객원기자
전문 산악인 유학재 휠라코리아 기술고문은 요즘 산에 다닐 때 '특별한 물건'을 등산 배낭에 넣고 다닌다. 높은 암벽(巖壁)을 오르거나 휴게시설 사이의 거리가 너무 길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언제든 '급한 볼일'을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는 대변 용품 세트이다. 이 세트는 내용물을 담는 비닐봉지, 수분을 흡수하는 물질(에코젤), 악취 제거와 유기물 발효 촉진 역할을 하는 물질(에코그린), 비닐봉지를 다시 한 번 담는 지퍼백 등으로 구성된다. 볼일을 해결한 후에는 지퍼백을 산에서 갖고 내려와 쓰레기 처리로 마무리한다.

산악인 양유석 코오롱등산학교 부교무는 "유 고문은 '에코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이 방법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용품 세트(키트)를 무료로 나눠주기도 하고, 가끔 동료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야외에 그대로 방치돼 있는 오물을 처리하는 활동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도 등산이나 야외활동 중 화장실이 없어 발생하는 '긴급상황' 때 사용하는 세트 제작에 나서고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이달 말 휴대용 용변 처리 세트인 '응가몬'을 출시한다. 대변을 담는 비닐봉지와 이 봉투를 잡아주는 종이거치대, 수분을 빨아들이는 흡수응고제, 휴지, 지퍼백 등으로 구성된다. 종이거치대는 두꺼운 종이를 높이 8㎝, 길이 72㎝ 크기로 잘라 양끝을 붙여 둥글게 만든 것이고, 비닐봉지는 주변에서 흔한 까만색 비닐봉지다. 흡수응고제는 여성용 생리대와 유아용 기저귀 등에 사용되는 고흡수성수지(SAP)로, 비닐봉지에 담긴 내용물의 수분을 순식간에 빨아들여 젤 형태로 만든다. LG화학 관계자는 "1g의 SAP은 최대 500g의 물을 흡수할 수 있고, 일단 빨아들인 물기는 웬만한 압력을 가해도 다시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아 보수력도 아주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과 산악인들이 최근 들어 야외에서 대변 처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흔적 남기지 않기(Leave No Trace)

산악인들은 북한산·설악산·한라산 등 국내의 대표적인 명산(名山)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흔적'들이 무더기로 발견된다고 했다. 이런 흔적들은 특정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특징인데 등산을 하다 보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볼일을 볼 수 있는 장소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 산악인은 "볼일을 보고 땅을 20㎝ 깊이로 파서 묻으면 환경이나 주변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데 문제는 아무 데나 일을 보고 사용한 휴지도 그대로 버려둔 채 가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유은영 코오롱스포츠 대리는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인분이 퇴비가 되기 때문에 나무나 자연에 이로운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한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분비물은 세균 덩어리인 데다 독성이 아주 강해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악인 유학재씨는 "나의 편함을 약간의 불편으로 바꾸면 자연도 보호하고 다른 사람이 자연을 즐길 행복도 보장해 줄 수 있다"며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냥 가지고 내려오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Why] 진정한 산악인은 '응가의 흔적' 남기지 않습니다
 왼쪽부터 미국 카벨라스사의 야외용 변기와 한국 코오롱스포츠의 응가몬, 일본 케와유사의 화장실용 용변 세트. / 각 회사 홈페이지
해외에선 이런 방식이 이미 상당히 정착돼 있다. 암벽등반의 세계적인 메카인 미국 요세미티 계곡이 대표적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시에라네바다 산맥 중앙부에 있는 이 계곡에는 높이가 900m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 거벽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어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수도 없이 몰려든다.

이곳 암벽을 오르려면 반드시 지참해야 할 물품이 있다. 바로 '풉 튜브(Poop Tube)'라는 플라스틱 통이다. 요세미티 암벽은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2~3일 이상 걸리는데 등반가들은 암벽에 매달려 먹고 자는 건 물론, 볼일도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풉 튜브이다. 종이봉투에 일을 본 후 염소 처리한 석회를 뿌려 냄새와 수분을 없애고 플라스틱 통에 넣게 돼 있다.

미국에서 인간 배설물 회수는 '흔적 남기지 않기' 운동의 큰 사회적 흐름 속에 펼쳐지고 있다. 이 운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60년대 미 산림청과 국립공원, 국토관리국 등이 주축이 된 공익 캠페인으로 시작, 1990년대 들어 아웃도어 관련 업체와 민간 기구들이 동참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인간 배설물 문제는 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선 국제 자선단체의 주요 활동 영역이기도 하다. 2006년 스웨덴 스톡홀름에 설립된 국제단체 '피플레(Peepoople)'의 '피푸(Peepoo)백'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이다. 이 프로젝트는 화장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일회용 용변봉투를 나눠주는 것으로 현재 케냐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피푸백에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물질 등이 담겨 있어 2~4주가 지나면 안에 있는 내용물이 유기물 비료로 바뀐다. 피플레는 "전 세계 26억명이 아직도 기본적인 위생시설 혜택을 못 받고 있고 15초당 한 명씩 어린이가 불결한 위생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설물 처리는 우주 공간에서도 주요한 관심사이다.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와 달리 우주에서는 특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즉,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에 마련된 변기는 생김새는 일반 변기와 똑같지만 진공청소기가 물체를 빨아들이는 것과 같은 흡입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일회용 용변 제품 쏟아져

미국 등에선 등산이나 야외 활동 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일회용 제품들이 개발돼 있다. 야외에서 급히 일을 처리해야 할 경우, 그 위에 뿌려 발효를 촉진하거나 수분을 흡수하는 물질 등을 단품으로 팔기도 하고, 미니 텐트나 조립식 또는 접이식 의자 등과 함께 세트로 판매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제작된 제품들도 여럿 출시된 것이 특징이다. 지진 등으로 단수(斷水)가 된 화장실 변기에 설치하는 제품도 있고, 플라스틱이나 종이 등으로 만든 임시 대용 상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어린이 소변을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나 조립식 휴대용 변기 등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야외에서 볼일을 본 후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일현 기자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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