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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7일 금요일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소치

정병선 조선일보 프리미엄뉴스부 차장·전 모스크바 특파원  
▲ 소치의 해안가 전경. 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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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소치(Сочи)는 흑해(黑海·Черное Море) 연안 휴양지라 도착하는 순간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사계절 온화한 기후로 러시아 내 최고 휴양지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러시아 독재자들은 여기서 여름을 나고, 비밀정치의 무대로 삼았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된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의 휴양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의 별장은 소치의 위엄을 더한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취임 이후 ‘보차로프 루체이’라는 대통령 전용별장에서 외국 정상들과 자주 회담했다. 특히 밀담(密談)했다.
   
   소치는 흑해가 가진 아름다움을 죄다 끌어당긴 욕심 많은 도시다. 이 아름다운 곳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는 근처에 흑해함대를 두었다. 냉전 시절 흑해는 소치라는 휴양지와 강력한 러시아 해군의 상징인 흑해함대로 대변됐다.
   
   2014년 소치는 동계올림픽으로 들떠 있다. 사진으로 보는 공항과 기차역 곳곳에 소치 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붉은 깃발과 플래카드 등이 나부낀다.
   
   소치는 2007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 이후 지난 7년 동안 스포츠 시설과 도로, 철도, 호텔까지 새롭게 건설된 신도시로 변모했다. 기존의 소치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이뤄졌다면 2014년 소치는 여기다가 인공적 요소가 더해졌다. 푸틴 대통령의 야심 때문이다. 푸틴은 소치 올림픽 유치 이후 정치적 슬로건으로 내건 ‘강한 러시아’의 실질적 작품으로 소치를 구상했다. 두바이와 카자흐스탄의 새 수도 아스타나라는 창조도시를 염두에 뒀다. 신도시 건설은 아니지만 기존의 도시에 창조적인 테마를 집어넣고 싶어했다. 그래서 소치의 새 모습이 탄생했다.
   
   수년 전 갔던 소치는 도착하는 순간 온화한 느낌을 줬다. 흑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도 따스했다.
   
   흑해는 동쪽으로 러시아와 조지아(옛 그루지야), 남쪽으로 터키, 서쪽으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접해 있는 내륙해다. 한반도 두 배 크기인 흑해를 두고, 그리스인들은 ‘폰투스 유크세이노스’라 했다. ‘손님을 좋아하는 바다’라는 의미다. 거칠기로 유명한 이 바다가 잠잠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흑해는 바다와의 해수 교환이 없다 보니 산소가 부족해 죽은 박테리아에서 발생하는 황화수소 때문에 검은 바다색을 띤다. 그래서 이름도 흑해라고 붙여졌다. 하지만 흑해 연안의 러시아와 조지아는 장엄한 캅카스(코카서스)산맥을 끼고 있어 연중 따뜻한 기온을 유지한다. 특히 소치는 진흙 화산, 만년설 등이 있어 사계절의 특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천혜의 지역이다.
   
   운 좋으면 진흙화산이 분출하는 장관도 볼 수 있다. 화산 폭발 후 만들어진 진흙온천에 몸을 담그니 몸이 둥둥 떴다. 산행하고, 스키를 타고, 온천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소치는 제때 가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곳이었다.
   
   소치는 2007년 평창과 동계올림픽 후보지를 두고 경합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문화인에게는 소치영화제를 통해 익숙하다. ‘Кинотавр(키노타브르)’로 불리는 소치영화제는 1989년부터 매년 6월 열려 온 국제영화제다.
   
   소치에 사는 아나톨리 포포프(52)씨와 통화하니 그는 “이곳에서는 모두가 자연을 즐기며 산다. 장수하는 사람도 많고 객지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아 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며 “시베리아에서 석유·가스업계 종사자들은 1년 동안 고생한 뒤 이곳에서 한 달 동안 휴식한다”고 했다. 러시아에서 극과 극의 자연환경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실제로 기자가 북극해 유전에서 만난 직원들도 한결같이 “매년 소치에 가는 꿈을 꾸며 1년을 버틴다”고 했다.
   
   소치는 아열대기후 지역이다. 1월 평균기온이 3.7도로 따뜻하다. 야자수·팜 따위 열대식물과 남방 과일도 풍성하다. 해안선을 따라 147㎞가 이어진 유럽에서 가장 긴 도시다. 이 때문에 인구 40만명의 도시는 연중 관광객들이 넘친다.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지 중 소치(북위 44°)보다 위도가 낮았던 곳은 1998년 개최지였던 일본의 나가노뿐이다. 하지만 소치가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것은 특이한 기후 덕이다. 조직위 측도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는데도 지상에서는 비가 내린다. 소치에서는 거의 눈을 볼 수가 없는 날에도 배후의 캅카스산맥은 온통 눈 세상이다”고 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동계올림픽 기간 스케이트 종목은 흑해에 인접한 소치 시내의 경기장에서, 스키 종목은 크라스나야 폴랴나 스키장에서 펼쳐진다. 크라스나야 폴랴나는 이 산맥의 해발 600m 지점에 위치한 드넓은 고원지대다. 이 고원을 해발 2000m 내외의 산들이 둘러싸 기막힌 풍광을 연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러시아군이 일전을 벌여 2만여 병사가 전사한 전쟁터로도 유명하다. 조직위는 스키 경기를 위해 스키장에 50만㎥의 눈을 뿌릴 예정이다. 조직위는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열차 선로를 깔았다. 소치에서 크라스나야 폴랴나까지, 미래의 기차라 일컬어지는 ‘라스토치카(제비)’ 고속전기열차를 건설한 것. 시속 160㎞로 달리는 이 열차는 제동장치 등 특수장치를 장착해 산악 지형에 적합하게 제작됐다. 이 기차 운행으로 선수와 관람객들은 캅카스산맥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하며 신속히 이동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가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1980년 모스크바 하계대회에 이어 두 번째다. 소치는 푸틴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구상한 ‘러시아 10년 영광’과 맞물린 작품이다. 소치올림픽~러시아월드컵이 열리는 2018년까지 러시아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할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릴 주경기장인 소치 올림픽파크 내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은 관중 4만명을 수용하며 올림픽 이후에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축구대회 경기장으로 쓰이도록 설계하는 등 두 대회를 연계했다.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의 걱정은 두 가지다. 날씨와 테러. 러시아의 리아노보스티통신은 소치 올림픽 조직위가 “눈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45만~50만㎥ 규모의 눈을 보관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50만㎥ 규모의 눈은 소치 올림픽 기간 알파인스키 경기가 열리는 로사 쿠토르 스키 슬로프 20㎞ 전체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조직위는 이를 위해 최대 10만㎥의 눈을 보관할 수 있는 7개의 특수제작 냉장 창고를 마련했다. 뉴욕타임스와 BBC 등 구미 언론은 “소치가 동계 스포츠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해 왔지만 러시아가 이를 무시한 것도 막대한 예산이 있기에 가능했다. 푸틴 정부가 500억달러(50조원)라는 돈잔치를 벌이면서 성공적인 대회를 치르기 위해 혈안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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