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해녀는 마지막 결심을 합니다. 한참 동안 숨고르기를 하고 마지막 숨을 모아 자맥질을 할 것입니다. 백 번 천 번 가보았던 물길 속을 따라 젊은 날의 황홀한 기억의 장소에 당도할 것입니다. 아직 그 자리에서 자라는 싱싱한 생명체를 보고 떨리는 손을 뻗어봅니다. 하지만 그 손이 닿기 전에 먼저 숨이 막힙니다.”
-<생명이 자본이다, 2014> 서문 중
이 늙은 해녀는 이어령(82,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장, 평론가, 언론인, 이화여대 명예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이다. 그를 소개하는 여러수식이 있지만 그는 자신을 '해녀'라고 소개한다. 그의 평생은 지식의 바다 속을 탐구하는데 쓰였다. 매번 더 깊이, 더욱 깊이 들어가 2000년대에는 창조의 싱싱함을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각깨우기> 등) 1980년대에는 우리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는 신선함을 (<축소 지향의 일본인>,<한중일 문화코드읽기 비교문화상징사전>, <이어령의 삼국유사 이야기> 등), 1960년대에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문학을 읽어 내는 새로움을 (<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 따다 주었다.
지식의 거장, 시대의 멘토, 창조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이 거인의 어깨가 한 없이 작아 보일 때가 있었다. 2012년, 그의 맏딸 이민아(1959~2012) 목사를 병으로 잃었을 때다. 이어령의 딸 답게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딸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간 뒤에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캘리포니아 주 검사, LA 부장검사 등을 지냈다. ‘아버지 못지 않은 딸’로 부모의 자랑이었던 딸은 2009년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 때까지도 ‘성공의 탄탄대로’를 걸었던 딸이 그 길을 울면서 왔는줄 아버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저는 유명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어요. 아버지의 딸답게 살려고 애쓰다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가 주신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받은 거지요. 다른 아이보다 공부도 잘 해야 하고, 말썽도 부리면 안 되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면 안 되고 항상 성과지향적 삶을 살았던 거 같아요. 제가 좋은 성과를 내면 아버지가 저를 딸로서 인정하고 사랑해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저를 사랑해주시지도 않을 것 같았어요. 저에겐 늘 아버지의 체면을 제가 손상시키게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요.” -<이민아, 땅끝의 아이들, 15p>
그 딸이 만난 ‘아버지’는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았던 또 다른 ‘아버지’를 신자로 만들었다. 내가 주지 못한 사랑을 주었다는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파 ‘지성에서 영성으로’ 문턱을 넘었다. 딸은 떠났지만, 딸이 남기고 간 생명이 유언처럼 남았다. 그 ‘생명’이 다름 아닌, 이번 책의 화두다. <생명이 자본이다>는, 남은 자본주의의 바다를 살게 될 이들에게 남기는 어느 나이 든 해녀의 ‘비밀지도’다. 덕분에 이 책의 출판기념회는 그의 팔순 잔치와 함께 치러졌다.앞서 간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2년을 미뤄 둔 팔순이었다.
건강은 괜찮으세요?
- 팔십(80)이 넘은 사람들은 아픈 게 정상이죠, 안 아픈 게 비정상이고(웃음). 저는 작년에 (뇌에 고인 피를 뽑아내는)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나이나 늙음을 잊고 지냈어요. ‘이 전 같지 않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가까운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마음이 언짢은 적은 있어도, 제가 입원이나 수술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내가 수술실 들어가 보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혹시 ‘말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여기가 마지막이면 어쩌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정리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펴 낸 책이 이 책 <생명이 자본이다>에요.
출판기념회를 팔순잔치랑 같이 하신 게 뜻깊네요.
-책이 나오고 동시에 제 팔순 잔치가 함께 이뤄졌어요. 제 평생 많은 책을 냈지만, (이번 책은) ‘난산’이었어요. 말하자면 조산을 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나온 책이나 다름없어요. 개정판을 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내 창작 과정이 공개되는 거죠. 지금은 제가 메모식으로 엮어놓은 노트를 펴 낸 것이거든요. 아르키메데스 식으로 말하자면 ‘유레카!’의 단계까지만 써 놓은 거죠. '생명'을 발견했고, 그 생명의 효용에 대해 말하기 전인 ‘유레카!’라고 외치는 순간인거죠.
보통은 일생에 한 번 맞기도 힘든 유레카!의 순간을 또 맞이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금맥을 찾으면 우리는 노다지(노터치), 외국인들은 유레카! 라고 말했죠. 금은 변하지 않는 유일한 물질이에요. 모든 육체는 썩어가고 바위도 부식하는데, 금만은 ‘영원’을 담고 있거든요.하지만 살아있지는 않아요. 이 금을 맡겨 두었다는 증서가 처음의 화폐였고요. 금은 그대로인데 화폐는 계속 증식하고 있어요. 세계는 유한한 데 돈은 생명도 아닌데 증식하고 있다는 거죠. 경제학자가 아니어도 화폐경제가 얼마나 자연 질서를 위배하는 지 알 수 있어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실체가 없는 화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거죠.
<생명이 자본이다>는 서구 사회가 리먼 쇼크를 맞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본 저자가 앞으로 '자본주의의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시대를 한 걸음 앞서보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가장 먼저 도전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왔지만, 이번 책은 남다르다. 그 사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딸의 죽음이 있었고, 그 스스로도 생명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쓴 책이다. 무엇이 그를 '결국은 생명'이라는 명제로 이끌었는지가 궁금했다.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 내 인생의 여인들
생명의 詩/ 빈 운동장의 경주
어머니 운동회날입니다.
줄마다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하얀
운동장을 달렸습니다. 햇빛이 너무 부셔
모자 차양을 세우고 달렸습니다.
숨이 차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도
심장이 터지라고 뛰었습니다.
상장이 탐나고 박수를 받고 싶어
그렇게 뛴 게 아닙니다.
마치 먹이를 좇는 사자처럼
혹은 사자에 쫓기는 가젤처럼
옆에 아이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오늘에서야 압니다. 어머니. 운동회가 끝났는데도
운동모자와 런닝셔츠를 벗었는데도 나는
지금도 뛰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누가 호루라기를 불어서가 아닙니다.
목숨이 있어서 바람이 불어서 숨차냐고
어머니가 물으셔도
나는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생명의 나무들과
함께 경주를 합니다.
-<생명이 자본이다>, 62~63p
각 챕터 말미에는 ‘어머니께’ 쓰는 시가 나와 있던데요.
-우리는 다 어머니의 몸에서 나왔어요. 생명의 근원이죠. 어머니라는 말 속에는 창조의 원천이 들어있어요. 어머니의 모체, 자궁에 대한 그리움이죠. 여기에 제가 엎어 둔 ‘화투장’은 뒤집지 않으면 몰라요.(웃음) 저는 이 책을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운문도 아니고, 논문도 아닌’ 그런 느낌으로 쓰고 싶었어요. ‘운문이 있는 인문학 논문’은 고대 희랍 사람들이 글을 쓰던 방식이에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시로 이야기한다는 거죠. 경제학으로 계수할 수 없는 부분은 시로, 대화로, 경험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머니 말씀이 나왔으니 말인데, 선생께서는 돌잡이를 ‘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부장 성격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글 쓰는 나는 ‘여성원리’를 갖고 있어요. 불의 언어와 물의 언어가 있다면, 어머니는 ‘미음(ㅁ)’ 물이고, 아버지는 ‘비읍(ㅂ)’ 불이란 말이에요. 저에게는 물과 불이 동시에 있어요. 초기에 쓴 ‘저항의 문학’ 같은 불의 언어죠. 나중에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물의 언어로 바뀌었죠.
그렇다면 선생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번째 여인은 아내이지 않을까요.
-그렇죠. 하지만 꼭 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게 1003명을 사랑한 돈주앙에게는 이 모든 여성이 다 사랑인게야.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부자연인거죠. 꽃을 꼭 한 송이만 사랑할 수는 없는 거죠. 사랑은 독점적인 게 아니에요. 1003명이 곧 한 사람인거예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썼다가 욕먹었지만(웃음) 베르테르는 한 여자를 사랑하다 권총자살을 하지만, 1003명을 사랑한다고 해도, 한 여성과의 사랑이 끝날 때마다 죽는 거예요. 한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 무수한 여성을 사랑하는 건 같은 거라고 봐요. 1003방의 총소리가 들리는 거지.
부인이신 강인숙 여사(영인문학관 관장, 영인은 이어령의 '영'과 강인숙의 '인'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님과는 부부일 뿐 아니라 문학인으로서도 평생의 파트너로 보이시는데요.
-에로스는 소유의 욕망이지 사랑의 욕망이 아니에요. 인간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싶어요. 소유없는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아가페’인 거고요. 강인숙은 물론 제 반려자이자 파트너이지만, 제가 책 읽는 시간에 제 아내와 제 아이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어요.
자궁과 같은 절대고독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일까요.
-누가 나에게 가장 후회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 글쓰는 시간 책읽는 시간에 가족들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 때의 나는 ‘고독’ 속에 있었거든. 가족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에서 모두 빠져나와서, ‘절대자유’에서 쓰는 거예요. 그건 굉장히 외롭고 갖고 싶지 않은 자유에요. ‘이 쓴 잔을 피하게 하소서’라고 하고 싶은 심정인 거죠. 글 쓰는 사람들은 ‘귀양 온 신선’이나 다름없어요. 자기가 쓴 글, 그 세계에 모든 책임을 다 지는 거예요.
작가라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네요.
-만약에 소설이라면, 등장인물이 죽을 때 눈물을 흘리며 죽이는 거예요. 실제로 살인을 하는 거라고. 남이 죽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결정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요. 참된 시인이나 소설가는 글을 쓰는 순간 모든 생명을 투영하는 거예요. 그게 성공했다면 상관없는데, 만약 이제와 돌아보건대 ‘글 같지 않은 글’ 쓰느라 아내의 시간, 딸의 시간, 아들의 시간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면 죄라고 생각되는 거죠.
누군가 ‘이어령을 위한 변명’을 한다면 그건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 아니었을까요.
-그건 내가 외로운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외로울 때 나보다 더 외롭게 만들었구나 싶은 거죠. 열 배 스무 배가 아닐까 싶어요. 딸을 잃었을 때나 남은 아내와 아들을 볼 때 내가 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나.... 생각하면 (눈시울 붉어지며)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혹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 언제인지요.
-딸 아이가 인형을 안고 와서 “아빠 굿나잇~” 할 때 한 번 돌아봐 주면 되는데, 글 쓸 때는 그게 안돼요. 마감이 닥쳐오고 그러면 “응 그래, 잘 자 잘 자” 하고 얼른 이걸 해야 하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하루 종일 못 보던 아버지를 기다리거든. 근데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할 때 민감한 아이는 굉장한 상처를 받았겠죠.
2012년 3월 16일. 맏 딸 이민아 목사를 가슴에 묻은 장례식. |
이제와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게 가장 가슴아프다는 말씀이군요.
-아들은 그래요, 다른 아버지도 다 그렇다고. 근데 그건 아들이라 그런거고, 딸의 감성은 또 달라요. 아버지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과 아닌 느낌은 다르거든요. 또 남의 집에 가면 아버지가 아이들 안아주고 그러는데, 우리 딸은 안겨보지 못한 거예요. 근데 지금은 돌이킬 수가 없어요. 그 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 “굿나잇”의 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그걸 느끼니까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걸 글로 밖에는 풀어낼 수 없다는 게 마지막 희망이에요. 딸의 말마따라 글이 ‘마지막 희망’인 거예요. 글 쓰는 사람은 나락에 떨어져도, 한 발자국은 더 디딜 수 있었다는 거죠. 글을 통해서.
글을 통해 잃은 것도 있지만, 또 얻은 것도 있으시잖아요.
-그 창작의 순간, 창조의 기쁨이 남아있기 때문에 제가 다른 정치나 명예에 대한 욕심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거죠. 평생 어느 정당이나, 광고나 이런 활동을 해본 일이 없어요. 권력이나 돈에 대해서 욕심도 없었고, 그걸 위해 살아오지 않았어요. 그 외로움이 없었다면 세속에 대한 탐심에 졌을지도 몰라요. 그런 유혹에 휘둘릴 수 없는 내 안의 브레이크가 있었던 거죠. ‘아담의 순수’가요. ‘절대 자유를 누리는 순수한 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친구도 많고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무슨 소리냐고 해요. 그런데 저는 철저히 혼자였어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고독이었죠.
딸을 통해 알았다, 결국은 사랑인게야
따님(고 이민아 목사)역시 나중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다고 썼어요. 저서를 보면‘아버지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죠.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줄 모르고 서로 몰랐다는 게 상처였던 거예요. 신의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죠. 저에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실제로 아버지와 상처 때문에 3년간 말을 하지 않았던 한 딸이 우리 딸의 글을 통해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는 거예요. 엉엉 울면서 ‘아빠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1분도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나둥~”하고 왔다는 거예요. 그게 아빠에요. 3년 동안 얼마나 기다렸으면 1분도 안돼서 응답이 온 거죠.
서운하지는 않으셨어요? 따님이 ‘이어령의 딸로 사는 것이 힘겨웠다’고 할 때요.
-나에게 못 받은 사랑을 신에게 받아 남들에게 전해주는 줄 알았더니, '아빠인 나와의 회복이 신과의 회복이고 이게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회복을 전해주는 구나' 라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그게 유일한 위로예요.
시대의 어른인데,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지금도 나는 혼자서 고백할 게 있다면, '내가 딸을 진실로 사랑하지는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자꾸 떠오르는 게 여러 군데서 '내가 정말 사랑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나, 이렇게 될 수 있었나' 싶은 장면이 떠올라요. 얘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나는 그걸 정말 내 몸처럼 느꼈나. 한 번은 다 같이 밥을 먹고 나왔는데 우리 애가 춥다고 해요. 저는 그 때도 얘가 암환자라는 걸 잊고 “다 같이 추운 걸 왜 그러니” 한 거죠. 얘는 성한 애가 아닌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한 걸 지금 떠올리면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왜 똑같이 느끼지 못했는가에 대한 자책이 되시는군요.
-애가 눈이 아팠을 때도 그래요. 어느 날 아이 컴퓨터를 쓰려고 보니까 아이콘이 이만~한 거예요. 그걸 내가 바꿔놨어요. 작게. “너 컴퓨터 쓸 줄 모르냐” 그랬더니, 딸이 “아빠는, 내가 안보여서 그런 건데” 그러는 거예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게 내 딸이었는데, 내 사랑이 진짜였을까 싶은 거죠.
1981년 이화여대 졸업식에서 |
하지만 ‘지성에서 영성으로’ 돌아서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따님의 실명’이었고, “딸이 다시 한 번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신에게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당장 모니터를 보면서도 아이의 눈이 아니라 ‘내 눈’으로 본 거죠.내가 아무리 가까워도 딸일 수는 없는 거예요. 근데 신은 그걸 하거든요. 대신 아파주고, 대신 죽어주거든요. 그게 내 한계인 거예요. 인간임에 대한 회의가 드는 거죠. 나에게는 그게 최고의 사랑이었는데, 아이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구나. 간혹 잊었구나. 그걸 느끼니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아내도 그래요. 한 여자를 열심히 사랑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구나.
절대 고독의 시간, 고통과 희망의 공간
서문에 ‘해녀의 비유’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어요.
-나이 든 해녀의 심정으로 쓴 글이에요. 이 글은 지도죠. 대개는 내 지도대로 안 가고, 성게 멍게 따고 만족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전복을) 딸 거죠. 앞으로는 반드시 따죠.
직접 따지 않고 아껴두신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딸 수가 없는 게, 사랑하는 님이 오면 주려고 남겨둔 거거든요. 앞으로 이걸 제대로 하려면 경제학, 물리학, 화학을 제대로 해야 해요. 지금부터 아리스토텔레스를 하려고 해도, 평생을 해도 모자라요. 저희는 전쟁세대이기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어요. 제가 박사라고 하지만, 실제로 배운 것은 적어요. 혼자서 배웠어요. 서양에서는 어릴 적부터 희랍문학부터 쌓아 올라오거든요. 제가 만드는 지도는 그래서 감성과 직관과 아이디어의 힘을 빌 수 밖에 없는 거죠.
선생님은 저희가 바라볼 때 저희 세대의 ‘지적인 거인’임에도 지식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시네요.
-더 있죠. 근대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왔는데, 왜 유럽에서 왔는지를 알려면 서양 자본주의의 역사를 봐야 하거든요. 특히 중세시대부분이 중요해요. 저는 ‘리먼 쇼크’가 그 분기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앞에 뛰어가던 이들이 넘어졌거든요. 앞으로 우리가 겪을 일이에요. 그대로 가면 넘어지도록 되어 있어요. 뒤에서는 후발 국가들이 따라와요.
그럼에도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요?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으니 완전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모두 똑같은 역을 달리고 그 차를 타려고 줄을 서고 있는 거죠. 우리는 완전 벌거숭이로 허허벌판에 던져져 있던 거죠. 직관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무지의 자유’가 있었던 거요.
보이는 세계 안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게 인문학일까요.
-그 직관이 생명의 법칙이죠. 실은 태내의 공간이 우리에게 완벽한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곳이에요. 인간관계에서는 가족이 가장 자궁같은 곳인데, 그럼에도 독립할 수 없거든요. 폐로 호흡하는 순간, 이미 남이 마신 숨이 내 폐로 들어오는 거거든요.
독립적인 공간, 천재성이 유지되는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는 않은데요.
-사실 에덴동산의 아담만큼 외로운 존재가 없어요. 하와는 태어나면서부터 주변에 누가 있었거든요.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도 그 책임은 아담에게 물어요. 신이 “아담아, 어디 있느냐”라고 묻거든요. 그 순간이 에덴동산의 탯줄을 끊는 순간이죠. 자신의 몸을 보게 되는 거죠. 숨게 되고요. 진리는 숨어있는 걸 드러내려고 하고, 악은 어두움 속에 숨고자 해요.
아담은 외로웠지만 순수했다는 말인가요?
-아담을 위한 변명을 쓸 작정이에요. 그렇게 순수하게 만들어줬는데,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판단할 능력이 없잖아요. 그건 변명이 아니에요. 하지만 배신이죠. 그 때부터 ‘실낙원’이 되는 거죠. 아담의 순수를 잃어버리고, 자궁 밖으로 나와야만 하니까요.
그는 수술 후 염색을 하지 못해 하얗게 된 머리카락이 '실제 내 모습'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
<생명이 자본이다>,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
이번 책은 화폐경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요.
-세계사에서 1971년은 결정적인 해였어요. 닉슨이 ‘불태환’을 선언했거든요. 이제 돈과 금을 바꿀 수 없다는 거거든요. 금 보유량과 화폐는 상관이 없다는 거죠. (세계대전 후 달러 위주의 화폐 체계로 형성시킨 것을 브레튼우즈 체계라고 부른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결정된 이 체계는 IMF와 세계은행이라는 보조 장치를 통해서 작동했다. 그러나 베트남전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가 더 이상 이 태환을 버틸 수 없게 되자, 1971년 닉슨은 불태환, 즉 이제 더 이상은 달러를 가지고 오더라도 금을 바꾸어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몇 년간의 국제 협상 이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국제 무역의 통화 체계가 정착을 하게 되는데, 이를 킹스턴 체계라고 부른다.) 지금 세계는 30조 달러면 운영될 수 있는데, 현제 경제는 여기에 10~20배의 화폐가 유통되고 있어요. 실물 경제와 상관없는 돈, ‘카지노 자본주의’가 횡행하고 있는 거죠. 1986년부터는 돈을 놓고 돈을 먹는 체제가 된 거에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돈은 실상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는데요.
-이 책이 쓰여진 가장 큰 이유는 거기 있어요. 돈이 교환 목적으로만 쓰이고 있다면 자본주의 만한 질서가 없어요. 하지만 1986년 이후부터는 ‘실물경제가 아닌 상징경제’로 바뀐 거죠. 돈 자체가 상품이 되어버렸어요. 도박장이 된 거죠. 고전적 경제나 자본주의는 지구상에서 끝났고 새천년이 되면서 시장규모가 더욱 커졌고요. 이 거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넘치는 생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고 있어요. 사실 자본주의는 도덕철학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인간의 욕망에 맞겨 두어도 스스로 통제가 된다고 생각한 거죠. ‘개개인의 활동이 집단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포드는 심지어 ‘포드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 미국의 이익이 세계의 이익’이라고 생각한걸요. 하지만 이 법칙이 깨지는 거죠.
-하늘이 내려 준 것은 사고 팔아선 안돼요.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래요. 어떤 독재자도 그러진 않았거든. 누가 만약에 숨 쉴 때마다 돈을 받는다고 하면 살 수 없어요.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게 경제의 기본이에요. 마이클 샌델이 처음에 인문학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다음 저서로 경제 이야기를 담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 한 건 그래서예요.
이번 책이 그런 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개의 문화를 이야기할 때 하나는 물리학으로 대변되는 과학의 세계, 시로 대변되는 문학의 세계.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분리된 적이 없어요. 과학과 인문학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으면 인간의 삶을 다 설명할 수 없어요. 사실 이 저서는 두 세계를 합쳐보려는 시도에요.그 화투장을 덮어둔 거죠.(웃음)
반면 이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화가가 화폭이라는 정해진 액자 안에서 그림을 그리듯이, 이번 글도 ‘생명 자본주의’라는 광활한 이야기를 작은 액자에 담았어요. 그래서 오늘 이런 기회를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요. 만약 제가 기대했듯이 ‘디지로그’가 발달했다면, 이 책이 나온 뒤에도 못 다한 이야기는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 재생산할 수 있거든요. 더 쉽게 읽고, 더 깊이 읽고 싶은 사람들은 들어와서 클릭하면 되거든요.
‘디지로그’의 실제사례가 되겠네요.
-책에 미진했던 부분은 매일 일기 쓰듯이 주석을 붙여갈 수 있는 게 제가 꿈꾸던 ‘디지로그’였거든요.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옮기는 게 아니고요. 책을 읽은 사람들은 매일 책이 변하는 걸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아요. 온라인 상에서는 자신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어요. ‘기게스의 반지’ 같은 거죠.(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마법의 반지,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감추는 반지를 갖게 된 목동은 여러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른다) 반지를 끼면 자신이 사라지니까, 평범하던 목장 주인이 왕을 능멸하는 것처럼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착한 사람이 없거든요. 인격이 막 달라져요. 이미 플라톤이 예견한 일이에요. “인간은 내 이름과 내 몸을 가리면 성인군자가 없다. 체면과 얼굴이 자신을 지켜주는 거다.”
이래저래 시절이 수상하니 경제학까지 손을 뻗치신 거군요.(웃음)
-역사학자의 경제학이 있고 심리학자의 경제학, 심지어 물리학자의 경제학이 있어요. 물리학적으로는 무한한 존재도 무한한 운동도 없다는 거죠. 그런데 경제는 무한히 찍어내고 있는 거예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자꾸 경제학자만의 경제학이 되면 안 돼요. 인간은 총체적인 존재거든요. 이 사지를 절단하면 분리가 돼요. 다시 통합해야 돼요. 돈, 돈 하지 말고, 화폐의 역사부터 한 번 보자.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도 이 이야기에요. 시간이 결국 돈인, ‘모모의 경제학’이죠. 이제는 소설가의, 시인의 경제학이 나올 때가 됐어요.
시인의 경제학이란 어떤 걸까요.
-시인은 숫자 놀음을 모르는 바보처럼 보였는데, 아니에요. 대지에 발을 디디고 있는 시인이 나와야 해요. 이슬만 먹는 인문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의 통장, 인문학자의 숫자 이야기가 나와야 해요. 언어를 교환해 시가 되듯이, 피를 교환해 아이를 낳듯이, 돈을 교환해 시장이 되는 겁니다. 사실 원리는 같은 거예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쭐게요.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날아야 해요. 날자, 살자. 이 글을 제가 근사한 논문으로 쓰지 않은 이유는, ‘날개’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이미 나온 이론, 남의 다리로 걷지 말고, 우리 날개로 날아보자는 거예요.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지혜’를 이용해보자는 거죠. 이 지혜를 동물들도 가지고 있어요. 번데기는 나비가 되기 전에 먹이가 돼요. 어미 제비는 교미를 한 후 수컷을 잡아 먹어요.새끼를 줄 영양분을 위해서죠. 자연에서는 먹는 놈보다 ‘먹히는’ 놈이 더 고차원이에요. 먹히는 열매가 씨앗을 퍼트리거든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희생의 지혜’를 갖고 있어요. 먹고 사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거죠. 생명 속에 답이 있습니다.
2013년 12월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방송인 이경규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후배들은 그가 3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게 '대상보다 더 큰 선배의 자리'라고 했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고 왔다. 열대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지만, 추위를 겪은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다고 했다. 그 나이테를 하나 더 만드는 심정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분야는 다르나 홀로 길을 개척해 온 해녀는 앞서 간 해녀를 알아보는 것일까.
여든 해를 치열하게 살아온 이어령에게는 몇 개의 나이테가 있을까. 추위를 견뎌야 생기는 나이테는, 또한 생명이 있기에 새길 수 있는 흔적이다.
그의 말과 글 속에는 여전히 크고 아득한 물 속을 헤엄치는 깊은 숨이 삼켜 있었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던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염원이 하나 생겼다. 그 숨에 빚진 젊은이들이 그의 좌표를 따라 더 깊은 물로 들어가 주기를, 그가 '님'을 위해 아껴둔 그 전복을 따주기를, 평생 '혼자여야만 했던' 이 고독한 해녀의 물질이 회한으로 남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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