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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9일 수요일

선친의 60년전 미국 생활의 모습

돌아 가신 부친은 회사 일로 1954년부터 1955년 가을까지 약 1년 반을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일찍 무역업을 하는 비즈네스맨으로 뉴욕에 가서 혼자 일을 하셨다.  당시의 한국 사정은 정전 직후여서 이렇다 할 회사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나 선친이 근무한 회사는 조선호텔 건너편에 회사가 있었던 국생산업으로 생사(生絲)를 수입하여 비단 원단을 짜는 방직회사였다.

미국에서 하셨던 일은 생사를 수입하는 업무를 하셨는데, 한 해에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숫자인 거의 백만불어치를 수입하였다고 한다. 당시 물자라곤 전혀 없었던 한국의 상황은 비단이 고급 의류이므로 하루가 다르게 생사 가격이 계속 오르는 추세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값싼 나이론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비단을 대체하는 값싸고 질이 좋은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여 창고에 쌓여 있던 생사의 가격이 속절없이 하락하게 되고 그 이후로 회사는 나락의 길로 떨어졌다고 한다. 

당시 국민학교를 막 입학할 즈음의 나는 자세한 내용을 몰랐으나 나중에 선친으로부터 회사의 말로를 대강 들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선친이 찍은 사진을 보니 모든 칼라 사진의 뒷면에는 선명하게 아래와 같은 내용의 스탬프가 찍혀 있다. 맨 아래의 날짜는 바꿀 수 있게 되어 있는 고무 도장을 찍은 것 같다.
"This is a Kodachrome Print
            made by
Eastman Kodak Company
T.M. Regis. U.S. PAT. OFF.
Week at June 14, 1954" 


약 60년이 된 사진이라 싸이즈가 작고 퇴색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선친을 추모하며 많은 사진들 중에 일부를 스캔하여 집안의 역사로써 올려 보고 자식들에게 전해 주고 싶다.

하와이에서 찍은 것



뉴욕의 사무실과 생활한 방 . 당시 선친은 45세 이었다.(1909년 생)


나이아가라 폭포

당시 미국인들의 옷과 삶이 엿보인다.

나이아가라에 여행을 가면서도 양복 정장 차림이 눈에 띈다.

회사 관련 공장에서

하와이에서 교분이 있는 현지 교민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일가족 같다.

백악관 앞

워싱턴 D.C.에 가셨네.

Lincoln Memorial Monument:뒤에 보이는 당시 미국 차들이 모두 Classic이네....


뉴욕의 마천루 눈에 익은 건물이다.

 당시도 택시가 많았다.

호텔 알레산드리아에 묵으셨는지?
Parking meter기가 요새 것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동양인이라고는 거의 없었을 적에 고군분투하셨는지 
단정한 양복 차림이 좋아보인다.

말쑥하게 잘 차려입으신 부부들과 함께.
작금의 멋쟁이 못지 않아 보인다.

그랜드 캐년도 관광하셨네.
선친은 국내에서도 항상 중절모를 쓰고 다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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