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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6일 일요일
상기하자 1.4후퇴, 굳세어라 금순아
1.4
후퇴
상기하자
이 메일을 접하니
1,4
후퇴시 원산부두에서 도보로 피난길에 올랐던 생각이 납니다
.
흥남부두에서 딸의 손을 놓친 아버지의 이야기
굳세여라 금순아 현인의 대 히트곡
***
영화 굳세여라 금순아
***
우리는 이 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이 날을 길이길이 기억하고 되씹어 이러한 불행들을 겪어선 안되도록 해야겠습니다
.
한국 전쟁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금순이 남매도 피난을 떠난다
.
가장 혼란스러웠던
1.4
후퇴 당시 흥남 부두에서 헤어지게 된 남매는 그 후로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
애써 서로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매번 수포로 돌아가고 지친 금순은 끝내 병을 얻어 몸져 눕고 만다
.
이에 친구들이 그녀를 도와 오빠를 찾게 되었으나 그녀의 병세는 이미 절망적이다
.
오빠는 금순을 안고 죽어서는 안된다고 몸부림 치지만
,
금순은 오빠의 행복을 빈다
..
공산군 치하에서는 못 살겠다고 피난 또 피난
철수하는
LST
미국 군함을 얻어 타려고 몰려든 피닌민들
철수
(
후퇴
)
하는 미국 군함을 타기위에 흥남
항구에 몰린 피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
어선과 군함 후퇴하는 다국적군과 피난민의 북새통속
UN
군과 피난민
14,000
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떠난후 군수물자를 폭파했다
,
흥남역을 출발한 마지막 열차가 부산을 향해
목메인 기적 소리를 울리며 칙칙폭폭
북한을 출발한 피난 열차의 종착역은 무조건 부산역이였다
.
화차안이 좌석이 없자 화차위에도 피난민이 가득
기적소리와 함께 흥남서 부산까지 달리는 열차가 힘겨운듯 목메어
피난은 고향을 버린 실향민으로 반세기가 넘어셨다
.
화차 위에타고 졸다가 터널에서 많은 목숨도 잃어가며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
한강 얼음위를 건너
1.4
후퇴 서울 시민들
군함과 마지막열차를 못탄 피남민과 후퇴하는 한국군이 어우러
__
다
.
밀려오는 피난민을 수용할 국가적인 능력도 없어 항구와 역전에 버려졌다
.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판자집에서 어려운 피난살이는 시작되었다
.
부산바닥 노점상으로 움막살이와 피난살이를 영화화한 굳세여라 금순아
꿀꾸리죽과 다목적군의 군복으로 추위를 견뎠다
.
꿀꾸리죽
=
미군의 음식쓰래기
추억에
뻥튀기는 그들의 밥벌이엿다
.
강물을 퍼다가 식수로 사용한 피난민들
두 아이를 먹여 살리려고 엄마는 피눈물을 흘려야만하였다
.
몸이 아프면 노숙자로 죽어야 했던
1.4
후퇴 피난생활
봇짐을 운반해주는 지갯꾼들
아코디온으로 고향을 그리며 마음을
달래보는 거리의 악사
큰배가 지날때 다리를 들어 올리는 영도다리
껌팔이 소녀
,
피난민 소녀
부산의 명물
,
산에다 지은 집은 아파트같이 보인다
.
그이름도 유명한 판잣집들
난방과 취사는 석유곤로에 의존했다
.
석유곤로는 당시에 없었고
60
년대에 나왔다
.
청계천변에 복원해놓은 판잣집들
.
널판지로 지은 판잣집이 노점상과 어울린다
.
굳세어라 금순아
,
하숙생
,
전쟁당시 판자집에는
다닥다닥 영화포스타가
... 60
년대
60
년대 아리랑 담배로 외로움을 달랜 담뱃가게
굳세어라
1953
년 굳세여라 금순아
현인이불러 대구에서 시작된 노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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